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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제 22주
육신의 부활과 영생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실 것이다. (롬 8:11)
죄사함에 이어서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_______) 삶을 살 수 있다.
1. 죽음- 분리와 결합 (57문)
죽을 때, 몸과 영혼이 분리된다. 나중에 예수님 재림하시면 몸이 부활하여 몸과 영혼이 결합한다.
1) 영혼과 몸의 분리, 영혼은그리스도와 함께 있음
“이 생명이 끝나는 즉시 나의 영혼은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올려질 것입니다.”
영혼은 육신과 분리된다. 몸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하늘로 그리스도에게로 올려 진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 두 명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비난했다. 그 중 한 강도는 회개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라 간구했다. 예수님은 “ 네가 (_______)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23:43)고 하셨다. 죽는 그날 낙원, 하늘 나라로 갔다.
누가 복음16장에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 나사로는 하늘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쉬었다. 부자는 음부/지옥에서 고통 중에 있었다. 죽음 직후에 우리에게 바로 이 행복이 있다. 이 세상의 고통을 끝내고 주님과 함께 쉰다. 한 단계 더 높은 (_______)를 누린다. 그래서 성도는 죽음을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잔다고 말한다.
빌 1:23,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니” 유익은 얻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가기 때문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고후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고난 받는 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시록은 위로한다.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_______)이 있도다” (계 14:13).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슬픔이 있지만 큰 복이다.
57,58문은 죽음을 “ 이 생명이 끝나면”이라고 말한다. 지금 이 생명이 끝나고 더 나은 생명으로 나간다.
2) 불신자의 죽음 이해
불신자는 죽음을 두려워 한다. “일생 죽음에 매여 (_______)노릇한다.” (히 2:5) .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잊으려 하지만, 죽음과 그 이후의 심판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신자는 죽음은 그리스도 안에 새 세상으로 옮기는 것이므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죽음은 얻는 것으로 기대한다.
2. 결합과 영광스런 몸 (57문)
1) 중간상태
우리 몸이 땅에 묻혀서 몸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를 (_______) 상태라고 한다. 이것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지 않는다. 사람은 몸과 영혼이 결합되어야 온전한 사람이다. 몸과 영혼이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2) 결합과 영광스런 몸
“또한 나의 육신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일으킴을 받아 나의 영혼과 다시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몸은 거룩하다고 말한다. 우리 몸은 성령이 사는 성전이다. 몸으로 죄를 지으면 성전에 대한 죄를 짓는 것이다. 구약 성전에 가득했던 성령님의 영광이 우리 몸에 이미 시작되었다. 성령께서 우리 몸을 성전 삼았기에 포기하지 않으신다. 부활 후에 (___)적인 몸, 그리스도의 (___)스런 몸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빌 3:21)
3. 영생과 하나님의 일하심의 완성 (58문)
“내가 이미 지금 영원한 즐거움을 마음으로 누리기 시작한 것 처럼 이 생명이 끝나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완전한 복락을 얻어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
1) 영생과 생각지 못한 완전한 복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요 17:3). 우리의 몸이 주님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바뀌고 주님의 얼굴을 보면서 교제하고 찬송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말해도 다 알 수 없는 생각지도 못한 (_______) 복을 누린다. 이 땅에서 하는 혼인과 노동의 복도 더 좋은 것으로 완성된다.
2) 혼인의 완성
천국은 결혼도 없는 재미 없는 나라인가? 혼인은 부부 사이에 삼위 일체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를 맛보고 나타내는 것이다 (엡 5:25,27). 구약에서 제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제사를 상징했듯이, 지금은 혼인을 통해 삼위 일체 하나님의 교제를 나타낸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삼위 일체 하나님과의 교제가 더 완전해 진다. 그래서 혼인은 없어진다기 보다는 ‘(_______)’된다.
3)노동: 다스림과 찬송.
“천국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노래만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찬송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사람이 하는 반응이다. 하나님이 영광스런 일을 이루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리스도가 하는 일에 우리도 (_______)한다. 열 두 지파를 다스리는 일을 한다 (마 19:28).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일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됨을 나타낸다.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 되었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완전하게 일을 한다. 그 때,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주님의 힘으로 했을 뿐입니다.” 라 말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높인다. 주님께서 맡겨준 사명을 완전히 다 할 때, 주님의 (_______)이 나타난다. 그래서 그 일하는 것도 찬송이다. 일을 끝낸 후에도 찬송한다.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여 일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좋은 것 영광이 나타난다.
고전 15:28, 그리스도도 아버지께 복종하고,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께 복종하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이 천국의 모든 백성 가운데 나타난다.
4) 누가 참여하는가?
(_______) 천국의 위로를 받기 시작해야 (_______) 위로를 풍성히 누린다.
롬 14:17,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 평화, 기쁨이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화 기쁨으로 맛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이미 누리고 있는가?
