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아달라'고 제의했는데 이를 박근혜 전 대표가 거절했다고 청와대가 뒤늦게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박근혜가 국내에 머물러있던 이틀 동안은 쥐죽은 듯이 잠잠했다가 떠나고 나니까 기다렸다는듯이 뒤통수에 비수를 내리꽂았습니다. 참으로 비열한 짓입니다. 제가 정치에 입문했더라면 저런 족속들과 이전투구를 할 수밖에 없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청와대 발언은 사실상 박근혜를 한나라당에서 내쫓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단 '당 대표를 맡아달라'는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 자체가 박근혜에게 일구이언(한 입으로 두 말 하기)의 표리부동 정치인이 되달라고 조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회동에 앞서 "친박복당이 이루어지면 당대표에 나서지 않겠다"고 했는데, 기자들을 모아놓고 공공연히 한 말을 이명박과의 밀실회동에서 뒤집으라구요? 과연 박근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정치인입니까? 그것을 모른다면 정치감각 0%이고, 알면서도 그 이야기를 꺼냈다면 이것이야말로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통행식 회담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청와대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박근혜는 이명박으로부터 당대표 직을 제의받고도 기자브리핑에서 "당대표직 제의는 없었다"고 거짓말한 것이 됩니다. 과연 박근혜가 몇시간 후에 들통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일까요? 이명박은 그럴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박근혜는 태생적으로 그럴 수 없는 정치인입니다.
진짜 문제의 심각성은 청와대가 박근혜를 '거짓말 정치인'으로 현재 몰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박근혜로서는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따라서 이번 청와대 발언으로 인해 박근혜는 더 이상 한나라당에 남아있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최소한 이명박이 직접 "청와대 발언에 오해가 있었다"며 유감을 표명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명박은 묵묵부답입니다. 자신의 참모가 박근혜를 '거짓말쟁이'로 낙인찍어도 괜찮다는 것이지요.
저의 추측으로는 이명박이 박근혜에게 "당의 중심에 서서 국정에 협력해달라" 정도의 발언은 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박근혜는 두루뭉수리한 선문답을 싫어합니다. 이명박 입장에서는 당정분리 원칙이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표현을 쓸 수 없고 그 정도면 속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항변할 지 모르지만 그것은 박근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박근혜 입장에서는 자신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면 이야기하지 않아야 하고, 충분히 거론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보다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니, 발언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겠지요.
아마도 지금 박근혜는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당대표를 맡건 책임총리를 맡건 이명박 정부가 국정수행을 민심에 입각해서 한다는 기본전제가 성립되어야 하는데 지난번 회동을 통해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한나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보다 더욱 민심을 분노케하고, 더욱 심한 코드인사와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한다면 과연 박근혜에게 차기 대권의 가능성이 한나라당 내에서 열릴까요?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또한번 '묻지마 정권교체' 쪽으로 가게 될 것이고, 박근혜가 한나라당에 계속 남아있는 한 그에 대한 책임을 일정부분 지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한나라당을 접수하여 자신의 능력으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살리면 가장 확실한 차기 주자가 될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조중동과 일부 한나라 지지층은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야당인 한나라당을 벼랑끝에서 구한 것과 집권여당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구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당시의 한나라당은 국정운영 책임으로부터는 빗겨나 있었지만 현재의 한나라당은 국정운영의 주체일 뿐아니라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이명박이 존재합니다. 박근혜가 아무리 수습하려고 해도 이명박이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로 계속 민심을 분노케 한다면 박근혜로서도 방법이 없습니다.
노무현 한 사람 때문에 열린우리당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10명도 넘게 바뀌었습니다. 정동영-김근태-신기남-이부영-문희상-천정배-정세균-이미경 등 야권의 내노라 하는 정치인들이 모두 바보여서 그 지경에 이르렀겠습니까? 대통령이 막가파 행보를 할 때에는 현실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지난 5년의 노무현 정권이 생생한 사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박근혜 보고 들어가서 동반자살의 길을 기꺼이 맞이하라구요? 더욱이 예우해줄 생각도 없는데?
