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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신립장군
1592년 4월 15일 부산 동래읍성 전투를 시작으로 파죽지세로 올라오던 왜군
이 무렵 선조 임금은 크게 당황하여 순변사 이일 장군을 경상도 상주로 내려 보낸다.
상주로 내려보낼 병력이 없으니... 가보고 싸울 수 있으면 싸우고, 말면 말라는 식으로 보내 놓으니
순변사 이일이 모병을 하는데 유생들과 지방 서리,사대부 자식들은 몸이 허약하다거나 공부해야 한다고 다 빠져 나가고
남은 사람들은 모두 힘없는 농민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상주시 병성천과 북천이 만나는곳(현,임란 북천 적적지) 8백여명의 병졸을 만들어 일본군을 대적하는데
4월 중순 어느날 김천에서 농민이 찾아와 왜놈들이 근처에 이르렀다고 보고하자 순변사 이일이 "무슨 헛소리로 부하들의
사기를 꺽느냐"며 농민의 목을 베어 버린다.
그로부터 몇시간후에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이일은 갑옷도 입지 못한체 도망가고 대부분 전사한다.훗날 탄금대 전투에서도 도망.명장이라 대접받던 이일이 이정도 수준이었으니
그뒤 4월 28일 탄금대 전투가 일어나는데 잠시 살펴보면 (이날은 이순신 장군 탄신일 즉 생신날 1545년 4월 28일)같은날이다
장군께서는 아마도 이른 아침에 미역국 드시고 수군들 훈련에 열중 하셨을듯
선조는 조선 최고의 무사인 신립 장군과 그를 도울 김여울 장군과 함께 병력 8천과 추가 병력을 영남의 주요 길목에서
왜놈을 막으라며 신립장군을 도순변사(경상,전라,충청)로 임명한다.
이 정도면 고니시 부대와 한판 붙어도 크게지지 않을것 같은데
신립장군이 나름의 전략을 구상 하는데
1,지금의 문경 진남교 인근 고모산성에서 북상하는 왜적을 맞아 싸우느냐?
2,백두대간 준령이 막고선 험준한 문경새재 조령에서 싸우느냐?
3,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충주시 칠금동 달천 평야에서 말타고 싸우느냐?
4,이도 저도 아니라면 한강에서 물건너 오는 왜적을 수장 시키느냐?
신립의 정예병은 기병들이라 그동안 북방에서 여진족과 말타고 싸우는걸 좋아 했으나,
나머지 병력은 오합지졸이라 생각끝에 배수의 진을 치기로 하고 탄금대 인근 달천에서 싸우고자 한다.
이때 부하장수 김여울이 강력히 반대를 한다.
김여울:"장군 조령을 버리시면 아니되오 그곳에서 적을 막아야 합니다."
신립:"헛소리 하지마라,우리는 말타고 싸우는 기병이다"며 조령의 험준한 지형을 버린다.
4월 28일 결전의 날 달천 평야 논바닥에 물이 흥건할때 신립은 그곳에서 말 타고 왜적과 싸우게 된다.
질퍽한 논바닥에서 말타고 싸워보니 조총에 쓰러지는건 조선 군사들이고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잘못된 선택과 전술로
조선군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한 신립장군은 김여울 장군과 함께 탄금대에서 자결한다
신립의 잘못된 선택 이로인해 조선은 엄청난 댓가를 치루게 된다.
일주일만에 다시 선 백두대간 하늘재 구간
신라인들이 최초로 백두대간을 넘었던 옛길이다.
고개를 넘으면 비포장길이 굽이 굽이 돌아 가는길이며 선인들의 발자취따라 걷다보면 미륵사지 절터가 나온다.
인적없는 새벽에 계곡에 살며시 내려가 세수한다는 미륵불과 온달 장군의 공깃돌바위 그리고 성큼 성큼 걸어 갈듯한 거북 바위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천년의 달빛이 변함없는 월악산 자락이지만 숲속으로 들어오니 밤하늘에는 영롱한 볓빌도 달빛도 없다.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하늘재에서 잠시 오르면 만나게 되는 탄항산
밤새 앞길을 막던 거미줄과 어둠은 소리없이 물러가고 밝음이 찾아오니
바람또한 곁에 찾아와 시원하게 걸음하라 한다
바로 앞은 포함산이고 그뒤로 월악산 동부 능선이 메두막봉과 하설산이 길게 이어진다.
