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다. 거기다가 대숲에서는 제법 바람 소리까지 일었다. 하기야 대숲에서 바람 소리가 일고 있는 것이 굳이 날씨 때문이랄 수는 없었다. 청명하고 햇발이 고른 날에도 대숲에서는 늘 그렇게 소소한 바람이 술렁이었다.
전북 고창의 ‘고창읍성’, 해미면에 ‘해미읍성’과 함께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은 조선 시대 3대 읍성 중 하나다. 낙안읍성에 가는 길은 예보에 없던 비가 기분 좋게 보슬보슬 내렸다. 하여 풍광을 즐기며 운치를 만끽할 수 있는 우중 답사코스가 되기도 했다.
오래전, 아픈 아내를 삼광사 ‘불교대학’에 통학을 시키면서 따라 다니다가 어깨너머로 절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주위를 압도하는 사찰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지 가늠이 되었다. 절집은 우선 고요했다. 누군가 ‘고요하기가 마치 절간 같다’라고 한 말이 문득 생각난다.
전남 순천 조계산의 두 절 선암사와 송광사가 있다. 태고종의 선암사, 조계종의 송광사. 두 절 모두 ‘무지개다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절 초입에 있는 무지개다리는 차안 此岸(이 세상)에서 피안 彼岸(열반의 세계에 도달)으로 건너가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들이 사는 이곳을 이승이라 하지만 죽은 영혼이 간 곳을 저승이라 하듯,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곳을 차안이라 하고 깨달은 사람이 사는 곳을 피안이라고도 한다.
송광사는 삼보三寶 사찰 중 승보僧寶 사찰이다. 무지개다리 위의 집인 ‘우화각’은 송광사의 절경을 대표하는 곳 중 하나다. 우화각을 지나면 절의 ‘검문소’ 역할을 하는 사천왕이 맞는다. 몇 년 전부터 사찰을 찾으면 관심이 가는 곳이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천왕문 안에 있는 사천왕상 四天王像이었다. 어느 절이고, 사천왕이 서 계신 것이 아니며, 적어도 사천왕이 있는 곳은 예로부터 의병들이 모이는 집결소였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에는 물론이고 사천왕의 힘을 빌려 왜놈들을 모조리 쫓아내고 이 유린당한 강토를 되찾아 수호하는 것이었다.
전국 절의 사천왕상 중 최고라 생각하는 사천왕상이 이곳에 있다. 호탕하면서도 자애로운 얼굴은 한국 조각 역사에서 단연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보면서 강한 기운을 얻기도 하는 사천왕상이다. 4m가 넘는 네 명의 장수가 문 양쪽에서 눈을 부릅뜬 기세에 압도당하지만, 용맹한 장수의 머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쁜 화관을 쓰고 있다. 눈은 왕방울만 하고 콧구멍은 아이 주먹이 들어갈 만큼 뻥 뚫려 있다. 하마 같은 큰 입은 굳게 닫거나 하얀 치아를 몽땅 드러내기도 하며, 눈썹과 콧수염·턱수염은 흰색·회색·검은색·푸른색 등으로 온갖 멋을 부린 네모난 사천왕의 얼굴은 호탕한 기운 그 자체였고 해학적이지만, 절 마다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는 사천왕 네 분, 그리고 그 발밑에 아귀들까지 온갖 먼지가 덮어쓰고 있었다.
얼마 전 다녀온 부산 기장 장안사에는 사천왕상은 쇳물을 부어 놋쇠 주물판으로 제작되어 있었고, 해남 대흥사는 사천왕상을 모신 누각인 천왕문은 없었고 대신 해탈문이 있었다. 해탈문에 들어서면 상단에 동자승이 학을 타고 날아가는 그림이 이채롭고, 양쪽 벽면엔 푸른 사자를 탄 문수보살이 왼손에 연꽃을 지니고 있으며,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은 오른손에 연꽃을 지니고 있었다. 다녀온 절집 중 순천 송광사의 사천왕상은 단연 압권이었다.
훨훨 날아 이곳저곳 가고 보고 싶은데 현실의 모든 일은 부질없고 지겹고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이 또한, 욕심이요 번뇌에 불과하다는 것임에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사천왕들의 옅은 미소가 흐르고, 차안에서 피안은 나의 삶이라는 것을…. 고요하기가 마치 절간 같다는 절집 마루에 앉아 쏟아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의 때마저 말끔히 씻겨나가는 기분이다. 커다란 연잎에 후두두 내리치는 빗소리, 빗물 대롱대롱 맺힌 거미줄, 마당에 소담스럽게 핀 풀꽃들이 비바람에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