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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소금창고가 있는 마을
김 학 진
나이가 들어가니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더욱 소중하다. 초등학교 동창생 서너 명이 발기인이 되어 흩어져있는 친구들을 모으자며, 뭐니 뭐니 해도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제일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오는 5월 5일 한 자리에 모이기로 했다. 그럴려면 몇 사람이서 동창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찾아다니며 그들을 만나보고, 모두 연락을 취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나는 복 거삼과 같이 징미에 사는 서 정기를 우선 만나보기로 했다. 복거삼과 내가 나선 까닭은 동창회의 준비위원으로 추대되어서 였다. 서 정기는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 쪽에 있는 징미라는 곳에서 살아 온 주먹께나 쓰는 친구였다. 서 정기 네를 여러 번 가보긴 했으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여서 그 옛날 집을 찾을 수 있을까가 의문이었다.
복거삼과 나는 서 정기를 찾기 위하여서 징 미로 향했다. 징 미는 양화 교를 지나 왼쪽 길로 접어들면 나오는 동네였다. 예전에는 강을 끼고 수리시설이었고 구릉 양지쪽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었다.
그 가운데 떡 버티고 있는 집이 서 정기네 였다. 지금은 동네가 모두 변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동네 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징 미에서 차를 내린 복거삼과 나는 찻길 옆에 있는 복덕방으로 들어섰다. 아무래도 옛날과 사뭇 달라진 동네에서 옛날 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게 여겨져 그래도 복덕방에 가서 물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우리의 생각은 꼭 맞았다. 복덕방에서는 이내 서 정기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서 정기는 아직 그 동네에서 살았다. 버스길로 한 정류장 더 가면 <징미 부동산>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집 주인이 바로 서정기라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징미 부동산>을 찾아서 그 안으로 들어섰다. 서 정기는 우리들을 알아보지 못 했다,
내가 먼저 서 정기를 불렀다.
“서 정기! 우리들을 알아 보겠 나 ? 초등학교 동창 김 민석!”
서 정기는 잠시 나를 쳐다보았다.
“어 김민석 그래 김민석!‘
“그리고 난 복 거삼이구”
“그래 복 거삼 야 참 반갑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
서 정기는 우리들을 알아 보고나서 얼굴 가득히 기쁨을 담았다.
금방 붉게 얼굴로 상기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반가워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래 네가 보고 싶어서 왔지, 친구가 말야“
“죽지 않고 살았구 나 부동산 사장님도 되시고 !”
“아냐 사장은 무슨 사장 그냥 밥 먹고 살지,“
“야 요즘 세상 밥 못 먹고사는 사람도 있다 더냐? ”
“근데 웬일이냐 ? 정말, 이렇게 갑자기 여길 다 찾아왔어 어떻게 ?”
“요 전 정류장에 있는 복덕방에서 물어 봤지, 그랬더니 알려 주더군”
“응 새호서 복덕방? 그 영감이 나 잘 알지, 이 동네 본토 백이니까"
“다름이 아니 구 동창들이 모인다잖아 이번 오월 오일에, 이제 나이도 들고 하니까 한 번 모이자는 거지,”
“좋지 동창회 그래 야 옛날 생각난다. 그거 좋지,”
서 정기는 얼굴에 그 옛날 개구쟁이의 표정을 그대로 그려냈다.
“그래 넌 뭐 하니 ? “
“난 목사”
“목사 ? 예배당 목사? ”
“그래 ”
“너 복 거삼은?”
“나 달라 장사 ! 사채업자지”
“그래 ? 넌 돈이 많은 가? “
"조금 있지 많긴 뭐 많어 ? “
“한 집에 같이 살던 김 명산은 어떻게 되었니? 어디 사나 ?”
“김 명산 ? 그 자식은 말도 말아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는 바람에 이 동네를 아주 떴지, 딴 곳에서 사는 데 몇 년 전에 나한테 찾아와서 이러는 거 있지, 여기 어디에 우리 집 땅이 남아 있을 텐데 그걸 찾아야 겠다는 거야 내가 가진 것 까지 빼앗아 가겠다는 거지, 그 자식은 사람도 아냐 ? 그것들 모두 그렇잖어, 그 집안이 한 족속이지,”
“그래 ? 죽지 않고 살아 있긴 해 ?“
“살아 있긴 살아있지 , 쫄딱 망해서 그렇지, 그 집안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린다.“
서 정기가 김 명산 네를 미워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서정기의 아버지가 김 명산의 아버지 대신 학도병으로 나가서 대동아 전쟁에 참가했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 때 한 집안에 살았었지, 아주 큰 대가 집이었어, 집의 크기도 궁궐만 했었구“
“응 어릴 때 같은 집안에 살았었지, 김 명산 네가 주인이구 우리아버지는 행랑 아범이었 잖어 난 아버지와 같이 행랑채에 살았었고”
”그랬지“
나는 서정기의 말을 듣고 그 옛날 김명산과 나 사이에 얽힌 기억들을 더듬어 내고 있었다.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김 명산은 한 반에서 공부하는 내 짝이었다.
