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가른 '스포츠 상권'
잠실 야구장 입점 38년 상인
"생전 처음 겪는 일, 죽을 맛"
골프장 주변 음식점은 호황
지난 8일 오후 6시 40분 서울 잠실야구장 주변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서울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 라이벌 구단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잠실 더비'가 막 시작됐지만, 지하철역은 물론 야구장 주변에서 노점상이나 행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야구장 입점 점포 40여개 중 4개만 문을 열었지만,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잠실야구장에서 38년 동안 장사를 해왔다는 K 식당 김모 사장은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며 "작년 11월 이후 지금까지 번 돈이 고작 400만원"이라고 푸념했다. LG트윈스 유니폼 매장 직원인 이모씨는 "어린이날에 시즌 개막한 뒤로 손님이 없어 지나다니는 고양이만 본 것 같다"며 "가게 매출이 작년보다 95% 줄었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로 프로야구가 무관중 경기로 열리면서 전국의 야구장 주변 상권이 매출 부진에 신음하고 있다. 잠실야구장과 가까운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새내역 주변을 포함해 부산.대전.광주 등 예년 같으면 야구팬들로 호황을 누리던 상권이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등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책에도 야구장 상권은 유동인구가 급감한 탓에 매출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야구장 주변과 달리 전국의 골프장 주변 상권은 '코로나 특수'를 누리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도 골프를 즐기는 동호인이 늘면서 전국 골프장은 주중.주말을 가리지 않고 예약이 몰리고, 주변 음식점 매출도 크게 늘었다.
◆"외완 위기 때도 이렇지 않았다"
이날 오후 10시쯤 잠실야구장 인근 잠실새내역 먹자골목과 새마을시장 일대 호프집, 포장마차에서는 손님을 찾기가 어려웠다. 150석 규모 텅 빈 홀을 지키던 C분식점 사장은 "IMF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며 "최저임금 오르고,코로나로 힘든데 야구 무관중 경기로 정말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B닭강정 김모 사장은 "작년까지 야구팬들 매상 덕분에 배달할 필요가 없었는데, 올해는 배달앱에 가입했는데도 매출이 작년의 20% 수준"이라고 했다.
비수도권 야구장 주변 상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인근에서 오리고기 전문점을 운영하는 오세규(40)씨는 "야구팬 손님이 끊기면서 직원을 6명에서 2명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그는 "야구하는 날에는 공무원들이 불법주차 단속을 포기할 정도로 붐비던 상권이었는데, 이제는 손님이 너무 없어 상인회 모임도 안 열린다"고 햇다. 부산 사직구장 인근 W공인중개사 사무소는 "야구장에 사람이 안 오면서 사직동 일대 상가 임대료가 10~20%정도 내려갔다"고 했다. 광주 기아챔피연스필드 인근 S치킨 김모 사장은 "장사가 너무 안돼 가게를 내놓았는데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그냥 버티는 중"이라고 했다.
전국 소상공인 사업장 66만여 곳에 회계.경영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신용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6월 넷째주 잠실야구장 주변 음식점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6% 줄었다. 직선거리로 약 2.5km 쯤 떨어진 방이동 먹자골목(-18%)이나 서울 전체 평균(-14%)과 비교하면 8~12% 포인트 낮은 수치다. 같은 기간 대전 야구장 구변 음식점 매출은 1년 전보다 32% 줄어 대전 평균(-13%)보다 낮았다.
◆골프장 주변은 '코로나 특수'
골프장 주변 음식점들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야외에서 즐기는 골프는 상대적으로 코로나 감염 위험이 작다는 인식 때문에 평일.주말을 가리지 않고 골프 동호인들이 몰리고 있다. 해외 골프여행이 불가능해진 것도 이유다.'뉴스프링빌' 'BA비스타' 등 골프장 4곳이 밀집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의 음식점 매출은 5월 둘째주부터 8주 연속 작년 매출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근 N해장국 종업원은 "주말에는 새벽5시쯤부터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대부분 골프장이 몰리는 이용객들로 '예약 전쟁'을 치러야 하고, 이런 호황을 틈타 그린피. 캐디피 등 요금을 올린 곳도 많다.
미국 상황도 비슷하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코로나 셧다운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골프장이 '오아시스'가 되고 있다"며 미국내 골프 비즈니스의 호황을 전했다. 골프장 173곳을 운영하는 클럽코프의 데이비드 필스버리 대표는 "전년보다 25~30%정도 이용객이 늘었다"고 했다.
출처 : 조선경제 2020년 7월 15일 수요일
진중언 기자, 이영근 인턴기자(연세대 사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