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간다 김성달 소설집
김성달 지음 | 도화 | 2021년 11월 10일 출간
작가 소개
경북 영덕 출생.
「한국문학」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환풍기와 달」 「낙타의 시간」 「이사 간다」
연작소설「미결인간」, 평론집「한국소설을 읽다」 등.
조연현문학상 수상.
목차
작가의 말
이사 간다
누구나 다 안다
돌아보지 마라
아무도 모른다
얼굴, 그리다
눈길을 걷는다
부산에 갔다
존엄 / 소년
해설
끝나지 않은 애도 / 장두영
장두영(문학평론가·아주대국문과 교수)
김성달 작가의 소설집 「이사 간다」에 수록된 여러 작품은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다. 주제나 소재가 난해해서가 아니다. 문장과 문체가 난삽해서가 아니다. 작품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주제와 소재를 가져와 단순·담백한 문장과 문체를 활용하여 간명한 내용을 전달한다. 그러나 쉽게 읽히지 않는다. 소설 속에 펼쳐지는 세월호 침몰 사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공장 실습생의 사망 사고, 정화조 작업자 질식 사고, 그리고 현실의 사회^경제적 격랑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여러 사건·사고들은 독자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마음의 평정을 깨트린다. 이미 알고 있다, 이제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소재는 다시금 우리에게 심적 동요를 일으키고, 그로 인한 마음의 파장은 우리의 생각을 오랫동안 붙잡아둔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 대부분은 우리가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경계하고, 그래서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생각하기를 종용하는 ‘죽비’에 다름없다.
책 속으로
냄비에 물이 몇 차례 끓어오르는 동안에도 여자는 국수 면을 집어넣지 못하고 뜨거운 물이 넘치면 자꾸 찬물을 붓는다. 찬물에 맥없이 주저앉은 냄비 속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서 있던 여자가 천천히 문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밤낮없이 퍼붓는 빗방울로 마당은 온통 물이다. 마당보다 낮은 문턱 위를 넘어 들어오는 빗물로 부엌 바닥에 물이 흥건하다. 여자의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물의 감촉이 서늘하다. 예약한 이삿짐 트럭은 오지 않고 장맛비는 쉼 없이 쏟아진다. 기상청 예보와 달리 하늘은 빗줄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이삿짐 트럭은 비를 핑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조바심이 난 여자는 ‘어서, 이사 가야 하는데…’라는 문자만 쓰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빗속을 견디고 있다. (「이사 간다」 중에서)
여자는 아침부터 불안한 기운에 열차의 선로를 자꾸 들여다보았다.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선로는 금방 햇빛이 만든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어 검붉은 색을 띠었다. 선로는 그 검붉은 색 사이로 은빛 잔주름을 아로새긴 채 움직임 없는 새파란 속살을 이따금 드러내곤 했다. 여자는 지난겨울 청년을 만난 이후로 부쩍 불안을 느끼는 날이 많아졌다.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딸이 결혼하자 떠밀듯이 억지로 이민을 내보낸 여자는 두 평 남짓한 지하철 가판대에 몸을 우벼 넣었다. 남편이 뛰어든 열차 선로가 빤히 보이는 가판대에 누에고치처럼 자리를 잡은 여자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선로를 만났다. 선로는 매일매일 여자를 미쳐버리게 할 만큼 기분 나쁘면서도, 마치 사형수의 목을 옥죄는 밧줄처럼 서서히 몸을 죄어왔다. 여자는 혼자서 저항하고 반항하지만, 공허하기만 한 아침들을 보내면서 두려웠지만, 결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상처투성이의 시간을 견디며 여자는 점점 자신의 상처 속으로 침잠했다. 그사이 몰라보게 나이가 든 얼굴에 비치는 여자의 나이는 선로의 명암에 따라 기묘하게 변하고 달라지기도 했다. (「누구나 다 안다」 중에서)
