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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는 내 인생의 전반전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하루 동안도 즐겁고 기쁜 날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저에게는 수면무호흡증이 있습니다. 물론 옆에서 자던 아내가 지적해서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봤더니, ‘입벌림방지밴드’를 입에다 붙이고 자면 좋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 코골이라고 할 때, 코고는 소리는 코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입에서 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코골이는 코골이가 아니고 ‘목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숨을 쉴 때 들숨은 코로만 쉬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잘 때에는 코로 들이쉬고 코로 숨을 내뱉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입벌림방지밴드’를 붙이고 잡니다.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밴드를 붙이고 자면 코골이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방치료로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저는 한방치료도 겸하여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 말을 듣기 전까지가 전반전이고, 이 말을 들은 이후부터는 후반전입니다.
당신은 언제 잘 사는 느낌을 받나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후반전을 살 건가요? 그리고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나의 자녀도 살길 원하나요? 이 물음에 한 번 답을 찾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 삶을 진단하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때로, 우리 인생은 예리한 질문 하나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삶이란 게 복잡하게 풀려고 하면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쉽게 풀려고 하면 한없이 간단한 문제입니다.
가끔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야 할 때가 있지만, 이정표를 한 번씩 보는 것도 지혜입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들여다봐야 하고, 모르면 물어봐야 합니다. 삶은 간단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데 물어보지 않는 것’입니다. 더 미련한 것은 ‘물어봐서 답을 알았는데도 계속 잘못된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럴 것이면 왜 물어본 걸까요?
회개(悔改)라는 단어 자체는 종교적인 말이 아니라 ‘가던 방향을 틀어 바꾼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묻는 것은, ‘알기 위함’이라기보다 방향을 수정하기 위함입니다. 물어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모르는데 묻지 않는 것이 정말 부끄러운 것입니다. 내 가슴에게 물어보고, 각 분야의 선배에게 물어보고, 그래야 방향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이 차이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젊을 때에는 ‘젊기 때문에 그냥 예쁜 구석’이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내 길을 몰라도 큰 흉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는데, 해놓은 것도 없고 가고자 하는 길도 없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허송세월하며 산 것을 부모 탓, 배우자 탓, 세상 탓만 한다면 아름다운 인생이라 할 수 없을 겁니다.
걷다가 중간에 그 길을 모르면 꼭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세상이 안내해 줄 겁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꼭 이정표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두 질문의 답이 ‘예’라면, 나는 올바른 방식과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고, 그 답이 ‘아니다.’라면 내 삶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입니다.(출처 ; 지금까지 산 것처럼, 앞으로도 살 건가요?, 김창옥)
●인생을 많이 살아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말씀을 들으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잘 마무리 지을까 하는 점을 배울 것이다.(잠언1장 5절)
●인생에 닥치는 불행에 일일이 슬퍼하느니, 차라리 삶의 부조리함에 웃음을 터뜨리는 편이 낫다. 웃음은 영혼의 여유를 드러내는 근사한 회복력의 한 형태다(에리카 산제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하루 동안도 즐겁고 기쁜 날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저는 비교적 치아가 좋은 편이었으나 충치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래서이번에 임플란트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적어도 6개는 해야 한다고 어림으로 짐작했으나, 치과에서는 하나만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치아 하나는 거의 썩어서 뽑아야 하건만, 담당 의사는 치아를 살리는 편이 훨씬 좋다고 하면서 아주 어렵게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대개는 썩은 치아를 확 뽑아버리고 임플란트를 하는 편이 의사 자신에게는 훨씬 더 편하고 수입도 더 좋으련만, 의사는 환자인 저를 위해서 치아를 살려두는 편을 택했던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참 좋은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보람 있게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가져다주듯이 값지게 쓴 인생은 편안한 죽음을 가져다준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실하게 삶을 산 사람은 후회도 없을뿐더러 마지막 순간조차도 평안한 법입니다.
