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협정의 ISD(투자자 국가소송)가 건설·부동산 규제개혁의 기폭제 역할을 할 전망이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규제는 물론 사업자 선정 때 건설사의 발목을 잡아 온 각종 불평등 계약조항도 ISD 제소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17일 정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국회 의결을 준비 중인 한미FTA 협정문의 ISD(투자자 국가소송) 조항 발효에 대비해 제소 위험이 높은 규제의 선별작업을 진행 중이다.
작년 한미FTA 협정문 체결 때 건설부문 ISD 대상으로 국가와 외국인 투자자 간 공사·용역 등 각종 계약이 포함됐다.
부동산 정책은 ISD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합의문의 ‘부동산가격 안정화정책’이라는 모호한 문구 탓에 실제 소송 때 정부 승소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민간연구소 한 관계자는 “OECD 선진국에서 부동산규제는 반시장적 정책으로 인식되는 게 통례”라며 “작년 ISD가 화두가 됐을 때 정부가 협정문 공개로 피해갔지만 소송을 통한 분쟁해결이 체질화된 영미계 투자자와 실제 송사가 발생하면 패소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OECD국가 중 국내에만 시행되는 토지거래허가제는 헌법재판소 위헌심리에서마저 5대 4의 비율로 겨우 합헌 판정을 받는 등 재판관의 시각에 따라 뒤바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정부도 이를 인식, 새 정부 공약인 전략적 규제개혁 때 ISD를 최대한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법무부 산하에 국가·행정소송을 전담할 법무공단을 신설, ISD 전문변호사 영입에 나서는 한편 ISD 리스크가 큰 규제 선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새 정부의 FTA 다각화 공약 아래 향후 불필요한 재정손실을 막으려면 ISD는 반드시 준비해야 할 요소”라며 “법무부와 각 부처별 법무지원실 연계 아래 관련 작업이 진행 중이며 부처별 규제개혁 때 폭넓게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주택부문의 대응책 마련도 국토해양부와 국토연구원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토연구원은 올해 초 ‘ISD에 대비한 토지규제 개선방안’ 용역에 착수했고 토지 이·수용, 조세 및 부담금, 거래제한 지역지구제 등 토지규제의 ISD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어 건설 인허가와 계약 관련 규제를 중점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국토연 관계자는 “미국 판례 등을 사전검토한 결과, 국내 건설정책에 기업 응징적 규제가 많아 재정립이 시급한 상태”라며 “특히 정부가 일종의 재산권으로 인식하고 있어 남용 가능성이 높은 건설 인허가, 계약부문 개혁이 없이는 ISD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국토부도 법무부 주도의 ISD TF팀과 조율하며 현 건설 및 주택규제 전반의 ISD 피소 가능 규제 선별에 발벗고 나선 상태다.
김국진기자 jinny@
<논의되는 분야는>건설인허가·계약분야 개선 청신호
ISD(투자자 국가소송)는 외국계 투자자나 기업이 정부 정책 및 대책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소송을 통해 피해를 보상받는 제도이다.
일례로 인천대교에 투자한 에이멕사가 정부의 일방적 협약내용 변경 등으로 손해를 본 경우 국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해 그에 합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국토연구원은 ISD 리스크가 큰 규제로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주택거래신고지역, 토지거래허가구역 등 투기방지용 지역지구제와 토지수용제도를 첫손에 꼽았다.
FTA 합의문의 간접수용 인정 조항에 따라 투자자 자산가치를 하락시킬 이들 정부 조치에 대한 제소권 행사가 허용되면 소송이 빗발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원은 이에 대비해 간접수용 사항별 피해를 줄일 규제혁신책을 발굴하고 이를 토대로 토지규제를 글로벌 수준으로 투명화한다는 목표다.
국토연 관계자는 “투기 관련 지구지역제를 단일지구로 통합하거나 강제적 요소가 강한 택지?SOC 개발과정의 토지수용제를 합리적 방향으로 조정, 최소화하는 개혁만으로도 ISD 제소위험을 상당폭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이 지목하는 건설부문의 더 시급한 과제는 정부, 지자체의 인허가 과정에서 빈번한 각종 부담금, 준조세이다. 선진국이라면 관련 법령에 따른 공공기관의 당연한 책무인 인허가가 국내에서만 일종의 재산권으로 간주돼 사업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변질,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학교용지부담금이 위헌 판결을 받았듯이 ISD가 개발부담금, 기반시설부담금, 재건축초과이익부담금 등 각종 부담금과 준조세를 일괄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연구원은 내다봤다.
민자, 공공사업 건설계약의 ISD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이 관계자는 “인허가 부문, 민자 등 건설계약 부문에서 상당수 지자체가 협상력 부재 속에 일방적 강요만 하는 사례가 많다”며 “외국계 투자자가 자국의 규준을 들이대고 소송에 나설 경우 현 시스템으로는 패소 우려가 높다”고 경계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부동산안정화 정책의 경우 협정문에 ISD 제외대상으로 포괄적으로 정의했고 협정문 곳곳에 이를 지킬 장치가 충분히 마련됐기에 큰 폭의 개혁은 필요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비주택 부문의 불합리한 정책규제들이 주된 개혁대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