사실 조중동은 박근혜가 바보처럼 이명박을 도와줄 것을 계속 주문해왔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살린 보수세력으로부터 지난 경선에서 처절하게 버림받은 기억을 박근혜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 그와같은 바보 처신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선언한 것이 이번 이명박-박근혜 회동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조중동 입장에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국민 10명 중 8명이 '소고기 협상'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고, 한나라당 지지자 10명 중 6명이 '친박복당'에 대해 긍정적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산수 문제입니다. 이대로 조중동이 '묻지마 빨아주기'를 할 경우 20%(소고기협상 중립 및 긍정)×40%(친박복당 부정)의 합인 8%만이 열성 조중동 독자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박근혜가 당대표를 맡기 이전의 7%와 거의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결국 지금의 난국이 지속되면 이명박-한나라당-조중동의 지지율이 모조리 이 숫자로 수렴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재앙이지요. 그래서 이번 주부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논조가 바뀌었습니다. 끝내 이명박이 회심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이라도 이제는 살겠다는 것이지요. 이제 동아일보 논조가 바뀌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이제 칼자루는 박근혜가 쥐고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할 경우 한나라당 지지율은 곧바로 10%대로 추락하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7% 수준까지 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한나라당 내 친박그룹도 80% 정도가 박근혜와 행보를 같이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근혜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 이정현(비례대표) 당선인도 어쩌면 과감히 뱃지를 떼고 탈당할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내년 4월 재보선에서 호남을 제외한 어느 지역이든 나가면 뱃지 달 확률이 높을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친박연대+친박무소속+한나라당내 친박+기타 = 60~70석의 정당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로 인한 선진당 및 민주당 내 후폭풍까지 감안하면 75~80석 내외로 제1야당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박근혜 입장에서 당장 탈당을 결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결별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자신을 축출하려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으로 하여금 자신의 빈 자리에 대해 충분한 중압감과 부담감을 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가 외국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청와대 및 당 지도부와 각을 세우고 그런 가운데 한나라당이 6.4 재보선에서 참패를 거둔다면 그 이후에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요? 당연히 강재섭과 안상수가 날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빈 자리를 누가 메꿀까요? 홍준표-정두언-공성진-남경필-원희룡-권영세 등이 싸우겠지만 쉽게 의견이 모아지지 않을 것이고, 친박과 반박으로 갈라져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연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대단히 흥미로운 것은 저와 같은 필부도 이러한 시나리오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 왜 청와대는 굳이 박근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비열하게 뒤통수를 쳤을까요? 저는 이것이 청와대 내 386세력의 헤게모니 욕구 때문으로 분석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노무현 정권 5년에 대한 '학습효과'가 톡톡히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총선에서 살아남은 민주당 인사들의 면면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정동영계, 김근태계, 구 동교동계 등이 몰락한 상황에서 친노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광재-서갑원-최철국-조경태-전병헌-강기정-조배숙-우윤근 등은 살아남았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실정에 실정을 거듭하는 상황에서도 비주류의 씨를 말리는 데에 성공한 결과 이들이 대거 살아남은 것입니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친이 386세력은 이 점에 착안하고 있는 것이지요.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청와대(박영준-이태규-곽경수 등)와 한나라당(정태근-강승규-김용태-조해진 등)에 두루 포진해있는 386세력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위협적 존재인 '박근혜계'를 당으로부터 몰아내는데에 지금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박근혜계'만 몰아낸다면 혹 이명박 정부가 실정을 거듭하여 정권이 교체된다고 할지라도 보수정당의 헤게모니를 자신들이 장악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속된 말로 '어중이 떠중이' 다 모아서 150석을 갖는 것보다는 자신들과 코드 맞는 인물들로 100석을 얻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이고, 잘하면 자신들이 중심이 되어 정권 재창출도 가능하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정두언과 공성진도 '아뿔싸'하는 마음이 들었는지 최근들어 청와대 참모들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한 때 박근혜를 씹어먹지 못해 안달 났던 이들이 요즘들어 '박근혜 감싸기' 모드에 돌입했겠습니까? 정두언은 '친박복당에 대해 당이 문호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고, 공성진은 한 발 더 나아가서 '친박복당의 전제조건으로 강재섭 지도부가 퇴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재미 있지요?
결국 이번 청와대의 '뒤통수 때리기'로 그동안 진행되어 온 '박근혜 죽이기'의 진범이 누구인지가 밝혀졌습니다. 그러고보니 어쩌면 이재오와 이방호가 정말 억울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두언과 공성진이야말로 이재오의 핵심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이 '박근혜 감싸기'에 돌입한 상황에서 청와대는 박근혜의 뒤통수를 비열하게 때리고... 이제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제 판단으로는 청와대와 한나라당 내 386세력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포위하여 "차라리 박근혜를 버리고 심대평과 박상천에게 손을 내밀라"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중성이 가장 높은 박근혜가 끝내 부담스러운 만큼 박근혜를 왕따시키면서 이명박+심대평+박상천 '신 3자 연대'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조중동이 이들의 입맛대로 움직여줄까요? 아무리 조중동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은 수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워낙 죽을 쑤다보니 자신들이 노무현 정권을 향해 들이댄 잣대와 포탄을 모조리 거둬들이고 있는데 이제는 386세력의 '박근혜+TK 왕따작전'까지 빨아주기와 물타기를 하라구요? 이거 정말 환장할 노릇입니다. 386세력들의 무능과 타락을 지난 5년 동안 강도높게 비난해왔는데 이제는 386세력만이 국가와 민족의 희망이라고 읊어댈 수 있을까요? 하하하.
그래서 앞으로 청와대와 조중동간 벌어지게 될 권력게임도 대단히 흥미롭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가까운 시일 내에 조중동이 박근혜 편을 드는 상황을 우리가 목격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혹시 압니까? 지리산 등반을 마친 이재오가 '박근혜 살리기'에 총대를 메게 될지... 그래서 정치가 '움직이는 생물'이고 재미있는 지도 모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썩소를 곱씹겠지만...
중요한 것은 박근혜가 민심과 함께 하기만 한다면 무조건 승리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 만큼은 박근혜와 친박세력이 항상 되짚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심은 항상 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