‘엔딩노트’는 아버지가 말기위암 진단을 받자, 딸이 아버지의 평소 모습부터 임종 순간까지 촬영해서 기록으로 남긴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입니다. 아버지는 죽기 사흘 전에 병문안을 온 친구와 농담하기도 하고 아흔이 넘은 노모에게 전화를 걸어 작별 인사를 나누기도 합니다.
2013년 서울의 어느 신문은 〈웰다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아름다운 임종 모습을 보여준 국내 유명 인사들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일흔아홉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헤어디자이너 그레이스 리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나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하얀 꽃 꽂고 질질 울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핑크와 빨강 장미꽃으로 장식해줘. 올 때는 제일 멋진 옷을 입고 예쁘게 꾸며서 와. 제사는 지내지 말고 내 생일에 다들 모여서 맛있는 음식 차려놓고 와인 한 잔 마시면서 보내. 탱고를 춰준다면 얼마나 멋있겠니.”
그의 수제자인 이희 원장은 고인이 바라던 대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이 원장은 평소 고인이 “누구나 태어나면 한 번은 가는 것이고, 제가 살 것을 다 살고 가니 억울할 것도 없다. 다만 오늘을 성실하고 멋있게 살면 그뿐”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레이스 리는 평소 자신이 바라던 대로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고 떠난 셈입니다.(출처 :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가, 정현채)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3;16)
●삶의 끝에 남는 질문은 두 개다. 누구를 도왔나? 얼마나 배웠나?(찰스 핸디)
저는 행복한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고 기쁜 날이 계속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매일 매 번, 저는 식사하는 일이 그야말로 일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 같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식사하는 일이 즐겁거나 맛있어서가 아니고 하나의 의무감이나 사명감을 가지고 식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대변보는 것도 저에게는 하나의 일이 되고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대변보는 일을 거르게 되면 그날은 다시 대변보기까지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간호사들이 찾아올 때마다 첫 인사가 “대변을 봤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대변을 봤다!”고 하면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기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모든 사물은 들어가는 것이 있으면 나오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들어가는 것은 있는데 배출하는 것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들어가는 것이 없다면 그 사물은 그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거나 정지하게 마련입니다. 주지하듯이 이스라엘의 사해(死海)는 ‘받아들이기만 하고 배출은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생물도 살지 못하는 ‘죽음의 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해마다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이 되면 헌금한 돈을 필요한 곳에 그 전액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정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울증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지 3년이 흘렀습니다. 가지각색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 저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이 녀석은 최근 ‘불안’이란 탈을 쓰고 저를 괴롭혔습니다.
얼마 전에 이사 온 집은 완공되지 않은 신식 아파트입니다. 세련된 집이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밤에 침대에 누우면 어느 집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생생히 드리고, 윗집에서 걸어다니는 발소리가 북소리처럼 쿵쿵 울립니다. 층간소음이 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면서 두통이 몰려왔습니다. 급기야 집이 조용해도 언제 시끄러워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습니다. 하루 종일 걱정만 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는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점점 심해지는 불안을 저 혼자서는 잠재우기 어려워 병원을 찾았습니다.
“눈앞에 꽃들이 만개한 아름다운 꽃밭이 있는데 시든 꽃에만 집중하고 계시네요.” 상담선생님의 조언을 듣자, 비로소 저의 상태가 객관적으로 보였습니다. 저의 불안감은 ‘주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꼬리를 물면서 끌고 오는 감정’이었습니다. ‘윗집 사람이 쿵쾅쿵쾅 걸으면 어떡하지?’ 쓸데없는 걱정들로 저의 감정들을 축내고 있었던 것을 깨닫고는 참 허망했습니다. 이제라도 제 불만의 원인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현재에 집중하기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층간소음이 걱정되려는 순간, ‘지금은 집이 조용하고 제가 아기와 즐겁게 놀고 있다’의 상황에 몰입하는 연습을 꾸준히 반복했습니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로 인하여 저의 마음은 눈에 띄게 평온해졌습니다.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사는 법을 진작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기가 곤히 낮잠을 자는 지금, 제가 좋아하는 글쓰기에 집중해 봅니다.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어와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부드럽고 주변은 고요합니다. 이런 평화를 행복이라 불러도 괜찮다면, 저는 행복한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출처 ; 샘터2024년 8월호, 김내현)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5:3)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전진(前進)입니다.(영화 ‘스탠바이, 웬디)
한 켠의 정원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남자가 있었습니다.
