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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월 5일 주일
[(백) 주님 공현 대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날입니다. 주님의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도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며 사랑의 실천으로 주님께 맞갖은 예물을 드립시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모든 민족들이 주님 영광의 빛을 향하여 올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다른 민족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제2독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 예수님을 찾아 경배하고 예물을 바친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0,1-6
예루살렘아, 1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2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3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5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6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3,2.3ㄴ.5-6
형제 여러분,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들었을 줄 압니다.
3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제1독서의 말씀을 읽으면서 먼저 떠오른 이는 솔로몬 임금이었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를 보면 솔로몬의 뛰어난 지혜와 그가 이룬 업적들로 사방에서 그를 칭송하며 선물을 들고 찾아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아무 업적도 없이 그저 태어나시기만 하였는데 동방 박사들의 방문과 경배를 받으십니다. 그분께서 와 주신 것만으로도 온 세상은 축복받았다는 뜻이겠지요.
하느님께서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일하시면서도 당신의 존재와 움직임에 대한 단서(또는 흔적)를 세상 곳곳에 남겨 주십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았다고 하지만 별은 최종 목적지까지 이끌어 주지 않고 길 중간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들은 오던 길로 돌아가지 않고 예루살렘을 찾아와 물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마태 2,2) 그리고 그곳에서 결정적인 답을 찾아 듣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2,6).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미카 예언서 5장 1절의 말씀에서 그 답을 찾아 들려준 것이었지요. 사람의 힘과 지식만으로는 구세주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몸소 열어 보여 주신 ‘계시’의 도움이 필요하였지요.
그들이 제대로 된 목적지를 찾고 방향을 잡아 나아가는데 또다시 별이 나타나 그들을 인도합니다. 마침내 동방 박사들은 별이 멈추어 비추는 곳에서 아기 예수님을 발견하고는 경배하고 예물을 드립니다. 주님의 공현(에피파니아, epifania)은 이렇게 주님께서 당신을 온 세상에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 주심을 뜻합니다. 공현은 주님 성탄의 절정이며 장엄한 선포입니다. 그래서 공현을 ‘제2의 성탄’이라 부르나 봅니다.(김동희 모세 신부)
이제 구세주를 뵌 기쁨을 가슴에 담고 다시금 일상생활로 돌아갈 순간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피정이 들어올 때, 제 하루 마지막 일과는 보일러실에 들러 난방 상황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기나긴 하루를 마치고 수도원으로 올라오면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세상에! 별이란 별들이 총집합해있습니다.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며 인생무상함을 온몸으로 체험합니다. 광대무변한 우주와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크고 위대하심 앞에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아무리 난다 긴다, 잘난체하지만, 티끌이요 먼지인 것을...동방 박사 세 사람도 밤길을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겠지요.
박사들은 탄생하실 구세주의 별을 목격한 후, 즉시 그 멀고도 오랜 여행길을 시작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세 명의 이름은 멜키오르, 가스파르, 발타사르입니다.
당시 동방이라는 지역은 페르시아나 아라비아로 추정됩니다. 그들의 여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과거 박사란 칭호는 가방끈이 긴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넓게 적용되었는데, 아마도 별자리 연구를 통해 미래의 일을 예언하던 천문학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박사들의 시선은 온통 주님의 별을 향했습니다. 낮에는 휴식을, 밤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기약 없는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유다 지방에 이르러서는 구세주의 별빛이 사라지는 난감한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박사들은 예루살렘 성읍으로 들어와서 공개적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본인 말고 또 다른 임금이 유다 땅에 태어났다는 말에 헤로데 임금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겠지요. 겉으로는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라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 경쟁자를 신속히 해치울 계략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박사들은 진리의 빛이자 생명의 빛이신 메시아를 뵙고 경배드리기 위해 오랜 나날의 수고와 갖은 위험을 감수했던 참된 순례자였습니다. 탄생하신 예수님을 경배하고 난 후 박사들이 봉헌한 선물도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진정한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하는 유향과 구세주의 희생을 상징하는 몰약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박사들이 바친 봉헌의 결과로 되돌려받은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토록 뵙고 싶어 했던 아기 예수님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뵈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풀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경배했습니다. 멀리서부터 가져온 선물도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제 성탄의 기쁨을 우리 마음 깊이 간직하고, 또다시 골고타 언덕이란 신앙의 정점을 향해,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란 우리 인생의 최종의미를 향해 먼 길을 떠날 순간입니다. 언제까지나 구유 앞에서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제 구세주를 뵌 기쁨을 가슴에 담고 다시금 일상생활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 공현은 우리에게 또 다른 떠남을 요구합니다.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앙증맞은 작은 두 손을 벌리고 우리의 선물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세주 하느님께 드릴 선물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지닌 것 가운데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황금)을 바칩시다. 매일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외치며 내 의지를 접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유향)합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매일 직면하고 견뎌내야 하는 고통(몰약)을 기쁘게 견뎌냅시다.
