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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古典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 『千字文』이 아닌가 생각된다. 『천자문』을 고전으로 보기 때문에 ‘해석서’를 내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한글세대’라서 『천자문』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다. 그냥 귀동냥으로 듣고 보기는 했을망정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다만 우리 세대는 중학교 교과서에도 ( )에 넣긴 했으나, 한자를 배웠다. 또한 〈朝鮮日報〉나 〈東亞日報〉등 신문의 제목이 한문으로 되어 있기도 했다. 아무튼 서점에도, 도서관에도 『천자문』에 관한 책들이 넘쳐나고 있어서 어떤 것을 택해서 공부해 봐야할지 고민될 정도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이 현실을 잘 반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서 택했는지 모르겠다.
『천자문』은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 무제 때 주흥사(周興嗣, 470∼521)가 왕명에 의해 하룻밤 사이에 한 글자도 같은 글자가 없이 지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전 삼국시대부터 있었다는 것이 설득력 있어 보이기는 한다. 이 책을 쓴 尹一源 선생은 이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닌 공대를 졸업하고, 한국기술연구원(KAIST)에서 경영학 석사를, 숭실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한 바 있는 공학도다. 그는 국방부에서 31년간 디지털관련 업무를 수행하며 “왜 어떤 나라는 파괴적 기술로 부국강병의 길을 걷고, 왜 어떤 나라는 파괴적 기술로 지배를 당할까?”라는 궁극적 질문과 마주하게 되어 역사와 인문학, 경제, 기술, 혁신에 관한 글쓰기를 생각하였고,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변치 않는 인간 본성에 기인한 삶의 해석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천자문』은 ‘天地玄黃’부터 ‘焉哉乎也’까지 4자가 한 구절로 모두 250개의 단어(숙어)로 구성 되어 있다. 모두 1,000자로서 책에서 사용한 影印(원본 사진) 천자문 글씨체는 저자의 아버지 윤한배 선생이 후손들을 위해 남긴 서체로, 楷書體이기는 해도 正字라기보다는 약자 혹은 속자가 많다. 예를 들어 弔의 경우 속자인 吊를, 眞의 경우도 역시 속자인 真으로썼다. 원문해석은 三先(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 ‘삼류선비’라고 한 말의 줄임말)과 [평어]로 해설했는데, 평어란 각 句마다의 역설적 의미를 현대적으로 평가한 것을 말한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으나, 책과 같이 풀어서 그것을 다 옮기기는 어려울 것 같아 그냥 뭉뚱그려 독후감 삼아 적어볼 생각이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천자문』의 첫 번째가 天地玄黃,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에 이어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이다. 이것들을 삼선에서 빌려오면 “시간과 공간의 道이다. 눈만 뜨면 마주하는 하늘과 땅,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시간, 인간은 그 한가운데서 삶을 영위하며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고 했고, [평어]로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듬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기도 하고, 나 또한 하늘과 땅, 별로 돌아간다.”고 했다.
사람은 건강을 잃어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재산을 잃어봐야 재산의 소중함을 알듯이 사랑을 잃어봐야 사랑의 소중함도 안다. 때로 결핍이 삶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딛고 일어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세상만사 하늘과 땅 사이 원인과 결과라는 법칙에서 벗어난 일은 없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일도, 이슬이 서리가 되는 일까지, 궁핍함이 원인이 되어 그런 인과로 결과가 만들어진다. 궁핍함을 선함으로 바꾸려고 발버둥 칠 때, 그때 한계를 넘는다. 어디에도 저절로 된 것이 없다. 있다면 늙음뿐이다. ‘寒來暑往 秋收冬藏’을 설명하며 한 말이다. “추위가 오면 더위가 물러가고, 가을이 오면 거두고 겨울에 저장한다.”는 뜻이다.
