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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17 달날 날씨: 비가 올 듯 구름이 있긴 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해가 나왔다. 조금 끈적거리고 습한 여름날이다.
모두모여 아침열기-뒷산 가기(텃밭가기)-시 쓰기-책읽기-점심-청소-매실효소 담그기-글쓰기-마침회-입학위원회
[보리, 보리수]
매실 자연속학교 다녀온 뒤 이틀 쉬고 바로 단오잔치를 한 주라 달날 학교 아침이 새롭다. 학교에 들어서는데 아래쪽에서 선생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지우와 정우, 강산이가 보이고 같이 오는 분이 있다. 무지개학교 조대희 선생이 우리 학교에서 일주일 연수를 하게 돼서 오는 길에 아이들과 만난 모양이다. 모자를 눌러쓴 강산이 머리가 재미있어서 보니 고무줄로 머리를 묶어서 머리카락 두 뭉치가 위로 솟아있다. 8시 30분에 조대희 선생과 선생들이 모두 모여 인사를 나누고 하루를 시작한다. 일찍 온 송순옥 선생과 최명희 선생은 텃밭도 둘러보고 학교 열 채비를 부지런히 했다. 마당에서 최명희 선생이 지난해 김장김치 묻어둔 장독을 매실 담글 때 쓰려고 파내고 있어 남자 선생들이 모두 나가 함께 파내고 마무리하고 여자 선생들은 파낸 장독을 깨끗이 씻는다. 모두들 부지런히 움직인 탓에 잠깐 리코더 불 시간이 있다. 김상미 선생이랑 오랜만에 리코더를 맞춰보는데 자연속학교때부터 불지 못해서 그런지 손놀림이 뜻대로 안 된다. 자연속학교 때도 들고는 갔는데 리코더 불 여유가 없어 가방에 넣어만 뒀는데 그 시간을 찾아내지 못해 아쉽다. 악기는 줄곧 해야 느는 법인데 기타 연습도 못해서 큰 일이다.
9시 5분에 모두 모여 아침열기를 하는데 아이들 얼굴이 아주 밝고 달날 아침에 보이는 피곤함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 정빈이 얼굴이 조금 부어 보이고 다른 아이들은 몸이 활짝 열려있고 생기가 있어보인다. 주말을 잘 보내고 잘 쉰 탓인가 서로 환한 얼굴로 주말 이야기와 한 주 살아갈 이야기를 나눈다. 30분쯤 지나니 내 앞에 앉아있던 승민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씩 웃으면서 침을 부르르 뱉는다.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움직이고 싶다는 뜻인데 말보다 몸짓이 먼저 나온다. 줄곧 연습해서 고치고 말로 뚜렷하게 말하도록 애를 써야 한다. 선생들도 주말 이야기와 한 주 살아갈 때 생각할 것을 말하는데, 크게 학교 밖 집짓는 공사 때문에 찻길에서 조심하자는 것과 여름 장마 오기 전에 텃밭이나 학교 안팎으로 살필 것들, 밖에서 하는 활동이 많은 달이라 교실에서 하는 공부에 정성을 더 들이자는 것, 건강과 즐거운 학교 생활에 필요한 이야기들이다. 매실 자연속학교 때 많이 먹은 죽순을 떠올리며 모두 함께 외우는 시로 ‘죽순’를 함께 읽고 모두 모여 하는 아침열기를 마친다.
“푸른샘 뒷산 가자.”
자연속학교 마치고 다시 학교에서 살아가야 하니 날마다 익숙하게 하는 활동으로 푸른샘 공부를 시작한다. 조대희 선생이 오늘은 푸른샘과 사는 날이라 함께 뒷산에 오르는데 조대희 선생이 아이들 수가 오붓해서 좋다 한다. 무지개 살림반 어린이 스물셋과 두 선생이 사는 교실에서 갑자기 아주 작은 모둠에서 사는 맛이 아주 달라서 그런가보다. 올라가다 승민이가 오줌을 누고 싶은지 얼른 길옆으로 가길래 바로 따라가서 화장실에서 누는 거라 말하니 바지를 올리고 ‘싫어요 싫어요’를 말한다. 그러더니 조금 걸어가다 또 틈을 보고 길옆에서 오줌을 순식간에 눈다. 달려가 화장실에서 누는 거라 말하지만 이미 늦은 셈이다. 바깥활동 할 때 미리 화장실 가기를 줄곧 연습해야 한다.
