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계에 거주하는 친족 형(정치현)을 대신하여 쓰다-
-저자:만제 정치건(1825~1875)
-번역:시인, 수필가/인수 정용하
옛날 횡거(橫渠) 장 선생(송나라 학자 장횡거, 본명은 장재)의 자치 규약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널리 저축을 장려하고, 학교는 예절과 풍속을 이룩해야 하며, 그 뜻을 높이 받들어 저축과 학문을 행하지 않는다면 흥기 함은 불가능하고, 예절을 배우지 아니하면 얻는 것이 없기에 창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곧바로 그것들을 끌어들이되 3대에 걸쳐 신념을 가지고 서슴없이 시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에게 있어 중요한 방책은 앞의 과제를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 내가 규약에서 말하려는 것은 장 횡거의 이념을 가까이하고 이를 두텁게 여기는 것으로서 훈수(정 만양), 지수(정 규양) 두 분 선생의 강학에 따른 유지가 아니고, 횡거학의 주춧돌(기본 학설)에 근거한 것이다.
시와 예법 이것은 봉황이 전념하고 즐기는 것이며, 두 분의 정 씨(고대 중국학자 정호, 정이)의 책상은 이를 직업으로 삼았던 것이다. 더욱이 계산(溪山:산 이름)의 여유로운 햇볕은 장 선생의 사색과 탐구하는 책의 제목이 되어 평생을 함께하였으며 백 세대를 이어 내려온 이념으로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은 백년 전에 시행했던 규약인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향기로운 제도를 장차 어찌 휴식하며 덮어버릴 수 있겠는가. 왕성하고 굳건함을 드러내어야 할 것이며, 우리의 도(道)가 성하고 쇠함을 어찌 하늘의 운에 맡긴 채 빗장을 채워 놓을 것인가.
비방(誹謗)함을 전수함으로써 전래된 유풍(遺風)이 한적한 빈터에 있는 옛 주춧돌을 거칠게 하고 물속에 잠기게 하는 것은 지금을 위태롭게 하는데, 세월이 이를 승낙하도록 맡길 것인가? 강론과 학습으로 계속 이어가지 않는다면 모든 학문은 방임되고 지식은 얕아질 것이며 또한 도둑을 이기지는 못하는지라 분개함을 불태워 배움의 본심에 열매가 맺혀 감정이 풍부해지면 장 선생의 자치 규약은 오래도록 지켜지는 약속이 되어 마침내 약간의 재물(학자금 또는 장학금)을 모으니 몇 마리 비둘기(몇 사람의 인재)가 마을을 편안하게 할 수 있겠구나. 가르침을 권장하고 자원을 공급하여 학문의 입지(立志)를 세울 수 있도록 모두가 각자 노력한다면 성실한 자제(子弟)가 머무르는 곳은 배움터로다. 이러한 생각을 이어가려면 먼저 가르치는 것은 지금이 적기인지라 물을 뿌리고 빗자루로 쓸며 집 안팎을 청소하고 어른의 부름에 응대(灑掃應對)하고 그리고 물러나는 것은 예절의 본보기가 되어 줄 것입니다.
소학(小學:유학에서 초학자를 위한 책)의 그림쇠(원형을 그리는 제구)가 비정상적인 것을 단절시켜 지속적으로 인도함으로써 궁리하게 하고 바른 마음으로 수양한다면 이미 다스리는 사람의 도리가 되어 곧장 대학(大學:사서삼경 중 하나인 책)의 서광이 눈앞에 비상하도다. 아침에는 암송하고, 저녁에는 읊으니 질문하는 글에는 휘장이 겹겹이요, 복희씨 주역의 몽괘(蒙卦:64괘의 하나로 산밑에 샘물이 솟아나는 괘)를 수양하고자 올바른 수고로움을 무릅쓰며 글을 지어보도다. 해가 지나가면 달을 취하게 되니, 마침내 책궤가 펼쳐지면 앉은 자리가 가지런하고 청명한데, 예기(禮記:예법에 관한 책)를 가르치던 스승이 엄하니 가르치는 도(道)가 존엄함을 훈계하며 믿음을 보여 주는구나.
