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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축일을 묵상하면서
머리말
성경은 오랜기간동안의 일어난일을 모은것입니다. 여러 가지 환경이며
살아온 방식이 다른 여러종류의 글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성경을 친근하게 받아들일까 하는 고민이 많았다. 오늘 성탄다음날
주일이고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축일이기도 한다.
오늘복음은 예수님을 성전에 바친의식을 한 후에 돌아가는 길에 양부모에게 닥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아들이 함께 가지않고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되돌아가 성전에서 만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양부모는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경저자는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교회공동체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자 제자들은 스승이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기위해 마르코다락방에 모였다. 그들은 각기 가져온 음식을
나누면서 스승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면서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서로 나눗웠다.
이것이 교회공동체의 시작이다.
초대교회는 예후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대땅 전역으로 그리고 터키 그리이스
로마를 거쳐서 유럽땅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는 사도행전과 바오로사도의 서간에
의해서 잘 들어나있다.
베네딕도16세는 ‘주님의 말씀’을 반포하였다. 그안에 있는 2부 ‘교회안의 말씀’을
중심으로 이끌어나가고자 한다.
성경은 하느님이 교회에 주신 말씀이다. (** 이부분은 나중에 정리해올리려고 한다)
코이노니아
예수님이 승천하신이후에 제자들의활동을 기록한 책중의 하나가 사도행전이다
사도행전은 ‘첫신자 공동체의 생활’이라는 소제목하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여기서 친교라는 말은 그리이스어로 ‘코이노니아’라고 하였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하는 공동체는 지금처럼 건물이라는 인식이 강한 교회라는 개념에서
초대 다락방공동체의 원형에 따른것이라여겨진다.
과거 몇몇 교회에는 연중행사로 각 구역을 찾아다니면서 모임과 더불어서 지역미사를
드리는데 아마도 이런 모습이 매주 일어나게 되는 일이 코이노니아를 통해 재현되고 있다.
코이노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에대한 인식일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모임과 함께 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를 인식하는 것은
깊은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이룰수가 있는 것이고 우리가 회합에서 성가와 기도로 시작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러사람의 짧은기도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의 경외로움을느끼기 위해서 다같이일어서서 한절씩 돌아가면서
읽는데 사실 이한번 읽는것으로만 우리전체가 성경본문에 몰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중간에 어떤 한사람이 나서서 전체를 읽어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읽고 이를 통해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을수가
있어야 할것입니다. 아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인간이 말하듯이 하는 그런 음성으로만
들려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오감을 통해서 침묵시간을 3분이상 유지할때에
가능한데요 이를위해서는 우리는 평소에 이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마도 1분간 잡념없이 침묵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닐것입니다
처음에는 10~30초정도 하다가 이것이가능할때에 10~30정도를 늘여가면 될 것이다
아마도 3~5분정도이면 느낄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위해서 미리 정해진 한분이 성서를 연구해서 해당 주일의 복음말씀에
대한 주제발표를 해야할것입니다. 이 주제발표는 해당 성서귀절이 작성된시기와 배경들을
설명하면서 그당시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해설을 해야
할것입니다. 이런 부가설명은 모인 여러사람들이 말씀이 내안에서 어떻게작용하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방향으로 묵상이야기를 해야하는지의 방향제시를 해주고 있다.
주제는 이 자리에서 들을수가 있지만 우리는 이미 각가정에서 그주일 복음말씀으로 묵상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주제를 들었을때에 그 느낌이 올것입니다. 이것은 지식적인 성서묵상이
아니라 그 말씀이 나에 와서 내마음을 움직이는 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전에서
얘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은 어머니는 예수님이 한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간직했다고 성서는 적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봐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3년마다 복음을 되풀이해서 말하고 듣고하지만 나에게 들려오는 것이 매번 달라지는
것은 그말씀이 현재 그생활중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여러사람들이 이 자리를 통해서 고백한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면 다음 고백할때에나
후배들이 이를보게되면 큰도움이 될것이라 여겨진다. 아마도 이내용은 회의록이 사라진다고
해도 묵상글은 모아서 따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코이노니아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신앙중에서 경험한 것들이 각기 다를것이고
그들이 배우는정도도 차이가날것입니다. 그래서 혼자서가 아니라 2명이상 조를 편성해서
함께 다니면서 활동도 하고 서로 대화를 해야할것입니다. 이는 성서형제회의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는 이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할것입니다. 그래서 그주일의 활동보고도 받고
모인 전체를 위한 활동배당도 해야 할것입니다. 이를 돕기 위해서는 교본의 내용을
숙지해야 할것이고 이를위해서 교본의 일부를 조금씩 매주 쉬지않고 읽어가야 할것입니다
회합중에 생긴 여러 가지의문점이나 개선할점이 있다면 매달 작성하는 월례보고서를
통해서 지구모임이나 전국모임에서 이를 토의해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코이노니아팀이 있는데 신설된팀도 있고 오랫동안 경험이 있는 팀도 있을 것
입니다. 성서형제회의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구모임이나 전국모임에서 이를 늘 관찰
하고 바로잡아야 할것입니다. 이를위하는 방법중에는 코이노니아팀방문이 한가지 방법일수가
있을것입니다. 전국모임이나 지구모임의 이름으로 경험이 많은 자를 특정 코이노니아회합에
참석하게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코이노니아말씀봉사자로 선임되는 자를
위해서 훈련이 필요할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코이노니아봉사자는 지구모임이나 전국모임에
반드시참여해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코이노니아회합을 하는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유지하고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성서전반에 걸쳐서 나타난 것과 같이 말씀은 늘 공동체와 함께하였기에 성서를 교회의
말씀이고 공동체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에서 소공동체시각에서 볼 때 가장 작은
단위가 아마도 구.반모임이 될것입니다. 구반모임은 전신자가 참여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일부분만 참석하게 됩니다. 이런일은 본당조직과 예비자교리과정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교구에서 시작하는 여정이라는 예비자교리과정은 이를 잘 나타내주고 있음입니다.