우리의 위로, 죽어서의 위로가 여기 살아서의 위로가 된다.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제 22주
육신의 부활과 영생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실 것이다. (롬 8:11)
죄사함에 이어서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___거룩한__) 삶을 살 수 있다.
1. 죽음- 분리와 결합 (57문)
죽을 때, 몸과 영혼이 분리된다. 나중에 예수님 재림하시면 몸이 부활하여 몸과 영혼이 결합한다.
1) 영혼과 몸의 분리, 영혼은그리스도와 함께 있음
“이 생명이 끝나는 즉시 나의 영혼은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올려질 것입니다.”
영혼은 육신과 분리된다. 몸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하늘로 그리스도에게로 올려 진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 두 명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비난했다. 그 중 한 강도는 회개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라 간구했다. 예수님은 “ 네가 (__오늘_____)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23:43)고 하셨다. 죽는 그날 낙원, 하늘 나라로 갔다.
누가 복음16장에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 나사로는 하늘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쉬었다. 부자는 음부/지옥에서 고통 중에 있었다. 죽음 직후에 우리에게 바로 이 행복이 있다. 이 세상의 고통을 끝내고 주님과 함께 쉰다. 한 단계 더 높은 (__친교__)를 누린다. 그래서 성도는 죽음을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잔다고 말한다.
빌 1:23,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니” 유익은 얻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가기 때문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고후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고난 받는 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시록은 위로한다.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_복__)이 있도다” (계 14:13).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슬픔이 있지만 큰 복이다.
57,58문은 죽음을 “ 이 생명이 끝나면”이라고 말한다. 지금 이 생명이 끝나고 더 나은 생명으로 나간다.
2) 불신자의 죽음 이해
불신자는 죽음을 두려워 한다. “일생 죽음에 매여 (_종__)노릇한다.” (히 2:5) .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잊으려 하지만, 죽음과 그 이후의 심판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신자는 죽음은 그리스도 안에 새 세상으로 옮기는 것이므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죽음은 얻는 것으로 기대한다.
2. 결합과 영광스런 몸 (57문)
1) 중간상태
우리 몸이 땅에 묻혀서 몸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를 (__중간_) 상태라고 한다. 이것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지 않는다. 사람은 몸과 영혼이 결합되어야 온전한 사람이다. 몸과 영혼이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2) 결합과 영광스런 몸
“또한 나의 육신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일으킴을 받아 나의 영혼과 다시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몸은 거룩하다고 말한다. 우리 몸은 성령이 사는 성전이다. 몸으로 죄를 지으면 성전에 대한 죄를 짓는 것이다. 구약 성전에 가득했던 성령님의 영광이 우리 몸에 이미 시작되었다. 성령께서 우리 몸을 성전 삼았기에 포기하지 않으신다. 부활 후에 (__성령_)적인 몸, 그리스도의 (_영광__)스런 몸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빌 3:21)
3. 영생과 하나님의 일하심의 완성 (58문)
“내가 이미 지금 영원한 즐거움을 마음으로 누리기 시작한 것 처럼 이 생명이 끝나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완전한 복락을 얻어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
1) 영생과 생각지 못한 완전한 복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요 17:3). 우리의 몸이 주님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바뀌고 주님의 얼굴을 보면서 교제하고 찬송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말해도 다 알 수 없는 생각지도 못한 (__완전한_____) 복을 누린다. 이 땅에서 하는 혼인과 노동의 복도 더 좋은 것으로 완성된다.
2) 혼인의 완성
천국은 결혼도 없는 재미 없는 나라인가? 혼인은 부부 사이에 삼위 일체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를 맛보고 나타내는 것이다 (엡 5:25,27). 구약에서 제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제사를 상징했듯이, 지금은 혼인을 통해 삼위 일체 하나님의 교제를 나타낸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삼위 일체 하나님과의 교제가 더 완전해 진다. 그래서 혼인은 없어진다기 보다는 ‘(__완성___)’된다.
3)노동: 다스림과 찬송.
“천국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노래만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찬송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사람이 하는 반응이다. 하나님이 영광스런 일을 이루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리스도가 하는 일에 우리도 (___참여___)한다. 열 두 지파를 다스리는 일을 한다 (마 19:28).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일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됨을 나타낸다.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 되었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완전하게 일을 한다. 그 때,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주님의 힘으로 했을 뿐입니다.” 라 말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높인다. 주님께서 맡겨준 사명을 완전히 다 할 때, 주님의 (_영광__)이 나타난다. 그래서 일하는 것도 찬송이다. 일을 끝낸 후에도 찬송한다.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여 일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좋은 것 영광이 나타난다.
고전 15:28, 그리스도도 아버지께 복종하고,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께 복종하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이 천국의 모든 백성 가운데 나타난다.
4) 누가 참여하는가?
(___여기서___) 천국의 위로를 받기 시작해야 (___거기서__) 위로를 풍성히 누린다.
롬 14:17,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 평화, 기쁨이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화 기쁨으로 맛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이미 누리고 있는가?
우리의 위로, 죽어서의 위로가 여기 살아서의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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