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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선풍기로 인한 질식·저체온증 사망은 의학적 근거 없어, 심장병 등 지병 있는 사람이 우연히 선풍기 켜진 방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만 되면 밤새 선풍기<사진>(용산전자상가에 전시된 선풍기들)를 틀어 놓고 자다가 사망했다는 사건이 종종 뉴스를 타곤 합니다. 이런 뉴스와 함께 ‘선풍기를 켜놓고 자면 사망할 수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켜놓고 자다 질식해 숨졌다’ ‘오랫동안 선풍기 바람을 몸에 쐬어 저체온증으로 숨졌다’는 등의 이야기가 정확한 근거 없이 상당히 퍼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의학계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잘못된 이야기라고 설명합니다. 먼저 ‘선풍기를 오래 켜 놓고 자다 저체온증에 걸려 숨졌다’는 이야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이 하루 밤 사이 체온이 떨어져 죽음에 이르려면 최소 5~6도의 체온 감소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선풍기 앞에서 자더라도 더운 여름철에 그 정도로 체온이 떨어지기는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저체온이 문제라면 차가운 에어컨 바람 속에서 자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지만, ‘에어컨으로 인한 사망’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얼굴에 오랫동안 선풍기 바람을 쐬어 진공상태가 돼 호흡할 때 산소공급이 원활치 않아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은 선풍기 바람 정도로 사람이 질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극도의 만취 상태나 기절 상태가 아니라면 산소가 부족할 경우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척여 자는 방향을 바꾸거나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밀폐된 방에 선풍기를 오래 켜두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간다는 설도 있지만 이도 근거가 희박합니다. 선풍기는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일 뿐 공기의 화학적 성질이나 농도를 바꿀 수 있는 장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의학적 근거가 없는 ‘선풍기 사망설’이 우리 사회 일각에서 계속 회자되다 보니, 세계인이 즐겨 찾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는 이를 ‘한국인들이 믿는 잘못된 미신’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풍기가 켜져 있는 상태에서 숨진 사람들의 정확한 사인은 무엇일까요. 법의학자들은 선풍기 사망설을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말합니다. 심장병이나 뇌질환·부정맥 등이 있는 상태에서 야간이나 새벽에 사망한 경우, 우연히 방 안에 선풍기가 켜 져 있으면 그걸 선풍기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한다는 것입니다. 서울법의학연구소 한길로(병리학 전문의) 소장은 “‘선풍기 사망자’를 부검해보면 거의 모두 심근경색증이나 뇌출혈 등 감춰진 질병이 발견된다”며 “이들 질병이 수면 중 악화돼 발생한 돌연사로 보는 것이 맞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한 소장은 “밤 사이 오랜 시간 선풍기 바람을 직접 쏘이면 호흡기가 건조해져 감기에 잘 걸릴 수 있으니 삼가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수면 중 장시간의 ‘선풍기 직풍’(直風)이 직접적 사망 원인은 아니더라도 체내 수분 감소를 일으켜 심혈관질환 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