김 명산은 자기의 집으로 놀러 가자고 여러 날 졸랐다. 마침내 그를 따라 간 곳이 징미였다. 산 밑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고 그 중앙 한가운데 김 명산의 집이 성채처럼 서 있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다녀 본 집들 중에서 제일 큰 집이었다.
나는 대문을 들어서면서 크게 놀랐다.
“여기가 너희 집이냐? “
“응, 우리 집. 할아버지와 함께 살지, 우리 할아버지는 경제학 박사야 경제부장관이구”
“그래 꽤 높은 사람인가 보지, 대통령하구 친구냐? ”
“친구는 아닌데 같이 일하신데 그때 대통령이 우리 집에 오셨었다. 강화로 가시다가 들렸는데 굉장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이고 큰 잔치가 벌어 졌었지,”
나는 김 명산을 따라서 집안으로 들어섰다. 안 채 까지 거리가 멀어서 한참동안이나 걸어야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과는 비교가 안 되는 넓고 큰 집이었다. 나는 그날 행랑채에서 나오는 서정기의 어머니를 보았다. 김 명산은 내게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행랑어멈, 서정기의 엄마지!”
서 정기는 김 명산 네 집 행랑채에서 살고 있었다. 김 명산과는 동갑이어서 초등학교에 함께 다녔다. 나와 한반이었다.
그 날 저녁 김 명산 네서 하루 밤을 지냈다. 밤이 되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처마 밑에 매달아놓은 인경이 바람에 부딪 끼는 소리가 들렸다.
김 명산과 나는 별 채에서 같이 머물렀다. 그는 학과공부는 하지 않고 중학교 입시 책만 들여다봤다. 얼마 안 있으면 중학교입시를 치러야 하니 그것에 대비해서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입시 책을 보았다. 그가 보는 입시 책을 훑어보니 내가 아는 문제들이 많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짝이면서도 잘 모르던 일을 김 명산 네를 와 보고나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 넌 이담에 뭐 될 레 ?”
“나 헌병대장!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경제학박사가 되라는데 난 헌병대장이 좋아, 우리 큰 누나 매부가 헌병대장이거든 긴 칼을 옆에 차고 긴 가죽 장화를 신고 ,총을 갖고 말을 타고가는 게 얼마나 멋지다고 난 헌병 대장이 되려구 해!”
나는 그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다. 그리고 그의 매부가 헌병대장이라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았다. 나는 김 명산과 하릇 밤을 지내는 동안 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잠자리가 바뀐 탓도 있겠으나 내일 가지고 갈 숙제가 걱정이 되어서였다.
급히 오는 바람에 내가 쓰는 책과 공책을 집에 두고 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숙제를 할 수 없었다. 이튿날 나는 김 명산 네 집 대문 앞을 나서면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바라다 보이는 웬 창고 같은 건물에 눈길을 두었다.
“저건 뭐니? 저것도 니네 꺼니? ”
“응 저건 소금 창고, 저것도 우리 꺼야 저걸 관리하는 이가 따로 있어 저 안에 소금이 가득 들어 있거든”
“소금? “
“응 소금 아주 짠 거 있잖어 왜 생선에도 뿌리고 간장을 담그는 소금 말야 연평도에서 조깃배가 들어오거든 저기 소금 창고 옆에 있는 게 얼음 창고야 그 곳에다 조기를 재 두기도 하지, 소금을 뿌려서.”
나는 언제나 소금이 가득 들어있다는 소금창고가 그 동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숙제 검사를 하던 김 제옥 선생은 유난히 인자했다. 내가 김 명산 네를 다녀와서 숙제를 하지 못했다고 말하자 김 제옥 선생님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알았다며 숙제 검사를 통과 시켜주었다.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그 때의 생각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서 정기는 우리를 강 옆에 있는 민물매운 탕 집으로 안내했다. 수리시설은 없어지고 새 길이 났으나 민물 매운탕 집은 겉모양만 바뀐 채 그대로 남아있었다.
”여기 알 어? 그 전에 이 밭에서 콩 튀기 해 먹었잖어 ? 학교 땡땡이 치고”
“그래 맞어 그 때 네가 내 검정 고무신을 저 수리시설 물길에다 빠트렸지, 넌 순 개구 장이였지”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사람은 그런가 보다 어떤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기억 할 수 있는 관련된 사물이나 장소를 보면 생각나는 게, 아마도 망각의 기능을 다시 살려내는 역할을 눈이 한 몫을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서 정기는 우리 앞에다 생선회가 가득 담긴 여러 개의 접시를 당겨 놓으며 연신 입을 벌렸다.
“야 그 때 말야 그 때 ! 학교 때 내가 비오는 날이면 김 명산이 그 자식을 업고 학교까지 갔잖니, 그 자식을 학교까지 잘 데리고 갔다 오라는 거야 우리 어머니가 ! 난 덩치가 좀 크지만 그 새낀 약골이 잖어, 오줌을 눌 때도 병아리 오줌 누듯 하구 말야”
“그랬나? ”
내가 그의 말을 받자 그는 또 대포알을 쏘듯 쏘아댔다.