오늘 오전 일을 시작할 때였다. 팔레트에 음료를 쌓고 있는데 맨 아래층 팔레트가 투입되면서 또 센서를 건드린 모양인지 자동기계 설비가 멈추었다. 동우는 늘 그랬듯이 고장 원인을 찾기 위해 기계 밑으로 들어갔다. 센스와 간지 투입 기계를 한참 살피는데 갑자기 멈추었던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그 위에 몸이 끼어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숨이 막혀왔다. 순간 할머니를 떠올렸는가 싶었는데 자신의 몸이 갑자기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고, 곧 피투성이 자신의 몸이 잠깐 보이는가 싶더니 할머니가 잠든 집에 와 있었다. (「돌아보지 마라」 중에서)
눈에 띄게 희미해졌던 은백색 빛이 어머니 주위를 다시 환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태양빛이 무색할 정도로 밝게 빛나는 은백색 갈치 빛이었다. 그 빛이 순식간에 정화조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 쓰러진 종학의 몸을 둘러쌌다. 강렬한 빛에 빈틈없이 에워싸인 종학의 몸이 싱싱한 은갈치처럼 빛나기 시작하면서 정화조 안이 푸르고 넓은 여수 앞바다의 바닷물로 차올랐다. 종학의 몸이 천천히 바다 위로 떠오르며 자유롭게 그 속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른다」 중에서)
출입문 왼쪽 벽에 이제는 버려진 듯, 버림받은 듯이 놓여있는 그 초상화는 온 나라를 조문의 행렬로 뒤덮게 한,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그이였다. 나는 굳어버린 듯이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나는 다시 절을 하고 명부전의 부처님과 지옥의 10대 대왕들을 마주 보고 앉았다. 갑자기 등이 시리고 가슴이 떨리고 머릿속에는 굉음이 울리고 맥박이 빨라졌다. 그러면서 산신각에서 마주쳤던, 내 속에서 실핏줄처럼 퍼져있던 어떤 불편함의 원인을 알 것 같았다. (「얼굴, 그리다」 중에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그때 얼핏 선생의 얼굴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검푸른 별빛에 잠긴 선생의 몸에서 정체 모를 빛이 흘러넘치면서 사물이 스스로 선생에게 멀어지더니 선생의 얼굴이 점점 열아홉 앳된 소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타향에서 처음으로 열나흘 달을 만나는 열아홉 살 소년의 얼굴이었다. 고향집 마당이나 우물 옆에서 보던 낯익은 달을 타향에서 본 열아홉 소년은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친숙한 달의 모습에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열아홉 소년은 달님에게 하루빨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향을 빌고 또 빌었다. (「부산에 갔다」 중에서
출판사 서평
김성달 작가의 신작 소설집으로 2021우수출판콘텐츠 선장작이기도 하다. 7편의 단편과 2편의 짧은 소설을 묶은 이 소설집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공장 현장실습생의 사망 사고, 정화조 작업자 질식 사고, 그리고 현실의 사회·경제적 격랑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여러 사건·사고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형상들은 독자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평정을 깨뜨리고 다시금 독자에게 심적 동요를 일으킨다. 그로 인한 마음의 파장은 독자의 생각을 오랫동안 붙잡아둔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 대부분은 우리가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경계하고, 그래서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종용하고 있다.
