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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生活(Food of Gogurians) |
고구려 음식문화에 대한 사서의 기록
후한서 동옥저편 (後漢書 東沃沮) 고구려 음식문화 외국인들에게 대표적인 한국음식을 꼽으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그들은 주저 없이 "불고기"와 "김치"를 꼽을 것이다. 그 외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삼계탕 등도 있으며, 한 때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보신탕도 그 범주에 속할 것이다. 고구려에서 재배된 채소로는 부루와 아욱, 배추, 무우와 콩잎, 박, 오이 등이 전해진다. 고구려 사신이 수(隋)나라에 갔을 때 그 곳 사람들은 부루(상추) 종자가 귀하여 비싼 값에 매입하였던 관계로 천금채(千金菜)라 불리기도 한다는 조선후기 역사서 해동역사(海東繹史)의 기록으로 견주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재배된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 초기에는 단지 채소를 소금에 절여 먹었지만, 후기에 접어들면서 양념으로 파, 생강이 곁들여졌을 것이며, 겨울이 춥고 긴 고구려에서는 김치는 필수적인 음식이었다. 과일로는 산에서 채취가 가능한 야생 과일과 복숭아, 배, 밤, 오얏등이 재배되었다. 곡아주(曲阿酒) 양(梁)나라 때 고구려 여인이 빚어 파는 곡아주(曲阿酒)의 명성이 문헌에 나오며, 제왕운기(帝王韻紀) 동명성왕(東明聖王)의 탄생설화에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가 하백의 딸을 술에 취하게 한 후 주몽을 잉태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고(迎鼓 : 부여(夫餘)의 제천의식(祭天儀式), 동맹(東盟, 고구려의 제천의식), 무천(舞天, 예·맥족의 제천의식) 등의 제천의식 때에 밤낮으로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에서 고구려의 강한 국력과 우수한 문화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디딜방아 디딜방아는 2명 혹은 4명이 발로 밟아서 절구를 찧고 1∼2명이 절구공을 손질하여 곡식을 찧거나 빻는 도구이다. 떡을 찧거나 고추 등을 빻는데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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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철기제작 기술체계에 관한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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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철기제작 기술체계에 관한 연구 Iron Technology of Koguryo 박 장 식(홍익대 금속공학과) 본 연구에서는 최근 서울 근교의 한강유역에 산재하는 고구려 유적지 중 아차산 제4보루와 구의동 보류 그리고 무순 소재 동문 외 고구려 산성에서 출토된 철제유물을 대상으로 금속학적 분속실험을 수행하였다. 여기에서는 제련, 제강, 제작 및 열처리 등 철기기술체계를 구성하는 제반 공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1) 고구려에서는 鑄鐵과 더불어 연철이 기본소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중 특히 주철 소재는 주조품 제작에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제강공정에 기본소재로 사용됨으로써 사실상 고구려 철기기술체계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 製鋼法으로는 固體脫炭法과 灌鋼法 및 固體浸炭法이 실행되고 있었다. 이들은 주철 소재를 사용하는 공정(고체탈탄법 및 관강법)과 그렇지 않은 것(고체침탄법)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주철을 사용하는 공정의 경우 다시 주철의 용해를 수반하는 것(관강법)과 그렇지 않은 것(고체탈탄법)으로 구분될 수 있다. 3) 철기제작과정에서 부위별로 소재를 선별 사용함으로써 鋼 소재의 소비를 최소화하려한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鋼 생산에 드는 노동력과 비용을 감안한 결과로 판단된다. 또한 제작 마지막 단계에서는 그 효과를 기능상 필요한 부위에 국한시키기는 선별적 담금질 열처리법이 실행되고 있었다. 이상에서 언급한 일련의 철기기술은 고대에 가능하였던 거의 모든 요소를 총 망라하는 것으로 이같이 다양한 기술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와 특수한 지리적 여건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향후 이들 제반 기술의 기원과 전파 및 발전과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 경우 철기를 매개로 이루어지던 고구려 내외의 인적, 물적 교류에 관한 정보가 얻어질 수 있음은 물론 대륙과 반도를 아우르던 고구려의 정체성 설정에 필요한 또 다른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주제어: 고구려, 철제유물, 금속학적 분석, 철기제작 기술체계 I. 서 론 컴퓨터를 매개로 하는 정보통신기술을 제외하고 현대사회를 거론할 수 없음과 같이 철기기술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언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수행되는 철기문화의 기술적 측면에 대한 연구는 초보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시대와 지역에 따른 기술체계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논의는 시도조차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있다.