현대의 현명한 동방박사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찾던 사람들일까요? 일단 ‘행복’을 찾았던 이들임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결정은 행복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던 때는 언제일까요? 친구들이 생겼을 때일 것입니다. 혼자 가는 길은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가면 좋은 친구들이 생깁니다. 내 주위에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좋은 목적지로 가는 것입니다.
워런 버핏은 인생에서 성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많은 재산이 성공이 아닙니다. 돈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줄 때 그게 성공입니다. 사랑받는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인간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인간관계가 잘 형성되고 있다면 아기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에서 폰 트랩 대령은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장군이고 아이가 일곱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내가 죽어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습니다. 폰 트랩 대령은 아이들에게 제복을 입히고 호루라기로 명령합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원했지만, 아버지는 한 명의 군인 상사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행복이 없습니다.
이때 가정교사로 마리아가 들어옵니다. 마리아는 고아로 자랐습니다. 마리아는 수련 수녀입니다. 워낙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서 수녀원에서 쫓겨나 폰 트랩 대령의 자녀들을 돌보는 일로 파견을 받은 것입니다.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칩니다. 이것은 폰 트랩 대령의 가정에서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로워지면 감당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폰 트랩 대령은 마리아를 쫓아냅니다. 그리고 귀부인 한 명과 재혼하려 합니다. 그러자 가족은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마리아는 수녀원에 다시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한 번 느낀 자유와 행복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노래로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수녀원에 가 마리아를 찾습니다. 마리아는 다시 대령의 집에 돌아옵니다. 대령은 마리아가 없는 집에서는 행복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대령은 말합니다.
“당신이 이 집에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자녀들과의 관계 회복이었습니다. 그래서 귀부인과 헤어지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마리아는 엄격한 군인인 폰 트랩을 자상한 남편이요 아내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장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집과 재산을 포기하고 마리아와 아이들을 데리고 오스트리아를 탈출합니다.
폰 트랩과 아이들은 참 행복을 찾는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저도 대학생 때 주일학교 교사를 하였습니다. 그때 아이들은 아기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면서 많은 시간을 희생해야 했지만, 아이들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만나는 교사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성당의 모든 공동체는 이러한 동방박사들이 가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하게 하지 않는 대상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돈과 교만과 육욕을 봉헌하게 하는 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한국 영화 ‘친구’도 있습니다. 시골 친구들이 어떤 아이들은 조직 폭력배가 되고 어떤 아이는 공부를 잘해 유학도 다녀옵니다. 조금이라도 착해지려는 친구는 착한 친구와 사귀고,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길 원치 않는 친구는 친구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영화입니다.
사람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은 언제나 세속-육신-마귀입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해야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있다고 친구가 되지는 않습니다. ‘감동의 운동회’를 생각해보십시오. 아이들은 키가 작아서 달리기를 못 하는 친구들의 손을 잡고 같이 걸어서 꼴찌를 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황금은 재산이고 유향은 기도이고 몰약은 육체의 절제입니다.