물론 이를 하는데 여러 가지 장애요소가 분명있습니다. 2년간에걸쳐 확산세인 코로나사태는 우리를 점점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마도 코이노니아회합을 4명수준으로
하게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면 전혀 못할 것도 없을것입니다.
요번 성탄절은 3일연거퍼 성당미사에 참석했었습니다. 성탄성야 성탄 그리고 주일미사인것입니다.
그리고 성당에서 걸어서 20~30분걸려서 집에 오게되는데요 그안에는 여러곳의 개신교회가 있습니다.
코로나이전때에는 개신교회주변에는 항시 복잡했었습니다. 24일저녁이나 25일에도 말입니다.
그런데 요번에는 과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까 할정도로 아주 조용하다는 것입니다.
저의 성당에서 그랬고 개신교회앞에서도 그랬듯이 예전에 있었던 크리스마스트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의 본당에는 24일성야미사를 2대로 나누워서 드렸습니다
그래서 성야미사이후에 나눔이 불가능했었습니다. 25일교중미사때에 본당신부님은
이런 모습으로 마음이 편치않으셨는지 아이들에게는 저녁 청년미사에 오게해서 선물을
나눠주고 일반신도들은 교중미사때에 떡 음료수 오뎅국에다가 막걸리한병을 봉지에 넣어서 나오는 사람들의
손에 쥐어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막걸리를드렸고 제가 가끔 다니는
빵집에는 어묵탕과 음료수를 드렸지요 그들과 마음으로 성탄을 함께축하드렸지요
우리는 신앙과 관련해서 대부분 성당안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코로나이전에는 성탄성야에 동네개신교회에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크리스마케롤를 부르는 일로
즐겁기만 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수가 있을것입니다.
성서형제회안에는 분명히 아나윔정신이 들어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거리두기에만 충실하면
우리주변의 가난한이는 더욱 더 힘들게 됩니다. 동네에 있는 영세한 식당이나 소상공인의
방문이뜸해지고 있습니다. 이럴때일수록 전체 매출만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대형몰이나 아니면
대형인터넷시장을 통해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요즈음 택배도 비대면으로 배달하기에
안전하다고 느껴지는지 주로그곳에서 구입한다고 합니다.그들은진열도 하지않고 대량으로유통하기
때문에 간혹 좋은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가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아나윔정신으로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는 이를 배제헤야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마음으로
집근처에 있는 돈까스집과 중국집을 활용하였던 것입니다.우리동네 우리골목의 경제를
살려야만 우리마을이 따뜻한 마을이 되고 이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위하는마음이 생깁니다.
저는 앞으로 개신교회에 대한 생각도 그렇게 할것이라 여겨집니다. 저는 안산에 살때에
동네 개신교회와 유대관계를 맺었습니다 시간이 날때에 그들 교회예배에 참석하기도 하고
그들이 준비한 식사도 같이 나누기도 하고 가정방문은 물론 5일장터를 찾아다니면서 거리선교도
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선교하고 그 소감은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돌아가면서 나눔을 가졌습니다.
불행히도 그교회는 동네를 떠나갔습니다. 대형교회에서 교회버스를 운영하면서 여러곳의 신도들을
마구 끌어가기 때문입니다. 대형교회에는 주일날 여러번의 예배시간을 가집니다.
수백개의 작은교회가 어려움에 속해있지만 몇몇 대형교회가 신자들을 쓸어담습니다
그들은 시설이 잘되어있습니다. 그곳에 가는사람들이나 봉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과연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대형교회는 어처구니없이 각 지역교회를 나누워서 운영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대형교회에서
작은교회를 여러측면에서 돕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형교회는 길거리선교사를 여러곳에
보내면서 신자들을 모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욕심이 과하게 되면 과천의신천지
처럼될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권력자들과 함께하시기보다는 측은하게여기시는
군중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우리는 코로나시대로 점점 어려워지는 이웃을 돌봐야 할것입니다
이런일은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될것이고 주님이 하시는 일이 될것이라 여깁니다 아멘
첫댓글 + 찬미 아기 예수님...
토마 형제님...
좋은 글, 고맙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