‘金生麗水 玉出崑岡 - 금은 운남성의 여수에서 나고, 옥은 형산의 곤강에서 난다.’는 말인데, 인간은 본능적으로 서열을 구분할 줄 안다. 그것은 지금도 명품 옷, 고급자동차로 구분하려고 한다. ‘금은 물에서 나고, 옥은 산에서 난다’는 이치는 무쇠로 쟁기를 만드는 이치보다 먼저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천자문』에는 자연의 이치인 ‘하늘과 땅, 해와 달, 별과 우주, 추위와 더위, 구름과 비, 이슬과 서리’다음에는 인간이 만든 ‘금과 옥’을 서술하고 있다. 자연을 맨 앞에 둔 것은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時制文字 乃服衣裳’비로소(때) 시, 지을 제, 글월 문, 글자 자, 이미 내, 옷 복, 옷 의, 치마 상, “글자를 만들어 처음을 열고, 속옷과 치마를 만들어 부끄러움을 가렸다.”는 뜻이다. 그러나 ‘문자는 말을 다 담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옷은 몸을 다 담지 못하고 몸은 진심을 다 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易姓革命이라고 있다. 임금의 성을 바꾼다는 것으로 강제적으로 왕조를 교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의 임금이 무도하면 왕조를 뒤엎어라.’무서운 말이기는 해도, 왕조시대에 간간이 그런 군사 반란과 혁명이 있었다. “낚시를 훔친 자는 사형에 처하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무엇을 훔치느냐에 따라 도둑이 되고 임금이 되기도 한 것이다. - 『장자』거협(胠篋-돈 상자를 열다)편에 있는 이야기다. 『천자문』13번째 ‘弔民伐罪 周發殷湯’이 여기에 해당한다. “백성이 조문해 벌한 사람은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이다”는 뜻이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시대가 변하면 먹는 것도 인재의 기준도 변하기 마련이다. ‘鳴鳳在樹 白駒食傷’이라고 했다. “봉황은 나무 위에서 울고, 백구는 뜰에서 풀을 뜯는다.”는 것이다. 봉황과 백구는 어진 사람을 뜻하는데 어진 사람을 등용시킨다는 말이다. 현재는 디지털 대변혁(DX)시대로 규정과 절차가 파괴되는 극단(outlier)의 시대이다. 자신한테는 너그러우면서 남한테는 엄격한 사람은 먼저 무너진다. 자신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
지금까지 ‘治國’에 관한 몇 가지를 살펴봤다. 이제부터는 제Ⅱ부 ‘修身’에 관해 살펴볼 차례다. 그러고 보면 『천자문』》도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하는 유교적 처세를 중심으로 기술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앞으로 더 봐야 알 수 있겠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천자문』의 20번째 숙어는 ‘恭惟鞠養 豈敢毁傷’으로 공손할-공경할 恭, 생각할 惟, 칠 국-기를 鞠, 기를 養, 어찌 豈, 굳셀-감히 敢, 훼할 毁, 상할 傷으로 ‘공손히 키워주고 길러주심을 생각하면 어찌 감히 몸을 훼하고, 상하게 할 수 있는가.’라는 뜻이다. 부모애게 효도해야 하는 이유가 낳고 길러주신 것이라면, 이것은 부모의 의무이고, 지키고 가꾸고자 하는 것은 자식의 도리다. 《효경》에 “이 몸은 부모한테서 물려받은 것이니 어찌 감히 훼상할 수 있으리오.”한 것에서 효는 시작되고, 부모가 물려준 몸을 보존하고자 한 것이었다. 구한말 최익현이 단발령을 내리자 “내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한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男尊女卑’라고 이제는 없어진 것 같으나, 내 부모 세대까지만 해도 그런 굴레를 벗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유교 사회는 남녀의 덕목을 다르게 추구해 왔다. 여자는 곧음(貞)과 매움(烈)으로 순결을 바랐고, 남자는 국가와 사회에 충성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남자는 재주(材)와 어짐(良)을 강조했다. 이것이 조선으로 건너와 여자의 수절을 지나치게 강요하여 열녀라는 이름을 낳았다. 가난하면 어느 나라든 지위가 낮은 계층을 착취하기 마련이다. 어린이와 여성들이 착취의 대상이었다. 착취를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은 가난으로부터 벗어 나는 것이다. ‘女慕貞烈 男效材良’“여자가 사모할 것은 정열이고, 남자는 재주와 어짐을 배워야 한다.”글자 그대로,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도 좀 과하다 싶기는 하다.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을 구하다 죽고, 열사는 이름을 추구하다 죽고,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권세 때문에 죽고, 뭇 서민은 그날그날 생계에 매달려 죽는다.”는 말이 있다. 모두가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지다가 죽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知過必改 得能莫忘’이라고 했다. “과오(허물)를 알았으면, 반드시 고쳐야 하고, 고치고 나서는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자문』은 이렇듯 기억해야 할 교훈도 담겼다.
『주역』에 ‘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이라 했다. 처가집 가훈(장인 어른이 새겨 둔) 이기도 한 이 말은 “선을 쌓으면 반드시 경사가 있고, 나쁜 일로 선을 쌓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이 있다.”는 말이다. 왜 이렇게 선을 강조했는가 싶기도 하지만, 『천자문』에도 있다. ‘禍因惡積 福緣善慶’이 그것인데 “화는 악의 쌓임이고, 복은 착함의 인연이다.”는 말이다. 사마천은 『사기』를 지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 일삼으면서 한평생 편안하게 즐거워하며, 대대로 부귀를 이어가는 사람도 있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 딛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라고. 선악의 도란 무엇인가?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시대도 가혹한 형벌이 있었지만, 이는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다. 거세형인 宮刑, 코와 무릎을 자르는 鼻刑과 刖刑,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墨刑, 물에 빠뜨리는 濎殺, 절벽에서 밀어뜨리는 投涯, 목을 조르는 絞縊, 거리에 목을 내거는 梟首, 수레나 말에 매달아 끌어 죽이는 車裂(오마분시(五馬分屍)과 머리나 허리를 베는 斬刑, 삶고 태우는 烹과 焚 등 말만 들어도 소름끼치는 혹형들이 있었다. 그래서 매사 조심해야 한다. ‘臨深履薄 夙興溫凊’이라는 말이 그래서 『천자문』에도 있다. 처신은 “깊은 물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하고, “일찍 일어나 따뜻하고 서늘함을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어려운 글자가 夙과 凊인데, ‘이를 숙,서늘할 청’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하라.”고 했다. 그것은 배움의 시작이다. 『천자문』에는 ‘學優登仕하고, 攝職從改하라’고 했다. ‘배움이 넉넉하면 벼슬길에 나가고, 나갔으면 나라 다스리는 일을 천직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배움의 길은 오랫동안 갈고 닦은 匠人과 같다. “못난 자식이 효도하고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며, 미련한 사람이 도를 이룬다.”라는 말도 오랫동안 한 마음으로 정진하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다.