세속-육신-마귀를 일시에 포기하게 할 수 있는 대상을 사랑할 때만 그 동료들과 함께 진정한 친구가 됩니다. 자기를 포기해야 사랑할 수 있는 이를 사랑하는 이들이 동방의 현자들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2019년 8월에 미국에 왔습니다.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려면 ‘쇼셜넘버’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기억에 없는데, 사무실 직원이 도와주어서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운전면허증은 신분증과 같기에 운전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비행기를 탈 때도 필요하기에 면허증을 취득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이민 변호사의 도움으로 영주권을 신청했고, 신문사에 있었기에 별 어려움 없이 영주권을 받았습니다. 영주권이 나왔다고 주교님께 보고드렸고, 주교님께서는 이왕 영주권이 나왔으니, 미국에 더 있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작년 2월 교구 인사이동으로 저는 뉴욕의 가톨릭 평화신문에서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으로 왔습니다. 저는 교우들에게 ‘준비된 본당 신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뉴욕에서 5년 살다가 왔기에 미국 생활에 필요한 쇼셜넘버, 운전면허증, 은행 계좌가 이미 있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브루클린 한인 성당 주일미사를 함께 했습니다. 영주권이 있기에 비자를 얻기 위해서 한국에 다녀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돌아보면 외적인 준비는 어느 정도 갖추었지만, 내적인 준비는 부족했습니다. 사제에게 가장 필요한 건 ‘기도’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성지순례를 간다는 이유로, 신문 홍보 다닌다는 이유로 꼭 해야 할 기도를 소홀히 한 적이 많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기도로 자라는데, 기도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사제에게 필요한 건 ‘말씀’입니다. 매일 미사를 위해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지만 그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 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말씀이 제 안에 머물지 않고, 세상의 것들이 제 안을 채웠습니다. 사제에게 필요한 건 ‘시대의 징표’를 보는 안목입니다.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책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가난한 이, 외로운 이, 고통 중에 있는 이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합니다. 뉴욕에 5년 동안 있으면서 이런 내적인 준비는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린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하느님의 아들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만민에게 하느님의 아들로 드러나셨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한 번 공적으로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받으실 때입니다. 그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왔고,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께서 공적으로 드러난 것은 주님의 성탄, 동방박사의 경배, 세례 때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정의는 창과 칼, 권위와 권력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공정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 성서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그리고 오늘 제2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빛은 정의롭게 비추지 않습니다. 빛은 공정하게 모든 곳을 비추기 마련입니다. 주님의 영광도 정의롭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모든 곳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습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성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 때문에 더 기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셨고,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셨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중풍 병자를 고쳐 주셨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갈릴래아의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신 것은 공정을 위해서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에페소인들에게 보내 편지에서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혈연이나, 능력, 학벌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삶으로 증거하고, 신앙의 빛으로 비추어야 참된 상속자가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당과 교회는 성탄을 맞으면서 트리를 만들고 그 위에 예쁜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도시의 밤에 많은 십자가가 붉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불을 밝히고, 트리의 전구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의 신앙의 불을 밝히는 것, 희망의 빛을 비추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주님을 드러내는 주님께 경배하는 참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성인
성녀 에밀리아나(Emiliana)
활동년도 : +6세기
신분 : 동정녀
지역 :
같은 이름 : 아이밀리아나, 애밀리아나
성녀 에밀리아나(Aemiliana)는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의 세 명의 고모 가운데 한 명이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신심이 출중하였던 세 명의 고모들, 즉 성녀 타르실라(Tarsilla, 12월 24일)와 고르디아나(Gordiana) 그리고 성녀 에밀리아나에 대한 추도사를 서술했다.
이들 세 자매는 고대 교회에 있었던 금욕 가정 혹은 가정 수도원의 전통에 따라 가정에서 엄격한 공동생활을 하였다.
이들은 지방관의 후원으로 클리부스 스카우리(Clivus Scauri)에 있던 아버지의 집에 기거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마치 수도생활을 하듯이 생활하였으며, 영성생활에 있어서 원숙한 단계에 이르렀다.
고르디아나도 이에 함께 동참하였으나 침묵과 은둔 생활을 어려워했기 때문에 후견인과 결혼하는 길을 택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에 의하면 먼저 죽은 언니 성녀 타르실라가 어느 날 밤에 그들의 증조부인 교황 펠릭스 2세(Felix II, 3월 1일)와 함께 성녀 에밀리아나에게 발현하여 그녀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예고해 주었다고 한다.
