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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산국민학교 33회 원문보기 글쓴이: 정재복
▼파리의 랜드 마크 에펠탑.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9년 만국박람회때 ‘구스타브 에펠’이 세운 탑으로 건립당시
철골 건축물이 파리의 고풍스런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모파상, 구노 같은 많은 예술가와 시민들의
반발이 있었고 여러 번 철거 위기도 겪었지만 지금은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320m가 넘는 높이와 수 천 톤의 철골과 철골을 이어주는 수 만개의 리벳으로
2년이 넘는 공사기간 동안 한 건의 사고도 없이 완벽하게 건축되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탑 아래 섰다.
우와! 탑의 웅장함에 입이 벌어졌고 아~~파란 가을 하늘에 떠있는 조각구름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저 차갑고 단단한 메탈의 우아한 실루엣을 보라! 그 아름다움에 벌어진 입에선 탄식이 흘러나왔다.
엔지니어들의 이 위대한 걸작 앞에 누가 감히 고철 덩어리라 돌을 던질 수 있는가!
그러고 보면 예술이라는 것은 예술가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
이 가을에 시 한 편 읊조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자가 시인이요. 비록 서툴지만
내 손가락과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악기의 선율에 취할 수 있는 자도 예술가인 것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도시 파리.
전망대에 오르니 파리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고철덩어리라며 에펠탑의 건축을 극구 반대하던 모파상은 정작 탑이 완공되자 이곳 전망대 식당에서
매번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파리 시내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이 이곳밖에 없어서라고 했다는데…….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모파상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그렇듯
그의 눈에도 발아래 파노라마 사진 처럼 펼쳐진 파리는 정말 아름다웠을 것이다.
▼라데팡스 신도시.
파리는 고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의 문화가 함께 숨 쉬는 곳이다.
영국이 전통을 고집하는 나라라면 프랑스는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지만 언제나 그것은
최소한이어야 하고 우리 것이 최고라는 문화적 자긍심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프랑스인이다.
▼파리 시내를 관통하는 세느강.
강변 옆에 자리 잡은 고풍스런 집들의 지붕위에 토기 화분처럼 보이는 것들은 벽난로로 난방을 하던 시절
사용했던 굴뚝이라고 한다. 큰 집일수록 굴뚝이 많다고 하며.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더 이상 필요 없는
굴뚝조차도 끌어안고 살아가는 파리 시민들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싸이가 말 춤을 추며 파리 젊은이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플래시몹 행사를 가졌던 사이요궁이다.
▼세계최대의 군사박물관 앵발리드 군사박물관 나폴레옹의 유해가 묻혀있는 곳이다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왕권을 누렸던 루이 14세가 파리의 루브르궁에 싫증을 느껴 파리 근교 사녕터에 화려한 궁전을 짓고 방대한 정원을 조성하여 거처를 옮겼던 베르사이유 궁이다.
▼주차장과 정원 쪽에서 바라본 베르사이유 궁전은 최대 광각으로 촬영을 했는데도
한 컷에 촬영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한 규모에 놀라웠다.
▼짐이 곧 국가이다. 절대권력의 왕권의 상징 태양왕 루이 14세.
▼궁전 내부는 이렇듯 성서의 이야기를 그린 포레스코화와 조각상 그리고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궁전에서 가장 화려하고 유명한 일명 거울의 방.
손거울조차 흔치 않았던 중세시대에 수백 개의 거울로 벽을 장식하고 연회를 즐기던
곳이라고한다.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 베르사이유조약도 이곳에서 체결되었다고 한다.
▼창밖으로는 정말 화려하고 세련된 정원이 끝없이 펼쳐졌다.
프랑스 왕궁 정원은 좌우균형을 맞춘 세련된 양식이 특징이며 군데군데 조각상을
두어 장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멀리 보이는 궁궐 밖의 건물 두동은 마구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라고 한다.
현재 프랑스 마사회 건물과 학교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마구간이 저 정도이니
당시 궁궐의 모습이 얼마나 웅장하고 화려했을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수 십년에 걸친 공사기간으로 완성된 궁궐의 화려함 뒤에는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이 있었고
결국 프랑스 혁명의 단초가 되어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호사를 누리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분노로 표출되고 만다.
▼파리의 왕궁이었던 루브르 궁전은 프랑스 공화정에 의해 루브르 박물관이 되었으며
대영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밀로의 비너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등 유명작품이 전시되어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주로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보니 미술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작품보다는
건축양식이나 궁전 내부의 화려함에 더 많은 관심이 갔다. 역시 궁전으로 사용되었던 터라
그 화려함이 베르사이유 궁전 못지않았다.
▼박물관 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 바로 일명 모나리자 방이다.
무슨 체면에 걸린 사람들처럼 빨려들어 가게 되는 곳이다. 또 여행객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소매치기들이 극성을 부리는 곳이기도 하다.
나중에 찍고 보니 모나리자 그림 양옆에 나쁜 빨갱이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을 보고
참 어이가 없었다.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는 세계의 명작이라는 작품 옆에
소매치기 주의포스터가 붙어 있다니 옥에 티라고 해야 하나.
