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장선리 유적[公州長善里遺蹟]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널무덤·독무덤 관련 생활유적. 사적.
개설
공주 장선리유적은 2000년 충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진행한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하행선 휴게소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조사결과 청동기시대에서 원삼국(마한)시대에 이르는 분묘와 생활유적이 확인되었는데, 원삼국(마한)시대 흙방[土室]유적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9월 1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청동기시대 후기의 송국리유적과 같은 단계의 서기전 7∼6세기로 추정되며, 원삼국(마한)시대의 주거지와 흙방·구덩[竪穴] 유구는 3세기 중엽에서 4세기 전반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청동기시대 유적은 주거지 4기, 원형 유구 30여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 독널무덤[甕棺墓] 1기가 조사되었으며, 붉은간토기[赤色磨硏土器] 등을 비롯하여 다수의 송국리형 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었다. 원삼국(마한)시대 유적은 장방형 주거지 5기, 주거지로 추정되는 흙방 유구 39기, 장방형 구덩유구 15기, 굴무덤[橫穴墓] 1기가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주거지의 바닥 중앙에 타원형의 구덩이가 있는 원형의 송국리형 주거지와 플라스크형의 저장구덩이가 밀집되어 있고, 능선을 달리하여 돌널무덤과 독널무덤이 있다. 주변의 공주 안영리유적, 산의리유적처럼 생활유적과 분묘유적이 별도로 구분된 모습이 확인된다.
원삼국시대 구덩주거지는 평면 말각방형 내지는 장방형으로, 규모는 길이 366∼490㎝ 내외이다. 내부시설은 화덕자리[爐址], 벽도랑[壁溝]시설, 기둥구멍[柱孔]이 확인된다. 화덕자리는 주거지의 벽면에 조성되었는데, 긴계란모양토기[長卵形土器]나 깊은바리모양토기[深鉢形土器] 혹은 기다란 할석을 세워 박아 지각으로 이용하였다. 화덕자리 주변에는 취사용 긴계란모양토기가 다수 발견되었다. 별도의 출입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주거지로 추정한 흙방유구는 지하에 움[土壙]을 파서 조성한 것이다. 1개 혹은 여러 개의 구덩이가 연결된 구조가 있고 부분적으로 출입부, 바깥방[外室], 딸린방[副室] 등으로 구분된다. 이점을 근거로『삼국지(三國志)』위지 동이전(魏志 東夷傳) 한조(韓條)를 비롯한『후한서(後漢書)』등의 중국사서 기록을 검토하여 주거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구덩유구는 저장구덩이로 판단되는데, 평면형태는 장방형·방형·원형·사다리꼴로 다양한 형태이다. 생활공간인 흙방보다는 규모가 작으며, 바닥을 편평하게 정지한 단순한 구조이다. 출토유물은 구덩주거지와 흙방, 저장구덩이 출토품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토기는 바리모양토기[鉢形土器]·주발[椀]·항아리[壺]·독[甕]·긴계란모양토기[長卵形土器]·시루·겹아가리항아리[二重口緣壺]·두귀달린항아리[兩耳附壺] 등이 있으며, 37호 흙방에서는 덩이쇠[鐵鋌] 1점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장선리유적은 청동기시대∼원삼국(마한)시대에 이르는 생활유적과 분묘유적이 확인됨으로써, 선사시대 지역사 연구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특히 흙방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조사된 것으로 의미가 있으며, 원삼국시대 생활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 성격에 대해서는 향후 보다 심층적인 분석이 요구된다.
참고문헌
『공주 장선리 토실유적』(충남발전연구원, 2003)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임진성[壬辰城]
정의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막기위해 축조한 성곽. 산성. 시도기념물.
내용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6,460㎡. 높이 1∼6m, 둘레 286.3m. 이 곳은 임진왜란이 격렬하던 1592년(선조 25)에 군관민(軍官民)의 힘으로 성을 쌓아 왜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향민(鄕民)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한 곳으로 민보성(民堡城) 또는 임진산성(壬辰山城)이라고 불리고 있다. 석축을 쌓고 둘레에 토루(土壘)로 통로를 만들었으며, 산성 축성법(築城法)을 이용하여 사람 머리보다 약간 큰 돌로 타원형으로 쌓았다. 이 성은 이중성(二重性)으로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축조하였는데 내성은 주위 300m의 석축성(石築城)이고, 외성은 토성(土城)으로 흔적만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옛날에는 성루(城樓)·훈병사(訓兵舍)·감시사(監示舍)·망대(望臺)·탑대(塔臺)·서당(書堂) 등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동서 두 곳으로 나 있는 성문지(城門址) 가운데 동문지(東門址)만이 남아 있고 우물터도 한 군데만 남아 있을 뿐이다.
참고문헌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남면[南面,Nam-myeon]
경상남도 남해군의 서남쪽 해안가에 있는 면이다. 송등산(617m), 천황산(395m) 등이 솟은 북부지역을 제외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오리천, 상가천이 흐르는 당항리·죽전리·덕월리를 중심으로 농경지와 도로망이 발달하였다. 동쪽은 앵강만, 남쪽은 남해, 서쪽은 전라남도 여수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경계를 이루고 있다. 양지, 상가 등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지석묘군을 통해 687년(신라 신문왕 7)에 남해현에 전야산군을 설치하기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문왕 때부터 남면이라 칭했으며, 1842년 면수제, 1871년부터는 풍헌제를 실시하였고, 1896년에는 집강제를 실시하였다. 그러다가 1907년에 와서 지금과 같은 면장제도를 도입 개편하였다.
『여지도서』에 남면이 "관문에서 30리에 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도 남면으로 나와 있다. 고지도에는 『해동지도』에서 평산포진과 함께 남면이 처음으로 기재되어 있다. 『동여도』에도 남면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중요하게 인식되었던 지명이다. 현의 남쪽에 있다 하여 남면으로 부른다.
참고자료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일러두기
출처:(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지명)
남해흑마늘- 마늘의 새로운 변신
젤리처럼 씹히는 식감의 남해 흑마늘
몸에 좋은 것은 알지만 강한향과 매운맛 때문에 선뜻 먹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마늘이다. 이러한 번거로움을 해소해주면서 떠오르는 블랙푸드로 흑마늘이 있다. 흑마늘은 일반 생마늘에 그 어떤 첨가를 하지 않고 오로지 일정한 온도와 습도에서 숙성시켜 마늘 특유의 냄새를 없애고 단맛과 신맛이 어우러진 오묘한 맛을 자아낸다. 한 알을 톡 입안에 털어 넣으면 젤리처럼 씹히는 식감과 과일처럼 향긋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출처:(지역 특산물을 찾아가는 체험여행)
▲충남 공주시 장선리 유적
▲고속철도가 가로지르는 농촌 들녁풍경
2023-12-13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