[1] 이것은 유물의 형식분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고고학적 연구방법의 태생적 한계와 기록으로 남겨진 사료의 절대적인 빈곤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문제는 고토의 대부분이 중국이나 북한에 속하게 된 고구려의 경우에 특히 심각하여 현재 남한의 학계에서 고구려 철기기술에 관한 연구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이를 고려할 때 최근 한강 유역에 산재해 있는 고구려 유적지 일부에서 상당수의 철제유물이 발굴된 점은 크게 고무적인 일로서 이를 통하여 고구려 철기기술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2] 본 연구에서는 이상에서 언급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고고학적 연구에 적용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론을 도입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이들 중 일부를 택하여 그 내부조직을 분석함으로써 이들의 제작에 적용된 기술체계를 추적하고자 하였으며 앞으로 북한 및 중국과의 공동연구를 염두에 두고 여기에서 제기되어야할 문제점들을 미리 점검해보았다. 이를 위하여서는 육안관찰에 의존하는 종래의 고고학적 방법론을 뛰어넘어 근래에 금속공학 분야에서 개발된 다양한 이론과 분석방법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철기를 대상으로 하는 금속학적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대부분이 특정 유물제작에 적용된 소재와 기술에 관한 단편적인 사실확인에 주력함으로써 정작 그러한 철제품 생산을 가능하게 한 당대의 기술관련 사회상황에 대한 이해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이것은 유물을 통하여 과거에 살았던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고고학적 연구의 방향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이 분야의 연구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고 철제유물에서 관찰되는 금속학적 미세조직으로부터 이의 제작에 적용된 기술체계와 이를 성립시킨 당대 철기산업의 기본구조를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철기제작에 관련된 제반 공정을 고려하여 실제 연구에서 제기되어야할 문제점을 미리 설계할 필요가 있다.[3-9] 시대나 지역을 막론하고 철기제작에 관련된 기술을 논하자면 철광석에서 철 소재를 얻는 製鍊過程(smelting) 으로부터 소재 내의 탄소함량을 조절하는 製鋼過程(steel making)과 제품의 형태를 만드는 成形過程(shaping) 그리고 마무리 단계에 행하여지는 熱處理(heat-treatment)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공정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제련과정에서 생산되는 철 소재의 종류에 따라 차후 실시되는 製鋼法이 달라질 수 있으며 또한 어떠한 제강법이 응용되느냐에 따라 선호하는 철기 제작기술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 기술체계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이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들 제 공정은 각 지역이 처해있는 정치·사회상황이나 지리·환경적인 여건은 물론 당대에 운용 가능한 기술의 수준 및 종류 그리고 철제품의 수요에 따라 상호 유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고유한 기술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특정 유적지에서 출토된 철제유물제작에 응용된 기술체계를 분석하기 위하여서는 철광석에서 시작하여 製鍊, 製鋼을 거쳐 철기의 제작 및 각종 열처리로 이어지는 철기 기술체계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와 같이 제한된 유물의 극히 일부 미세조직에 남겨진 흔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철기유물의 미세조직 내에는 제작 당시에 사용된 소재의 종류나 가공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근거가 남아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여기에서 얻어지는 정보는 앞으로 실시될 연구의 방향을 설정함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II. 금속학적 배경 철기유물제작과 관련된 고대(古代)의 기술체계를 논하기 위하여서는 과거에 유행하던 철 소재의 생산방식과 철 소재의 속성에 대한 다소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10, 11] 1. 철 소재의 분류 철 소재는 철(Fe)원자를 주성분으로 하는 금속재료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이에 소량으로 첨가되는 탄소(C)원자에 의하여 그 성능이 크게 좌우된다. 현대의 철강재료에는 이들 두 원소 외에도 여러 가지 합금원소가 첨가되는 것이 보통이나 고대의 철 소재에는 철과 탄소 두 종류의 원소만이 의도적으로 첨가되었을 뿐 만일 여타의 원소가 존재한다면 이는 우연히 첨가된 것으로 보아 무방하며 당대의 철기기술을 논함에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철 소재는 탄소함량에 따라 연철(iron)과 강철(steel) 그리고 주철(cast iron)의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분류는 탄소함량에 따라 철 소재의 기계적 성질이 크게 변함에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탄소함량이 미미하여 거의 철 원자로만 이루어진 소재를 연철로 볼 수 있으며 학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으나 대략 탄소함량이 0.05∼2.0%에 이르는 소재는 鋼으로, 그리고 2.1∼4.3%에 이르는 것은 주철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중 강철은 충분한 강도를 지님과 동시에 충격에 대한 저항력이 우수하며 가공과정에서 실시되는 두드림이나 각종 열처리에 의하여 그 성질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쓰임새가 가장 큰 소재이다. 그러므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기산업에서 제강공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대하며 어떠한 제강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당대 철기산업의 기본골격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2. 