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안기부에서 불법 도청한 테이프 내용이 핵폭탄 같은 파괴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검찰 몇 사람만 보고 버리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도청 사실과 내용 일부를 국민에게 알려준 기자는 조사하고 구속할 지도 모른단다. 그러더니 국민들 여론이 좋지 않으니 여야 정당은 모두 마지못해 공개하는 쪽으로 좀 기우는 듯하다. 불법 도청과 그걸 알린 방송기자에 초점을 맞추고 부정부패 본질은 뒷전인 거로 보여 국민들 마음이 뒤틀리고 꼬이고 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도청 내용을 본 국정원 간부가 “그 내용은 핵폭탄처럼 무섭고 파괴력이 있는 것이다”라니 더욱 궁금해진다.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것이기에 불법 도청한 것을 보고 관련자를 처벌하지도 않고 국민에게 숨겼을까 의문도 생긴다. 검찰도 몰래 자기들만 보고 자신들에 관한 내용은 숨기려는 지 의심도 간다. 그러니 국민은 더욱 궁금해진다. 자기들만 알고 있겠다는 건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고, 또 국민을 속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부정부패를 계속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지배층인 정치인, 기업인, 공무원, 검찰까지 관련된 지저분한 도청 내용이 국민에게 알려지면 자신들 위치가 흔들릴까 염려되어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도청 사실과 내용 일부를 보도한 기자만 두들겨 패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언론이나 국민이 함부로 까불지 말라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을 속이고 바보로 만든 지배층의 부도덕성과 잘못은 괜찮고 그 사실을 알린 사람만 잘못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도청 사실과 그 내용을 국민에게 알려준 기자를 먼저 수사하겠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내가 보기에 “국민을 계속 속일 수 있었는데 너 때문에 우리 지배층의 더러운 꼴이 다 알려지게 되었다. 너 때문에 우리가 계속 국민을 바보로 만들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나는 지난번 도청 내용보도를 듣고 “국민은 속아 사는 거야. 언제까지 국민이 바보가 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그럼 그렇지! 그들이 깨끗하게 밝히고 제대로 처리할 리가 없지!”라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
나는 여기서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옛 이야기가 생각난다. 임금님의 이발사가 임금님의 추한 꼴을 숨기자니 속이 터질 거 같아 대밭에서 혼자 외쳤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 속담은 진실을 끝까지 숨길 수 없고 언젠가 어디서 불거질 것이란 뜻을 담고 있다. 그 도청내용을 아는 이도 혹시 누리통신 대밭에서 그 진실을 외칠지 모른다. 군사독재시절 유비통신이 생각난다. 검찰이 발표하지 않으면 괜히 부풀려지고 조작된 이야기가 떠돌아 세상을 더 뒤숭숭하게 할지 모른다.
지금 나의 상상과 의심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국민이 괜한 상상을 하고 의심을 하지 않으려면 검찰은 밝고 깨끗하게 조사하고 공익에 위배된 내용은 수사도 하고 공개해야 한다. 테이프 내용을 전부 사생활까지 공개하라는 건 아니다. 정경유착 부정부패 고리를 끊고, 정치인과 기업인의 가면극에 국민이 더 이상 속아서 살지 않게 하고, 순진하고 멀쩡한 국민을 바보로 만들지 말라는 뜻에서다.
지도자란 자들이 국민을 속인 건 도덕과 양심에 어긋난 짓이다. 법보다 도덕과 양심이 앞선다는 걸 검찰은 알 것이다. 법은 가면을 쓰고 국민을 속인 거짓된 지배층 몇 사람의 명예만 지키고, 떳떳하고 바르게 사는 국민의 명예와 자존심을 짓밟으라고 있는 건 아닐 것이다. 특정 지도자나 집단을 맹신하거나 광신한 사람들도 넓은 마음으로 이번 사건을 바라보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많은 국민은 이 나라의 지배층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가면을 쓴 사람들인지 대충 알고 있어 그 내용이 공개되더라도 놀라지 않는다. 많은 국민이 이 기회에 정치계와 기업인들이 한패가 되어 부정한 짓을 하고, 수사기관도 얼버무려서 계속되는 부패고리를 끊을 수 있기 바라고 있다. 이번에도 슬쩍 넘어가면 우리는 희망이 없다. 양심을 가지고 바르게 사는 국민을 절망시키지 말고 더 이상 속이지 말라. 곪은 상처는 당장 아프더라도 도려내야지 덮으면 더 큰 상처가 되어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