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외출했다가 지하철로 돌아오는 길에 사상역에 내렸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까지 오는 버스가 있기 때문이다.
정류장이 있는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소방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가고 하얀 연기 같은 것이 뿌였게 흩날리고 있었다. 순간 어디에 불 났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동요하는 사람도 없고 하얀 연기에 매캐한 냄새도 안 났다. 소방차 소리에 착각한 거다. 하얀 연기는 정류장 지붕에 있는 냉각기에서 나온 찬 공기가 수증기로 변한 거다. 마트 신선식품 코너 위에서 아래로 품어지는 에어컨 찬 공기 같이 말이다.
착각을 깨닫는 순간 쓴 웃음이 났지만 한편 감탄했다. 대단하다. 대한민국! 집에 와서 집사람한테 이야기했더만 올해가 아니고 수년전부터 그랬다고 한다. 주로 지하로만 다니다보니 지상 세계 변하는 줄 모르고 산다나 ㅎ 하긴 그렇다. 시외는 주로 승용차나 시외버스로, 시내는 지하철로 다니다 보니 어쩌다 시내버스를 타면 낯선 시내 풍경들이 많다.
외국에서 살다온 분이 우리나라의 버스정류장 모습이 세계 최고라 했다. 몇 번 버스가 몇 분 후에 도착한다는 안내 문자가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건 기본이고, 그늘막에 바람막이에 겨울에는 따뜻해지고 여름에는 시원해지는 의자 등등 세상에 이런 정류장이 없다는 거다.
해외여행 중 시내버스로 이동한 경험이 없어 외국 시내버스 정류장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의 정류장이 대단한 건 사실인 모양이다. 지방 소도시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시골 버스 정류장도 그렇다.
고향 동네 버스정류장도 마찬가지다. 한두 시간에 버스 한 대 겨우 다니는 곳이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지만 비바람도 피하고 의자에 앉아 기다릴 수 있게 되어 있다. 고맙기 짝이 없다.
그뿐 아니다. 버스고 지하철이고 어찌나 시원한지 추위를 느낀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얇은 겉옷을 춘비해 간다. 몸 적응력이 떨어져 감기들기 쉽기 때문이다.
지나친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도 한다. 아무리 좀 살게 되었다고 추울 정도로 온도를 낮추는 것이 과연 옳을까? 내 돈 안 나간다고 이렇게 막 써도 될까? 이 무더운 여름에 땀 흐르게 하면 안 되겠지만 추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지 싶다. 겨울에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따뜻한지 땀 삐질삐질 나올 것 같아 겉옷을 벗고 탄다.
에어컨 나오는 노지 버스정류장 이야기하다 대중교통 내부 온도까지 참견을 했네. 이 무더운 여름에 씰데없는 소리한다고 욕 들을지 모르겠다.
주민 편의를 위한 정책에 감탄과 걱정이 반반이다. 처음 본 노지 버스정류장 에어컨에서 품어져 나온 차가운 공기가 수증기로 변해 흩날리는 모습은 참으로 낯설면서 경이로운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