독방에서의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던 남자는 교도소장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작은 귀퉁이라도 좋습니다.
조금이라도 가꿀 수 있는 정원을 허락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치범으로 억울하게 수감된 사정을 알고 있던 교도소장은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꽃이나 나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정성껏 심고 가꾸자 작은 정원은 풍성한 화원이 되어갔습니다.
이 모습을 본 남자는 깨달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정성 들여 가꾸니 꽃이 피는구나.
비록 감옥에 있지만 마음까지 잠식되지 않도록 열심히 가꿔야겠다.’
매일 정원을 가꾸며 마음을 다스린 남자는 27년이 지나서 출소했지만 매우 건강했습니다. 감옥에서 억울하게 27년을 보낸 분노를 정원의 깨달음을 통해 화합과 화해로 풀어냈던 남자는 훗날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의 이야기입니다.
교도소에서도 한 켠의 정원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듯이 죄로 물든 우리의 마음 한 켠에도 복음의 씨앗만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경건 생활로 마음을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히 채워가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을 내 마음의 왕과 구원주로 공고히 모시게 하소서.
생명의 복음이 잠시라도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그리스도인의 시선
세 명의 친한 친구가 세계에서 가장 큰 협곡인 ‘그랜드 캐니언’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한 친구는 그랜드 캐니언을 보자마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정말 장관일세. 그림보다 더 멋진 장관이야.
이 모습을 화폭에 그리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네.”
이 사람의 직업은 미술가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두 번째 친구가 말했습니다.
“사람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하나님의 솜씨이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참으로 자연을 웅장하고 오묘하게 만드셨어!”
이 사람의 직업은 신학자였습니다. 세 번째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여기서 소를 잃어버리면 도저히 찾을 수가 없겠는걸?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야.”
이 사람의 직업은 카우보이였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같은 세상도 다르게 보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 가운데 바르게 살아가는 지혜를 구하고 순종하십시오. 아멘!
주님! 세상에서 해야 할 성도의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지혜를 주소서.
성도의 시선으로, 주님의 제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바로 오늘
중세의 유명한 성직자 엘라이에게는 많은 추종자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한 제자가 물었습니다.
“예수님과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죽기 직전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강도처럼 죽기 직전에 믿으면 똑같이 구원을 받습니까?”
엘라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제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너무 좋은 소식이군요.
그런데 죽을 날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엘라이는 한참을 웃고 난 뒤에 대답했습니다.
“그걸 알면 제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믿고 있겠습니까?
죽을 날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오늘 믿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미래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며 오늘은 나를 위해서만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신앙이 우선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오늘 순종하고, 바로 오늘 전도하며, 바로 오늘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한눈 팔지 않고 주님이 주신 사명자의 푯대만 바라보게 하소서.
헛된 유혹에 이끌리지 말고 오늘도 마지막 날처럼 예배하고 순종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미국의 유명한 장군 로버트 리가 기차를 타고 휴가를 떠나던 중이었습니다. 부대 근처라 많은 병사들이 기차에 타고 있어서 빈자리가 없었기에 한 할머니가 힘들게 서서 가고 계셨습니다.
고된 훈련으로 지친 병사들은 할머니를 외면하고 잠을 자거나 딴청을 부렸습니다. 이 모습을 보다 못한 로버트 장군이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자 장군을 알아본 병사들이 저마다 장군께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장군은 병사들의 배려를 마다하며 할머니를 자리에 앉힌 뒤 말했습니다.