“ 김 명산 그 새끼네 아버지 때문에 우리아버지가 죽었잖어, 그 새끼 아버지가 학도 병으로나가야 하는 건데 우리 아버지가 대신 나갔지, 대동아 전쟁터에 끌려 간 거지 뭐 , 그 때 죽었을 게야 우리 아버지는, 그래 난 에비 없는 후레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살아 온 거야, 지금 생각하면 모두 시대를 잘못 타고 난 거야”
서 정기는 입에 술이 들어가자 독설을 그대로 퍼 부었다. 그건 김 명산 네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체념하고 살아 온 듯이 그런 일을 운명으로 받아 드리고 있었다.
나는 서 정기에게 분위기를 바꿀만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자식은 몇 인가? ”
“ 나 아들 하나 딸 둘인데 큰딸은 시집보내고 아직 둘은 남아 있지, 아들은 별성 그릅에서 하는 공장에 다니고 있어, 공고 기계를 나오고 밀링 기술자야 내가 권했지, 뭐니 뭐니 해도 요즘 밥 먹고 살려면 기술 자격증이 한 가지 있어야 한다구 했지, 그랬더니 그렇게 되었어, 공 장 띠기지 뭐 공장 띠기”
“그래도 아들이 제 밥벌이를 하면 됐지 뭐 월급도 많이 타겠 구 ”
“ 장가 밑천 만들지, 적금도 들고 제 용돈 쓰고 융자 얻은 것 좀 갚구 그래”
그러면서 서 정기는 허허 웃어댔다. 머리가 반백이 된 얼굴에 동안(童顔)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서 정기는 그렇게 살아왔다. 징 미에서 조금 떨어진 야산 등마루에는 묘지들이 많았다. 그 곳에 올라 묘지 앞에 묻어 둔 비석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살아왔다. 그동안 원통하고 한탄스러운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등마루에 올라가서 한강물을 바라보면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억울한 생각이 덜해지거나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등마루 묘지로 향하는 상여꾼들이 멘 상여는 징 미로 가는 길을 지나야했다. 서 정기는 상여 행렬을 유심히 보았다. 그의 아버지가 상여를 타고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날은 소금 창고 옆으로 걸어오는 것 같아서였다.
서 정기는 징미 길로 꽃상여가 지날 때면 학교를 가다 말고 그 꽃상여 행렬을 따라 갔다.
그 행렬은 등마루 언덕 뒤쪽까지 이어졌다. 상여꾼들은 땅을 파고 꽃가마에서 관을 꺼내어 땅에다 묻었다. 그리고 나서 흙을 덮었다. 저녁이 되어 봉분이 끝나면 그들은 술에 취해서 다시 빈 상여를 메고 징미를 지나 영등포쪽으로 되돌아갔다. 며칠 후 묘지에 올라가보면 새로 만든 비석이 묘 앞에 세워 졌는데 그들은 모두 묘비에다 고인들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고 나말석지 묘> 라고 쓰여 져 있었고 나말석이라는 이름만 달랐다.
서 정기는 그것을 본 따서 <고 서금만 지묘> 라고 아버지의 이름을 써서 방안 벽장문에다 붙여 놓기도 했다. 물론 여럿이 찍은 사진 중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오려서 크게 만든 사진을 미 리 준비해 놓기도 했지만 ___
몇 순배 술이 돌아가자 서정기가 물었다.
“그래 언제가 동창들 모이는 날야 ?”
“오월 오일 어린이 날, 학교에서 모이지 오전 열시“
“그 날 참석할 께”
“응 꼭 와”
“응 그 날 내가 가지, 그 날 꼭 가! 준비물은 없는가? “
“준비물은 그냥 몸만 오면 돼!“
서정기와 헤어져서 돌아오면서도 복거삼과 나는 김 명산 네서 살아가면서 학교에 다니던 서 정기를 생각해 보았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 온 것 같았다. 복 거삼과 나는 강서 쪽으로는 서 정기를 만나서 이야기 했으니 됐고, 김포 쪽 동창들에게는 서정기가 부탁을 해 놓을 테니 됐다 싶었다.
다음 날 하루 계획을 세웠다. 양화 정 쪽의 예 재민을 찾아가기로 일정을 잡아놓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나는 서정기의 아버지가 김 명산의 아버지 대신 학도병으로 나가서 소식도 모른 채 지내왔다는 말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자네가 내 아들대신 학도병으로 나가주면 내가 자네 집안을 편안하게 돌보아 줌 세! 그리고 저 소금창고도 자네에게 줌 세 약속하지”
김 명산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들대신 학도병으로 보내면서 서정기의 아버지에게 약속한 말은 서정기의 어머니만이 알고 있었다.