고대의 제련법 철 소재는 물론 철광석을 환원시켜 얻어진다. 환원반응이 가능하려면 이에 적절한 환원제와 높은 온도가 필요하므로 고대에는 製鍊爐를 축조하여 그 내부에 목탄과 철광석을 함께 裝入한 후 가열함으로써 제련작업이 수행되었다. 고대에 실시된 제련과정에서는 爐의 축조 방식과 공급되는 목탄의 양, 그리고 목탄과 철광석이 반응할 수 있는 시간과 온도 범위 등의 제반 조건에 따라 탄소함량이 지극히 낮은 연철이 생산되거나 탄소함량이 높은 주철이 생산되었다. 인류가 철의 용해온도인 1538 이상의 온도를 임의로 얻기 시작한 것이 오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고대의 제련에서 순철에 가까운 연철이 생산되었다면 이는 용해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생산된 것이며, 반면 주철이 생산되었다면 이는 용해를 수반하는 제련과정에서 생산된 것임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고체상태에서 괴련철(bloomery iron) 또는 해면철(sponge iron)로 불리는 저 탄소의 철 소재를 생산하는 저온환원법(low temperature reduction process)과 더불어 용융상태로 탄소함량이 높은 소재를 생산하는 주철제련법이 함께 운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저온환원법에 의한 제련과정에서는 슬래그 제거가 불완전하여 여기에서 생산된 괴련철 소재 내에는 이들의 잔류물인 불순 개재물이 다량으로 존재하게 된다. 한편 강 소재는 기술적인 문제로 인하여 철광석의 제련과정에서 직접 얻기 어려웠으므로 이미 생산된 연철이나 주철의 탄소 함량을 조절함으로써 생산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3. 고대의 제강법 탄소함량 면에서 연철과 주철의 중간에 위치하는 강 소재는 이론적으로 연철에 탄소함량을 높여주거나 (浸炭) 주철에 탄소함량을 낮추어줌으로써 (脫炭) 생산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강법이란 철 소재내의 탄소함량을 조절하는 공정으로 볼 수 있다. 제강공정에 연철이 응용될 경우 탄소를 투입하는 작업이 수행되어야 하며 주철의 경우는 탄소를 제거하는 작업이 수행되어야한다. 고대의 철기관련 문헌에서 전자는 浸炭製鋼法으로 그리고 후자는 脫炭製鋼法으로 불리며 후자는 다시 고체상태에서 진행되는 공정과 액체상태에서 진행되는 공정으로 구분된다. 침탄 및 탈탄법이 각각 연철과 주철을 단독으로 사용하여 이루어지는 제강공정임에 비하여 이들이 함께 사용되어 양자의 탄소 함량을 평균함으로써도 강철 소재가 생산될 수 있는데 이를 灌鋼法이라 칭한다. 고대에 생산된 강 소재가 공통적으로 지니는 가장 큰 특징으로는 응용된 제강법의 종류에 상관없이 부위별로 탄소함량이 균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처럼 국부적으로 불균일한 탄소함량이 반드시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 가공과정에서의 편의를 의미할 수도 있으며 특별한 가공공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최종 제품 내에 존재하는 탄소의 불균일한 분포상황은 제작공정의 흐름을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III. 미세조직분석 본 연구에서 분석된 철제유물은 다음의 표 1에 보인 것과 같다. 이 중에는 농기구, 공구 또는 무기와 같이 외형으로 그 용도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유물#1, #2, #3은 철 소재를 생산하는 제련공정에 관련된 유물이며, #4, #5, 및 #6은 제강공정에 그리고 #7과 #8은 제작공정에 관련된 유물이다. 이와 같이 각각의 유물과 관련된 제반 공정이 확인된 것은 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금속학적 미세조직 분석결과이다. 다음에는 각 유물에서 확인된 미세조직을 개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고구려에서 운용되고 있던 철기기술체계의 일단을 살펴보기로 한다. 표 1. 본 연구에서 분석된 고구려 철제유물 1. 유물#1: 주조철편 2점 그림 1a와 1b는 아차산 제4 고구려 보루에서 출토된 2 점의 철편으로서 외형으로는 그 용도를 짐작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형태적으로 용도구별이 어려운 유물은 발굴과정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나 기술적 측면에서는 완제품에 못지않은 귀중한 정보를 담고 있을 수 있다. 여기에 보인 2점의 유물이 바로 그러한 경우로 이들이 갖는 중요성은 그림 1c와 1d에 보인 미세조직사진에 명백히 드러나 있다. 전자는 회주철 조직으로 그림 1a에 보인 유물에서 발견된 것이며 후자는 백주철 조직으로 그림 1b에서 발견된 것이다. 회주철과 백주철은 모두 주철소재로 탄소함량이 높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주조과정에서 응고속도를 달리함으로써 초래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조직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대에 생산된 주철소재는 대부분 백주철 조직이며 회주철 조직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여 응고속도를 매우 느리게 할 경우에 한하여 출현한다. 조직의 형태로 보아 두 유물 모두에 약 4.3%의 탄소가 포함된 것으로 판단된다. 철에 탄소함량이 증가하면 녹는 온도가 감소하며 4.3%에서 1148 로 최저 온도에 이르게 된다. 이는 순철에서의 1538 에 비하여 390 나 낮으며 특별한 시설 없이도 어디서나 쉽게 얻을 수 있는 온도에 해당한다. 