멀리 대간길 백화산과 앞은 조령산이고
월악산은 백두대간 포함산에서 갈라지나 동쪽으로 대미산,문수산,메두막봉,하설산과 같은 높은산들을 만들어 두었으며
백두대간길에서 살짝 벗어났으나 지체높은 집안의 아들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신라 마지막 왕자였던 마의태자가 월악 영봉이 강물에 비치면 돌아 온다는 말을 남기고 금강으로 떠났지만
오래전 월악산 앞마당 제천시 한수면에 충주호가 건립되어 영봉 그림자가 강물에 담겨 있으나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돌아올길이 없다
바위가 서서히 드러나는 시간
오늘도 갈길이 멀어 준비물이 많고
오래된 성벽길 따라
주흘산성이 이어지는 동암문에서
영남인들이 한양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문경 새재가 지척이니
문경 새재는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의 깊고 좁은 길따라 올라오면 만나는 고갯길이다.
신립 장군이 험준한 조령을 버리고 충주 달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달천평야에서 말타고 전투을 하겠다고 하니, 부하장수인 종사관 김여울이 조령산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매복과 기습을 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했지만
신립장군은 종사관 김여울의 말을 무시하고 탄금대로 향한다.
아마도,북방에서 여진족과 말타고 싸우던 기마전투가 이길 가능성이 많고, 새재 인근의 이화령이나 하늘재(계립령),벌재로 적의 후속 부대가 돌아 온다면
자칫 조령에서 고립될 수 있다고 판단을 했던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결국 고갯길을 모두 막을 수 없었으니 달천에서 말타고 싸우는 전법을 구상하고 오합지졸이던 군사들을 결사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전투를 배수진 전법을 구상한다.
조선군 신립과 8천 이상의 군사 활과 창,칼 ,일본군 최전방 고니시와 후속 부대인 가토 조총으로 무장
백전노장 신립장군 기마병으로 돌격하지만 논바닥이 질퍽하고
왜놈들은 조선군을 사방에서 포위하고 조총으로 공격하며 한편으로 충주성 공격한다
신립 장군은 불타는 충주성을 구원하려 이동하는 사이 전열이 무너져 김여울 장군과 함께 탄금대에서 투신
나머지 군사들은 대부분 싸우다 전사한다.
북방에서 여진족과 싸워 패배를 모르던 신립은 단,한번 패하게 되는데 그곳이 탄금대 전투다.
탄금대 충장공 신립장군과 팔천 고혼 위령탑
1592년 4월 28일 도순변사 신립장군이 휘하 장졸 8천명과 함께 이곳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왜적과
싸우다 장열하게 순절한 전적지이다
평산신씨 신깽님과 윗대 조상이신 충장공 신립장군 이야기하며 아침 식사하게 된다.
오늘 갈길은 멀고 조령의 밧줄 구간에 어떻게 지날지
지금은 젓가락 들 힘도 없다며 처벌 처발...
대간길을 지켜 주는 아름드리 소나무
지나온 주흘산과 조령산으로 멋진 소나무들이 많지만, 두 산이 주는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주흘산은 멀리서 보면 영험한 여신이 사실것 같은 산이고 조령은 하얀분을 바르듯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폭같은 화강암이 당찬 산이다.
백두대간길 문경땅에는 오미자로도 유명하지만 멋진 산들이 너무 많다,산길을 걷는 동안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산들이 많으니 과연 우리나라에 산은 몇개나 존재 할까?
작은 나라지만 국토의 70%가량 산이니 100m이상이 넘어야 산으로 분류한다면 대략 4,440개나 된다고 하니
산이 많기는 많다.
요즘은 저마다 트랭글을 하다보니 산들은 주인이 모두 있다고 한다.
나같은 돌팔이야 트랭글을 하지 않지만 모든 산들은 늘 내편이라고 생각
주흘 산성터 길을 지나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걷기 딱 좋은날
가야할 조령과 멀리 백화산 방향
문경새재 지나 산길로 얼마가지 않아 백두대간 최고의 험봉이며 암릉이 기다린다.