이튿날 나는 다시 복거삼과 같이 양화 정에 사는 예 재민을 만났다. 그는 동네에서 이발소를 하고 있었다. 오랜 동안 이발소의 문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손님들도 꽤 있고, 큰 밑천이 드는 게 아니어서 수입이 괜찮다고 했다. 집 앞 빈 터에다 건물을 붙여 만든 곳으로 벌써 20년 동안이나 영업을 해 왔다고 했다.
처음 시작 할 때는 이발 기술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영업을 해 왔으나 그 동안 이 발기술을 습득해서 10년 전 부터 자신이 직접 이발소를 운영 해오고 있다고 했다.
해병대를 제대한 건장한 체격이 조금은 왜소해 졌으나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예 재민도 징미에 가서 콩 튀기를 해먹던 동무였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의 지금의 생활은 모두 괜찮고 다른 사람 못지않게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왔는데 여자 복이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을 자세히 듣고 보니 여자 복이 없는 게 아니라 여성 편력이 너무 많은 것 같았다. 예 재민의 아버지는 양화 정 뚝 밑에다 밭을 붙여 농사를 짓고 살았다. 아버지가 조실부모하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가정을 놔두고 어느 날 야반도주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계획적으로 시집 살림을 빼돌려 놓고 도망쳤다고도 했다. 그런 까닭으로 예 재민의 아버지는 결혼을 두 번씩이나 했다.
예 재민은 후처한테서 난 자식인데 그도 아버지처럼 초혼에 실패했다. 그의 아내도 어느 날 예 재민을 홀로 놔두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 후 몇 년 동안이나 혼자 지내다가 이발소에서 일하는 젊은 여자 면도 사를 아내로 마지 했다. 지금껏 아무 탈 없이 살아오고 있는데 손님들에게 너무 친절하게 대하는 게 신경이 쓰인다고 솔직한 고백을 들려주었다.
지금은 먹고 사는 일은 걱정이 없었다. 큰 재산은 없으나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부자가 된 셈이라고 했다. 예 재민은 돈이 모아 지는 대로 동네에서 팔려고 내놓은 자투리땅을 사들였다. 여러 해를 그렇게 했더니 그게 큰 재산이 되었다. 처음 싼값으로 땅을 살 때 보다 땅값이 배로 나갈 때도 있었다.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서 팔 경우는 몇 곱을 받고 팔기도 했다. 그 것이 이발소 영업을 해서 벌어들이는 일상적인 수입보다 더 많았다.
예 재민은 돈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돈이 모이니 사람 구실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사람구실이라는 게 예 재민에게는 아는 이들의 조경사에 부조를 하는 일이었다. 그 전에는 돈이 귀해서 그런 일조차 하지 못 했다.
마음의 표시를 돈으로 해야 하는 세상이라서 예 재민도 돈을 손에 쥐게 되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해병대를 제대하고 나서 사회에 나오니 무슨 일이든지 할 것 같아서 덤볐다는 것이다. 공사판에 따라 다녀보기도 하고 공장에 들어가서 직공 노릇도 해보고, 철따라 하는 장사도 해보았으나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 목돈을 손에 쥘 수 없었다. 먹고 사는 일만 그저 쓸 뿐이었다.
그런데 예전과 달랐다. 전에는 갈라진 논바닥에 물 붓는 것 같더니 돈을 손에 조금 쥐게 되니 순식간에 없었어지던 물이 되더라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목돈이 조금 쥐어져야 그때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재산이 있어야지 재산이 없으면 평생 동안 뼈 빠지게 고생만 하다가 죽게 된다고 했다. 사람이 여러 곳을 다니면서 구경도 좀하고 즐기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나에게 되물었다. 복 거삼도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좀 있어야지 돈이 없으면 고생이지 돈이 있어야해---- ”
아닌 게 아니라 예 재민의 얼굴에는 번지르르 하게 개기름이 흘렀다.
“동창회가 있다고 했지? 거기에 기금을 좀 내야 할게 아냐? 동창회비로 쓰게 ! 뭐 내가 여 기서 회장을 하겠다든 가 그런 건 아니지만 말야 이 거 한 장이면 될까 ? 1백만 원”
그는 모처럼 기쁜 일을 해본다며 수표 한 장을 복 거삼에게 내 놓았다.
"잘 적어 두라고, 그리고 동창회 명부 맨 처음에 적어두라 구 그래야 그걸 보고 다른 회원들도 한 두 푼씩 낼 게 아냐. 그리 구 한 가지 부탁이 있는 데 말야 신 덕수 __ 그 놈이 내 짝이었지, 그가 동창회에 꼭 와 주었으면 해서, 그 놈이 내 책 가방을 들고 다녔거든, 나한테 매도 많이 맞고 그 놈 어디 있어 ? 그 놈 좀 찾아서 만날 수 있게 좀 해 주지, 자 이건 차비 그놈을 찾으려면 차비도 있어야 할 게 아냐 ? “
예 재민은 의외로 신덕수를 찾아 달라고 까지 했다. 그가 신덕수를 찾아달라고 부탁한 것은 그의 마음에 맺힌 것이 있어서 였다.