군대의 주둔지인 아차산 보루에서 이러한 유물이 수거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이곳에서 주철용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림 1b의 유물은 그 형태와 조직으로 보아 주조과정에서 흘러나와 버려진 것으로 판단되며 그림 1a는 爐 내부에 잔류하게 된 것으로 爐가 냉각되는 속도에 맞추어 서서히 응고됨으로써 회주철 조직을 취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두 유물의 존재는 당시 고구려의 철기산업과 군의 병참체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우선 아차산 보루에서 철광석을 대상으로 하는 제련공정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이곳에서 사용된 주철소재는 후방에서 생산되어 공급되었을 것이 분명하며, 그렇다면 주철소재가 어떠한 크기와 형태로 공급되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연철의 공급과정에 대하여도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것은 제련을 담당하는 생산자와 직접 철기제작에 참여하는 실수요자를 연결하는 유통구조에 대한 질문이자 당대의 철기산업은 물론 고구려군의 병참체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반드시 제기되어야할 질문으로 향후 발굴에 참여하는 학자들이 주목해야할 사항이다. 2. 유물#2: 車 그림 2a는 수레바퀴와 같은 회전체의 축을 지지하는 원통형 철제품의 일부를 보여준다. 이 유물에는 수거 당시 그림에서와 같이 약 1/4만이 잔존하고 있었다. 몸체와 齒에 해당하는 화살표 1, 2의 부위에서 시편을 취하여 관찰한 결과 양자에서 모두 그림 2b에 보인 것과 같은 조직이 얻어졌다. 이 유물 또한 주조제품으로 조직의 특성으로 보아 탄소함량이 4.3%에 다소 미치지 못하는 백주철이다. 이 조직이 백주철임에는 분명하나 여기에서는 주조과정을 거친 다음 고체상태에서 상당 기간 실행된 열처리 흔적이 발견된다. 같은 백주철임에도 불구하고 그림 1d와 2b의 조직에 형태상 큰 차이가 발견되는 것은 이처럼 탄소함량과 열처리 면에서 양자에 주어진 조건이 상이하였음에 기인한다. 이 유물의 조직에서 발견되는 열처리 흔적은 우연히 발생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므로 특별한 목적 하에 의도된 것으로 보여 진다. 백주철은 본래 취성이 강한 조직으로 열처리를 통하여 조직을 변화시키게 되면 이를 완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열처리는 충격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기 위하여 의도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유물이 회전체의 축을 지지하는 일종의 베어링으로서 사용도중 충격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므로 취성을 낮추기 위한 처리의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 2b에서와 같이 그 형상에 다소 변화가 초래되기는 하였으되 백주철 조직이 그대로 남아있는 점으로 보아 이 유물에 가해진 열처리가 취성을 낮출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 유물은 사용도중 파손됨으로써 용도가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 중 일부가 고고학적 증거로 남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그 정도가 불충분하기는 하였으나 백주철을 대상으로 하는 열처리가 의도되었다는 사실은 당대의 기술자들이 이에 의한 효과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백주철로부터 강 소재를 생산하는 제강법이 이러한 열처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고려할 때 당대 고구려에 이와 유사한 제강공정이 실행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3. 유물#3: 살포 그림 3a는 살포로 명명되는 일종의 농기구이다. 화살표 1, 2로 각각 표시된 날과 자루부위에서의 조직을 분석한 결과 그림 3b와 3c에 보인 것과 같은 연철조직이 관찰되었다. 이들은 모두 광학현미경사진으로 그림 3b는 날에서 취한 시편 전체를 보여주며 그림 3c는 자루에서 취한 시편 일부를 확대한 것이다. 그림 3b에서 관찰되는 밝고 어두운 부위 중 시편에 해당하는 것은 밝게 보이는 부위이며 여기에는 다시 밝은 바탕에 수평방향으로 길게 늘어진 선형의 어두운 부위가 자리하고 있다. 그림 3c는 비록 다른 부위에서 취한 것이기는 하나 그림 3b의 일부를 확대한 것으로 보아 무방하다. 이들 조직사진에서 밝게 보이는 곳은 순철에 가까운 조직이며 길게 늘어진 어두운 부위는 비금속 불순 개재물에 해당한다. 여기에 탄소를 거의 함유하지 않는 순철에 가까운 조직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과 불순 개재물이 다량으로 발견된다는 점은 당대의 연철생산 공정에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연철은 저온환원법을 적용하여 철광석에서 직접 생산될 수도 있으나 주철을 재처리하여 생산될 수도 있다. 따라서 중세 이전의 유럽에서와 같이 주철이 사용되지 않았던 곳에서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철기문화가 도입되는 단계에서부터 주철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던 지역에서는 연철의 생산경로를 추정하는 것이 당대의 철기산업을 이해함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고구려에서는 물론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연철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생산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이는 철기유물 분석을 통하여 연철의 생산공정을 유추하기가 거의 불가능함에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저온환원법을 적용할 경우 유물#3의 살포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이 탄소함량이 낮은 연철이 생산되며 소재 내에 비금속 불순 개재물의 존재빈도가 높게 나타난다. 이를 고려할 때 고구려에 이러한 제련기술이 개발되어 있었을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비록 어렵기는 하나 철제유물 뿐 아니라 제련과정에서 파생되는 철재(slag)나 제련爐의 형상 등을 면밀히 분석하게 되면 그에 관련된 작업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이점이 충분히 고려됨으로써 고구려 뿐 아니라 만주와 한반도 전역에서 이루어지던 제련공정의 성격이 규명되어야할 것이다. 4. 유물#4: 철촉 그림 4a는 무순 소재 동문 외 고구려 산성에서 출토되어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화살촉을 보여준다. 