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깃발이 문패 역할을 했다. 여긴가 저긴가 두리번 거리는데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깃발위에 새겨진 큼직한 글씨가 어서오라고 손짓을 한다. 부고문자가 뜨는 날에는 가장먼저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깃발이다. 옆에 나란히 서있는 근조화의 크기는 깃발의 배다. 그런데 깃발 앞에서 마음이 숙연해지는 건 왜 일까.
엎치락 뒤치락 벗은 놓은 신발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세월을 비껴가지 못하고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친구의 언니 그리고 언니의 남편. 친구가 형부라 부르는 언니의 남편을 나도 형부라 부른다. 5년이라는 공백에도 불구하고 어색함이 전혀 없다.
올겨울 들어 식욕이 왕성해진 나는 밥 두그릇을 먹었다. 허겁지겁 허기를 달래며 형부술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언니들은 서로 지난 이야기를 내려 놓느라 정신이 없다. 그때 친구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친구 손에 이끌려 간 곳은 깃발이 있는 자리였다. 팔을 뻗어 축 처진 깃발을 반듯하게 세웠다. 그런데 소용이 없다. 12회기수 모두를 지탱하기가 힘게 겨운 모양이다.
한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는 근조화와 달리 깃발에는 12회기수들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사람의 노고가 없었더라면 깃발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깃발에 박힌 "마성중 12회" 글씨위로 친구들 얼굴이 오버랩된다. 그리고 감기몸살로 고단한 몸을 이끌고 달려가 상조깃발을 세워 준 친구의 얼굴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염없이 상조기를 바라보던 친구의 눈빛이 흔들린다. 말없이 친구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첫댓글 나는 친구가 식욕이왕성해져 두그릇 먹는다 는 말이 반갑네!^^담 모임때는 더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굴러서 갈께 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