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몸뚱이에 속지 말라 / 혜암 스님
칼 끝에 묻은 꿀을 빨아먹지 말고 독약 펴는 집에서는 물도 먹지 마라.
참으로 세상 사람들은 칼끝의 꿀을 빨아먹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이들처럼 단것만 보면 죽을 둥 살 둥 쫓아다니며 먹어치우는데,
그 꿀 속에는 반드시 칼날이 있어서 혓바닥을 상하게 합니다.
여기에 온 처사님이나 보살님도 다르지 않습디다.
또 비상을 펴는 집에서는 물도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제가 죽어 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순간의 단맛과
순간의 이익을 위해서 꿀을 빨고 독약이 든 물을 마십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밥 잘 먹고 옷 잘 입고 집만 있으면 다된 줄 알지만,
근본 문제를 알지 못하면 아무런 소득이 없는 빈껍데기요
다 죽은 송장일 따름입니다.
제가 그런 적이 있습니다.
저번 해인사 큰 법당에서 법문활 때,
여기에 송장 떼가 법당에 꽉 차 있고 송장의 피가
바닷물처럼 넘치는 구나했는데, 모두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됐어요.
앞뒤가 캄캄해서 아무분별도 못하니까
사람들은 자기가 제일인 줄 알지만 그것이 무슨 값어치 있는 일입니까?
요리조리 따져 봐야 아무런 따질 것도 없고
근본을 묻는 한마디를 하면 그만 꽉 막혀서 어쩔 줄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누구누구 할 것 없이 꿀 빨고 독약 마시는 불쌍한 사람들이예요 .
지난번에는 경상남도 도경국장을 하다가
부산 안기부로 승진한 처사 한 분이 찾아왔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더 윗자리에서 우리 지방을 위해서
일을 좀 더 많이 하라고 부탁만 하지 수행 공부하라는 말은 하질 않아요.
그래서 내가 그 처사에게 일하는 것도 좋고 진급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것이 그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높은 자리나 낮은 자리나, 토끼 새끼나 토끼 어미나 같은 것이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소.
내가 보기에 만 그런 것이 퍽 좋은 것만은 아니다.
높은 자리나 낮은 자리나, 토끼새끼나 토끼 어미나 같은 것이지 했더니
이 처사님은 무슨 말인지 모르고 어리둥절해가지고
멀 뚱 멀 뚱 쳐다보기만 해요.
그래서 다시 이 말은 처사님의 승진에 드리는 큰 선물이요
내가 선물을 하나 하기는 해야겠는데 산중에 사는 사람이라
가난해서 후하게 드릴 것은 없고 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볼
법문 이야기 하겠다고 하자 필기도구를 꺼내어 적고 야단 이예요.
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은 제 몸을 만들어 준 부모님이 아니겠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세속 법이지 출가법은 아니요.
부모님을 통하지 않고서야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으니
가깝기야 따져볼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부모와 자식은 너무 멀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결코 스스로에게 속지 마시오.
이런 말은 도대체 대학에 가서도 배우거나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부모가 멀다고 했겠습니까?
사실 영리한 사람은 이 말을 듣자마자 그 뜻을 알아채고
그것보다 더 멀리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겠다는 것까지 압니다.
이유야 간단하지요.
자기가 자기를 모르고 사는 것은 커다란 죄입니다.
세상에 어떤 착한 일, 좋은 일도 자기를 아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본래의 자기를 알지 못하는데, 부모가 가까울 리 없고
조부모가 또 아들자식이 가까울 리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은 죄 없는 일만 하고 모두 거꾸로 삽니다.
반야심경의 말대로 전도 몽상입니다.
바른길, 살 길이 분명히 있는데도 딴 길을 가요. 부모를 돕는다,
이웃을 사랑한다 하면서 설쳐대는데
그것은 죄인을 도와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지요.
다만 연극배우가 연극을 하듯이 도와주라.
자기의 근본 문제는 늘 가지고 있으면서 형상으로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말입니다.
이 근본을 쳐들어가는 일만 잘하면 착함과 악함이 아무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가지 낳고 생겨나는 그 자리에서 그만 깜박 속고 살아 왔습니다.
이 속은 자리를 가르쳐 주는 부처님의 은혜야말로 하늘과 땅보다 넓고 큽니다.
신심이 무엇이냐면 내 마음이 부처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 내 마음은 하늘과 땅이 생겨나기 전에도 있었고
하늘과 땅이 없어져도 나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큰 보물을 다 놓아 버리고 삽니다.
우주 자체, 세상 만물이 나를 떠나서는 한 물건도 없습니다.
우리가 깨치면 허공이다, 극락이다, 탕탕 무애다 하는데,
우리 마음 근본의 자리에선 극락이
바닷물 속의 한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며
그 커다란 마음이 바로 우리 자신이니 우리 자신이 허공이다.