화살표 1에서 시편을 취하여 광학현미경으로 그 조직을 분석한 결과 그림 4b가 얻어졌다. 이 그림에서 중앙의 밝은 부위에는 백주철 조직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의 우측단과 하단을 두르고 있는 어두운 띠에는 퍼얼라이트(pearlite) 또는 共析으로 불리는 鋼 조직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유물의 내부는 백주철 소재로 그리고 그 표면은 강 소재로 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조직의 형상으로 보아 내부의 백주철에는 약 4.3%의 탄소가 함유된 반면 강으로 된 표층에는 약 0.77%의 탄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직의 배치에서 확인되는 이러한 특성은 이 유물이 원래는 주조되어 전체적으로 백주철 조직을 취하고 있었으나 그 이후 표면조직에 변화가 초래되었음을 말해준다. 이 변화는 탄소함량 차에 따른 것이며 이는 표층에서 탄소원자가 유출되는 脫炭현상이 발생하여 원래는 4.3%이던 탄소함량이 0.77%까지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탈탄이 가능하려면 온도가 높아야할 뿐 아니라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며 이 현상은 표면에서 시작되어 내부로 진행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림 4b에 보이는 조직은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실시된 열처리에 의하여 초래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화살촉 제작에 주철이 사용되었다는 점과 주조 후 추가적으로 실시된 열처리에 의하여 표면부위에 鋼으로된 층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이 유물은 고구려의 철기기술에 관하여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필자가 아는 한 지금까지 주조된 철촉이 보고 된 적이 없으므로 우선 이것이 고구려에 국한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한반도와 만주를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던 것이었는지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만일 이를 통하여 이 기술의 기원과 전파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면 고구려와 주변국 간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주조공정이 기술적 측면에서 대량생산이나 복잡한 형상제작에 적합한 장점을 지니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형제작에 소요되는 노력과 1200 가 넘는 주철용액을 다루는 문제 등을 고려할 때 화살촉과 같이 비교적 간단한 형상의 소형제품을 제작하는데도 과연 주조가 적합한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고구려에서 이러한 공정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며 이에 따르는 문제점들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어있었거나 이를 통하여 얻을 수 있던 장점이 어려움을 감수할 만큼 컸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림 4b에는 표면으로부터의 탈탄에 의하여 내부의 백주철 조직이 점차 강 소재로 변하여 가는 일종의 제강관련 공정이 쉽게 연상된다. 鑄鐵脫炭法으로 명명할 수 있는 이 기술은 주철의 생산이 이루어지던 지역에 한하여 실행 가능한 제강법으로 기원전 2세기 또는 그 이전에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지역에서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고구려에서 이 기술이 실행되고 있었던 점은 놀라울 것이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보고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이 제강법이 어디에서 기원하여 어떤 경로를 거쳐 전파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무한 상태이다. 이 유물의 발견으로 인하여 이 기술이 실제로 행하여지고 있었으며 그것도 주조에 의하여 형상가공이 완료된 제품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화살촉 제작에 이와 같은 제강기술을 적용하게 된 것은 주조조직이 갖는 취성을 염두에 둔 결과로 볼 수 있다. 화살촉은 충격과 더불어 목표물에 침투하여 최대한의 피해를 입혀야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백주철 조직을 그대로 쓸 경우 충격 순간 파괴됨으로써 침투효과가 감소될 가능성이 높다. 이 유물에서와 같이 열처리를 통하여 표층을 강으로 변화시킬 경우 파손의 가능성은 줄어드는 반면 침투효과는 증대될 것이다. 5. 유물#5: 鐵片 그림 5a는 아차산 제4 고구려 보루에서 출토된 약 60g 중량의 철편을 보여준다. 외형으로부터 그 용도를 추정할 수 없는 이 유물에서는 이곳 군사시설지에서 실시되던 중요 제강법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되었다. 그림 5a에 화살표로 표시된 단면의 미세조직을 관찰한 결과 그림 5b에 보인 광학현미경사진이 얻어졌다. 여기에서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검은색 또는 회색으로 보이는 부위에는 부식생성물이 채워져 있으나 이들을 제외한 부위에는 조직관찰이 가능한 철 조직이 남아있다. 이 부위에는 어두운 바탕에 밝은 부위가 침상으로 포함된 영역과 밝은 바탕에 어두운 부위가 점점이 포함된 영역이 혼재하고 있다. 여기에서 밝은 부위는 영역에 상관없이 시멘타이트(cementiet)라 불리는 조직에 해당하며 어두운 부위 또한 영역에 무관하게 공석조직에 해당한다. 시멘타이트는 6.67%의 탄소를 포함하는 조직인 반면 공석에는 0.77%의 탄소가 포함되어있다. 이는 그림 5b에서 전체적으로 밝게 보이는 영역에는 탄소함량이 높은 조직이 주를 이루면서 낮은 조직을 일부 포함하고 있으나 어두운 부위에는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밝게 보이는 영역은 백주철에 해당하며 어두운 영역은 탄소함량이 1% 근방인 고 탄소강에 해당한다. 