그 후 성녀는 곧 병이 들어 사망하였다.
성녀의 축일을 1월 5일로 기념하는 것은 임의대로 정해진 것이다.
고대의 순교록들에는 에밀리아나 성녀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하지만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실제로 이 성녀의 기일을 기념하였다. 이것이 곧 사람들로 하여금 성녀를 기억하도록 만들었으며 바로니우스(Baronius Caesariensis)가 로마 순교록 개정판에 1월 5일을 축일로 성녀의 이름을 수록하였다.
성 요한 노이만(John Neumann)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필라델피아(Philadelphia)
활동연도 : 1811-1860년
같은이름 : 요한네스 요안네스 조한네스 조안네스 조반니 존 죤 네포무케노 네포무케누스 네포무케네 뉴먼
보헤미아(Bohemia) 태생인 성 요한 네포묵 노이만(Joannes Nepomucene Neumann, 또는 요한 노이만)은 어려서부터 사제가 되려는 성소의 꿈을 갖고 성장해 신학교에 입학하여 착실히 준비했다.
그런데 당시 보헤미아 지역(현 체코)의 본당 사제가 많아 한동안 서품식이 이뤄지지 않자 유럽인들이 많이 이주하던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1836년에 미국 뉴욕(New York)에서 사제품을 받고 유럽 여러 언어에 능통한 자질을 살려 이주사목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1842년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에 입회하여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투신하였다.
성 요한 노이만은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1848년 시민권을 얻어 귀화하였고, 1852년 미국인으로서는 첫 번째로 주교품을 받고 필라델피아 교구의 제4대 교구장이 되었다.
그는 주교가 된 후 특별히 가톨릭 학교를 교구 체제로 설립하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신자들을 위해 헌신하던 그는 1860년 1월 5일 사목방문을 가던 중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선종하여 필라델피아의 성 베드로 성당에 묻혔다.
그는 1963년 10월 13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77년 6월 19일 로마(Roma)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시성되었다
성녀 제노베바 토레스 모랄레스(Genoveva Torres Morales)
신분 :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연도 : 1870-1956년
성녀 제노베바 토레스 모랄레스는 1870년 1월 3일 에스파냐 중부 카스티야(Castillo)의 알메나라(Almenara)에서 여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는 여덟 살 때 부모와 형제 중 네 명을 하늘로 떠나보내고 하나 남은 오빠 호세(Jose)와 함께 고아와도 같
은 처지가 되어 가사를 돌봐야 했다.
그녀의 오빠는 비록 그녀를 아끼기는 했지만 쉽게 다가가기 힘든 성격인데다 말수도 적은 편이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가족의 정과 친구 관계가 거의 없었던 그녀는 홀로 지내는데 익숙해졌다.
열 살 때 그녀는 영적 독서에 특별한 흥미를 갖게 되었고, 이를 통해 진정한 행복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데 있으며 그것이 우리가 창조된 이유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그녀의 삶의 법칙이 되었다.
열세 살 때 그녀는 점점 번지는 괴저병을 멈추게 하기 위해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이 수술은 그녀의 집에서 이루어졌는데, 마취가 충분하지 않아 실로 참기 힘든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일생 동안 그녀의 다리는 많은 고통과 병을 초래했고, 그녀는 계속 목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1885년부터 1894년까지 9년 동안 애덕의 카르멜회에서 운영하는 애덕의 집에서 수녀님과 다른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그러면서 제노베바의 신심 생활은 더욱 깊어졌고 재봉 기술 또한 완벽해졌다.
또한 이 시기에 그녀는 교구사제이자 후에 예수회원이 되어 폰틸레스(Fontilles)에 나병 요양소를 설립한 카를로스 페리스(Carlos Ferris) 신부로부터 영적 · 사도적 생활의 시작할 수 있는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애덕의 집에 머무는 동안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영적 자유라는 선물을 주셨는데, 이는 그녀가 일생을 통해 실천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는 힘이었다.