“노약자에게 양보할 자리가 없는데 나 같은 건장한 중년에게 양보할 자리가 있겠나?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앉게.”
마지못해 자리에 앉은 병사들은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미국 병사들은 노약자에게 무조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이웃을 모른 척하는 반쪽짜리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이웃사랑도 실천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바로 서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이 주신 계명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달변보다 중요한 것
캐나다의 한 대선 토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외모가 불편해 보이고 말투가 어눌했던 한 후보가 토론회에 앞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말이 어눌하고 느려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의 부족함 때문에 제 진심을 온전히 전하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 주신다면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저의 진심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상대 토론 후보가 꼬투리를 잡았습니다.
“총리라는 직책을 수행하는데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나라를 대표하는 총리로서는 치명적인 결점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는 말은 어눌할지언정 절대로 거짓말은 안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신뢰와 성실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던 장 크레티앙은 말만 번지르르한 거짓된 정치인들을 제치고 캐나다의 총리가 됐으며 ‘기적의 총리’로 불리며 3선에 성공할 정도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번지르르한 말보다 정직한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이 더 필요한 시대입니다.
세상의 오해와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주님과 함께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충성된 종이 되십시오. 아멘!
주님! 진리의 말씀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씀대로 행동하게 하소서.
옳은 말보다 옳은 행동을 위해 노력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베푸는 삶의 복
미국 미시간사회연구소의 스테파니 브라운 박사는 성경 말씀을 따라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연구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남을 한 번도 도와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정기적으로 기부나 봉사를 하는 사람에 비해 사망률이 2배나 높았습니다.
수백 명의 부부를 5년간 조사한 결과였고, ‘심리과학(Psychology Science)’이라는 전문학술지에 실릴 정도로 신뢰성이 있는 자료였습니다.
브라운 박사는 ‘남을 돕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전문학술지에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행동과학자 존 잭커는 성경에 나온 대로 원수라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거나 혹은 받을 경우에는 마음이 호의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아무리 작은 도움이라도 주거나 받았을 때는 적대적인 마음이 호의적으로 변했습니다. 행동을 반복할수록 성과는 더 좋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적당히 듣기 좋은 격언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관계를 변화시켜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실 놀라운 기적의 방법입니다.
원수도 사랑하고 받기보다 베푸는 삶으로 말씀의 능력으로 삶을 변화시키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의 말씀이 곧 모든 문제의 정답임을 알게 하소서.
인생의 문제에는 성경이 말하는 해답을 적용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믿어지는 은혜
시골에서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니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또래 친구들보다 똑똑했던 학생은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를 다니기는 했지만 그 안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전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커다란 바다를 사람이 갈랐다는 게 말이 되나?’
‘처녀가 어떻게 아들을 낳아?’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난다고?’
나름 믿어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으나 번번이 이성이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더 이상 교회에 흥미가 없었던 학생은 발길을 끊고 법대를 목표로 공부에만 매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를 하는 중에도 자꾸 성경에 눈이 가고 마음이 쓰였습니다. 도저히 공부가 되지 않아 성경을 펴보니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는 족족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전능한 구원자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학생은 그날로 주님을 영접하고 법대가 아닌 신학과에 진학해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만나교회 김우영 원로 목사님은 말씀이 믿어지던 그날 ‘1955년 1월 8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영의 말씀입니다. 머리와 가슴이 아닌 영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성경의 모든 말들이 믿어지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아멘!
주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의지하지 않게 하소서.
