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산 2012 2012/09/15 진남교-토끼비리-전망대-헬기장-오정산-마성 신현리
경북 8경 중 제 1경 이라던 진남교반에서 운달지맥에서 갈라저 오정산을 거치는 문경의 중앙 산릉을 오른다. 목적지는 패러그라이더 이륙장이지만 잘 다니지 않는 산릉이기에 불확실성을 염두에 둔다. 문경의 중앙을 북에서 남으로 지르는 600고지 이상의 산릉이기에 문경을 조망하기가 최적지이다. 진남 휴게소를 기점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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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를 지나 병풍바위쪽 길은 토끼비리길로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내왕이 잦은 곳으로 오가는 이들의 발길에 절벽의 바위는 닳아서 일부러 갈아놓은듯 반들반들한 바윗길이 선명하다. 길아래로는 영강의푸른 물이 구비치고 수길 낭떠러지지만 토끼의 흔적을 따라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여 영남대로의 중요한 관문이 된 터라 옛 모습이 남은 게 참 소중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환을 지고 이 길을 다녔길래 바위가 닳아 모난 곳을 다 죽인 옛길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까. 지금 그 길은 관광의 꺼리로 우리에게 다가 오지만 숱 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으리라. | ||
토끼비리 정점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산릉으로 오른다. 토끼비리와 산 태극 물태극의 멋진 장관을보는 전망대까지 가는 동안 비 온 뒤 솟은 온갖 버섯들이 산을 채운다. 잠시 멋진 아래세상을 여는가 싶더니 금방 사방이 운무로 덮여 가까운 주변 외는 보이지 않는다. 도로망이 이리저리 얽혀 조금은 낯선 풍경이 되었어도 산과 물의 흐름이 만드는 모양은 크게 변하지 않고 다만 길을 따라 자른 병풍바위의 상처가 안스럽다. 열리지 않는 시야를 원망하기 보다 좁아진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에 만족하며 길을 간다. | ||
오정산 줄기는 석탄을 파내던 산이기에 폐광의 흔적으로 산 이곳저곳이 푹푹 꺼져 있다. 수년전의 화재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활엽수가 주인이 된 곳이 많으며, 타다 남은 소나무의 그루터기가 드문드문 보인다. 산은 완전히 불에 노출되어도 사람들의 발길이 느슨해지면 금방 자생력을 발휘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자연은 복원력도 보존력도 스스로 해결하나 우리는 자연에 기대지 않고 파괴된 것들을 복원할 힘이 없다. 그래도 자연을 지배한다는가. |
운무에 덮인 산을 가는 것은 지루할 수 있으나 발밑에서 피어 오르는 운무에 휩싸이다 보면 풍경을 감추는 운무의 은근한 행보가 신비로운 별천지에 나를 세우는 셈이 된다. 어렴풋이 보이는 만상은 제나름대로 가장 뚜렷한 표상으로 원근감을 실감시키기에 서양화가가 빚은 아침 풍경을 닮은 그림이 수십폭이다. 그림이 바귀면서 내가 걷는 건지 아니면 옆의 장면들이 지나가는 건지 착각을 하게 한다. 나무들은 멀리에서 희미한 여운이다가 몸체를 가까이 드러내고 다시 사라지면서 길게 장면들을 이어간다. 아래 세상을 훤히 내려다보는 재미와는 다른 산릉 위의 풍경만으로도 산행은 즐겁다. | |
헬기장에 선다. 문경대학 쪽에서 오는길과 마주치는 삼각지다. 헬기장은 손질을 하지 않아 잡초만 무성하고, 시원한 시야도 용납되지 않아 문경의 중앙에서 보는 풍경을 볼 수 없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좁게 트인 공간이지만 사방으로 우리를 에워싼 나무들의 호위를 받는 영광을 생각한다.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보이는 만큼 더 아름답다. 적어서 행복하고 운무에 많은 걸 생략해서 단순해진 공간의 객체들 모두가 손에 잡히니 정겨워 삶이 아름답다. 풍경도 작고, 선 자리도 좁고, 마음도 그에 합류하여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이 인상깊다. | |
오정산은 일반적으로 전형적인 육산의 모습이나 헬기장에서 정상에 이르는 능선은 암릉이 펼쳐진다. 멀리서 오정산의 줄기를 바라보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지만 여기는 날카로운 칼날 능선이 이어져 때로는 능선에서 벗어난 산비탈을 걸어야 한다. 바위에 붙은 야생화 처럼 우리네 걸음도 바위에 달라붙어 천천히 진행한다. 오정산 정상까지 헬기장에서 먼길은 아니지만 다소 까다로운 바위가 가로막아 능선을 버리고 바위 아래로 돌아 내려갔다가 다시 능선으로 가는 길이 몇 군데 있다. 어려워도 꾸준히 가면 바라던 정상에 닿게 된다. 오정산 정상은 거의 문경의 중심으로 문경의 사방 팔방을 조망할 좋은 장소이지만 쉽게 운무가 걷히질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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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엽수 빼곡한 길 ← 소나무 의자 | ||
오정산에서 부운령 쪽으로 턱밑이 가파르기 그지없다. 빙 돌아야 할 길을 바로 내리니 더욱 그렇다. 산꾼들의 종점이 대부분 오정산이니 부운령 쪽의 길은 흔적이 뚜렷하지 않아 나아가기가 애매한 경우가 많다. 부운령에 촛점을 두고 방향을 잡았으나, 부운령과는 전혀 다른 임도로 내려온다. 마성 중학교에서 부운령을 가다가 오른 쪽으로 동성초등학교 쪽 마성공단에 이르는 임도에 서고 보니 애초 목표로 잡은 패러글라이더장과는 거리가 멀다. 마성 파출소 앞까지는 운좋게 버섯을 채취하는 사람들을 만나 트럭을 탄다. 트럭으로 산행을 마무리 한 게다. | ||
↑활엽수들 ←자작나무 ↙공단으로 이어지는 임도 임도소나무 앞에↘ | ||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삶들을 짓뭉릴지라도 쓰러진 몸뚱이 위에 당당한 꽃으로 아름다움이 핀다. 비록 거친 바람에 밑둥이 땅바닥에 누워도 삶을 이어갈 아름다운 꽃 한송이 우리도 매일 그런 삶으로 아름답게 그려가면 어떠랴. 삶이 아름다움으로 우리 눈에 비치게 할 때 세상은 참 살 만할 게다. 2012/09/19 경북 문경 산북의 산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