자연 그대로인 것을 도라고 말한 老子, 인간의 길을 도라고 한 孔子, 둘은 다른 점이 많았는데, 예악을 보는 관점도 서로 달랐다. 보고 듣고 즐거우면 예악이 아니냐고 하는 우리와도 달랐다. 유교는 인위적으로 등급을 나눠, 거기에 알맞은 음악과 춤을 추는 것이라 했지만, 도교는 노래하고 춤추는데,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유교는 천자는 64명(8×8), 제후는 36명(6×6), 대부는 16명(4×4), 사대부는 4명이 춤을 추워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하며, 귀하고 천함에 따라 춤도 음악도 달리했다. 그러나 노자는 “예로부터 도를 잘 실천하는 자는 백성을 분별하지 않게 하고, 오히려 우직하게 했다.”고 했다. “어느 것을 따라야 할까? 두 분이 살아 계시다면 묻고 싶어진다. ‘樂殊貴賤 禮別尊卑’“음악에는 귀하고 천함이 있고, 예의에도 높고 낮음이 있다.”타파되어야 할 유교 잔재가 아닐 수 없어 보인다.
이상이 治國과 修身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齊家와 平天下다. 평천하는 전쟁에 진절머리가 나서 생긴 말이다. 지금도 전쟁을 보면 몸서리가 쳐진다. 중동전쟁 뉴스가 판을 친다. 왜 그렇게 힘든 전쟁을 일삼는가 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현재가 힘들다는 것이다. 齊家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형제와 화목하게 지내는 것만 한 것이 없을 것이다. 형제는 서로 돕지만, 때론 경쟁 관계다. 왕위 다툼도, 재산 다툼도 형제간에 많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태어날 때부터 서로 잘 알고 얽히고설킨 관계가 많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관계는 ‘정성이고 투자’다. 정성을 다하여 시간을 투자하고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어루만지며 다독일 때 관계는 돈독하게 형성될 것이다.
‘孔懷兄弟 同氣連枝’가 그것인데 “형과 아우는 서로 걱정(孔懷-근심 걱정 기쁨과 슬픔이 한 구멍에 있다)하니, 한 나뭇가지기 때문이다.”는 말이다. 또 벗은 어떤가? ‘交友投分 切磨葴規(교우투분 절마잠규’라고 하여 “벗을 사귀어 따뜻함을 나누고 서로 갈고 닦아 옳은 말로 바로 잡는다.”고 하였다. 연암 박지원 그는 아내의 죽음보다도 친구의 죽음이 더 슬프고 크다고 했다. 한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벗은 장차 같은 사상적 맥락에서 스승을 축으로 거대한 문벌을 형성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런데 벗을 뜻하는 ‘벗 友’는 한중일 모두 한자가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다. 한국만 벗 우가 들어가지 않는 親舊로 쓰는 데 반해, 중국은 평저우(朋友), 일본은 도모다치(友達)라고 쓴다. 벗 우는 좌우에서 손을 뜻하는, “두 손을 맞 잡은 손(又)이 합쳐진 회의문자로 손과 손이 한 방향을 향하는 모습, 즉 손을 잡고 돕는다.”는 뜻이다.
‘節義廉退 顚沛匪虧’라고 있다. 『천자문』에는 어려운, 처음 보는 것 같은 글자들이 많은데, 이것도 그렇다. ‘절의염퇴 전패비휴’라, 절의는 알겠고, 염퇴는 청렴할 염, 물러날 퇴, 전패는 엎어지고, 자빠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닐 비, 어지러질 휴로 “절개, 의리, 청렴은 엎어지고, 자빠져도 이지러질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면 모름지기 좋은 덕목을 지니고 꾸준히 가꾸어 갈 때 쓸모 있는 인간이 된다는 말이다.
