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20대 초반에 신춘문예 당선된 '영산포' 시를 읽고 진한 감동이 파도쳤던 기억이 있다.
영산포 / 나해철
배가 들어 멸치젓 향내에 읍내의 바람이 다디달 때
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 울었다.
가난은 강물 곁에 누워 늘 같이 흐르고
개나리꽃처럼 여윈 누님과 나는 청무우를 먹으며
강둑에 잡풀로 넘어지곤 했지.
빈손의 설움 속에 어머니는 묻히시고
열여섯 나이로 토종개처럼 열심이던 누님은
호남선을 오르며 울었다.
강물이 되는 숨죽인 슬픔
강으로 오는 눈물의 소금기는 쌓여
江深을 높이고 황시리젓배는 곧 들지 않았다.
포구가 막히고부터 누님은 입술과 살을 팔았을까
천한 몸의 아픔, 그 부끄럽지 않은 죄가
그리운 고향, 꿈의 하행선을 막았을까
누님은 오지 않았다
잔칫날도 큰집의 제삿날도
누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
그런데 지난주 절해고도 전남 신안 영산도라는 글이 서울신문에 실렸다. 영산도는 흑산도에서 뱃길로 20여분 달리면 가닿을 수 있다고 한다.
영산도는 넘실대는 바다가 앞마당에 가득차고 뒤란 너머로는 섬 새가 삐중대며 날아간댄다. 내 발 소리에 내가 놀랄만큼 적적한 곳이라고 한다.

내가 이 섬을 주목한 것은 영산도의 수려한 사진에 눈길이 닿아서가 아니다. 섬의 본질은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나오는 절대고독처럼,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의 고립'아닌가.
영산도는 1년에 5개월이나 홍합 채취를 금지한다. 낚싯배를 들이면 마을이 부흥할 수 있는데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식당과 펜션도 달랑 딱 하나다. 섬은 낙후됐다. 여전히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고질적인 식수 문제가 해결된 것도 올해 들어서다.
흑산도에서는 영산도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말한다. 다이버를 고용해 바닷속 자연산 홍합을 캐내면 소득이 단박에 상승할텐데 그것도 안하고 있으니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영산도 주민들 생각은 다르다. 소득을 높이겠다고 바닷속을 속속들이 뒤져 해산물을 캐냈다간 되레 자원고갈의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인식에서다.
낚싯배도 접근할 수 없다. 대다수의 섬들이 낚시꾼이 섬에 머물면서 뿌리고 간 돈으로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낚시꾼들이 물고기를 모으기 위해 집어제를 뿌리는 행위가 바다를 오염시킨다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2013년도 환경부 지정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선정 되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돈벌이에 현혹되지 않은 쾌거다. 문득 나도 저 섬에서 자연을 벗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주민들의 단합된 모습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에 고개가 숙여 집니다.
시인님 혹여 경상대 평생교육원에서 공부 하지 않으셨는지요.
같은 이름이 있기에 궁금하여 여쭈어 봅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