즉, 이 유물에는 주철과 鋼이 층을 이루며 혼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주철에 해당하는 밝은 영역에는 응고과정을 거쳐야만 생성될 수 있는 조직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이 부위가 액체상태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상과 같은 조직은 탄소함량이 높은 소재와 낮은 소재를 혼합하여 그 함량을 적절히 조절하여 강 소재를 생산하는 제강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이 유물이 발생하게 된 과정을 설명해준다. 문헌상에 灌鋼法으로 명명된 이 제강법은 기원 후 5세기 이전에 개발되었으며 주철과 연철을 섞어 함께 가열하는 공정을 수반하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 관련된 작업조건이나 반응의 성격에 관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고 다만 기록을 근거로 하는 추측이 가능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림 5b에는 이 제강공정에 관련된 제반 조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우선 주철이 용해된 상태로 반응에 참여한다는 것은 이 공정이 적어도 주철의 최저 용해온도인 1148 이상에서 수행됨을 의미한다. 또한 반응이 진행되는 동안 액상의 주철이 연철을 포위함으로써 양자 간에 탄소원자가 쉽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음도 확인된다. 이 과정에서 주철은 탄소를 잃음으로써 그리고 연철은 탄소를 받음으로써 강철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초기에는 연철과 주철로 존재하던 것이 고온에서의 반응이 진행됨에 따라 연철부위가 강철로 변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유물은 관강법의 실행을 뒷받침할 수 있는 희귀한 고고학적 증거일 뿐 아니라 이에 관련된 제반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6. 유물#6: 철촉 그림 6a는 아차산 제4 고구려 보루에서 출토된 화살촉을 보여준다. 심하게 진행된 부식으로 이 화살촉의 머리부위에서는 조직관찰용 시편을 취할 수 없었으나 화살표 1로 표시한 몸체에서는 그림 6b에 보인 것과 같은 철 조직이 관찰되었다. 그림 6b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좌우측 단 부근에 어둡게 보이는 조직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곳이 표면에 노출되었던 부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그림 6b의 조직에 나타난 명암은 탄소함량 차에 기인하는 것으로 어두운 곳에는 탄소함량 0.77%의 공석조직이 주를 이루고 있음에 비하여 중심의 밝은 부위에는 탄소를 거의 함유하지 않는 연철조직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유물#3에서와 같이 상하로 길게 늘어진 비금속 불순 개재물의 존재가 관찰된다. 이 그림에서와 같이 탄소함량이 높은 조직이 중심의 연철 조직을 포위하는 독특한 배열형태를 얻기 위하여서는 연철소재를 대상으로 그 표면에 탄소를 침투시키는 이른바 浸炭공정이 요구된다. 이는 그림 6a에 보인 화살촉 제작에 침탄공정이 실행되었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여기에 사용된 원 소재의 탄소함량이 낮았음을 시사한다. 즉, 이 화살촉은 연철소재를 두드려 형태를 가공하는 成形工程과 그 후 실시된 浸炭에 의한 제강공정을 거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침탄처리는 강도를 보강하기 위하여 소재의 탄소함량을 높여주는 일종의 제강법에 해당한다. 앞서 살펴본 유물에서 확인된 제강법에서와는 달리 침탄에 의한 제강공정에는 주철소재가 사용되지 않고 있다. 이 기술은 인류가 사용한 제강법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원 후 14세기 경까지 유럽의 철기산업에서 주류를 이루던 제강기술이다. 이 시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는 주철이용에 관한 기술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으므로 주철을 소재로 하는 개입된 제강법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7. 유물#7: 橫孔斧 그림 7a는 아차산 제4 고구려 보루에서 출토된 도끼이다. 날 근처에 화살표 A-A로 표시된 곳에서 용접흔적이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 날 부위를 강화하기 위하여 몸체와는 구별되는 특별한 소재가 별도로 만들어져 용접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도끼에 각각 화살표 1과 2로 표시된 날과 후미에서 시편을 취하여 광학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그림 7b와 7c가 얻어졌다. 날에서 취한 그림 7b에서는 강 조직이 관찰되나 후미에서 얻어진 그림 7c에는 전체적으로 순철에 가까운 조직이 관찰된다. 이들 조직사진에 나타난 마름모는 500g의 하중에서 측정한 비커스(Vicvkers) 경도자국으로 날에서는 Hv=630의 높은 경도값이 얻어졌으나 후미에서는 Hv=110로 낮은 수치가 얻어졌다. Hv=630은 강 소재를 담금질할 경우에 한하여 얻어질 수 있는 높은 경도인 반면 Hv=110은 연철 소재에서나 얻어질 수 있는 낮은 경도에 해당한다. 사용된 소재의 종류와 가하여진 열처리 면에서 날과 후미에 이상과 같은 차이를 두게 된 것은 도끼의 기능과 경제성을 동시에 고려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기능면에서 날에는 강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며 담금질 처리 또한 필요하나 그 외의 부위에는 연철이 사용되어 무방하다. 그러나 한 제품에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소재를 사용한다는 것은 제작과정에서 추가적인 공정을 요구하게 되므로 경제성 면에서 불리한 경우가 많다. 그림 7a에서와 같이 날 부위에 별도의 소재를 접합하는 데는 상당한 작업이 요구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부위별로 서로 다른 소재를 사용하게 된 것은 강 소재의 생산에 드는 비용이 제작과정에서의 불리함을 보상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날에 쓰인 강 소재의 생산에 어떠한 제강법이 적용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앞서의 유물에서 확인된 몇 가지 방법 중 하나일 것임은 분명하다. 8. 