이제 제Ⅳ부 전쟁과 제Ⅴ부 평천하에 대하여 보자. 우리의 고려 시대에 해당하는 송나라는 인구, 경제 측면에서 세계 최고였다. 철 생산량이 연 3만 5천 톤 이상으로 유럽 전체 생산량보다 많았다. 송나라 인구는 1억 800만 명 정도로 정규군만 100만 명이 넘었다. 그런 송나라가 소위 말하는 오랑캐와의 전쟁에서 언제나 졌고, 그래서 평화를 구걸했다. 왜일까? 그것은 文을 숭상하고 武를 등한시한 고려와 같은 전철을 밟았기 때문이다. 강남에 도읍을 둔 것도 하나의 원인이지만, 송나라는 인구와 군사가 1/10도 안 되는 몽골에게 결국 패망했다. 여기서 ‘都邑華夏 東西二京’이라는 말이 나왔다. “화하(중국)의 수도는 동서 2개(뤄양과 시안)이다”는 것인데, 정태순이 저술한 「송의 눈물」이란 책에 보면 거란과 협상이 있은 2년 후(1044년) “서하 왕 이원호는 신하의 예로 송을 섬기되, 송은 서하에게 매년 비단 15만 3,000필과 은 7만 2,000냥, 차 5만 근을 주었다.”고 했다. 서하는 물론 거란에 대해서도 이렇듯 평화를 얻기 위해 선물 공세를 폈던 것이다.
중국의 체면과 허세는 짐작하는 바지만, 실제 진시황은 阿房宮을 짓고, 한고조는 未央宮을 지었으며, 원·명·청대는 紫禁城을 지었다. 궁궐은 한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 건축물이기도 하지만, 통치이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궁궐은 정치의 산물이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가며 도성의 서대문인 敦義門을 나와 무악재를 지날 무렵 이미 백성들에 의해 景福宮은 불타고 있었다. 壬辰年 4월 29일 밤이었다. 그러나 『천자문』에는 ‘宮殿盤鬱 樓觀飛驚’이라고 해 “궁전은 건물이 빽빽하고, 누각은 나는 듯 놀랍다.”고 했으니 웬!
나라 간에는 오직 힘밖에 없다. 힘이 없으면 殿下가 되고, 힘이 있으면 陛下가 된다. 陛는 임금이 서 있는 섬돌을 말한다. 오직 천자만이 쓸 수 있는 호칭이라 조선의 임금은 그냥 ‘전하’다. ‘陞階納陛 弁轉疑星 - 승계납폐 변전의성’“신하는 당 밖에 있는 계단을 오르고 임금은 당 안에 있는 섬돌에 오르니, 신하가 쓰고 있는 고깔이 별이 아닌가 하고 의심되네”라는 뜻이다.
1768년 영국은 『브리테리카 백과사전』전 3권을 처음 출간하였으나, 당시 청나라는 『四庫全書』3,461종 9,309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도 『和漢三才圖會』105권 81책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우리도 『왕조실록』이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책은 권수가 아니라 내용이다. 『四庫全書』가 경서와 유교경전 위주였다면 『브리테리카』와 『회한삼재도회』는 천문학과 지질학 농학 의학 군사학 동물학을 망라한 것이었다. 중국과 조선이 보유한 책들은 대부분이 經書(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역경)과 역사책이었다. 세상에는 배워도 자주 변하는 지식이 있는가 하면, 한 번 배워두면 변하지 않는 지식이 있다. 역사와 경서는 자주 변하지 않지만, 과학과 기술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래서 책은 量이 아니라 質이다. ‘右通廣內 左達承明’이라는 말이 『천자문』에 나온다. “오른쪽은 광내(책을 보관하는 전각)로 통하고, 왼쪽은 승명(책과 문서를 교열하는 전각)에 이른다.”는 것이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한 가장 극적인 장면은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것이 아니라, 1532년 11월 16일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페루의 고지대, 마추피추 인근에 있던 도시 ‘카하마르카’에서 ‘아타우알파 황제’와 마주친 사건이었다. 피사로는 168명(기병 62, 보병 106)의 오합지졸을 데리고 있는 반면, 아타우알파 황제는 수백만 명 백성에 그날도 8만 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마주 앉은 몇 분 뒤에 피사로는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았다. 168 대 80,000은 비교라고 할 수 조차 없다. 그러나 피사로는 황제를 사로잡았고, 가로 6.7m, 세로 5.2m, 높이 2.4m의 방에 황금을 가득 체울 것을 요구하여, 황금이 채워지자 불쌍한 황제를 죽였다. 아 옛날이여! 이제 AI와 대결에서 이기려면 지식을 축적하는 길밖에 없다. ‘旣集墳典 亦聚群英’이라 “분전을 편찬하고 영재를 모았다.”는 것으로 분전은 三墳과 五典이라는 책을 말한다.