그녀는 애덕의 카르멜회에 입회해 수도생활을 하기 원했지만 신체적인 조건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녀는 단호하고 결연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기를 간절히 바랐고 계속해서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1894년 그녀는 애덕의 카르멜회에서 운영하는 애덕의 집을 떠나 두 여성과 함께 고독과 가난을 함께 나누며 살았다.
1911년 카논 바르바로스(Canon Barbarros) 신부는 제노베바에게 새로운 수도회를 시작할 것을 제의하면서 특별히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살아가기 어렵고 그래서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가난한 여성들에게 더 큰 주의를 기울일 것을 권고하였다.
그래서 여러 해 동안 수도회의 설립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러한 여성들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하는 이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카논 바르바로스 신부와 예수회의 마르틴 산체스(Martin Sanchez) 신부의 도움으로 첫 번째 수도 공동체가 발렌시아(Valencia)에서 설립되었다.
곧이어 그녀가 설립한 예수 성심과 거룩한 천사 수녀회(the Congregation of the Sacred Heart of Jesus and the Holy Angels)에 같은 사도직과 영성생활을 하고자 하는 다른 여성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많은 어려움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에스파냐의 여러 지역에 더 많은 공동체들을 설립해 나갔다.
그녀는 외부 활동을 하거나 새로운 공동체를 설립하는데 있어서 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개인적인 내면의 고독과 주님과 함께 홀로 머무는 생활을 소망했지만 하느님의 뜻에 의해 그녀의 소망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53년 그녀가 설립한 예수 성심과 거룩한 천사 수녀회가 교황청의 승인을 받았다.
일생 동안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감사하며 용기를 잃지 않았던 제노베바는 1956년 1월 5일 사라고사
(Zaragoza)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1995년 1월 2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3년 5월 4일 마드리드의 콜론(Colon) 광장에서 100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른 네 명의 복자들과 함께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녀는 제노베파 토레스 모랄레스(Genovefa Torres Morales)로도 불린다
성 시메온 (Simeon)
신분 : 수도승 주행자
활동연도 : 389?-459년
같은이름 : 시므온
실리시아(Cilicia)의 어느 목동의 아들로서 시리아 국경지대에서 태어난 성 시메온은 어릴 때부터 목동생활을 하던 중 13세 때에 환시를 보았는데, 후일 이 환시를 기둥 위에서의 생활에 대한 예언으로 자신이 해석하였다.
그 후 그는 인근의 수도원에서 2년을 지낸 다음에 헬리오도루스의 어느 엄격한 수도원에서 가장 엄격한 고행을 실행해서 수도원에서 쫓겨났다. 그래서 그는 412년 수도원을 나와 안티오키아(Antiochia) 교외의 데이르 세만(Deir Seman, 혹은 Telanissos)으로 가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는데, 3년 뒤에는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그가 산봉우리 위로 올라간 것은 그의 성덕 이야기에 도취한 군중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422년경 그는 군중을 피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10보 높이의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서 지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일생동안 기둥 위에서 살았다. 그를 일컬어 주행자(柱行者)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꼭대기 위의 넓이는 6피트를 넘지 않았고, 그의 마지막 기둥은 20m에 이르렀다.
그는 거의 매일 잠자지 않거나 조금씩 자는 고행을 비롯하여 야생동물 가죽옷을 입고 지냈고, 40여 년 동안 사순절을 하루도 빠짐없이 완전한 단식을 하였다.
그는 살아생전에 이미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으며, 그의 말 한마디는 굉장한 영향력이 있었다.
기둥 위에서 행하는 그의 설교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개종하거나 신심을 되찾았고, 고위 성직자와 황제까지 그의 말을 경청하였다. 그는 최초의 주행자이다.
성 가롤로(성 안드레아의)(Charles of St. Andrew)
신분 : 신부
활동연도 : 1821-1893년
같은이름 : 가롤루스, 까롤로, 까롤루스, 샤를, 샤를르, 찰스, 카롤로, 카롤루스, 칼, 호벤, 호우벤, 후번
세속의 생활에서 요한 안드레아 호우벤(Joannes Andreas Houben)으로 알려진 성 안드레아의 성 카롤루스(Carolus a Sancto Andreas, 또는 가롤로)는 1821년 12월 11일 네덜란드 루레몬트(Ruremond) 교구의 뮌스터겔린(Munstergeleen)에서 태어났다. 11명의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태어난 날 바로 요한 안드레아라는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리고 1835년 4월 26일 첫영성체를 하고, 같은 해 6월 28일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는 시타르트(Sittard)에서 정식 교육을 시작한 다음 브로크시타르트(Broeksittard)에서 계속하였다. 1840년 그는 군복무를 위해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기간 중에 예수 고난회에 대해 처음 듣게 되었다.