이곳에서 보면 그저그런 흙무더기 산으로 보이지만 막상 가보면 십리도 못가서 눈물 콧물짜며 걷는다는 아리랑 고개같은 바위가 연이어 나타난다.
실타래 처럼 이어지는 산들은 모두 백두대간이며 가운데 조령산 뒤로 천년고찰 봉암사를 품은 희양산과 구왕봉 그리고 긴 성(城)같은 장성봉(長城峰)이 보인다.
굽이 굽이치는 산은 하나에서 여럿으로 갈라지나 물은 여럿에서 하나로 뭉치게 되니
좌측으로 흐르는 물은 낙동강이 되어 남해로 우측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한강이 되어 서해로 빠져 나가 결국 하나가 된다
주흘산과 부봉
문경시 마성면에서 보면 여인이 머리를 풀고 누워있는듯한 산이며
북한산이 한양에 자리하고 있어 토라져 등을 돌려다는 산이다.
부봉은 주흘산의 백미격이니 가을에 가보시면 결코 후회하지 않은 봉이기도 하고
조선 영조때 어사 박문사가 올랐던 곳
마패봉에서 남쪽 조망이 좋으며 새재로 내려가는 전초전 길에 산길에 짚고 다니던 나무 지팔이는 길가에 두고
밧줄을 잡고 내려서니 암릉과 마사토길이 이어지다가 성터길이 나타난다.
조령 3관문으로 가는길에 문경에서 오신 아주머니 두분을 만나 배낭에 든것 모두 털어서 가지고 내려오며 이른아침부터 특템하는 산행을 하게된다.
문경 사시는 두분 아주머니께 두분 감사 인사 드립니다
"나는 새도 쉬어 넘는" 문경 새재에 도착해서
전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영남인들이 넘던 고개이며 조선시대때는 과거보러 가던 대표적인 곳이다.
3년에 한번꼴로 치루는 조선시대 과거 시험에 응시하는 유생들은 대략 5만명
과거 시험에는 초시와 대과등 5단계로 구분하며 평균 1천 9백대1이며 대략 32명만 최종 합격한다.
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들어가 과거시험에 합격한 이는 얼마나 될지
가자 조령으로
마고 할매가 우리나라 산을 만들때 큰바위는 큰산에 옮겨놓고 그외 짜잘한 바위들은 모두 조령에다 옮겨 놓은듯 보인다.
백두대간길에 가장 위험하고 까다로운 길이니 ...
멀리 월악 영봉과 만수릿지길이 훤히 들여다 보이니 산은 가까이 보다 멀리서 봐야 산의 진면목을 모두 볼 수 있는것 같다.
오래전에 밧줄만 50개 정도만 있었을뿐 인공 구조물은 없었는데 지금은 산악 사고로 철계단이나 인공 구조물을 많이 설치했다.
바람은 불고 시원함과 함께 걷는 대간길
머리를 조금이라도 굴릴줄 아는 산꾼이라면 6-7월 염천에 머리 버껴질것 같은 땡볕인 조령산으로 가지않고 계곡으로 물놀이 갈텐데
암릉에 묶어둔 40개 이상의 굵은 자일과 사투를 벌여야 하니 쫄깃한 심장을 두손에 담게된다
뿌연 날씨지만 바람따라 흰구름은 흘러가고
산봉우리는 서로 키제기 하듯 물결친다.
조령산 암릉 구간중 가장 스릴있는 곳이지만 바위길을 좋아하시는 깽님
막 구워낸 따뜻한 쿠키처럼 처음 접하는건 모두 맛나 보이는가 봅니다.
지난번 대야산 구간 자일이 짧다며 야단이더니 오늘은 아주 흐뭇해 하시는군요
암릉길에 만나는 신장군의 말안장 바위
신선암봉 가는길에
끝날 줄 모르게 이어지던 밧줄 구간이나 위험한 바위길은 이제 끝나고 신선이 머물렀다는 신선암봉을 지척에 두고 있다.