표제작인 「이사 간다」는 세월호 침몰 사고를 소재로 하는 소설이다. 여자가 남편의 사망 이후 실어증에 걸렸기 때문에 전화 통화보다는 문자메시지를 사용한다는 것, 문자메시지의 유일한 수신인이 바로 지금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라는 것, 기다리는 아들이 사실은 세월호에 탑승했기 때문에 못 돌아오고 있다는 것, 생전에 아들이 좋아하던 음식이 국수였다는 것,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여자는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다가 지금 겨우 국수를 끓이고 있다는 것, 임대 아파트로 이사 간다며 기대에 부풀었다가 그 꿈이 산산이 부서졌다는 것, 그래도 지금 아들이 있는 진도 맹골수도로 이사 간다는 것, 이 모두가 사실상 소설의 첫 대목에 함축되어 있다. 「누구나 다 안다」는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망사고가 배경인데 지하철 가판대가 여러 가지 의미의 맥락을 함축한 독특한 소재이다.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가 ‘몸’이 열차에 치이고, 대형마트 무빙워크 수리 중에 ‘손잡이 작업을 하던 아이의 몸’이 구멍틈에 빠지고, 달려오는 지하철 열차에 몸을 던진 남편의 자살까지, 온몸이 부서지고 뭉개지는 처참한 순간의 고통을 생생하게 포착한 어두운 그림자에 관한 문학적 형상화이다. 「돌아보지 마라」는 실업고 학생의 현장실습 사고를 다루는 소설로 서울의 무허가촌을 전전하며 살아오다 쓸쓸하게 죽어가는 할머니와 동우의 삶을 통해 현재진형이지만 해결이 요원하기만 한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리고 있다. 「아무도 모른다」는 정화조 청소 알바를 하다 질식사 한 대학생의 이야기이다. 유독가스가 가득한 정화조 속에서 숨통을 조여오는 어둠의 질식 속으로 빨려 들어간 종학이 겪었을 고통은 상상하기만 해도 가슴이 아린다. 소설의 제목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우리는 안다. 종학을 향한 진정한 추모는 결국 한 젊은이의 안타까움 죽음에 대해 우리가 인식하고, 또 그 젊은이를 그렇게 내몬 우리의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그래서 그 죽음을 모르지 않게 하는 것임을 제목은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개심사 장미꽃 이야기로 시작하는 「얼굴, 그리다」는 술술 잘 읽힌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해미읍성도 가보고 싶고, 개심사 장독대의 장미꽃 사진도 찍어보고 싶고, 산신각에 들어가 그림이 진짜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이렇게 가볍게 나들이를 떠났던 소설은 어느새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이 발견되고, 또 그녀를 향한 죄책감과 후회의 감정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단순히 떠나버린 옛사랑의 추억이 아니라 야학이라든가 강남 논술학원 등의 소재와 결합하여 세상의 불의에 맞선 연대와 투쟁, 그리고 동지와 신념에 대한 배신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덧씌우다가 결국 인물과 독자를 개심사 명부전에 도달하게 이끈다. 그곳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면서 그린 초상화가 있고, 화가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애도하며 ‘봄이면 장미로 피어난 그녀의 얼굴을 그리면서 40년’의 시간을 지나왔다. 그런 화가가 나에게 고통의 시간을 벗어나 이제 진정한 애도를 하라고 권유한다. 「눈길을 걷는다」의 연수는 남편이 수감되자 손과 발이 사라지는 현상이 발현되는데 그것은 정신적 상처가 몸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연수의 그런 증상은 심리적 불안이 몸에 미친 것이며, 손과 발이라는 몸의 일부가 상실되는 환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아버지 집에 ?逾約??’를 반복하는 연수 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남편이나 아버지의 부재가 정신적 측면에서 심각한 트마우마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산에 갔다」는 여행의 형식과 소설가 이호철 선생 추모의 소재가 결합된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는 선생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탈북자 정대우 씨의 이야기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통일을 향한 염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선생에 대한 애도 혹은 서사의 형식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중요하게 읽힌다.
김성달 작가의 소설은 현실을 담담하게 담아내는데 집중한다. 섣불리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사연을 기록하고. 그 상처의 깊이를 보여주기에 전력을 다한다. 그러한 담담함이 오히려 독자들의 마음을 서서히 끓어오르게 하고, 오랫동안 벗어나기 어려운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다. 비록 질척하고 미끄러운 눈길이 당분간 펼쳐져 있더라도 소설의 인물들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독자들은 인간적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현실에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음을 소설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될 때, 그러한 어둠을 잠시 잊고 있거나 혹은 외면하고 있던 독자들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무엇보다도 아직 애도가 끝나지 않았음을, 아직 끝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을 공감하게 만드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