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은 삼한사온이 아니라 삼일은 맑고, 사일은 비가 내리는 평년의 날씨와 다른, 흐린 날씨가 반복되고 있다. 엄마도 지인 어르신도 어쩐지 기운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햇살은 사람이나 나무에게도 중요한데 무척 걱정이다. 우리도 비를 핑계로 농장일에 진척이 없었다. 블루베리 화분에 흙을 올려주는 작업을 하면서 무리가 되었는지 발목과 무릎이 많이 아파서 며칠 농장에 가지 못했다.
집과 가까운 정형외과에서 X-ray 검사를 보고,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MRI를 찍고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내 몸보다 가족들과 농장이 먼저 걱정되어 막막했다. 수술을 해도 큰 병원에서 해야 될 것 같아 무릎 수술에 권위 있는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았는데 수술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했다.
무릎 관절은 이상이 없고, 너무 무리를 해서 힘줄이 늘어났기 때문에 약을 먹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발목은 만성적인 문제라 시급한 수술은 안 해도 되고 바쁘면 추수 끝나고 하면 될 것 같다고 한다. 무리하지 말라는 당부를 듣기는 했지만 급하게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농장일은 왕초보에서 이젠 '약간 초보'라고 생각해 본다. 어떤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던 초창기가 있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까를 생각하고 어떻게든 우리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한다.
중앙 통로 쪽 배수로를 완성했다. 길이 약간 좁아서 트럭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넓이다. 가운뎃 부분이 조금만 더 넓으면 좋겠는데 아쉽다. 옆의 밭은 아로니아가 심어져 있다. 빈 트럭이 지나가기는 가능한데, 짐을 싣고 이동하면 땅이 패일 것 같다. 배수로 위에 덮개를 씌워서 트럭이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비닐하우스 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내는 관을 재단해서 다시 연결했다. 사다리를 타고 지붕까지 올라가서 위쪽에 묶는 작업이라 위험해서 사다리를 붙잡아야 했다. 완성해 놓고 보니 제법이다. 엄지 척!!!
블루베리 하우스 안에 있는 물탱크의 연결부위가 헐거워져서 물이 센다. 수압조절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공구들을 챙겨 사다리 위에 걸터앉아 다시 새 제품으로 교체했다. 이 정도는 전문가를 요청하지 않아도 우리끼리 해결이 가능하다.
포클레인이 있으면 농장 주변을 손보는데 많이 유용할 것 같다. 내친김에 안쪽 하우스의 배수로도 손보기로 했다. 흙이 흘러내려서 수평이 맞지 않아 물이 고이는 곳이 생겼다. 물길의 끝쪽에서 물을 받아서 흘러가도록 했다. 폐타이어 2개를 올리고, 주위에 동그랗게 돌을 쌓아서 우물처럼 만들었다. 강 쪽으로 땅속에 관을 묻었다. 포클레인으로 파 놓은 기다란 배수로에는 동그란 관을 그라인더로 잘라서 반달모양의 관을 묻을 거라고 한다.
몇 시간씩 일을 하면서도 힘들지 않다고, 쉬지 않고 일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집에서는 꼼짝도 안 하는데 농장에 오면 쉴 줄을 모른다. 유튜브를 검색해서 농장에서 할 일들을 어떻게 하는지 배운다. 궁금한 모든 것이 유튜브에 있다. 하긴, 모든 길은 유튜브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인간은 적응해 가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이 정도면 완전 초보는 아닌 것 같다. 남자들은 척척 해내는 일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라인더, 전기톱, 절단기, 포클레인, 예초기 등 확실히 기계를 다루는 것은 체력적으로나 성향상 남편의 몫이다. 어찌 되었건 무리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현명한 농부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