역시 뒷산 오르는 길은 좋다. 아이들은 걸어가다 앵두도 따먹고 길에서 만나는 개미와 지천에 널린 송충이도 보느라 한참을 길에 모여 앉아 벌레들과 식물들을 들여다본다. 나무와 대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는데 거미가 보일 듯 말 듯한 가는 거미줄을 타고 올라가는데 아이들과 함게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역시 거미가 거미줄 타는 솜씨는 예술이다. 단풍나무 헬리콥터도 돌려보고 마주나기로 난 나뭇잎을 따서 가위바위보를 하는 아이들을 불러 개망초 잎 나는 거를 물어보니 망설이지 않고 어긋나기를 말한다. 오를 때마다 살피고 말하니 이제 아이들도 잘 구별하고 잘 찾아낸다.
“애들아 우리가 봐둔 산딸기가 익었을까?”
지리산 고소산성 오르다 따먹은 산딸기가 생각나서 우리가 자연속학교 가기 전에 봐둔 우면산 산딸기를 찾으러 올라가는데 남태령 망루를 오르자마자 아이들이 뛰어간다.
“선생님 아직 안 익었어요.”
“지리산은 남쪽이라 빨갛게 익어서 우리가 따먹었는데 여기는 아직도 멀었네. 그래도 다음 주 쯤이면 따먹을 수 있겠다.”
뒷산 놀이터에 가니 푸른샘 아이들과 만들어 놓은 텃밭에 고구마와 감자가 잘 자라고 열무가 아주 작게 올라와 있다. 감자는 하지 쯤에 캐야 하는데 본디 밭이 아닌 땅이라 그런지 감자가 얼마 안 나올 듯 싶다. 올라오는 콩 지지대 세워주고 잠깐 쉬는데 그틈에 강산이와 정우는 비석치기를 하고 있다. 봄부터 여름까지 줄곧 비석치기가 유행인데 비가 자주 오는 여름에는 안에서 하는 놀이를 새로 찾도록 아이들과 궁리를 해야겠다. 학교 텃밭으로 내려가는데 강산이와 정우, 지빈이는 조대희 선생과 산 속 탐험 길로 가고, 민주랑 승민이는 나랑 지름길로 간다. 아래쪽에서 무전하듯이
“어이 텀험대 위험하지 않은가. 길을 잘 가고 있나?” 물으니
“여기는 괜찮다.” 그런다.
다시 “우리가 먼저 텃밭에 가겠다.” 하니
“우리가 더 먼저 가겠다.” 한다.
텃밭에 가니 보리와 밀이 누렇게 익어가고 감자가 캘 때가 돼서 그런지 누운 녀석들이 많다. 옥수수도 밭둑에서 튼튼하게 자라고 마늘도 괜찮다. 아이들과 사진도 찍고 마늘쫑도 뽑아 먹고 지난번에 옮겨 심은 호박을 찾아보니 한 놈은 죽고 한 놈은 자리를 잘 잡았다. 늦게 심은 고구마순 몇 개도 자리를 잘 잡은 놈과 마른 녀석들로 나뉜다. 같은 땅에 심었건만 이렇게 생명은 자기에게 맞은 곳에서 살아남는다. 우리 아이들도 싹을 잘 틔우고 튼튼하게 자라게 도울 곳에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싶다. 텃밭 옆 산속 놀이터에서 큰 나무에 매달아 놓은 줄 그네를 타고 놀다 보리와 밀 이삭을 몇 개 주워서 학교로 들어간다.