신 덕수 그는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뒤졌다. 말을 더듬거릴 뿐 더러 생각하는 것도 좀 얼띠었다. 친구들 사이에 늘 제외 시켜 놓았었다. 이따금 동네북처럼 이놈 저놈에게 얻어 터졌다. 애들 사이에는 <꼴통>이라고 통했고 또 어떤 애들은 <버버리>라고도 불렀다.
그는 늘 청소당번을 맡아서 했고 화장실 청소며 심지어 애 들의 책가방 까지 들고 다니는 일을 제일처럼 했었다. 그 신 덕수가 제일보고 싶다며 특별히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왜 그랬을까 ? 복거삼과 나는 계획에 없었던 그 애였지만 이왕 말이 나왔으니 그도 찾아보기로 했다.
그는 당산전철 역 앞에서 간판 가게를 했다. 계단 옆 축대 밑 구석진 곳의 빌딩 한 칸을 세내어 간판 가게를 열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 간 첫날은 가게를 비우고 없었다.
서너 시간을 기다렸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메모를 해 옆집 식당 아주머니에게 맡기어 놓고 다음에 다시 오기로 했다.
식당 아주머니는 아까 간판을 달러 나갔다며 메모를 전해 주겠노라고 했다.
신 덕수는 다른 사람이 따라 갈 수 없는 재주를 지녔다.
그가 그리는 그림이었다. 다른 학과목은 뒤졌으나 미술은 그가 선두 그릅에 속했다. 그림 솜씨가 우수해서였다. 그는 말없이 재빠른 솜씨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한 번은 그가 그림을 그리고 내 그림도 그려 준 적이 있었다. 그 그림을 나란히 교실 뒤쪽에 붙였다.
여자선생님은 그 그림을 보고
“노란 색을 많이 썼는데 아주 그림이 잘 되었다.”
고 칭찬해 주었다. 신덕수가 그린 그림과 내 이름이 적힌 그림을 비교해 보면서 머리를 갸우뚱 거리며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했다. 그 다음 부터는 그가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은 믿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그가 그림만은 잘 그린다고 칭찬을 했다.
내가 복 거삼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가 동창생이라며 전화가 왔던 것을 알려 주었다.
“누구래? “
"신 덕수씨라죠 아마 “
아내는 전화탁자위에 적어 둔 메모를 내게 건네주었다. 내일 다시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했다. 메모를 보고 전화를 했다면서 내일은 작업을 나가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튿날 나는 신덕수가 운영하는 간판 가게로 갔다. 신 덕수는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는 미안했어, 대형 간판 제작이 하나 있어서 거길 갔었지, 하루 종일 걸렸지 뭐야 다녀오니까 메모를 전해 주더 군 이렇게 와 주어서 정말 고맙다 무척 반갑기도 하구”
신 덕수는 말을 더듬으면서 나에게 어제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얘기 해 주었다.
“그래 모두들 잘 살지? 난 이거 해 간판, 이렇게 됐지, 그림을 좋아하다 보니 간판장이가 됐어, ”
“그래 덕수는 학교 때 그림을 아주 잘 그렸지 참 재주가 있었어 ”
"재주는 무슨 재주 그저 열심히 그리는 거지 뭐, 내가 그동안 그림을 그렸는데 한 번 보여줄까? “
복 거삼이 신 덕수의 재주를 인정해 주자 그는 스크랲 북을 꺼내었다. 첫 장부터 그는 설명에 들어갔다.
“ 이게 내가 그린 것들이야, 기도하는 손이지, 근데 잘 안 되었어 좀 투박하지,?”
“아냐 잘 그렸어 정말 기도하는 손 같아 좋은 그림인데 ---- ”
신 덕수는 몇 장을 넘기며 자신이 그린 그림이 <돛단배><단풍><한강 다리> <은행나무>등 몇 가지를 내보였다. 그러면서 나를 보고 히죽히죽 웃었다.
“잘 안되었어, 뭐 예술적 가치가 있어야 하는 건데 그냥 간판 그리듯 한걸 뭐, 지금도 난 하고 싶은 게 그림 공부지, 그림을 좀 잘 그렸으면 좋겠어. 근데 이제는 손끝이 무뎌져서 글렀어! 붓끝이 잘 안 나가”
“잘해 봐 뭐 꼭 훌륭한 그림이 아니더라도 자기 세계에 집착하는 그림이야 얼마든지 그릴 수 있잖 어, 재능도 있구 말야? ”
신 덕수는 옆집에서 술상을 보아 오게 했다. 오랜만에 술잔이 오고 갔다.
“정말 이 쪽은 안 돼 ? "
“안 되지 목사님이시니까?"