신선암봉으로 올라 가는길에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심심하니 계단이 몇계단인지 신선 놀음하듯 오르고
조신한 깽이님
지나온곳과 가운데 주흘산 부봉 옆으로 주흘산
주흘산 주위로 서쪽으로 조령산, 북쪽으로 월악산, 동쪽으로 운달산과 황장산등 1천미터 넘는 둘러쌓여 있지만 주흘산(主屹山)은 인근을 통틀러 우뚝 솟는 주인이란 뜻이다
주흘산은 여자 산이며 문경시 마성땅에서 보면 여인이 머리를 길게 풀고 누워있는 모습이다.그리고 하늘의 성곽처럼 때로는 사대부집의 기와지붕처럼
웅장하며 화려하게 솟구친 산마루가 인상적인 산이다
오래전 자기가 태어난 땅이 한양인줄 알았는데 그곳에는 북한산이라는 더 아름다운 산이있어 한양을 등지고 서 있다는 전설이 있다.
치마바위를 배경으로
지나온 신선암봉
조령산
백두대간에 자리하고 있으나 의외로 찾는이가 많지 않다
산이 험준하고 암릉이 많아 대간꾼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니 일반인들은 이화령에서 조령산만 오르고 암릉이 기다리는 신선봉 이후로는 발길을 돌린다
조령에서 하산 하는길에 나무숲이 좋고 시원해 발걸음은 가볍다.
샘터에서 시원한 물한잔 하며 내려 오다가 대간길 마루금을 벗어나 산의 경사면길을 이용해 편안하게
이화령으로 향한다.
위험한 조령 암릉을 모두 지나 이화령에 도착한다.
전반전 끝나고 후반전을 위해 매점에 들어가 가장 값비싼 밥먹고
야간 준비로 물보충 하니 배낭은 처음처럼 다시 묵직하다.
후반전 시작할까나
이화령 548m 고갯길은 1925년 일제 감정기때 삽날로 의해서 끊어진곳이다
지금은 복원한다며 뚜겅을 덮어놓은 상태다
이화령전투 1950년 7월 13일부터 17일까지 이화령에서 국군과 북한군이 전투를 벌인곳이다.
백두대간 일대에서 지연전을 전개하고 있을때 국군 6사단 제2연대가 문경 북방의 이화령 일대에서 북한군 제 1사단의
침공을 지연시킨 방어전투
2013년 3월 어느날 호국산행 하면서 달아둔 시그널
이화령 전투는 시루봉,조봉,이화령 조령산 일대에서 5일간 벌인 전투이며 북한군 1천명 이상 전사한곳이다.
국군 전사자는 파악이 안된다
조선시대 전국이 붙타고 있을때 백전노장이라던 신립 장군이 버린 조령을 국군은 조령산-조봉-이만봉-시루봉에서 방어진지를 삼고 배수진을 펼지게 된다.
지금도 이화령에서 조봉으로 오르는길 등산로 옆으로 국군이 방어진지를 구축한곳에 국군 유해 발굴한 흔적이 많이 있어
숙연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게된다.
"배낭 한번 들어봐도 되요"
그래! 들어봐라
집에서 20kg 확인하고 오지만 물 무게가 상당하다.
나무가지에 매달린 클럽의 호국 산행 시그널 한장 회수해 깽이님께 달아 드리며
이곳에서 전사한 국군분들 잊지 말라고 당부 드린다.
이화령에서 조봉 구간에는 수 많은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한 지역이며
반대편 이화령에서 조령산 오름길 헬기장 인근으로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한 곳이다.
등로는 아주 좋죠
대간길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가파르지 않은 산길은 녹음이 우거진 숲길이라 햇볕이 들지 않지만
지나는 바람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빼곡한 참나무 숲이 길게 이어지는곳이다
좌,우측으로 산이 울창하니 묏선생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 묏선생 잡겠다며 몽둥이 지팡이 들고
황학산에서
백화산 가는길에 만나는 암릉
어느곳에 가던 꼭 만나고 싶은 분들
대간 26차와 반가운 만남이 이루어지고 몇몇 분들이 시원한 음료를 건내 주셨는데
저희는 갈길이 멀어 배낭속에 든것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가시는 걸음마다 늘 날아갈것처럼 가볍고, 다치지 마시고 진부령에 서시기 바랍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어야겠죠 인사 나누고 서로의 안전산행을 기원 드립니다.