가자마자 못 쓰는 종이 몇 장을 불로 태워 그 위에 보리와 밀 이삭들을 넣었다. 매실 자연속학교에서 아이들과 꿔먹으려다 못해서 꼭 학교에 가서 불에 꿔먹어야지 마음먹은 거라 기분이 좋다. 불 피우는 사이 아이들은 빨갛게 익은 보리수 나무 열매를 따서 줄곧 먹는다. 그러더니 불 있는 곳에 보리수 열매를 익혀먹겠다고 막 넣는다. 자연속학교 돌아온 날부터 빨갛게 익은 보리수나무 열매를 아이들은 줄곧 따먹는다. 몸에도 좋고 맛도 먹을 만해서 따먹어라 했더니 마당에 갈 때마다 보리수열매를 따먹는다. 보리수 열매 맛은 시고 달고 떫다. 천식에도 좋고 주렁주렁 빨갛게 익은 보리수나무 열매가 예쁘기도 하다. 내일은 아이들과 함께 따서 효소도 담고 약술도 담아야겠다. 보리 거둘 때 익어가는 열매라 보리수나무라고 부르는데 오늘 보리도 먹고 보리수나무 열매도 실컷 먹는다. 아주 잘 익은 보리도 구수하고 덜 여문 보들보들한 밀알도 맛나다. 검게 그을린 이삭들을 손으로 비벼 종이위에 떨궈주니 뭐든지 잘 먹는 푸른샘 아이들답게 집어먹는 손이 바쁘다.
“맛있지. 선생님 어렸을 때 이렇게 불에 조금씩 구워 손으로 비벼먹곤 했는데 손하고 입이 까맸어. 보리 추수하고 주운 이삭을 모아 아이들끼리 새참을 만들어 먹었던 거지.”
선생 말에 아이들 말이 재미있다.
“맛있어요.”
“고소해요.”
“선생님 어렸을 때 먹은 것 때문에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거네요.”
“그렇게 되나. 어쨌든 이렇게 보리와 밀 이삭을 주워 불에 꿔먹는 아이들은 많이 없을 걸.”
“선생님 보리수 열매도 익혀먹으니 맛있어요.”
정말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니 내일 한 번 더 꿔먹어야겠다.
다 먹고 교실로 들어와서 글쓰기 공책을 꺼내 보리와 밀 꿔먹은 것을 글감으로 글을 쓴다.
“너무 길게 쓰지 않고 짧게 쓰세요.”
아이들 모두 선생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쓰고 싶은 만큼 알아서 쓴다.
글쓰기를 마친 뒤 잠깐 쉬다 저마다 읽고 싶은 책을 골라 가져오고 선생도 준비한 책을 꺼내 책을 읽어주는데 아이들 눈빛이 살아있다. 그림책 두 편을 읽고 제법 긴 그림책은 조대희 선생에게 부탁을 드렸다. 한참을 읽고 나니 밥 먹을 시간이다.
청소 시간에 일찍 청소를 마치고 나온 강산이랑 마당 자루텃밭과 화분에서 자라는 쌈채소들을 뜯는데 천천히 뜯는 법을 가르쳐주니 야물게 뜯는다. 순돌이 산책시키러 나가는 아이들 따라 달려나가는 강산이 뒤을 이어 지빈이랑 학교 옆 산에 올라가 자루텃밭 쌈채소를 뜯는데 줄곧 말을 건네주며 함께 하니 청소 시간이 즐겁다.
낮 공부로 본디 공부 시간인 몸놀이를 하지 않고 매실을 담그기로 해서 낮은샘은 아래층에서 한 가마, 높은샘은 위층에서 두 가마를 맡았다. 해마다 아이들과 선생들이 악양에서 딴 매실로 늘 매실 효소를 담가 줄곧 먹는다. 올해는 더 많은 양을 담그지만 아이들의 익숙한 손놀림은 아주 빠르다. 이쑤시개로 매실꼭지를 따는데 장난치고 떠들썩하지만 손들은 척척이다. 금세 꼭지를 다 따고 욕실에서 매실을 씻고 물을 뺀다. 매실 꼭지 따다 놀던 한주를 불러 같이 씻자고 하니 좋다고 달려온다. 나중에 최명희 선생과 줄곧 매실을 씻는데 장난꾸러기 한주는 간데없고 정말 진지하게 열심히 씻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뿐이다. 매실 씻는 일이 꽤 재미있고 마음에 드는 일이라 정말 열심히 한다. 선생들 칭찬에 더 열심히 하는 한주가 참 예쁘다. 천하가 아는 우리 장난꾸러기는 정말 좋아하는 일에는 아주 집중을 해서 한다. 1학년 때나 올 3월과 또 다른 한주 모습이 아주 대견하다.