유물#8: 鐵矛 그림 8a는 구의동 고구려 보루에서 출토된 창의 외형을 보여준다. 도끼에서와 마찬가지로 창에서도 그림에 화살표 1로 표시된 머리 부위와 2로 표시된 자루 부위에 기능상 서로 다른 소재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유물에서는 앞서의 도끼에서와 같이 머리를 몸체에 접합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림 8b는 머리에서 취한 시편의 미세조직을 보여주는 광학현미경사진이며 그림 8c는 이중 일부를 확대한 것이다. 그림 8b에서는 전체적으로 강 소재가 관찰되며 그림 8c에는 담금질 처리의 흔적이 발견된다. 그림 8d는 자루에서 관찰되는 대표적인 조직으로 어두운 부위에 길게 늘어져 있는 불순 개재물을 제외하면 전체가 순철에 가까운 조직을 취하고 있다. 이 유물은 대표적인 무기로 유물#7의 도끼와는 용도 면에서 구별된다. 그러나 기능에 따라 부위별로 사용된 소재의 성격을 달리한 점이나 강도를 보강하기 위하여 머리 부위에 담금질 처리를 수행한 점 등 제작과정 전반에 걸쳐 양자에는 차이가 없다. IV. 고 찰 철기기술의 측면에서 고구려의 정체성을 논하기는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비단 고구려에 국한된 사항이 아니라 고토의 대부분이 남한에 속하게 된 백제, 신라, 가야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로 고대 뿐 아니라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철기기술에 관하여는 초보적인 사실을 제외하면 논의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이것은 그간 철기문화의 기술적 측면에 대한 연구가 불충분하였음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더 근본적인 문제로는 고대의 기술체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제기되어야할 질문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결여됨으로써 연구의 방향과 초점이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철기기술체계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논하자면 우선 소재생산 단계에서 완제품 제작에 이르기까지 제반 공정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서는 고대에 실행되던 제련, 제강 및 제작에 대한 개별적인 사항이 파악되어야하며 이들이 시대적으로 그리고 지역적으로 어떻게 조합되어 하나의 독특한 기술체계를 형성하게 되는지를 살펴보아야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에 제시된 8점의 유물은 고구려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고대사회 전반에 걸쳐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다음에는 이를 제련, 제강 및 제작의 각 단계별로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주철소재가 일찍부터 제련되어 사용되었다는 점은 이미 알려진 사항으로 새로울 것이 없다. 이는 본고에서도 유물#1, #2, #3을 통하여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유물#4와 #6, #7 및 #8에서 발견되는 순철에 가까운 철 소재가 어떤 경로를 거쳐서 생산되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은 찾기 어렵다. 소재만을 분석하여 연철제련에 적용된 공정의 성격을 판단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우며 이의 생산에 사용된 제련로의 형상이나 제련과정에서 파생된 철재 등을 고려하는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연철을 사용한 이들 유물에서 한결같이 발견되는 불순 개재물은 이 소재가 저온환원법의 산물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으나 확신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며 향후 이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요망된다. 본 연구에서 얻어진 가장 큰 수확으로는 고구려에서 실행되던 다양한 제강법에 대한 명확한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된 점일 것이다. 우선 유물#3의 백주철 제품에서 확인되는 열처리 흔적은 이를 통하여 주조품의 취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 기술을 적절히 응용할 경우 백주철로부터 강 소재가 얻어지는 점을 고려할 때 이와 관련된 제강법의 실행 가능성이 점쳐지며 이는 유물#4에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유물#4의 조직에는 주조에 의한 형태가공 공정과 이후 실시된 열처리에 의하여 표면으로부터 백주철 조직이 강으로 변화되는 일련의 공정이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의 열처리는 분명 이미 완성된 형상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실시되었을 것이며 이는 처리온도가 백주철의 녹는 온도인 1148 이하이었을 것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 유물은 고체상태에서 주철을 대상으로 하는 제강법이 고구려 영토 내에서 실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로 볼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유물#5로부터 추정되는 제강공정에는 주철의 용해가 수반되어 있으며 용해된 주철 사이사이에는 고 탄소강에 해당하는 부위가 층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만일 이들 강 부위가 표면에 집중되었다면 유물#4에서와 유사한 공정을 상정할 수 있겠으나 이들이 여기에서와 같이 백주철을 바탕으로 층을 이루며 존재하기 위하여서는 이들을 두르고 있는 주철이 반드시 용해되어야하다. 