지금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문자는 말을 다 담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담지 못한다.’고 했다. 특히 중국 한자는 표의문자로 말을 다 담지 못한다. 다만 문자의 뜻이 변하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다. 표의문자로는 사상을 표현하기 좋고, 한글과 영어 같은 표음문자는 감성을 표현하기 좋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한자가 발전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 서체는 經을 통해 볼 수 있는데, 갑골문은 篆書다. 그 전서가 隸書로, 예서가 楷書(해서-정자체)로, 또 行書와 草書로 변해왔다. 전한시대 공자 사당을 수리하다 벽 속에서 전서로 된 《서경》이 발견되었는데, 그래서 ‘杜藁鍾隷 漆書壁經’이라고 했다. “두고가 草書를 만들었고, 종요가 隸書를 만드니, (공자) 사당에서 옷칠한 대나무에 쓴 《서경》이 벽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영국의 ‘조지 3세’명을 받은 ‘조지 메카트니’는 1792년 무장군인 62명과 전함 2척, 700명에 달하는 무역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에 도착했다. 황제인 건륭제가 머무는 熱河로 가서 통상하기를 바란다며 그들의 첨단 제품인 망원경, 시계, 기압계, 스프링이 장착된 마차, 공기총을 내보였다. 그러나 건륭제는 “너희가 만든 제품이 필요하지도 않다. 베이징에 너희 사절을 두는 것은 천조(天朝-조공체제에서 천자가 다스리는 중국)가 정한 규정에 부합하지도 않을뿐더러 너희의 이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메카트니가 건륭제를 만나 외교적 예의를 표하는 과정에서도 황제를 알현하기 6주 전부터 중국 측은 아홉 번 머리를 땅바닥에 부딪히는 - 인조가 삼전도에서 행한 ‘삼배고구두례’를 행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니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高冠陪輦 驅穀振纓’“높은 관을 쓰고 임금의 수레를 따르니 달릴 때마다 갓끈이 휘날리던”시대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고관배연 구곡진영)
천하가 변하는 데 3가지 이치가 있다. 첫째는 지혜롭다(智)고 해서 공적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둘째는 힘(力)이 있다고 해서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셋째 강(强)하다고 해서 모두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라를 경영할 때는 전략을 세우고 큰 그림을 먼저 그려야 한다. 공이 세워졌으면 상훈을 분명히 논하라. 논공행상을 잘해야 후환이 없고 대대로 나라를 지켜줄 충신이 나온다. 논공행상을 잘못하면 불만을 품은 자가 반란을 일으키게 되어 나라가 혼란해진다. ‘策功茂實 勒碑刻銘’(책동무실 혁비각명)“공을 세워 꾀가 튼실히 하고, (나중에) 공을 세우면 이름을 돌에 쪼아 새긴다.”는 말이다.
임진왜란을 돌아보면 부산사람 아니라도 宋象賢公이 생각 날 것이다. 그는 왜군이 ‘명을 치러갈테니 길을 빌려달라’고 하자, 코웃음을 쳤다. ‘征明假途’가 그것인데, 『천자문』에도 ‘假途滅虢 賤土會盟’이라고 나온다. “길을 빌어 괵나라를 치고, 천토에 모여 회명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고사를 알아야 하는 것인데 『천자문』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고대에도 어리석은 왕은 패망하고 현명한 왕은 패권을 차지했다. 진 헌공은 괵나라를 치기 위해, 우나라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했다. 우나라 임금은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길을 빌려주었다. 진은 괵을 멸한 후 우나라마저 멸했다. 또한 진의 문공은 천토라는 땅에 제후들을 불러 모아놓고(會盟) 충성할 것을 명세시켰는데, 이는 천자를 등에 업고 자신의 위세를 보이고자 함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서는 군사적 우위에 이어, 시장 즉 경제적 요소를 차지해야 하고, 그다음은 문화적 요소까지 쥐고 있어야 한다.
‘宣威沙漠 馳譽丹靑’베풀 선, 위엄 위, 모레 사, 아득할 막(사막), 달릴 치, 기릴 예(명예), 붉을 단, 푸를 청인데, “사막에까지 위력을 드날리고 단청으로 얼굴을 그리니 명예가 드높았다.”는 말이다. 중국은 전국시대 200년을 거치면서 사상과 정체성이 정립되고, 시황제 때에 통일되었다. 한무제는 사막 지역인 서역을 장악하고 실크로드를 연결함으로써 제국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이민족을 제압하기 위한 전쟁이든, 침략을 막기 위한 전쟁이든 전쟁에는 수많은 군인이 목숨을 잃는다. 그때 군인과 군인 가족을 예우하는 일은 그 나라의 문명수준을 보여준다.