극락보다 크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꾸며낸 말이나 속이는 말이 아닌 진실한 말일진대
세속법에 대해 불법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다섯 자 여섯 자 되는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면서 교만심을 내고 내가 제일이라고 생각해요.
제일이면 무슨 낙이 있나요.
참 불쌍합니다.
온 우주가 나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니 말예요.
그래서 내가 그 처사님에게 한마디 일러 주었습니다.
지금 나는 진짜 나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애착이나 은혜에 집착하지 말고 부모나 자식의 정리도 끊을 수 있어야
참 나의 자리에 돌아갈 수 있다.
내가 속지 않아야 남도 속지 않고
내가 어두우니 자식들도 어둡게 가르친다.
그러니 우리는 죄가 많은 것이다.
이 한 물건은 더러워지지도 않고 커지거나 줄어들지도 않고
밝거나 어둡지도 않는 어여한 광명으로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찾는 것이 승진이나 부귀보다 더 소중한 일이다. 라고
말해 주었지요.
깔 끝의 꿀을 빨지 않고 독약 파는 집의 물을 마시지 않기 위해서는
참선 수행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옛 말에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삼악도를 면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저기, 영험 있다는 기도처에 아무리 발이 닳도록 쫓아다니면서
기도하고 주력해도 여기 이 자리에서 공부를 잘 해야
되던지 못 되든지 한 시간 참선하는 공덕에는 당하지 못합니다.
참선하는 것만이 정법이고 그밖에는 외도법이예요.
우리 교조 석가모니부처님과 역대 조사도
모두 이 공부를 해 가지고서 성불했지
이것을 떠나서는 결코 이루지 못했습니다.
기도하고 주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핥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아 다 끊어서 범하지 않으면
단정히 앉아서 본고향에 돌아가리라.
저도 이곳에서 삼 년 동안 철야 정진 법문을 했기 때문에
이 곳 정진에 처음부터 나온 사람은 이제 어지간한 법문은
금방 알아차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유치원생 처지쯤은 면했다고 봅니다.
우리 몸뚱이가 내가 아니란 말은 혀가 꿇도록 했습니다.
이 말을 몰라서 몸뚱이에 속는 사람도 있지만,
귀가 꿇도록 듣고서도 밥 먹다 속고 일하다 속고, 잠자다가 속아 버립니다.
밤낮 법문을 듣지만 마치 까마귀처럼 금방 잊어버리고
죄 짓고 넘어지고 밥니다.
몸뚱이가 참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면서 알게 모르게
몸뚱이 생각만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생각을 잃어 버리지 않으면 참 수지맞는데, 여기서만 봐도 그래요
참선하는 처사나 보살, 심지어 수십 년을 선방에서 정진하는 수좌도
몸뚱이에 속아서 허 둥 지 둥 하는 것이 보여요
도대체 저 사람이 부처님 경전을 어떻게 배웠길 래
저렇게 행동하나 하는 의아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사람이 많아요.
몸뚱이 돕는 생각 만 딱 비워 버리면,
그 자리가 극락이요 성불일 텐데 그것을 못해요
많이 안다고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바르게 사는 것이 문제지요.
많이 알고 틀리게 행동하는 것보다
차라리 무식하게만 바르게 사는 것이 더 정법에 가깝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이 마음이 내가 아니요 번뇌 망상이다.
또 착한 마음과 악한 마음도 다 내 마음이 아니다
하는 것을 가르치느라고 여기 철야 정진 때마다
뱃가죽이 아플 지경으로 이야기 합니다.
금강경은 공의 도리를 설파한 경전입니다.
이 말씀은 참 무지무지하게 비쌉니다.
책값이 비싸다는 것이 아니고 법문 공덕이 비싸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 세상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헛것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본질을 추구하는 사람은 착한 일마저도 내버릴 수 있어야 한다,
부모공경하고 이때 사랑하고 자식 보살피는 일에 속아서도 안 되고,
몸뚱이 좋아서 따라가는 것에 속아서도 안 됩니다.
세속법에서는 이것이 옳은 일이지만 근본의 자리,
죄와 복이 없는 절대의 지리에서는 허물이 됩니다.
이 좋은 때, 사람 몸을 만나기 어렵고 정법을 만나기 어려운
이 귀중한 시간에, 우리를 죽음으로 윤회하게 하는
이 애착을 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몸뚱이 도둑에게 속지 말고, 이 마음의 간사함에 따르지 말고,
부려먹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를 한 시간 더하면 한 시간 먼저 부처가 되지만,
몸뚱이 도둑 가까이 해봐야 성불의 길에서 멀어질 뿐만 아니라
이익이 없습니다.
마침내 허망하게 없어질 몸뚱이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을 사는 참된 공부에 매진합시다.
[출처] 나홀로 절로 | 작성자 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