“그래 언젠가 한 번 이야기를 들었지,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말이지 우리아버지가 개척교회 장로님이셨지, 나도 아버지처럼 장로가 되려고 하는데 잘 안 돼, 우선 사람이 좀 건실하고 경건해야 해야 하는데, 이건 뭐 늘 노가다 판에만 있으니 종교생활하고는 거리가 멀어, 시간 두 안 맞고 이 직업은 시간도 때도 없고 주일에도 문을 열어야 하니까 말야”
“우리가 이렇게 온건 동창회 때문이야 오랜만에 동창들이 모여서 어디 한 번 가 볼 수도 있고 말야 옛날처럼 한 번 모여보자는 거지,‘
“ 복 거삼이 입을 열었다.
“ 벌써부터 해야하는 건데 좀 늦었어, 뭐 친목회다 조기회다 축구회다 야외놀이다 모두 있는데 따라갔다 와서는 모두 후회를 하지, 뭐 좀 생산적이어야 하는 데 그저 술먹고 노는 거야 왔어 갔어하면 하루시간이 다 가고 말야 ”
“그렇긴 해 멀리 가면 ”
“그래 만나선 뭐 하나? 내가 프랑 카드를 하나 써 가지. 양말 산 초등학교 몇 회더라?”
“12회지”
“그래 12회 동창회 이렇게 써 가지고 가지”
“ 그래 미리 한 개 써 가지고 그날 와라, 아무래도 하나 써서 그날 걸어야 할 테니까 그리고 정말 예재민이 너 꼭 데리고 나오라고 하더 라“
“응 예 재민 내 짝 양화 정에서 이발소 한다면서 알았어!”
복거삼과 나는 명단에 마지막으로 적힌 염 찬영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는 전곡이라는 곳에서 양조장을 한다고 했다. 그를 꼭 칮아야 할 이유는 그가 육상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오락회를 이끌 때는 그를 따를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튿날 복거삼과 나는 전곡으로 갔다. 한탄강을 지나서야 닿는 전곡은 군인초소를 몇 개씩이나 지나야 갈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양조장은 쉽게 찾을 수 있었으나 염 찬영은 없었다.
양조장주인은 염 인영으로 염 찬영의 형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인은 대전에 사는 누이동생 네의 잔치가 있어서 갔으나 염 찬영은 오래 전에 죽었다고 했다.
“왜 죽었나요? “
내가 양조장에서 일하는 이에게 묻자 염 찬영이는 월남 전투에 참가해서 무슨 훈장까지 탔는데 귀국하여 전방부대에 배치되어 전방순찰을 하다가 부비 츄랲이 터지는 바람에 전사했다는 것이다.
“그 아저씨는 힘이 세고 장교였는데 그렇게 되었어요 그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주인아저씨는 동생을 잃었다며 영조장 안에 있는 술을 모두 쏟아버렸어요, 며칠씩이나 온 동네를 돌아 다니며 야단법석을 폈지요,‘
그러나 오래전 일이라서 모두 그 일을 잊어버리고 제삿날 가족들이 모이면 그 이야기를 한다고 헸다. 그러니까 염 찬영은 군대생활을 하다가 안전사고로 죽은 것이다. 복거삼과 나는 염 찬영이 그렇게 되었으니 할 수 없지 않느냐고 한탄 강변에서 한탄만 하다가 돌아왔다.
동창회준비모임은 준비위원 몇 사람이 나누어서 연락을 하고 찾아가서 모이자고 한 까닭으로 스무 명의 동창생들이 모였다. 서 정기 예 재민 신 덕수 복 거삼과 나는 다른 쪽에 연락을 취했었다. 그러나 김 명산이 나타나지 않았다. 소금창고가 있는 마을에 사는 김 명산___ 그의 할아버지가 경제부 장관까지 지낸 경제통집안의 장손이었는데 그가 보이지 않았다. 동창회 준비 모임은 양평동에 있는 양화식당에서 열렸다. 꽉 들어찼다. 식당주인 한 중태가 음식을 제공 했다. 20년 만에 만나는 동창들은 모두 반백이 되었다.
모두들 건강한 빛이어서 다행이었으나 오늘 모임에 빠진 몇 사람은 아무리 수소문해도 소식이 없었다. 그들은 아마도 이민을 갔거나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는 짐작이 갔다.
그들은 모여서 도시락을 뺏어 먹던 이야기며 특별활동 시간에 음악을 가르켜 주던 여선생이 새 노래를 배워주던 이야기며, 여자반 아이들이 고뭇 줄 놀이하는 것을 훼방하려고 고뭇 줄을 끊어 놓던 일 등 몇 시간의 화제 거리가 풍부했다.
여러 동창들이 예 재민을 회장으로 추천했다. 동창회 기금도 많이 내고, 적극적인 그의 성격과 추진력을 높이 샀다. 만장일치로 추대 되었다.
신덕수가 총무로 뽑혔다. 준비 위원들은 그대로 운영위원으로 자리만 바꾸고 서 정기를 운영 위원에 새로 포함시켰다.