또 일 잘하는 규태는 어느 틈에 다가와
“저도 매실 씻는 거 하고 싶어요.” 그런다.
다른 쪽 욕실로 같이 가서 매실을 씻는데 규태도 참 열심히 한다. 일하는 걸 좋아하고 물고기도 좋아하고 낚시를 정말 좋아하는 우리 규태가 빛날 때가 참 많다. 매실 자연속학교 때도 부모님 보고 싶은 것도 예전과 아주 다르게 잘 참아내고 씩씩하게 잘 살아 많은 선생들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다.
모두 열심히 하니 예상보다 일찍 매실 담그기를 마치고 글쓰기까지 다해서 낮은샘은 마당에서 또 비석치기 하고 보리수열매 따먹고 있다. 보리수나무 위에 올라가 따 먹던 우리 종민이 딱 걸렸다. 아침에 나무 위에 올라갔다 그러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나무 위가 아니라 담벼락 위쪽에 올라가서 보리수열매를 따고 있다. 일부러 큰소리로 아침에 말했는데 그러느냐고 뭐라 하는데 우리 종민이 말이 틀린 데가 없다.
“나무 위로 올라가지 않았어요.” 그런다. 그래도 다시 한마디 큰 소리로 “아니지. 위로 올라가는 게 위험해서 나무 위로 아주 올라가지 말라고 했지. 담벼락도 나무 위야.”
그렇게 말했지만 역시 선생이 말을 뚜렷하게 전해야 하는데 알아들었으려니 하고 만 탓이다. 그래도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걸 다시 말해 놓아야 한다. 내일 보리수열매 많이 따서 안겨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싶다.
마침회를 하는데 푸른샘 아이들 모두 보리수열매를 따서 이제는 잘 씻어서 가지고 들어오더니 모두 서로 나눠준다. 하루 공부 되돌아보는 발표를 하면서도 보리수열매를 줄곧 먹는 정우가 아주 신이 났다. 역시 푸른샘 우주인들답게 선생이 말하려고 할 때마다 더 말할 게 있다며 자기들이 줄곧 더 발표를 한다. 꼭 해야 할 말이라고 하는데 역시 꼭 해야 할 말이다. 역시 형들과 언니들에게 부탁하는 말이 많다. 누구누구가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는 말들인데 아주 잘 들어야 하는 말들이다. 선생들 마침회와 윗 학년 누구누구에게 꼭 그러지 말라고 전해줘야 하는 말이고 그 아이들에게도 귀한 도움말이기에 그렇다. 겨우 겨우 말할 틈을 잡아 여름학기 때부터 할 리코더 준비와 아침에 조금 일찍 오면 좋겠다는 말, 헤엄옷 챙기라는 말을 하는데 갑자기 정우와 강산이 개다리춤을 추는 게 아닌가. 보리수 열매 입에 물고 둘 다 개다리춤을 줄곧 추며 선생 말을 막고 노는 게 재미있어서 그런지 아주 제대로 개다리춤을 춘다. 다리를 떨며 머리를 빗어 올리는 손짓까지 3학년 성범이가 1학년 때 추던 모습과 참 닮았다. 봄 자연속학교 때 한주와 성범이가 서로 춤 싸움하는 것처럼 모닥불 앞에서 개다리춤을 추더니 오늘 두 아이가 그 전통을 잇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긴지 같이 마침회 하던 승민어머니랑 조대희 선생, 쳐다보는 아이들 얼굴에 큰 웃음이 가득하다.
첫댓글 푸른샘 우주인이 자기말을 하느라 선생님은 겨우 말할 틈을 찾으셨네요. 선생님 말씀하시는데 한쪽에서 보리수 물고 개다리 춤이라~ 웃어야 할지^^;; 춤 추면서 귀기울여 들었을까요? 보리랑 밀이삭 꿔 먹는건 저도 못해본 경험인데 아이들 말대로 선생님께서 경험해보신 일이라 우리 아이들도 함께 누리네요. 어제는 일이 있어서 자세히 못 물어봤는데 오늘 이삭 꿔 먹을때 어떠했냐고 물아봐야겠어요. 아침 등교길에 정우가 "누나 정말 죽순이 그렇게 빨리 자랄까? 시처럼." 이라고 묻더군요. 요즘 죽순 시를 외우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