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에선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퇴출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13일 롯데마트가 이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인데요.
9일 통큰치킨 판매가 시작되자 치킨 프랜차이즈 체인업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대기업이 원가에도 모자라는 미끼상품을 내세워 소비자를 현혹하면서 치킨가게를 운영하는 전국 영세 상인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이었죠.
상인들이 롯데마트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치킨업계는 공정거래위원회에 통큰치킨을 제소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프랜차이즈 체인업계 전체가 들고 일어나면서 불똥은 정계로까지 번졌습니다.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트위터에 “대기업인 롯데마트가 매일 600만원씩 손해 보면서 닭 5000마리 팔려고 영세업자 3만여 명의 원성을 사는 걸까" 등 롯데마트를 비난하는 글을 남긴 것인데요. 이후 다른 정치인들도 이 같은 의견에 동조하며 논란이 커졌습니다.
결국 이런저런 압박 끝에 롯데마트는 통큰치킨 판매를 16일부터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해 국내 인터넷에선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하는 분위기입니다. 대부분은 “치킨 프랜차이즈 체인업체의 제품 가격이 너무 비싼 것이 더 문제”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저 역시 ‘치킨 전문가’나 ‘치킨 가게 주인’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요? 한 사람의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하루에 300개만 한정판매되는 5000원짜리 롯데마트 치킨 판매와 가격이 왜 불공정거래에 해당되는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생산됐다고 가정했을 때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많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고 상품성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통큰치킨이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소비자를 공략한다면 치킨 프랜차이즈 체인업계에선 맛이나 재료, 편의성 등으로 차별화해 경쟁력을 갖출 수도 있겠죠.
사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심각한 인플레이션 현실을 매달 급여일과 신용카드 결제일마다 뼈저리게 느끼는 월급쟁이 입장에선 통큰치킨이 반가웠습니다. 가끔 치킨이 당겨서 주문해 먹으려고 해도 요즘 마리당 판매가격이 1만5000원을 훌쩍 넘어선 것을 보면 망설여졌기 때문이죠.
한국은 경제규모 면에선 강국이지만 먹고 살기엔 너무 힘든 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 배추값 파동은 해외에서도 주요 뉴스로 보도됐을 정도였죠. 일본에서 택시 기사 아저씨가 제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는 “김치 가격이 비싸서 먹기 힘들지 않냐”고 물어본 적도 있습니다.
환율이 높아지면서 수입 식재 가격이 자꾸 오르는 탓인지 직접 장을 봐서 해 먹어도 비싸고 외식을 해도 비쌉니다. 저희 부부도 주말에 장을 볼 때마다 같은 물건을 조금이라도 싸게 파는 곳이나 할인 쿠폰을 찾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이처럼 국내에선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월급쟁이들의 고통이 심각하지만 일본은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디플레이션인데요. 물가가 갈수록 싸지면서 오히려 경제가 위축될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입니다.
일본 상점가에선 ‘엔고 환원’이라고 써 붙인 가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엔화가 오르면서 수입품이나 수입 재료로 만든 제품을 판매할 때 발생하는 환차익을 소비자들에게 가격 인하로 환원하겠다는 뜻입니다.
특히 요식업계의 디플레이션이 두드러집니다. 우선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밀가루 등 수입 식재 가격이 대폭 싸진 것이 한 원인입니다. 여기에 장기불황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꽁꽁 닫자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져 가격 낮추기에 불이 붙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5000원짜리 통큰치킨이 퇴출된 것과는 달리, 일본에선 이 같은 파격적인 저가 식품과 음식들이 속속 등장하며 소비자들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 규동(소고기 덮밥) 프랜차이즈 체인 요시노야(吉野家)의 ‘김치국밥’이 대표적 사례인데요.
일본식 패스트푸드 업체로 유명한 요시노야에서 김치국밥이 팔린다니 조금 의외죠? 소고기와 김치 등을 넣어 만든 국밥으로 ‘키무치쿳파’(キムチクッパ: 김치국밥의 일본식 발음)라고 불리는 이 음식은 지난달부터 판매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요시노야 김치국밥의 가격인데요. 보통 크기가 280엔(한화 약 3800원), 밥이 많이 든 ‘오오모리’는 380엔(약 5200원)입니다. “별로 안 싸네”라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지만 고기와 야채 등이 충실하게 들어간 밥 한 끼에 280엔이라면 일본에선 무척이나 파격적인 가격입니다.
요시노야의 280엔짜리 메뉴는 김치국밥이 처음은 아닌데요. 앞서 선보인 규나베동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자 이 가격에 맞춰서 김치국밥을 내놓은 것이죠. 요시노야 김치국밥은 쌀과 배추는 일본산, 소고기는 미국산 등 외국산을 써서 가격대를 크게 낮췄습니다.
경쟁업체들도 이에 자극받아 저가 메뉴를 속속 선보였습니다. 요시노야와 함께 일본의 ‘규동 체인 3사’ 중 하나로 꼽히는 스키야(すき家)는 ‘겨울 감사 축제’를 내세워 규동을 할인가인 250엔(약 3400원)에 판매 중입니다.
일본 소비자들은 업체들의 이 같은 저가 경쟁을 즐기고 있습니다. 장기불황으로 외식 한 번 하기가 꺼려지는 가운데 250엔, 280엔 등 파격적인 가격의 메뉴가 속속 나오는 것을 환영하는 것입니다.
일본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저가 메뉴에 대해 팔아도 남는 것이 없는 ‘미끼상품’이라고 봅니다. 싼 가격으로 이슈가 되면서 브랜드 홍보 효과가 있고 손님들이 저가 메뉴를 먹기 위해 매장을 방문했다가 다른 음식들도 추가로 주문하면서 결과적으로 이득을 남기는 것을 노린다는설명입니다.
이달 초 규동 체인 3사가 발표한 매출액을 살펴보면 저가 메뉴 등장 이후 손님 수는 늘었지만 손님 한 사람 당 단가는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손님의 증가폭이 어느 정도였느냐에 따라서 업체 별로 명암이 갈라졌는데요.
스키야와 마츠야(松屋)는 매출액이 상승한 반면, 요시노야는 객단가가 낮아진 폭이 더 커서 오히려 2개월 연속 손실을 봤습니다. 아마도 이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박리다매를 할 것인지, 맛을 고급화할 것인지 등을 놓고 업체 별로 마케팅 전략이 달라질 수 있겠죠.
시장논리가 우선시되는 자본주의 체제라도 제품의 생산과 판매 과정에서 독과점 등 뚜렷한 문제가 드러났다면 규제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통큰치킨의 경우엔 아직 그런 조사가 진행되지도 않은 상태로 판매가 중단됐는데요.
영세 상인들의 고통은 물론 안타까운 부분이겠죠. 하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비싼 치킨 가격과 내로라하는 아이돌 그룹이 경쟁적으로 출연하는 TV 치킨 광고를 보면서 프랜차이즈 체인업체들이 통큰치킨을 누를 만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는지는 의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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