상황이 이와 같으니 옥간정(횡계마을 소재 정자)에는 물에 비친 달이 배회하고, 모고헌(횡계마을 소재 누각)에는 오늘 다시 태어난 정신이 거문고와 시문(詩文)으로 방불(막상막하)하니 옛사람의 운율에 메아리마저 다소곳해지는지라 어느 문하생이 황송하게 무시할 수 있겠느뇨. 훈수, 지수 두 분 선생께서 우리에게 남긴 자취이니 어찌 또한 장 선생의 뜻이 담긴 규약을 취하지 아니하리오. 오직 기다림에 의지한다면 지금의 나 또한 횡거 선생의 후예가 될 것이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배우는 일에 동참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를 두텁게 하지 않는다면, 오직 잘못은 자신에게 있기에 각 가정에 있어 부형(父兄)의 뜻은 유업(遺業)에서 낙오하게 될 것이며, 공경하면서 추락하지 않는 것 또한 자신의 뜻에 있는지라 각 가정의 자제(子弟)는 참다운 신념과 근면함을 가지고 시작하여야 할 것입니다. 푸른 쥐띠 해, 섣달 하순에 그 전말(顚末:처음과 끝)을 우러러 서술하니, 어찌 장 선생의 옛 규약을 닮을 수 있으랴마는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을 옳게 여기며, 밭갈이하는 순발력 있는 몸가짐은 이 집(옥간정을 지칭)의 후손으로서 오얏나무 정원에서 휴식하면서 물을 주고 있는 지수 어른(본명:정규양)의 후예이신 정 치현(鄭致賢)이로구나. 규약은 이미 이루어졌으며 이제부터 시행하되 이를 받들도록 하는 것은 뜻을 함께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인데, 아무개 등 부로(父老)들의 몫이로구나.
*원문출처: 회최고
*번역: 2015년
《첨 언》
*장 횡거: 중국 송나라 학자로서 본명은 장 재이며, 주돈이, 정호, 정이와 함께 그의 학문적 이론은 유학의 핵심서인 근사록(近思錄)의 요체를 이루고 있음.
*훈수 정 만양(1664~1730)과 지수 정 규양(1667~1732): 조선의 “백이숙제”로서 경북 영천 횡계마을에 거주하였으며 형제지간이다. 백씨이신 정 만양 선생의 호는 훈수(塤叟)이며 자는 개춘(皆春)이다. 아우이신 정 규양 선생의 호는 지수(篪叟)이며 자는 숙향(叔向)이기에 세상 사람들은 두 분의 선생을 가리켜 “양수 선생(兩叟先生)”이라고 불렀으며, 사람들은 형제분의 학문을 가리켜 송나라 학자 정호 정이 형제에 비유할 만큼 당대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자이다. 당시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기호학파 출신 조현명(후에 영의정 역임)께서 방문 인사차 들렀다가 양수 선생의 학문에 감탄하고는 자진하여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양수 선생의 문하생으로는 형조참의 매산 정중기, 동부승지 도중 정간, 승지 조석용, 판서 이유, 신준 등이 있으며, 매산문집에 의하면 양수 선생의 학문은 임금의 귀에도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당시 대궐의 고급 관리들 사이에서도 종종 거론되었다고 한다. 저서로서는 이기집성, 가례차의, 의례편고, 산거일기 등이 있는데, 유실된 것을 감안하면 백여 권으로 추정되며 특히 송나라 학자인 장 재의 “태허사상”에 심취하여 화북면 "도화동(桃花洞)"이던 마을 이름을 장 재의 호를 인용하여 "횡계(橫溪)"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훈수 지수” 라는 호가 암시하듯 시경의 소아아인사(小雅阿人斯) 편에 나오는 "형이 흙으로 만든 나팔(질나발 또는 오카리나)을 불면, 아우는 대나무로 만든 피리로써 대답을 한다"는 뜻으로 조화로운 형제간의 우애는 최상이었다고 전해진다.
■橫渠學楔序■
- 代橫溪族兄作 -
昔橫渠張夫子約鄕井略曰廣儲蓄興學校成禮俗其意盖以爲無蓄學不能興無學禮不得成迺引其慨然三代之志要與我數三同志而約曰今我橫渠卽粤塤篪兩夫子講學止遺址也詩禮焉鳳專美於兩程氏之所床做業溪山焉尤有光於張夫子之卜尋題號於平生乎百世之下想其百歲之前則郁郁文章何彼其休且盛矣而固知吾道盛衰盖關天理秉除遺風一堧旧址蕪沒者殆今哉許年所而繼述不作講習無所縱玆萬學淺識而窃不勝慨然與學之志實有感於張夫子鄕井之旧約也遂蓄若干物且鳩若干村聊爲獎學資與學所而胥各勉誠子弟居斯之學斯念玆而在玆先敎之以灑掃應對進退之莭則小學之規橫切矣繼導之以窮理正心脩已治人之道則大學之倏目詳矣朝誦暮唫問書帷之重重羲易蒙養正邛之蒙著矣日邁月征展函筵之秩秩載禮師嚴道尊之訓信矣如是焉玉磵水月徊甦當日精神慕軒琴書髣髴昔人韻響抑豈徒無忝我塤篪兩夫子遺躅也盖亦張夫子有志未就之約必有待於今我橫渠之後人也然斯學之與不粤惟在我各家父兄之心遺緖之墜敬不墜亦在我各家子弟之誠念之哉勉之哉歲靑鼠臘月下浣敍其顚末如右盖倣張夫子旧規今刱是耪者卽容軒後裔李庭休洎篪翁後裔鄭致賢也約旣成今從以事者乃同里知事之某某諸父老也
-경북 영천 횡계마을 소재 훈수 정만양과 지수 정규양 선생의 학구지소인 "태고와(후에 "모고헌"으로 변경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