▼나도 어떤 힘에 이끌리듯 앞으로 어깨를 밀치고 다가서 그녀와 대면했다.
그런데 사진으로 봐도 그렇고 역시 안이쁘다. 눈썹이 없어서 그런가!
신비의 미소라는데 아름답다거나 신비롭다거나 그런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도 사진이 아닌 방탄유리벽 속에 들어있는 작품일지언정 내 눈으로
그녀의 신비한 미소를 직접 보았다는 뿌듯함에 가슴은 뭉클했다.
▼밀로의 비너스상.
밀로라는 섬에서 밭가는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바로 그 작품이다.
비너스상의 아름다움의 원천은 황금비례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허리와 엉덩이
둘레의 비례가 완벽에 가깝다고 한다. 역시 참 아름답고 얼굴도 곱다.
▼나폴레옹황제의 대관식.
▼가나의 혼인잔치.
▼나폴레옹은 자신이 전쟁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개선문을 건축하도록 지시 했으나
생전에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어 유해만이 그 문을 통과하여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
드러내놓고 자랑은 하지않지만 프랑스인들의 마음에 나폴레옹은 민족의 영웅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파리는 이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갈래의 방사형 길이 뚫려있는
계획도시로 설계되고 건축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다.
▼개선문의 벽면에는 승전지의 지명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조국을 위해 이름 없이 쓰러져간 무명용사를 추모하는 불꽃이 늘 피어오른다.
▼조각상인줄 알았는데 움직여서 당겨보니 사람이다.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경우가 늘 아쉬웠다.
▼개선문과 콩코르드 광장을 연결하는 샹제리제 대로이다.
연말이 되면 도로 양쪽에 가로수 나무에 오색전구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불빛과
사랑하는 연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니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가슴이 설레던 바로 그곳이다. 거리를 따라 유명 카페와 레스토랑 부티크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익히 잘 알고 있는 몽마르트르언덕은 순교자의 언덕이라고도 한다. 프랑스 근대사의
굴곡과 미술사의 한 흐름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산이 없는 파리에서 유일하게 인위적인 건축물이 아닌 곳에서 발아래 도시를
굽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보불전쟁에서 참혹하게 패배한 프랑스 국민들이 성금을 걷어 건축했다는 몽마르트 언덕의
성심성당 대다수 국민이 가톨릭 신자인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당이라고 한다.
▼19세기말 고흐, 르누아르, 피카소 같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이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행객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거리 화가들이 대부분이고
아침 일찍 산책겸 해서 올라갔는데 간밤에 여기저기 술 취한 취객들이 남겨놓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더 이상 예술적인 몽마르트의 향기는 느낄 수 없었지만
여전히 파리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라고 한다.
▼에펠탑전망대에서 내려다보았던 황금돔 지붕의 앵발리드 군사박물관.
▼알렉산드르 3세 다리.
▼노트르담이란 성모마리아를 뜻하는 말로 고딕양식 건축물 가운데 최고 걸작 중 하나이다.
무려 2백년에 걸쳐 완성한 성당 내부에는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한 수많은 조각들이 있고
수많은 왕의 대관식과 귀족들의 결혼식이 행해졌으며 특히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이
치러진 곳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집시 처녀를 향한 종치기 꼽추의 지순한 사랑을 그린
빅토르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의 배경이 된 성당으로 잘 알려진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 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
파리는 특별한 건축물이 아니면 7층이상의 건물은 지을 수 없다고 한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1층은 상가 위층은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택으로 들어가는 공동현관이다. 대부분 저런 모양이다.
1층에 상가가 없는 고급 주택가도 지나는 길에 보았는데 그렇다고 외관이 특벽하게
고급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도시 전체가 고풍스럽고 잘 정비된
도시였지만 후미진 골목 안쪽에는 벽에 그린 낙서가 참 많았는데
거리의 낙서조차도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을 해 주었다고 하니 역시 예술의 도시답다.
▼붉은 노을에 물들어 가는 세느강과 파리.
■파리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세느강 유람선 탑승이었다. 저녁노을에 조금씩 물들어
가는 세느강 변의 고풍스런 건축물들은 밝은 낮에 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고
시간을 붙들어 놓고 싶었다. 조금만 더 세느강에 머물 수 있다면 밤하늘에
아름답게 빛나는 에펠탑을 볼 수 있으련만 그런 아쉬움도 여행의 일부분이 아니겠는가!
수박 겉핥는 식으로 이틀 동안 정신없이 파리를 둘러보고 얼마나 그들의 문화를
이해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처럼 문화의 위대한 힘이 느껴진다.
그 어떤 궁전보다 웅장하고 화려한 베르사이유 궁전은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결국 분노한 시민들은 왕권을 폐하고 공화정을 세우는 명분이 되었지만 오늘날
베르사이유 궁전,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개선문, 노트르담 성당
이 위대한 문화유산을 물려받은 골족의 후손들 앞에 난 참 초라해진다.
다른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언제나 자신들의 문화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프랑스인들의 문화적 자긍심은 결코 그들만의 자긍심은 아닌 듯하다.
다음 목적지 스위스로 향하는 TGV를 타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음 옮겼다.
첫댓글 여기도 대부분 가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