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열리고 수용할 때 지혜가 증장한다
회사에서 승승장구만 하는 사람은 교만해 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승승장구를 하다가도 주춤 거리고 무너지기도 하고, 또 잘 해나가다 말고 또 다시 욕도 얻어먹고, 좌절도 당해보고 이러던 사람들은 삶을 대게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삶을 바라보는 안목이 상당히 넓어지게 됩니다. 많은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넒은 가슴이 생겨요.
그런데 언제나 잘 나가고, 성장만 하고 좋은 일만 계속 생기던 사람은 오히려 이것이 최악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게 왜 최악의 상황이겠어요? 인간계에 우리가 온 목적이 고해라는, 나에게 적합한 고를 통해서 성장하기 위해서 온 것인데, 그 고가 내 인생에 오지 않는다면 아무 삶의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왜 그런고 하니, 천상과 달리 인간계는 이 몸이라는 육신에 구속되어 있다보니, 이 몸을 나와 동일시하게 되고, 그렇게 아상과 아집에 묶여 있다보니 더 크게 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곳인 것이죠. 이 몸이 진짜 내가 아니지만, 인간계에서는 우리 몸을 비롯한 물질적인 것을 진짜라고 집착하고 거기에 얽매이기 때문에 본래 없던 고통을 만들어 내는 측면이 큰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괴로움을 크게 진짜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측면으로 인해 우리가 인간계에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게 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고의 소멸과 해탈, 열반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인간계의 고통과 고통을 통한 성장이라는 구조는 우리를 해탈, 열반이라는 근원적인 자리로 이끄는 아주 좋은 공부의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계만이 가지는 놀라운 깨달음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
이것을 바로 보고, 인간계의 괴로움이 단순한 괴로움이 아니라 괴로움을 통해 해탈, 열반으로 나아가는 성스러운 진리임을 설하신 것이 사성제의 고성제입니다. 그 괴로움의 원인이 나와 세상을 진짜라고 착각하는 무지와 무명에서 시작되며, 그 어리석음으로 인해 욕망하고 집착하면서부터 괴로움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 집성제이지요.
괴로움에 허덕이는 삶을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이 고통에서 벗어나야 겠다는 간절한 발심을 하게 됩니다. 결국 해탈 열반이라는 완전한 자유를 꿈꾸게 되고,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해탈 열반이 진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 알려주신 것이 바로 멸성제입니다. 당연히 그 열반에 이르는 길인 도성제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자세하게 담겨져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렇게 사성제에 입각해 생각해 보았을 때,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고에 대한 관점은 완전히 뒤바뀌어야 합니다. 괴로움이 올 때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 것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성스러운 진리로써,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 온 고맙고도 감사한 경계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당연히 고가 왔을 때 가슴을 활짝 열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괴로움이 올 때 괴로움 그 자체를 수용하고 허용하게 되면 곧 지혜가 생겨납니다.
쉽게말해 지혜가 증장한다는 게 뭘 의미하냐하면요, 허용하는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용하는 것이 넓어질수록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옛날에는 마음이 꽉 닫혀가지고 요만큼만 받아들였는데, 공부를 하게 되면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생겨요.
인생공부, 마음공부는 결국 옹졸하고 비좁은 마음을 활짝 열어서 진리가 들어올 수 있도록,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여는 작업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완전히 드러나 있지만 중생들이 마음을 닫아 걸고 선택적으로 분별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동안 진리가 나에게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음만 열면 진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중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꽃](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7.gif)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_()_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