고대 중국은 천자가 중심에 있고 그 밑에 대부 그리고 제후가 지역을 다스리는 봉건제였다. 진시황에 이르러서 천자가 직접 나라를 다스리는 군현제로 바뀌었다. 로마는 五賢帝가 통치한 기간이 가장 안정적이었나, 오현제를 뒤이은 시기(182∼284년)에는 무정부 세기로 그동안 황제 37명 중 24명이 암살당하고, 6명은 전투 중 사망하고, 2명은 자살했다. 또 1명은 적국에 억류되었다가 사망했으며, 단 4명만 자연사했다. 절대권력을 누린 황제들에게는 화려함 못지않게 서늘함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九州禹跡 白群秦幷’이라 “하나라 우왕은 구주를 다스렸고, 진시황제는 일백 고을을 합병했다.”고 『천자문』에서는 역사를 더듬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산이 많은 동아시아지역은 산을 경외하고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도덕경』에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상선약수)’라 고 하였고, 『논어』에는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智者好水 仁者好山)’라고 했다. 자연에 의지하던 시대는 자연을 숭배했다. 그러나 이제 자연보다 과학기술에 의지한다. 언제나 실용이 답이다. 利用厚生이 본질이다. ‘嶽宗恒垈 禪主云亭’이라고 해 ‘종산은 항산과 태산이고, 천자는 운정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했는데 중국에는 언제부턴가 동쪽 泰山, 서쪽은 華山, 남쪽은 衡山, 북쪽은 恒山, 가운데는 嵩山을 오악으로 칭송하면서 숭배했다. 아직 화산밖에 가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중국은 돌궐과 여진, 거란, 몽골 등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것에는 동쪽에 山海關, 북쪽에는 고북구, 서쪽엔 鴈門을 두어 이중, 삼중으로 방어하고자 했다. 그러나 서쪽 안문을 통해 5호 16국이 쳐들어와 지배했고, 고북구를 통해서 원이, 산해관을 통해 청의 지배를 받았다. ‘鴈門紫塞 鷄田赤城’이라고 했는데, 안문은 서쪽으로 들어오던 돌궐과 선비, 흉노의 침입 통로로서 ‘안문은 자줏빛 요새이고, 계전과 적성은 지명’이라는 뜻이다.
‘지도는 상상 이상의 모험을 가져다준다. 지도를 벽에 걸어놓고 보아라. 언젠가는 찾아가게 된다.’이 책의 저자께서 한 말이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내방에도 한때 지도가 걸려 있었는데, 지금은 부산 갈맷길 지도만 걸려있다. 그래서 나는 갈맷길 완보를 서른 번도 더 했는지 모르겠다. ‘昆池碣石 鉅野洞庭’이 말은 맏 곤, 못 지, 돌 갈, 돌 석, 톱 거(클 거), 들 야, 골 동, 뜰 정으로 모두 지명에 대한 것이다. ‘곤지는 운남에 있는 지명이고, 갈석은 요서에 있는 지명이다. 거야는 태산 동쪽에 있는 지명이고, 동정호는 악주에 있는 호수 이름이다.
“지구에는 20만 종 이상의 야생식물이 있다. 그중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불과 수천 종에 불과하고, 그나마 현재 작물화된 것은 고작 수백 종에 뿐이다. 더구나 대부분 농작물은 우리 식단을 약간 보완하는 정도일 뿐, 그것만으로는 문명의 발생을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했다. 세계의 모든 농작물을 통 털어 연평균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농작물은 겨우 12종에 불과하다.”(제러드 다이야몬둔 총균쇠)
주식인 쌀 보리 밀 콩 옥수수 감자 고구마를 세계 7대 곡물이라 하는데 옥수수 고구마 감자는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소 돼지 말 등을 주고 대신 가져옴으로써 유럽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숙재남묘 아예서직’(남쪽에는) 밭을 갈아 이량에서 일하고 (북쪽은) 기장과 피를 심었다는 말이다.
중국인은 中庸(공자)을, 인도인은 中道(석가모니)를 말했다. 그러다 보니 세상 사람들 모두가 중용과 중도를 강조하는 것 같아 보인다. ‘庶幾中庸 勞謙謹勑’(서기중용 노겸근칙)은 “중용에 도달하려면 부단히 겸손해야 하고 삼가고 또 삼가야 한다.”는 것인데, 중용과 중도란 무엇일까? 외설과 예술의 경계가 모호하듯 중용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무엇을 보는 순간 순수함이 느껴지면 예술이고, 불순한 느낌이 들면 외설이다는 말이 있다. 중용을 ‘允執厥中(윤집궐중)’이라 하여, ‘진실로 그 한가운데를 잡는다.’고 하는데,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는 마음가짐이다. 중용에 이르기 위해서는 ‘愼獨’을 강조해 홀로 있을 때도 삼가고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疏廣과 疏受는 숙질간으로 한나라 宣帝 때, 태자 교육을 맡은 太傅와 태부를 보좌하는 직책에 있었다. 둘이 나이가 들자 고향에 돌아가 노후를 보내면서 여생을 마치는 것만 하겠는가 하며 사직서를 냈다. 황제가 이를 허락하고 황금 20근을, 태자도 50근을 하사했다. 두 태부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돌아와 황금으로 매일 잔치를 베풀어 친지들과 마을 사람들과 즐겼다. 이에 어떤 사람이 그렇게 돈을 다 써버릴 것이 아니라 자손들을 위해 논밭을 사두라고 권하자 소광이 말했다.