만나서 반가웠구요 시원한 음료수 감사했습니다.
대간팀 대장님과 후미분들과 만나서 인사 나누고
대장님이 주신 포도와 꼬마 방울 토마도 몇알 얻어 갑니다.
대간길에서 본 뇌정산과 멀리 영강 우측의 작약산이 보인다.
이곳에서 흐르는 물은 모두 문경을 지나는 영강이며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만봉과 시루봉 사이로 희양산과 장성봉 그넘어 대야산으로 조망 되지만
해는 넘어 갈 준비하고 우리도 야간 준비를 해야 할것같다.
이만봉에서
이만봉 내려올즘 해는 넘어가고.인근 계곡으로 물보충하러 가 보지만 갈수기라 물은 전혀없고 다시 올라와
배너미 평전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
니가 문제가?
산이 문제가?
가만있는 산은 문제가 될리 만무하고
희양산 삼거리에 배낭 벗어 두고 올라와
계곡 아래 자리하는 봉암사 불빛을 구경하고
희양산 아래 자리하는 희양산 봉암사 일주문
어느절이던 일주문을 알면 그산의 내력을 알수 있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 7교구본사인 직지사 말사의 절이며 통일 신라시대 승려 지선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다른절과 다르게 연등은 모두 흰색이며 수행하시는 스님들께서 초팔일 즈음에 만들기에 번거롭게 화려한 색상의 연등은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말로만 들었던 봉암사 과연...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최고의 명당터에 자리를 잡았다.
야간에 내려오는 희양산 밧줄 구간
스님들께서 지키시는 초소 난간대에 은박지 깔고 쉬었다 가기로 한다.
구왕봉 오르는 길에 바위 전망대에 앉아 운기조식하며 보름달 구경에 넋이 나가고.
"햇볕에 쬐이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야사가 된다"는 말처럼 소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이 너무 좋다.
달은 소나무 가지를 벗어나려 한동안 애를 먹는데 우리가 떠나면 야사를 만드는 달도 소나무 가지를 벗어날듯
어둠이 물러날 시간인데 아직도 이러고 있으니
바위길로 올라 잠시 쉬었다 간다
넓은 산속에서 아침을 맞이하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계시는 깽님
영조때 30년간 전국을 돌아 다니신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선생이 깽이님께 한말씀 하신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씀 하셨을듯하다
"산넘고 물건너 혼자서 울며 불며 가라"며 그리고 비가 내려야 무지개가 뜬다는 말씀도 하실것 같다.
악희봉 촛대바위는 꼭 가보고 싶은곳이 아니기에 미련없이 지나며
지루하게 이어지는 산길은 말 그대로 긴 산성같은 길을이어놓으며 끝 없이 이어진다.
라면이라도 끓여야 할시간이나 산에서 불피우는걸 좋아하지 않으니
빨리 하산해서 따뜻한 국물에 밥이나 말아 먹어야 할것같다.
백두대간 심장부라는 희양산을 배경으로 밤새 지나온 구왕봉과 은티고개로 이어지는 대간길이 보이고
멀리 조령은 구름에 갖혀있고 그아래 이화령이 보일듯하다.
백두대간 속리산 형제봉에서 동쪽으로 가지를 치는 남산-칠봉산 문경의 작약산이 지척이다.
앞으로 흐르는 물은 영강이며 작약산 뒤로 흐르는 물은 이안천이나 상주시 함창에서 영강에 합류되어 퇴강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멀리 보이는 산군들은 좌측으로 어룡산 그뒤에 낙동강이고 희미 하지만 뽀족한 부분은 의성의 비봉산이니 그뒤로 본다면 경북 군위의 팔공산 일듯하다
가운데 작약산이고 그뒤로 상주의 갑장산 인듯하고 우측으로 상주의 진산이나 늘 성주봉에 밀린다는 남산인듯하다.
희양산과 백화산 그리고 가운데 뇌정산이 보이고 그넘어 가은읍이 있을테고 어룡산 능선이 이어진다.