이 유물에 이미 상당한 반응이 진행된 점을 고려할 때 강 부위의 초기 탄소함량은 현재에 비하여 월등히 낮았을 것이며 반응속도가 비교적 빠른 점에 비추어 원래 공급된 소재는 연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유물#5는 주철과 연철을 소재로 이들을 함께 가열하여 양자의 탄소함량을 조절함으로써 강 소재를 생산하는 이른바 관강법이 실행되고 있었음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한편 유물#6은 앞서의 유물#4, #5와는 달리 주철이 개입되지 않은 제강법의 실행을 보여준다. 이유물의 미세조직에는 탄소함량이 낮은 소재의 표면에 탄소원자를 침투시킬 경우 그 외곽 일부가 강으로 변화되고 있는 상황이 나타나 있다. 연철을 목탄 속에 묻어 장시간 가열시킴으로써 실행되는 이 공정은 침탄제강법으로 알려져 있다. 유물#7과 #8은 공구와 무기를 대표하는 완제품으로서 이들로부터는 철기제작에 관한 정보가 확인된다. 우선 양자 모두에서 기능에 따라 부위별로 사용된 소재를 달리하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부위에 한하여 강 소재를 사용하게 된 데에는 강 소재의 생산이 상대적으로 어려웠다는 사실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철이나 주철을 통하여서만 강의 생산이 가능하였던 점을 고려하면 이의 소비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이들에 사용된 강 생산에는 앞서의 유물들에서 확인된 3 가지 제강법 중 하나가 응용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이들에서 담금질 조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제품의 강도를 높이기 위하여 제작 마지막 단계에 담금질 열처리를 수행하는 것이 당시 일반화 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차산과 같이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군사보루에서 어느 수준의 대장작업이 실행되고 있었는지를 추정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고구려 군의 병참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아차산 제4보루에서 출토된 7점의 유물 가운데 그림 1a와 1b에 보인 주철제품은 용해과정에서 파생된 것으로 크기나 형태로 보아 의도된 것이 아니라 주조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흘러나온 것이거나 용해로 내부에 남게 된 것이다. 유물#5 또한 외부에서 제작되어 공급된 것으로 보기에는 형태나 크기 면에서 적합하지 않으며 보루 내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진 작업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사실은 주철 용해시설이 보루 내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철광석을 대상으로 하는 제련작업을 제외한 제강, 제작, 열처리 등 대부분의 철기기술이 보루 내에서 직접 실행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완제품이 공급되어 오는 경우도 있었겠으나 수리는 물론 자체생산이 가능할 정도의 설비 및 기술수준이 보루 내에 갖추어져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최전방 군사보루에 대장일을 전담하는 기술자들이 상주하기 어렵다고 간주할 때 당대의 군사들에게는 대장기술에 관한 기본소양이 갖추어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V. 결 론 고구려 유적지에서 출토된 철기유물을 대상으로 실시된 금속학적 분석연구를 통하여 본고에서는 제련, 제강, 제작 및 열처리 등 철기기술체계를 구성하는 제반 공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1. 용해가 수반되는 주철제련이 일반화되어 있었으며 여기에서 생산되는 주철 소재는 주조품 제작에는 물론 다양한 형태의 제강공정에 기본소재로 응용되고 있었다. 2. 주철 소재와 더불어 탄소함량이 낮은 연철 소재 또한 생산되어 단조품 제작에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이들 소재의 미세조직에서 비금속 불순 개재물의 존재가 한결같이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이들이 저온환원법에 의하여 제련된 괴련철 소재일 가능성이 제기되나 확신할 단계는 아니며 앞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3. 제강법으로는 고체탈탄법과 관강법 및 고체침탄법이 실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들은 주철 소재를 사용하는 공정(고체탈탄법 및 관강법)과 그렇지 않은 것(고체침탄법)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주철을 사용하는 공정의 경우 다시 주철의 용해가 수반되는 것(관강법)과 그렇지 않은 것(고체탈탄법)으로 구분될 수 있다. 4. 관강법의 경우 주철과 연철을 함께 묶어 주철의 용해온도 이상으로 가열함으로써 액상의 주철과 고체상태의 연철 사이에 초래되는 탄소의 확산반응에 의하여 강 소재가 생산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여기에서 주철은 탄소를 잃음으로써 그리고 연철은 탄소를 받음으로써 각자 강 소재로 변화된다. 5. 철기제작과정에서 부위별로 소재의 종류를 달리함으로써 강 소재의 소비를 최소화하려한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강의 생산에 드는 노동력과 비용을 감안한 결과로 판단된다. 6. 제작 마지막 단계에서는 그 효과를 기능상 필요한 부위에 국한시키기는 선별적 담금질 열처리법이 실행되고 있었다. 7. 이상에서 언급한 일련의 철기기술은 고대에 가능하였던 거의 모든 요소를 총 망라하는 것으로 이와 같이 다양한 기술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와 특수한 지리적 여건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향후 이들 제반기술의 기원과 전파 및 발전과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 경우 철기를 매개로 이루어지던 고구려 내외의 인적, 물적 교류에 관한 정보가 얻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이는 대륙과 반도를 아우르던 고구려의 정체성을 밝힘에 보탬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