“내가 늙고 미혹하지만, 어찌 자손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나는 원래 갖고 있던 초가와 밭이 있으니 자손이 부지런히 힘을 쏟는다면 입고 먹는 문제는 보통 사람과 비슷한 정도는 될 것인데, 이제 내가 더 늘려 여유가 있게 된다면 자손이 나태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될 것이다. 자손이 재물이 많으면 큰 뜻을 펼치는데 해가 될 것이고, 그들이 어리석은 데도 재산이 많으면 허물만 더 만들어 줄 것이다. 무릇 재산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의 원망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미 자손을 잘 교화시키지 못하였지만, 허물을 늘려서 원망이 생기게 하고 싶지는 않네. 황금은 성스러운 군주가 이 늙은이에게 하사한 은혜로운 것이니 여러 친척과 친지들과 어울려 쓰면서 여생을 다하려고 하는 것인데, 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兩疏見機 解組誰逼’양 소는 소광과 소수를 말한다. 볼 견, 기미 기, 풀 해, 끈 조, 누구 수, 핍박할 핍으로, 두 소는 기미를 알아채고, 관직의 印綬의 끈을 푸니 누가 핍박하겠는가? 이런 뜻이다. 아마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있어서 수천 년 중국의 역사가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太平聖代’는 어떤 모습일까? 그저 평화로운 시대만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은은한 촛불(銀燭) 아래서 사랑을 나누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말하지 않았을까. 비단으로 된 부채를 들고, 촛불 아래서 사람을 맞이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그러나 아마도 士農工商 중에 士(사대부, 양반)는 일부이며 나머지 90%는 피지배 계급이었다. 그중 40%는 노비로 양반 가문에 의탁하여 먹고 살아야 했고, 마음대로 결혼이나 이동할 수도 없었다. 그러고도 전체 인구의 50%는 소아마비나 천연두에 걸려 어릴 때 죽거나 팽생 불구로 살아야 하며, 여자로 태어났다면 죽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90%는 글자를 읽을 줄 몰랐고, 늘 배고픔에 시달렸으며 60세도 안 되어 기생충이나 감염, 영양부족 등으로 죽었다. 그런 까마득해 보이는 옛날의 삶이 그리운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삶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모든 삶이 거기서 출발하였고, 거기서 잉태되었으니 그곳이, 그때가 우리의 이상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향이란 바로 오늘이고 내일이다. ‘紈扇圓潔 銀燭煒煌’- 희고 둥근 부채는 깨끗하며 촛불은 맑고 은은하게 빛난다.
‘絃歌酒讌 接杯擧觴’줄 絃, 노래 歌, 술 酒, 잔치 讌, 접할 接, 잔 杯,들 擧, 잔 觴 “거문고와 비파로 노래하고 술로 흥을 돋우니, 잔을 잡아 술을 권한다.”는 말인데, 술은 순우리말로 인간 본성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자다. 술을 누구와 마시는 가에 따라 주량도 술맛도 달라진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이고, 누구나 경험하는 사실이다. 누구와 마실 때 가장 향기로운가. 권력자인가, 손님인가, 친구인가, 사랑하는 사람인가. 인간 본성은 술자리 뒤에 숨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은 개인적인 문제지만 시대에 따라서 맛이 사뭇 다르다. 성웅 이순신에게 술은 고독과 전쟁에 대한 울분을 달래주는 ‘悲憤慷慨酒’였고, 속박을 지독히 싫어한 연암 박지원에게는 호쾌함과 짜릿함의 ‘nomade(얽매임 없는)’였으며, 평생 천 권의 책과 한 잔의 술을 원했던 조선의 선비 남유용에게는 ‘고고한 看書癡(어리석을 치)’였고, 은나라 때 주왕이 자신의 미모에 빠져 酒池肉林을 만들기도 했던 妲己에게는 나라를 말아먹은 것이 술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술이 문제가 아니라, 술을 마시는 사람이 문제이다. 미인이 문제가 아니라 욕정이 문제인데 누가 술을 탓하랴.
‘祭祀蒸嘗’이라는 말이 있다. 가을에 지내는 제사인 嘗祭, 겨울에 지내는 蒸祭를 말한다. 제사는 地神에게 드리는 祭와 天神에게 올리는 祀의 합성어로 음과 양의 만남을 뜻한다. “부모님은 나를 결혼시킬 생각으로 良家의 처자와 약혼을 시켰다. 약혼녀의 조부께서 돌아가셔서 혼례를 3년 미루었다. 탈상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또 혼례를 3년 미루었고, 삼년상을 다 치르고 이제는 결혼할 수 있으려니 했는데, 약혼녀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약혼녀는 또 3년상을 치르느라 혼례를 연기했다. 드디어 3년을 기다린 후 혼례를 올리려고 할 때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또 3년을 기다려야 했다. 모두 12년을 기다려서 혼례를 올리려고 하니, 이제는 약혼녀가 병이 들어 죽었다.”- 에른스트 폰 호세 지음, 정현구 옮김 「조선 1894」
‘驪騾犢特 駭躍超驤’아마 『천자문』중에서 가장 어렵고, 획수가 많은 글자가 아닌가 싶다. 나귀 려, 노새 라, 송아지 독, 소 특(특별할 특), 놀랄 해, 뛸 약, 뛸 초, 달릴 양이라고 읽고 ‘나귀와 노새, 송아지와 황소가 놀라 펄쩍 뛰고 달린다.’는 말이다. 황소와 나귀의 차이는 금과 쇠처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크지만, 조선 시대 귀한 집 자제들이 나귀를 경쟁하듯이 사서 교통수단으로 좋아했으므로 그 값이 소보다 비싼 적이 있었다고 하니 재미있기도 하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었다. 경제학자 ‘노드하우스’는 인간이 하루 벌어 몇 시간 동안 불을 밝힐 수 있느냐를 계산함으로써 어느 만큼 진보했느냐를 밝히기도 했다. 기원전 2300년 바빌론 시대로부터 고래기름으로 등불을 밝히기 전까지 4000년 동안은 하루 벌어 고작 10분 동안 불을 밝힐 수 있었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자는 시절을 무려 4000년이나 보냈던 것이다. 1700년대 고래 잡아 고기와 비누로 사용하고 남은 지방은 등불로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1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었다. 1850년에는 석유에서 추출한 등유로 하루 5시간 이상 불을 밝힐 수 있었고, 1882년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함으로써 2만 시간, 즉 하루 벌어 2만 시간 동안 불을 밝힘으로써 12만 배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釋紛利俗 並皆佳妙’는 삶의 힘듦을 풀어주고 세상살이를 이롭게 하니 모두 아름답고 절묘하다는 것이다.