군복무와 학업을 모두 마친 그는 예수 고난회에 입회를 요청하였다. 그는 복자 도미니코 바르베리(Dominicus Barberi, 8월 27일)에 의해 받아들여져 1845년 11월 5일 투르네(Tournai) 인근 에르(Ere)의 벨기에 도시에서 수련기에 들어갔다. 그는 같은 해 12월 예수 고난회의 수도복을 입으며 성 안드레아의 카롤루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법정 수련기를 완료한 그는 1850년 12월 10일 첫 서원을 발하고, 투르네에서 라비스(Labis)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직후 그는 예수 고난회가 세 개의 수도원을 설립한 영국으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한동안 브로드웨이(Broadway) 수도원의 수련자들을 위한 부수련장의 소임을 맡았다. 또한 그는 1856년 아일랜드 더블린(Dublin) 변두리에 위치한 아거스 산(Mount Argus)에 새로 설립된 수도원으로 이동될 때까지 성 윌프레드(Wilfred) 본당과 인근 지역에서 주임신부로서 사목활동을 수행하였다.
카롤루스는 남은 생애 대부분을 아거스 산의 은둔소에서 지냈다. 그는 아일랜드 사람들로부터 ‘네덜란드 출신의 아거스 산의 카롤루스 신부’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특별히 신심 깊은 사제였다. 그는 순명의 수련, 가난의 실천, 겸손과 단순함, 더 나아가 주님의 수난에 대한 신심에 있어서 탁월했다. 미숙한 영어 실력으로 인해 공식적인 설교자나 강론의 직무를 맡을 수는 없었지만 매우 성공적으로, 특별히 고해성사를 통해 영적 지도에 헌신하였다. 그의 덕행에 대한 명성은 많은 이들이 그로부터 축복을 받기 위해 수도원으로 모여들게 만들었다. 또한 확실한 기적적 치유에 대한 수많은 증언들이 회자되면서 그는 일생 동안 ‘기적을 행하는 자’로 알려졌다.
그의 명성이 영국 전역뿐 아니라 미국과 호주까지 전해지자 수도회에서는 그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주고자 1866년에 그를 영국의 서튼(Sutton)과 런던(London)으로 이동시켰다. 그는 그곳에서 일상적인 소임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도원 내부와 외부에서 그리고 신자와 비신자 사이에서 곧 그의 존재가 드러났다. 그는 1874년에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와 아거스 산의 수도원에서 1893년 1월 5일 새벽 선종할 때까지 머물렀다.
장엄하게 거행된 그의 장례예식 중에 아일랜드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함으로써 일생 동안 그의 삶을 통해 대중에게 헌신한 결과가 분명히 드러났다. 당시 신문 기사 역시 카롤루스 신부의 유해를 보기 위해 그토록 많은 이들의 종교적 감성과 존경을 불러일으킨 일은 그 이전 누구의 장례식에서도 볼 수 없었다고 그 분위기를 전했다. 수도원장은 그의 가족에게 보낸 서신에서 사람들이 이미 그를 성인으로 선포했다고 적었다. 그의 유해는 아거스 산의 수도원에 모셔졌다.
카롤루스 신부의 시복시성을 위한 절차는 1935년 11월 13일에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면밀한 조사를 거쳐 1988년 10월 1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모든 이들이 아거스 산의 성인으로 부르는 그의 시복식을 집전하였다. 그 후 시성을 위한 기적 심사가 시작되었고, 다방면의 조사 끝에 그 정당성이 인정되어 2007년 6월 3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다른 세 명의 복자와 함께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는 아거스 산의 성 카롤루스(Charles of Mount Argus)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