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감의 주요 품종과 그 특징은
① 고종시(高種枾): 열매의 모양이 방추형이고 품질이 매우 우량하다. 씨가 없는 것이 보통이나 2~3개 있는 것도 있다.
② 사곡시(舍谷枾): 열매는 편원형(扁圓形)이고, 위가 약간 오목하고 어느 정도 네모진 것이 특징이다. 단맛이 강하고 경북 의성 사곡이 원산지이다.
③ 반시(盤枾): 모양이 편원형이고 위가 약간 오목하며, 다소 오각형을 이루고 품질이 좋다.
④ 분시(盆枾): 열매는 둥그나 약간 길쭉하며, 위는 둥글고 횡단면은 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단맛이 강하다.
⑤ 원시(圓枾, 일명 忠南枾): 열매는 둥글고 끝이 약간 뾰족하다. 살이 단단하고 단맛이 강하다. 비교적 추운곳에서 재배할수 있고, 건시용으로 알맞다.
'감은 치아의 독이자 위장약'이라는 속담대로 수분이 많고 차가워 치아를 들뜨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타민 C가 풍부하고, 혈압을 낮추거나 딸꾹질에 잘 듣는다고 한다.
감을 한자로 시수(枾樹)라 한다. 물명고에 '감의 고자는 시이고, 범어로는 진두가라 한다. 수시는 수분이 많고 맛이 좋은 것, 조홍은 6월에 익는 작은 것, 홍시는 붉게 익은 것을 따뜻한 곳에 두어 절로 홍숙시킨것, 건시는 곶감, 백시와 황시는 볕에 말린 것, 오시는 불에 말린 것, 준시는 건시를 꼬챙이에 꿰지않고 압편한 것을 가리킨다. 또, 건시 껍질에 돋아나는 흰 가루를 시상 또는 시설이라고 한다. 감나무열매를 말린 것을 곶감 “곶”은 감열매를 곶이처럼 묶었다는 뜻이다. 홍시가 고동시라면 단감은 대개 ‘반시(盤柿)’이다. 반시라는 이름은 모양새가 마치 쟁반(盤)처럼 밑이 넓고 둥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같다. 말하자면 단감은 일종의 개량종인 셈이다.
감나무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양권에만 있는 무척 사랑받는 과수이다. 특히 밤, 대추와 함께 삼실과 (三實果)의 하나로서 빠뜨릴 수 없는 제수(祭需)로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려져 오고 있다. 옛날부터 감나무는 많은 예찬을 받아왔는데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 속전시유칠절(俗傳柿有七絶)이라 하여
감의 일곱가지(七) 덕을 일렀으니 그것은
첫째, 수명이 길다는 수(壽).
둘째, 녹음이 짙다는 다음(多陰).
셋째, 새가 집을 짓지 않는다는 무조소(無鳥巢).
넷째,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는 무충양(無盤襄).
다섯째, 단풍이 아름답다는 상엽만완(桑葉萬琓).
여섯째, 열매가 좋다는 가실(佳實),
일곱째, 낙엽은 거름이 된다는 낙엽비대(落葉肥大)등이라 해 버릴것이 하나도 없는 나무라 예찬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곶감은 몸의 허함을 보하고 위장을 튼튼하게 하며 체한 것을 낫게 한다. 주근깨를 없애고 허혈(피가 모인 것)을 삭히고 목소리를 곱게 한다.” 했다. 그리고 “홍시는 심장과 폐를 눅여주며 갈증을 멈추게하고 폐와 위의 심열을 치료한다. 또한 식욕이 나게 하고 술독과 열독을 풀어주며 위의 열을 내리고 입이 마르는 것을 낫게 하며 토혈을 멎게 한다.” 했다. 감이 약재로 쓰였음을 알수 있다.