춘추시대 월나라 미녀였던 西施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몸이 아파서 이마를 찌푸리고 다녔는데 그것이 너무 예뻐 마을 처자들이 모두 그를 따라 했다고 하고, 마치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도 잊을 정도라고 하여 ‘침어미인’으로 청송하기도 했다. 『천자문』에는 ‘毛施淑姿’라고 하여, ‘모장과 서시의 자태가 아름다웠다’고 했는데, 이는 월나라에는 미인이 서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장’이라는 미녀도 있었다는 말이다. 『장자』에 “모장이나 여희는 사람마다 미인이라 하지만, 물고기는 그를 보면 물속 깊이 숨고, 새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순록은 기운껏 달아난다.”고 하여 사람과 짐승의 본성이 다름을 비유했다. 중국의 4대 미인은 침어 서시, 기러기가 날갯짓을 잊었다는 王昭君, 달마저 부끄러워했다는 貂蟬, 꽃이 고개를 숙였다는 楊貴妃가 있다.
인간은 태어나 성장, 성공, 성숙이란 단계를 거친다. 주로 10대에 해당하는 성장의 시대는 폭풍을 시대로 모든 것이 처음이다. 친구도 이성도 낯설고 설렌다. 아름답지만 처연하고 순수하지만 거칠고 열정적이지만 무모하다.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의 숨 막히는 긴강감과 아름다움이 있다. 20대는 꿈의 시대지만, 세상은 그리 녹녹치가 않다.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삶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사랑과 배신, 성공과 실패, 꿈과 좌절,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멈추어야 할지 가능성과 현재의 가르마가 보이기 시작한다. 30대는 떨림의 시대다. 최초로 되돌아가는 떨림이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름다움 속에 아름다움만 있지 않고 성공 속에도 성공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자기 빛깔을 완전히 들어내어라. 겁먹지 마라. 자신을 짓눌렀던 온갖 관습 덩어리, 이념 덩어리를 벗어 던지고 꽃을 피워라. ‘年失每催 羲暉朗曜’이니라. “세월은 화살 같이 늘 다그치지만, 그래도 아침 햇살은 밝게 빛난다.”
‘璿璣懸斡 晦魄環照(선기현알 회백환조)’저자가 『천자문』문장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서정적 문장’이라고 한 것이다. ‘북두칠성은 맴돌아 빛나고 달은 돌면서 밝았다가 어두워진다.’는 뜻이다. “담 너머에서 또 삼경의 두 점(밤 11:24∼11:48분 사이)을 쳤다. 아아 슬프구나. 이 좋은 달밤에 함께 구경할 사람이 없으니, 어찌 우리 일행만이 잠들었을까? 도독부의 장군도 잠들었으리라. 쓸쓸함을 달래며 방으로 들어가 쓰러지듯이 베개에 머리를 묻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중
『천자문』마지막 993부터 1,000까지 여덟 글자는 ‘謂語助者 焉哉乎也’다. 처음이 그렇듯 이것도 의미심장하다. ‘이상의 말들을 도와주는 것이 언재호야다’『천자문』은 주흥사가 하룻밤 사이에 王羲之의 行書 1,000개를 뽑아 문장을 짓다가 마지막 여덟 자를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잠시 조는 사이에 도인이 나타나 마지막 문장을 가르쳐주었다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주흥사가 1,000자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끼워 넣었다고 하기도 하지만, 세상일에서 꼭 필요한 것을 마지막에 선택하는 것처럼 말과 글에 도움 주는 것이 어조사 아닐까 싶기도 하다.
중국 격언에 ‘불난 집에 불을 끄려다 수염을 태운 관리는 상을 받지만, 집에 불이 나지 않도록 잘 관리한 하인은 쫓겨난다.’는 말이 있다. 공을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세상인심인 것처럼, 어조사도 그렇다. 리더는 폼나는 일이 아니라, 똥내 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 그들이 진정한 영웅으로, 이 어조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