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달래 깍두기
최 양 귀
어머니가 담아주순 달래 깍두기는 귀한 진주다. 나이테가 더할수록 생각 꼬리를 만들어 삶의 의미를 더하니 말이다. 조개는 몸속에 들어온 작은 이물질이 괴로워 계속 석회질을 분비하여 몸을 보호한다. 고통을 감싸는 시간이 길수록 값비싼 진주가 되어 만인의 사랑을 받는다.
며칠 전 지인의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신랑 신부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에 묻혀 있던 달래 깍두기가 떠올랐다. 무의식의 우물을 퍼 올릴 때마다 나는 당시의 어머니의 마음이 그려진다.
나는 2월 한겨울 몹시 추운 날 결혼식을 했다. 바쁜 직장 일로 신부 수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처음 마주하는 시댁 어르신 인사도 직장 일 하듯이 주변의 자문을 받으며 그럭저럭 편안히 마친 후에신혼집에 도착했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담벼락 응달인 판판한 돌판 위에 작은 갈색 항아리가 놓여 있다. 차가운 바람을 온몸에 받으며 뚜껑을 이고 입을 다문 모습이 애처롭다. 항아리는 친구도 없이 똘똘한 모습으로 혼자 주인을 기다린다. 항아리는 어머니가 담아준 달래 깍두기가 숨 쉬는 집이다. 외기러기 같은 항아리가 뇌리에 깊이 박혀 나를 따라다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머니 마음을 읽어 본다. 혼기가 꽉 차도 주경야독하며 결혼에는 무관심해 보였던 딸이 어느 날 불쑥 데려온 예비 사위가 학생이다. 딸이 가장 역할을 한다니 기가 막힌다. 결혼 하면 엄동설한에도 출근을 강요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따뜻한 집에서 남편 덕으로 유유자적 생활하는 모습을 그렸다. 늘 바쁘게 사는 모습도 못마땅한데 더 힘든 생활을 할 것 같아 몹시 힘들고 서운하였다. 못마땅한 마음이 첫 삽을 떼는 딸의 살림살이 반찬에 맛깔스런 달래깍두기를 준비하셨나! 음식 잘하기로 마을에 칭찬이 자자한데 착잡한 파도가 일렁인다. 사나운 너울 성 파도로 돌변하여 쓴 뿌리로 자리 잡지 않도록 고요한 바다의 기도를 건져 올려야 한다.
따스한 봄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소망의 노래를 부른다. 매사에 부모의 잔소리 한마디 없이 스스로 부지런히 자기정원을 가꿔왔다. 비바람이 부는 날 우산이 없어 머플러를 뒤집어쓰고 집에 도착하여 불평한마디 하지 않았다. 빗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뒷방 구석진 방에서 촛불을 밝히고 숙제 장을 펼치는 본분에 충실한 씨앗을 움틔웠다. 녹록치 않은 현실에 순응하니 마음이 평온하다.
하나의 반찬만 준비한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나 신혼살림의 부끄러움은 없었다. 장독대에 가득한 묵은 지 가을 김장이 아닌 햇것으로 영양이 가장 좋은 달래깍두기가 아닌가. 이 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 흙속에 묻어둔 인삼 같은 가을무와 달래를 총총히 썰어 멸치액젓으로 담았다. 추위에 강한 따뜻한 남풍의 전령사 보리밭에 자라난 달래가 아삭아삭한 무와 어울려 밑반찬으로 제격이다. 김치는 기본반찬의 우두머리이자 밥상의 격을 좌지우지한다. 진수성찬일수록 밥상 중앙에 자리한 김치는 백의민족의 영혼에 자리한 오묘한 맛은 누구도 떨쳐 버릴 수 없다. 어머니의 뜻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붙잡으라는 무언의 의미로 새겼다.
항아리 뚜껑을 여니 김치가 잘 익어 유산균 발효향이 코끝에 감미로워 입안에 침이 고인다. 그분의 깊고 아득한 사랑을 먹는다. 이걸 먹으며 한겨울의 냉이처럼 뿌리 깊게 잘 버텼다. 비록 화이트칼라 은행 동료들이 탑승한 통근차 안을 비집고 승차할 때면 몸에 밴 냄새로 조마조마 했지만 나를 넘어지게 하지는 못했다. 남편과 한동안 달래깍두기로 밥을 잘 먹었다. 달래깍두기는 생각이 산란하고 아쉬운 날에는 오뚝이처럼 나를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되고, 기쁜 날에는 은은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이것은 영원한 삶의 궤적과 함께 할 것이다. 내일도 아름답게 빛날 햇살을 맞으며 출근할 준비를 한다.
어머니는 저 하늘 위에 있다.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나누지 않아 못내 아쉽다. 달래깍두기를 생각하는 마음이 일방적일 수도 있다. 자녀를 키우고 분가하며 작은 선물을 할 때마다 이것의 사연은 마음을 달구며 이마 중앙으로 올라오니 연민의 길이가 참으로 오래간다.
추운 날 외로이 서 있던 작은 항아리 관찰의 시간은 끝났다. 항아리 형상 따라 마음의 도화지에 그리고 진하게 채색하여 아름다운 진주로 키운다. 비취빛 은회색 진주로 목걸이와 반지를 만들어 치장한다. 달래 깍두기의 작은 흔들림이 세월의 맞바람을 맞을수록 더욱 큰 진주가 되어 삶을 풍요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