이른 아침에 대간꾼들이 시끌벅적하게 올라와야 할 시간인데 아직 올라오지 않으니
새벽녁에 공단직원들이 밤티재에 지키고 있었나 봅니다.
내려오는길에 문경 개인택시 기사분께 전화를 해 두고
둔덕산과 가운데 뽀족하게 고개를 내미는곳은 조항산 그리고 대야산
앞은 문경 선유동 계곡과 버리미기재
버리미기재로 내려가는길에
길가에서 만난 하마가 눈을 지긋이 감고 풀을 뜯고 있네요
버리미기재에 도착하니 공단 직원분들은 없고
미리 전화해둔 문경 택시가 기다리고 있다.
전날 주차해둔 진남교 휴게소에 들러 옷갈아 입고 문경 진남교 위에 자리하는 고모산성에 들러본다
신립장군이 이곳에서 1차로 왜놈을 막고 2차로 조령으로 움직였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그랫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패하지 않았을것이란 생각이든다
맛집으로 알려진 진남교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하고 깽이님은 점촌 버스 터미널에서 대전 복합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신다
갱님은 대전으로 떠나가고 혼자서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졸음을 이겨내며 대구로 향한다.
백두대간 다음 구간은 밤티재에서 개머리재이니 한번만 조심하면 편안한 산길이 될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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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작약지맥의 청계산 두루봉과 남산 직전의 국사봉 가는길에본
뇌정산과 도장산, 그리고 백두대간 산그리메를 짐작만 할뿐
큰그림만 머리속에 담아두었는데
이렇게 보니 실타레가 풀리는듯 합니다.
다소 위험한 구간 잘 넘으셨네요.
다음구간 밤티재 암릉 조심하시고 속리산의 아름다운 산세 맘것 즐기시길 바랍니다.
문경쪽 산군들을 알려면 작약산이나 상주의 남산에 올라보면 가장 좋습니다.
병풍처럼 둘러쌓인 대간길과 갑장산 그리고 낙동강 넘어 의성의 비봉산까지 조망되니
문경산들들이야 저보다 많이 아실테니 ...생략하고
나중에 대간 한구간 오셔서 걸음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수고 마니 하셨습니다
청주 근교라서 자주 찾아 걷는 능선길이지만
또 이렇게 접하게 되니 반갑습니다
늘 안전하고 행복한 산길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암릉산길은 이제 속리산 초입만 남았네요
가다보면 끝난다고 햇는데 이제 몇구간만 더가면 덕유로 진입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 같이 걷도록해요
주변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자를
하늘이 버리신걸까요?
흥하는 자는 하늘도 돕거늘...
우리 신립장군님 하늘에서 통곡하시겄네요.
ㅠㅠ
호국산행시그널 7년 그곳을 지켜낸 녀석
제 배낭 앞에 손수 달아주셔서
감동~
몇 장 없다고 하신 희귀 시그널
26차 대간팀 만났던게 가장 좋았던
이번 대간길~
물론 암릉들도 최고였습니당.
이제 만족~스럽네용.
마지막 내려가는 길에 만난 바위
하마라고 하실때는 무슨 하마??
그랬는데.. 사진 담으신거 보니
딱 하마 맞네요.
^^
근데 마지막 하산 사진
제 표정 보고 완전!~
빵 터졌습니다.
역시 방장님은 제 안티~
웃기라고 넣으신거죠??
지루했던 오늘 오후시간
덕분에 즐겁습니다.
후기 써내시느라
대간길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어느것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정신 단디 차리고 걸음하시기 바랍니다.
다음구간 상주 효자 정 재수 어린이와 화령재 전투 지역을 찾아 가보고자 하니 미리 공부 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대간 한구간 수고 많으셨소
대간길 어느 한 곳 의미없고 좋지 아니한 길 없지만, 제게는 좋은 기억으로 가득한 구간입니다. 항상 그러하셨지만 요번 후기에 글들이 쏙쏙 들어옵니다. 저희는 겨울바람 맞으며 지나게 되겠네요. 두 분 수고많으셨습니다
이번에 대간 가시죠
신록이 푸르른 함백과 태백에서 시원게 펼쳐지는 조망 마음것
누리고 오시기 바랍니다.