예 재민은 회장인사말을 하는 가운데
“이번 꽃 시절이 지나기 전에 강화도로 야유회를 가는 게 어떻겠느냐”
고 즉석제의를 했고 모든 경비는 그가 내겠다는 약속을 덧붙였다. 모두들 박수를 치며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호응을 해주었다. 합의까지 이뤄 낸 야유회에는 부부동반이 조건으로 되었다.
“좋아 좋아 부부가 좋아”
“아냐 그냥 사내들만가 걸 치장 거려 못 써!“
여러 의견이 나왔으나 나중에는 부부가 함께 가기로 원칙을 세웠다. 오늘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도 끝까지 연락을 해서 야유회에 참석 시키자고 했다. 모집하는 일은 다시 복 거삼과 내가 맡아 하기로 했다.
나는 오늘 오지 못한 동창들 가운데 다음에 참석시킬 사람으로 김 명산을 꼽았다.
그는 좋은 집안의 배경도 있어서 사회생활의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 헌병대 장이 되고 싶다던 그가 나의 관심 거리였다. 그를 수소문 했다.
서 정기는 그가 신길동 어디쯤에만 산다는 것을 알았 지, 주소는 모른다고 했다. 내가 김명산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찾아야한다고 말하자 서 정기는 이내 반응을 나타내었다.
“그까짓 녀석은 찾아서 뭣하게!”
오히려 내게 반문 했다.
“그래도 동창이니까 "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도 동창이긴 한 데 지난 과거의 자기 가족들을 대한 것을 보면 그도 무슨 일에 던지 자기 아버지처럼 할 놈이라고 못을 박았다. 김 명산을 꼭 찾기 원하면 대방동에 있는 주유소를 가보라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주유소에서 자주 보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 주유소는 왜 ? 주유소를 하나? “
“글쎄 모르지 지가 하는 건지 기름을 넣으러 왔는지,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견딘다는 데 말야 ----”
서 정기는 김 명산 네가 이미 몰락한 집안으로 보고 있었다. 자신이 모시던 상전주인의 아 들을 대신해서 서정기의 아버지를 학도병으로 보내야 했던 슬픈 일을 안고 있었다. 그런 일을 감수하며 지내야 했던 서정기가 아니었던 가 ? 그가 김 명산을 찾으려는 것을 못 마땅히 여긴 것은 당연한 일 같았다.
오히려 김 명산이 서 정기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게 속이 편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복 거삼 과 나는 김 명산을 찾기로 했다. 서 정기가 알려 준 곳으로 무조건 찾아갔다. 삼거리에 주유소가 있어서 오고가며 보던 곳이었다.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서 김 명산을 찾았다. 주유원은 세차장 쪽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그 곳으로 가보라는 표시였다. 세차장 쪽에는 웬 늙수그레한 이가 모자를 쓰고 세차하는 일을 거들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앞으로 다가 가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김 명산!”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힐끗 뒤쪽을 바라보았다. 복거삼과 내가 다가섰다.
“나야 양말 산 초등학교 동창 김 민석, 얘는 복 거삼이구 ”
멀쑥한 표정으로 쳐다만 보고 있던 김명산은 잠시 후 안면의 근육을 풀었다. 그가 우리를 아는 듯 했다. 비좁은 세차장 안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런데 내가 여기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니? "
"왜 몰라 다 알지, 어디 있으면 모르냐? 무슨 죄지었어?“
“죄는 안 지었지만 원체 꼴이 이래서”
그는 연신 코를 벌름 벌름거렸다.
“그래 웬 일 인 가 ? “
“ 동창모임이 있어서 그걸 알리려 왔지,”
“동창모임? 나 그런데 안 나가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데는 싫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해 ”
김 명산은 자신을 자꾸 한 구석으로만 몰고 갔다. 그는 거부했다. 동창회고 뭐고 일하는 데 여념이 없다고 했다. 명문가의 장손이 동창회에 나타나기를 주저했다. 매형이 헌병대장이라서 헌병대장이 되겠다던 김 명산 ____ 그가 왜 사람들을 싫어할까 이유는 있었다. 그의 집안이 경제적인 몰락이었다. 수많은 재산이 없어 졌고 하는 일마다 실패 하였다. 지금은 동서네 집에 얹혀서 하루 품삯을 받아가면서 세차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집은 관악산기슭의 무허가촌인 난곡동에 산다고 했다. 지금형편에 동창회나 다니고 할 그런 한가한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듣고 난 나는
“그래도 와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니까 애들은 부랄 친구 잖어 소꿉놀이 동무들인 데 뭘 !”
와서 같이 어울려 메기의 추억도 부르고 말야 네 전화 좀 알려 줘 그리고 이 건 내 전화번호야“
나는 김 명산에게 동창모임에 나오기를 다시 권했다. 옆에서 복 거삼이 거들었다.
‘’야! 동창은 동창야 알았어? 돈 없다고 괄시하는 놈들이 아냐 와 그러지 말고 사내자식이!“
김 명산은 힘없이 서 있었다 우리들이 주유소 앞에서 차를 돌리려고 하자 그는 피곤한 듯 손만 흔들어 보였다.
