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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생각해 봤다. 나는 경주고 교사이므로 경주고와 경주고 제자들이 홈페이지의 主를 이루겠지만, 나는 또한 한림야간중고등학교 교사인데 그 한림학교와 제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경주 한림야간중고등학교에서 햇수로 20년 째(정확히 2002년 1월 현재 18년 5개월 째다) 근무해 오고 있다. 물로 봉사활동이다. 내 생각으로는 봉사를 했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것은 이미 봉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無住相布施를 알고 있다. 어떤 상에 머무르지 말고 베풀어라 하는 말이다. 내가 베풀고 나서 남에게 베풀었다고 자랑하는 것은 이미 베푼 것이 아니다. 그러니 더 이상 말을 않겠다. 한림학교 얘기하면서 봉사 얘기 한다는 자체가 자기 자랑 밖에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한림학교를 빼고 홈페이지를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아쉬운 것이 있었다. 나는 20년 동안 한림학교에서 야간에 수업하면서 무수한 사람들과 무수한 경험들을 해 왔다. 이제 와서 보면 그런 경험들은 나의 삶이었고 나의 진지한 한 모습이었다. 그런 것을 간과하려니 섭섭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느 한 한림학교 제자 한분이 나에게 연락이 왔다. 홈페이지에 왜 우리들의 장소가 없냐고? 그래서 나는 한림학교 얘기를 <나누고픈 것>방에 간단하게 올리기로 했다.
한림학교는 1973년 경주 대구로타리에 있던 시립도서관에서 경주의 몇몇 뜻있는 젊은이들이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우청소년들을 교육시키고자 창설한 야학이다. 그 때의 그 젊은이들은 현재 포항 MBC국장 권오신씨, 경주고 행정실장 김태형 씨, 경주공고 교사인 김윤근 선생, 경양연탄 사장 이기락 씨 등 이 그들이다. 초창기 한림학교에는 가난해서 학교에 못 간 아이들, 사고로 퇴학 당한 학생들, 교도소에 갔다온 학생들, 심한 질병으로 병석에 누워있다 공부할 시기를 놓친 학생들...이런 학생들이 교실마다 가득차서 배움의 결기를 다지고 있었다. 교사들도 경주고 동창생들로 이루어진 여러 직업을 가진 분들이었다. 그러다 수년이 지난 뒤 학교 운영에 한계를 느낀 교사들은 경주고의 영원한 스승이신 이종룡 선생을 삼고초려 끝에 교장으로 모셨고, 그 때부터 한림학교는 한 수준을 뛰어 넘어 본 궤도에 오르면서 야학이지만 학교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한동안 학교 재정에 어려움을 겪던 한림학교는 경주상고 김성하 교장의 배려로 경주상고에 교실 몇개를 무료로 빌림으로써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그 뒤 수년 뒤에 오랫동안 경주상고에 신세를 지던 한림학교는 당시 경주청년회의소 이 달 회장의 열렬한 배려로 경주청년회의소 지하 전체를 제공 받아 본격적인 학교 시설을 갖추게 된다. 어려웠던 재정도 지방의 몇몇 유지들의 성금으로 많이 회복되었으며 소문이 나자 너도 나도 각지에서 성금이 밀려왔고 드디어 경주시청에서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한림학교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교육의 질은 높아졌고 초창기 열혈남아들이었던 대학생들도 차츰 현직교사들로 바뀌며 변모해 갔다. 아마 성금을 내는 것도 이종룡 선생의 제자들이 주류였고, 교사들도 이종룡 선생의 제자들과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주였던 것 같다.
한림학교는 그 이 후 거의 모든 학생들이 주경야독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꿈에도 그러던 졸업장을 따 내는 기쁨을 학생들에게 선사했으며 그 모든 것이 쾌거였다. 지금 한림학교는 중학교 1,2 년, 고등학교 1,2년 모두 4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고 예전의 한림학교와는 다른 모습으로 많이 변했다. 불우청소년들이 교육의 주 대상이었던 한림에는 이제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主인 상황으로 달라졌다.
한림학교 졸업생들은 경주 곳곳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요즘에는 학교에서 수업하기가 부끄럽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학생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열의가 부럽다. 지금도 시내에서 나는 나의 한림학교 제자들, 그러나 인생에는 선배인 분들 조관제(사업), 김두만(공무원), 구자록(농사), 양신태(음식점), 조성래(목공소).....등 많은 제자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
어느듯 세월이 지나 나도 한림학교에서 오래된 교사로 4번째가 되었다. 참 세월은 빠른 것 같다. 20년을 지내오면서 나태해 질 때 격려해주시고 어려운 때 같이 힘겨워해 주셨던 한림의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싶다. 이종룡 선생님, 손병희 선생님, 김윤근 선생님, 박재동 선생님, 이기락 선생님, 손광락 한의원원장, 장문환 형.....그리고 미흡한 나를 늘 형이라고 받들어 줬던 이연성 선생, 오세철 선생, 서정태 선생, 백학선 선생, 한광현 선생....등 여러분들에게 오늘의 나의 삶의 길잡이 되어주셨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언제까지 한림에 있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세월이 더 지나고 난 뒤 내가 나의 삶을 뒤돌아봤을 때 한림학교에서의 경험과 삶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으로 남게하기 위해서 나는 여전히 정진하겠다. 나는 나중에, 남에게 필요없는 인간보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필요한 인간이었다는 평을 듣고 싶다. 그것도 욕심이라면 욕심일까? 뭔지 내가 만든 것을 남기고 싶고 좋은 평판을 얻고 싶은 것은 인간이라면 다 그런 것이 아닐까? 불타는 諸行無常이라 一切皆苦 라 했는데 왜 나는 아직도 그걸 깨닫지 못한 걸까? 오늘도 예전의 한림학교 제자들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