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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와 문장 |
이탈리아의 섬이자 주, 그리고 지중해 최대의 섬.
이탈리아 반도를 장화라고 생각한다면,
딱 발 끝 부위에 위치한 차기 좋게 생긴 섬이다.
이탈리아인의 축구실력은 영토에서 예견되었던 거다
하지만 비유와는 달리 지중해 최대의 섬이다.
면적은 25,709㎢, 인구는 4,866,202명(2001 추계)이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중앙부에 위치한데다
이탈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예로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꼽혀
역사적으로 지배세력이 숱하게 바뀌어온 지역이다.
덕분에 다양한 문화가 혼합되어
시칠리아만의 특색이 매우 강하게 드러난다.
시칠리아에는 유럽에서 가장 높고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한 화산 중 하나인 에트나 화산이 있다.
에트나 화산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를 품은 곳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마피아의 본거지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영화,
요리,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
관광지 및 휴양지로 유명하며,
농업 외 산업적 기반이 있는 지역은 아니어서
경제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이다.
2014년 기준 1인당 GDP 16,600유로로,
31,000유로가 넘는 북부 이탈리아의 절반에 불과하다..
다만 전형적인 지중해 기후를 가져
연중 온난하고 강수량은 고른데다
화산지형 덕분에 땅까지 비옥한 시칠리아는
농사가 매우 잘 되어 시칠리아의 농산물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편이다.
고대부터 지중해세계를 먹여살려온 밀은 물론,
속이 빨간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
피스타치오, 레몬, 올리브, 토마토, 아몬드, 포도 등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웬만한 식재료는 모두 잘 난다.
덕분에 시칠리아 요리가
이탈리아 요리의 뿌리이자 정수로 꼽힌다.
남쪽에는 몰타 섬이 있으며,
시칠리아 최대 도시 카타니아에서 배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몰타와 함께 난민들이
리비아나 튀니지 등지에서 배를 타고 오는 관문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에는 그리스계 주민들이 이주하여 그리스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메시나 등의 폴리스가 있었으며,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가 이쪽으로 진출하자
로마에 구원을 청하여 그 이후로 길고 길게 이어진
포에니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포에니 전쟁 이후로 로마 세력권에 들어왔으며,
대규모 농장이 건설되어 플랜테이션 농업이 시작되었다.
로마의 밀셔틀 제1호.
로마 제국 시대에는 노예 반란이 좀 일어난 것을 제외하면
평화를 누렸으나,
이탈리아의 기독교 세력 사이에서
수시로 점령 세력이 바뀌는
혼란스러운 역사를 겪게 되었다.
그러나 11세기를 경계로 노르만족의 침입으로
가톨릭계 왕국이 이 섬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후 시칠리아 왕국은 남 이탈리아를 정복해
세력을 넓혀 근대까지 왕국이 존속하게 되었다.
이른바 양 시칠리아 왕국.
중세왕국의 특징에 따라 단일혈통 왕국이 아닌
결혼과 상속을 통해 계속해서 바뀌게 되었다.
왕국을 성립시키고 발전시킨건
노르만계(오트빌 왕조)지만 이후 이 계통이 단절되면서
사위인 호엔슈타우펜 가문(신성로마제국 황제 가문)이 물려받았다.
그러나 이탈리아 전체를 원했던 호엔슈타우펜 왕가는
결국 교황과 반목하게 되었고
교황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영향력을 원했던 프랑스와 결탁해
당시 카페 왕조의 왕인 루이 9세의 동생인
앙주백 샤를을 초빙해 호엔슈타우펜 왕가를 물리치고
시칠리아 왕으로 삼았다.
왕이 된 앙주백 샤를은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고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한 원정(비잔틴 제국을 침략하여
자신이 황제가 되려는 야심이 있었다.)과
원정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가혹한 세금을 시칠리아에 물었고
이는 많은 반감을 사게 되
결국 시칠리아의 만종이라는 대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앙주가는 시칠리아에서 쫒겨났고
호엔슈타우펜 왕가 출신의 마지막 왕인
만프레드의 사위인 아라곤 왕국의 페드로 3세가
시칠리아 왕이 되었다.
이후 아라곤 왕국이 카스티야 왕국과 합쳐져
스페인 왕국이 되면서 계승권이 스페인으로 넘어가
스페인계 왕국(합스부르크 왕가)이 되었으며
계승되오다가 나폴레옹에 의해 왕가가 교체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통일이 되면서 통일왕국에 흡수되었다.
문화적인 면에서도 엄청난 역사를 자랑한다.
청동기 시대에 시크리 인, 시카니 인, 엘류미 인이 거주,
주석(錫)무역의 중계지로 미케네 문화와도 접촉하며
고유의 문화를 지녔다.
B.C. 8세기에 그리스 인이 도래한다.
카르타고 인의 모튜에 건설에 따라 그리스 화한다.
낙소스, 시라쿠사이(현재 시라쿠사),
게라(현재 제라), 메가라 히부라이아 등
그리스 식민시의 건설에 따라
선주 민족은 내륙으로 밀리고
해안 지역은 완전히 그리스 화했다.
B.C. 6세기부터는 세리누스(현재명 세리눈테),
아크라가스(현재명 아크리젠트),
세게스타(현재명 세제스타) 등이 건설되어
마그나 그라에키아의 일부로 됐다.
여행 3일째.
어제 체팔루에서
다시 팔레르모에 도착.
호텔 1박하고
아침에 버스 타고 2시간 이동해서
아그리젠토에 왔다.
신전의 계곡 지역은 기원전 582년에 건설된 그리스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곳이다.
버스를 타고 가며 올려다 본 신전들
버스에서 올려 다 볼 때와 달리,
광활한 대지 위에 드문드문 남은 기둥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그대로 그림이 된다.
지우노네(헤라) 신전
희생 제단이 있었던 신전으로 언덕 동쪽 위에 자리잡고 있다.
지중해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34개 기둥 중 25개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신전의 계곡 지역은 기원전 582년에 건설된 그리스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동쪽에서 해가뜨면 정확하게 문으로 들어온단다.
Tamara - Abraz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