민간에는 감이 설사를 멎게 하고 배탈을 낫게 한다 알려져 있고 과학적인 근거도 있다. 바로 떫은 맛을 내는 타닌성분이다. 강한 수렴(收斂) 작용을 하는 타닌은 정의 점막을 수축시켜 설사를 멈추게 한다. 과음한 다음날 아침에 생기는 숙취 제거에도 좋은 약이 된다. 이는 감에 있는 과당, 비타민C등이 체내에서 알코올의 분해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감나무에 얽힌 민간요법은 많다. 감이나 곶감은 주로 숙취, 돼지고기 먹고 체한데 먹으면 잘 듣는다 하며 감꼭지나 곶감꼭지는 시체(柿蔕)라 하여 달여서 마시면 딸꾹질을 멎게 하는데 특효라 널리 알려져 있다. 마른 감잎은 자방생선의 짠맛을 뺄 때 함께 물에 담그면 짠맛이 잘 빠져서 이를 이용했는데 옛 어머니들의 살림의 예지를 엿 볼 수 있다. 감(곶감)의 단맛은 설탕이 없던 옛 시절에는 매우 요긴한 감미료(甘味料)로서 특히 감의 분은 백시(白柿), 시상(柿霜), 시설(柹雪)이라 하여 귀히 여겼다. 곶감을 술에 담근 시침 (柿侵)은 목의 갈증을 멎게 하므로 옛날에는 축국장(蹴鞠場)에 보냈다고 하며 도열병을 앓는 환자에게 마시게도 했다고 한다. 감은 우리 민속식으로 홍시죽이나 수정과 감 설기 떡 등으로 발전했으며 오늘날은 감쨈이나 감식초, 양갱, 감잎차등 여러가지 음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갈중이’, 혹은 ‘갈옷’이라 부르는 옷이 있는데, 이것은 무명에 감물을 들여 만든 옷이다. 감물이 방부제 역할을 하여 땀이 묻은 옷을 그냥 두어도 썩지 않고 냄새가 나지 않으며, 통기성이 좋아 여름에는 시원할 뿐만 아니라 밭일을 해도 물방울이나 오물이 쉽게 묻지 않고 곧 떨어지므로 위생적이다. 갈옷의 정확한 역사와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중국 남쪽에서도 갈옷을 입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몽고의 지배를 받던 고려 충렬왕 때 전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감나무의 목재는 단단하고 재질이 고른 편이다. 특히 검은 줄무늬가 들어간것을 먹감나무라 하는데 사대부 집안에서는 이것을 가구, 문갑, 사방탁자를 만드는데 많이 사용 하는데 먹감나무 종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간혹 검은 줄무늬가 들어간 감나무를 부르는 말이다.
감나무 종류는 검게 변하는 특징이 있다. 풋감을 짓찧어 짜낸 즙을 감물이라 하여 방부, 방습, 수렴(收斂)등의 효과가 있어 화상이나 동상이 걸린데 바르기도 했으며 감물을 종이에 칠하여 부채를 만드는 종이로 사용하기도 했고, 감물을 이용한 갈옷은 비를 맞아도 몸에 감기지 않고 땀이 묻어도 땀 냄새가 안 나며 먼지나 검불이 묻어도 털면 곧 떨어지고 몇 날을 입어도 더럽혀지지 않고 빳빳하므로 풀할 필요가 없고, 이슬이 맺힌 밭에서 김맬 때 물기가 묻어도 곧 떨어져 옷이 젖이 않는다. 그래서 갈옷은 농부뿐만이 아니라 어부도 입고 목동도 가시덤불에 질리지 않아 즐겨 입었다.
감물의 시초는 어부의 낚싯줄의 질긴 염색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갈옷이 정확한 역사와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중국 남쪽에서도 갈옷을 입은 흔적이 있는것으로 보아 몽고의 지배받던 고려 충열왕때 전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감나무의 민속·속담·격언은 다양하다.
가을에 감을 수확할 때 맨 위 꼭대기에 있는 감은 까마귀의 몫으로 남겨둔다. 사람이 아닌 동물의 몫까지 염려한 군자지국(君子之國)의 인심이 있었다.
감나무에 올라갔다 떨어지면 죽는다.
감나무를 태우면 재난을 당하거나 흉사가 생긴다.
오뉴월에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목에 걸면 아들을 낳는다.
감이 일찍 물들면 첫눈이 빨리 온다.
감이 풍년들면 대설이 온다.
감씨가 많으면 추위가 심하고 적으면 눈이 적다.
감이 풍년든해는 태풍이 있고 벼농사가 신통치 않다.
감나무 잎의 싹이 나서 콩 한알을 쌀만큼 자라면 콩을 뿌려야 한다.
임신부가 감을 먹으면 안된다.
감을 어패류와 함께 먹으면 복통을 일으킨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밭둑에 대추나무, 야산 자락에 밤나무, 마당가에 감나무, 숲속에 돌배나무를 반드시 심었다. 제사상의 맨 앞 과일 줄에 올라가는 조율이시(棗栗梨枾)로서 꼭 챙겨야 할 과일나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