오월 이십일 동창회 야외 모임을 갖기 위해서 예비모임을 가졌다. 내일 모래 오월 이십일 강화도로 야유회를 가기위한 모임을 가졌다. 준비하는 데 차질이 없게 하기위하여 몇 사람이서 모였다. 그 모임도 한 중태가 경영하는 양화 정 식당에서 가졌다. 예 재민 회장 신덕수 총무 서 정기 복 거삼 나 몇 사람이서 모여 밤늦게 까지 준비하고 화투고 치고 술을 마셨다. 예 재민은 회장이라며 여럿이서 계속해 주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모두 마셨다.
예 재민은 그날 밤 그의 집에서 숨졌다. 이튿날 소식을 듣고 달려간 곳은 한강 성심병원의 영안실이었다. 거기에는 이미 예 재민이 죽어 있었고 젊은 아내만이 곡을 하고 있었다.
복 거삼도 와 있었고 신 덕수 서 정기도 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아니 어찌 된 일이야 ? 예 재민이 왜 죽어?“
“ 심장 병 이래 심근 경색, 그 전에도 몇 번 입원한 적이 있었데 이 병원에--‘
“그래 ?“
“그런 데 우린 그걸 모른 거야 어제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 건데_____”
복 거삼이 내 귀에다 대고 나즉히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인이 있었구나 )
“어쩐지 동창회에 혼자 나서드라 ”
오후가 되자 동창들이 몰려 왔다. 지난번에 모였던 동창들이 몇 명만 빠지고 모두 모여들었다. 분향을 끝낸 후에도 모두들 죽음을 받아 드리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무슨 일이야 왜 갔어 ? 갑자기 음식 먹은 게 쳈나 ? "
“ 어제 밤새우며 술을 마셨데!
“술야 언젠 안 먹냐 ? ”
“젊은 색시 때문인 거 아냐? ”
“ 아냐 병이 있었데 “
‘병? 무슨 병 ? “
“심장 병 !“
“ 죽을병인 가 ? ”
“ 심장이 멎은 거지”
“ 그것 참 사람 팔자 알 수 없다더니 그렇게 가 ? 그래 야유횐 다 틀렸 잖어 이 거 ”
“야 마 야유회가 문제야 송장 치워야지 “
“그 거 참“
밤늦은 시간이었다. 영안실에 김 명산이 들어섰다. 지하 계단을 내려와서 두리 번 두리 번 거렸다.
내가 그를 먼저 발견 했다.
“ 야 ! 김 명산이 왔다.”
“ 저 새낀 여기 왜 왔어!! ‘
서정기가 내말을 받았다.
“ 아냐 너 그러면 안 돼 ! 반갑게 마지 해야지 ”
나는 얼른 일어나서 김 명산에게로 달려갔다.
“야 고맙다 일이 바쁠 텐데 이렇게 와 주어서, 내가 전화로 모두 알려 주라고 했지,”
김 명산이 입을 열었다.
“ 어떻게 된 거야 회장에 뽑혀 야유회 간다더니 왜 죽어? "
김 명산은 분향을 한 뒤 동창들 틈에 끼어 물어댔다. 소주 몇 잔이 오고 갔다. 친구들이 김 명산이 온 것을 반갑게 마지 했다.
“ 잘 왔어 잘 왔다구“
친구들이 김 명산의 잔에 술을 가득 부어댔다.
“ 야 김 명산 ! 너 차 닦는다며 세차장에서, 임마 !! 그 많은 재산 왜 다 말아 먹었어 ? 네가 찾고 그 땅 마 못줘 !! 니 네 그 소금창고 우리 꺼야 우리 아버지 목숨대신 네 할아버지가 우리 엄마한테 준 거야 야 임마 !! 근데 네가 그 걸 넘봐! 나쁜 자식!!“
서 정기는 이미 술에 취해 있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맞는다는 격으로 김 명산은 서 정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다시 소주를 들이켰다. 김 명산은 이미 서 정기에게 대항 할 기력조차 잃은 지 오래되었다.
그러다가 김 명산이 입을 열었다.
”이봐 정기! 난 네 동창야 네 친구 구“
오월 십이일 동창회 야유회 날이 예 재민 동창회장의 장례 날이었다.
고 예 재민의 운구를 실은 영구차가 양화 교를 지나 등마루에 있는 공동묘지로 향하였다. 영구차 뒤를 따르는 관광버스에 동창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그 놈 복두 많군! 이래서 동창회장에 뽑힌 거야“
복 거삼이 쓸쓸한 감정을 이기지 못한 듯 큰소리로 토해냈다. 영구차는 소금창고가 있는 마을을 지났다. 서 정기도 김 명산도 차안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징미___ 김 명산이 찾고 있는 마지막 땅이 남아 있다던 소금창고가 있는 땅은 이미 서 정기의 명의로 등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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