같은날 저희는 바람도 쉬어간다는 추풍령에서 왔다리 갔다리 할것 같네요
언제나 멋진 산꾼 되시구요
멋진 산행기 잘 봅니다.
걸음걸음 역사입니다.
늘~건강하세요.
글 감사드립니다.
시간 되시면 제가 지리에 서는날 함께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놀러 오십시요
참 대단하십니다 ㅎ
산 귀신입니다~~ㅎ
후기 읽고도 어디가 어딘지 헷갈리네요 ㅎ
늘 안전산행하십시요^^
오랜만입니다
잘 계시죠.
조망 좋은 비봉산에 한번 갈때 연락 드리도록 하겠구요
늘 많은 관심 감사드립니다.
생각보다 일찍 산행을 시작하시는군요. 그 동안은 내가 방장님 산행기를 뜨문뜨문 보았나 라는 생각이듭니다. 누가 뭐래도 조령산 구간이 백두대간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합니다. (내생각) 최고의 암릉구간인데 21차때 주간에 지나가서 이번에는 야간에 지나가도 아쉬움이 덜했던것 같습니다. 두분 지리산에서 산행이 끝날때까지 행복한 산행 하시길 바랍니다.
새벽에서 다음날까지 걸었구요
잠시지만 만나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다음구간 황장산이신데 단속 조심해서 진행 하시기 바랍니다.
멋진분 글 감사합니다.
한구간 무거운 베낭지고 다닌다고 고생 많았어요~~
못만나 서운했어요
끝까지 화이팅입니다
이제 무거운 배낭은 끝나고 가벼운 배낭으로 진행 합니다.
대간길에 누님 볼까 했는데 안 오시고 ...
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산길 늘 안전하게 진행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무거운 배낭은 끝나고 가벼운 배낭으로 진행 합니다.
대간길에 누님 볼까 했는데 안 오시고 ...
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산길 늘 안전하게 진행 하시기 바랍니다.
대간을 걷기 시작하고 산줄기, 강줄기에 눈이 떠질라말라하는 지금 이 시기에 느낀 것이 있습니다. 우리 대간과 정맥, 우리나라 산줄기들은 우리나라 역사와 늘 함께 해오고 있다는 것을요. 해서 어디를 가더라도 그냥 다닐 수는 없게 되고 늘 관련 서적과 자료들을 조금이나마 알아보고 숙지하고 산행을 떠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런 저에게 있어서 배방장님의 후기는 한글자도 놓칠 수 없네요. 대간에서 닿은 인연에 다시금 감사하게됩니다. 앞으로도 안전하게 대간을 누리시고 멋진 후기 기다리겠습니다!
대간길에 많은것 보려고 노력 하시구요
산너머 누가 살고 있는지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더 재미난 산길이 될것 입니다.
경산에 사시니 대구시내로 나오실 기회가 되면 연락 주십시요
010-9082-6172번 으로 연락주시구요
20kg짜리 배낭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집니다. 맨땅에 눕지 마시고 매트리스라도 하나 넣어다니시지...
ㅎㅎㅎ 배낭에 든건 모두 물과 라면,햇반 입니다.
대간길 씩씩하게 이어가시구요
글 감사합니다.
신립장군의 판단?
안타까운 역사 이었죠
백두대간길 생각이 나네요
멋진산행기 잘봤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하늘재에서 버리미재까지 구간 바윗길이
많아서 스릴있고 볼거리는 많지만 조금은
힘든 바윗길을 넘었을듯 싶습니다
이번 대간길은 애환과 아픔의 상흔이
서린 역사의 현장을 지난 구간이네요
방장님 산행기를 보면 역사공부는 저절로
하게 됩니다
다음구간도 바윗길 넘고 타고 지나야 되는
스릴있는 구간이 기다리네요 속리산구간
조심히 잘 진행하세요
이구간은 유난히 체력소모가 많이 되는구간이죠.
걷기도 바쁜디 밧줄도 잡아야 하고..
국공 출근전에 마무리 하셨네요.
호랭이보다 무섭고 곶감 보다도 더 무서운 국공
제가 조금만 젊었으면 국공 취직해서 모두 통과 시켰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