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사회 구성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이 변혁의 핵심인 기사계급이나 시민계급은 중요한 가치 하나를 공유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이 새롭게 전파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다가오는 신앙의 의미는 지금까지와는 많이 달랐다.
클루니 수도원의 '개혁 운동'과 시토 수도원의 '은둔과 고행의 경건한 삶'은 제도권 교회나 성직자 계급이 아니라 각 개인의 신앙에 눈을 뜨게 하는 중요한 동기를 제공했고, 마침내 이들 시민계급이 신앙의 열정을 분출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이것의 구체적 모습이 십자군 운동과 중세 민중 경건 운동이다.
이것은 보통 수도원 운동의 결과라기보다는 생산양식의 변화와 이에 따른 중세 사회구조의 변화라는 틀에 의해 설명된다.
그러나 변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 것이 수도원이고, 기존의 교회와 성직자 중심의 신앙에서 개인의 신앙고백을 중시하는 흐름을 통해서 시민계급의 자의식이 성장했기 때문에, 중세사회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동력을 얻게 한 것이 새롭게 신앙적 각성을 한 평신도 계급이라는 말은 타당하다.
이들 시민계층이 가진 신앙적 각성은 지금까지 교회와 교권이 중심일 때 만들어진 교리나 신학, 성사 혹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라, 평신도들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어떤 학자(단첼바허)가 말하는 것처럼 신앙에 근거한 "사랑의 관계"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교회와 정치 권력자가 명령하던 중세의 전통적 틀이 깨졌으며, 이제 평신도들이 자신들의 실제적 삶을 신앙에 근거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신앙의 흐름이기에, 12세기에 나타난 새로운 영적 경건주의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이러한 평신도 운동은 곧이어 전통적 교회에 대한 비판과 도전으로 나타났다.
중세 교회사에서는 이것을 중세 민중 경건 운동이라고 부르며, 또 이 운동이 교권에 도전했기 때문에 중세 이단 운동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평신도들의 신앙적 자각을 통해 일어난 운동이기 때문에 이단 운동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민중 경건 운동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이런 운동의 시작은 보통 북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아놀드 운동으로 보고 있다. 이 운동을 시작한 브레스키아의 아놀드(1100-1155)는 사람들에게 세속화된 성직자들과 그들의 옳지 못한 행위, 물질에 대한 탐욕과 지배욕에 대해 반대하는 저항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설교하고 다녔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성직자들은 모든 세상 권력과 소유를 포기하고 사도들처럼 완전한 가난과 순종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실제로 모든 것을 버리고 방랑하며 가난하게 살았던 그는 소위 사도적 청빈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고, 결국 하나의 무리를 이루게 되어 교회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아놀드 운동은 단일화되고 경직된 중세 사회의 한쪽이 깨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결정적 신호탄이었다.
전통적 교회 입장에서 말한다면 소위 진짜 이단이 출현한 것이다.
교회에 반대하고 순수한 신앙이나 사도적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 이것이 이 운동의 핵심인데 교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계속되었을 뿐 아니라 뒤이어 카타리파, 왈도파 등 수많은 이단 운동이 일어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교권제도에 반대하는 것이었고 가난을 강조했으므로, 부와 사치 그리고 형식주의에 물든 교회에 식상해 있던 일반 민중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받으며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더구나 새로운 운동들에서는 성직자와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하게 살아야 하며, 이것은 성경에서 가르친 것이고, 동시에 기독교는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제도권교회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들 새로운 주장의 운동은 때때로 상당히 극단적이었으며, 전통적 교회에 몸을 담고 있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치기까지 했다.
교회로서는 이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제도권 교회는 이 이단을 쓸어버리기 위해 십자군을 동원했다. 물론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한 십자군이 아닌라 이단을 박멸하고 정통 신앙을 지키기 위한 소위 알비십자군(알비는 카타리파가 일어났던 지역 이름)이었다.
알비십자군은 카타리파의 본거지인 남부 프랑스를 공격해서 초토화시켰다.
-최형걸 저 <수도원의 역사> p51. 중에서
첫댓글 정말 잔인한 역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