영의 눈을 열게 해주실 주님을 믿으며 주야로 말씀을 묵상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찬송이 된 삶
어려서부터 공장에 들어가 하루 종일 캐비닛만 만들던 기술공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공장에서 망치질만 하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열등의식과 분노로 가득 찬 그의 인생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매일 술에 취해 밤거리를 쏘다니던 그는 우연히 교회에 들어가 요한복음 3장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누구나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씀이 그의 마음의 모든 분노를 씻어냈습니다. 기술공은 다음날부터 하나님이 주신 기쁨으로 캐비닛을 만들었습니다. 평생 캐비닛만 만들 것 같던 그의 삶은 조금씩 달라져 목공소를 운영하게 됐고,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큰 복을 풍성히 누린 기술공은 노년에 전 재산을 하나님께 바치며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종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첫날 목사님은 감격에 겨워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이 몸에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찬송가 488장의 작사가인 에드워드 모트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주님의 손을 놓지 않는다면,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님이 주신 기쁨이 담겨 있다면 어떤 일을 하든 그곳이 천국이며, 모든 일이 예배입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가득 채우고 전하십시오. 아멘!
주님!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구원의 감격을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하소서.
내가 있는 모든 공간을 하나님의 기쁨으로 채우고자 노력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아들을 잃은 마음
만삭의 임산부가 부유한 마을의 집들을 돌아다니며 이상한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례지만 혹시 입양할 아이를 구하고 계시나요?”
미혼모로 아이를 키울 환경이 되지 않았던 헤나는 곧 태어날 자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가정을 찾고 있었습니다.
18살에 결혼을 하고 바로 임신했던 헤나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했지만 남편이 원인불명의 심장마비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의 마지막 선물인 ‘태기’를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은 최선의 가정을 찾아주는 일이었습니다.
헤나는 갓 태어난 태기를 안고 너무 사랑하지만 보낼 수밖에 없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영상으로 남겼는데 자녀의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보내는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창조의 원리를 거스르고 죄를 범한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귀하신 독생자 아들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독생자를 포기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나를 포기할 수 없었던 위대하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을 한시도 잊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헤아릴 수 없는 주님의 사랑에 오직 순응하며 감사하게 하소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솔선수범하라
중국 주나라의 공신 태공망이 쓴 ‘육도삼략’에는 장수가 병사들의 마음을 얻는 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병사들이 먼저 앉기 전에는 자리에 앉지 말고
샘을 다 파기 전에는 목마르다고 하지 말아라.
식사가 완성되기 전에 시장한 티를 내지 말고
병사보다 먼저 식사를 시작하지 말아라.
막사가 완성되기 전에 피곤한 티를 내지 말아야 하며
병사들 막사에 불이 꺼진 뒤에 막사에 불을 꺼라.
겨울에는 외투를 입지 말고, 여름에는 부채를 쓰지 말아라.
비 올 때 함께 비를 맞는다면
병사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장수를 따른다.’
3천 년 전에 쓰인 내용이지만 오늘날 사회를 살아가는 리더와 세상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참고할만한 좋은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먼저 본을 보이고 이와 같이 하라고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예수님처럼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한 희생과 수고를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말보다 행동으로 세상에 말씀을 전하게 하소서.
말씀을 행함으로 세상의 빛으로 본을 보이는 하루를 삽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봉사의 기쁨
노숙자 급식 봉사를 이어간 임모씨의 사연이 한 일간지에 소개됐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또 기쁘게 봉사했다고 합니다. 그는 한때 자신이 이른바 ‘나이트 죽순이’(나이트클럽에서 죽치고 사는 여자)였다고 소개했습니다. 돈이 많아 외제차에 명품으로 치장했던 삶도 고백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남자를 바꿔 만나는 등 욕망을 따라서 목적 없이 달려갔던 과거도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찾아온 감정은 극심한 우울함과 허무함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살 시도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공허한 삶에서 그를 건져준 일은 노숙자들을 위한 급식 봉사였습니다. 봉사가 얼마나 기뻤는지 그는 몸이 아플 때도 급식 현장으로 달려갔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봉사라는 말은 싫어요. 기쁨을 얻으러 가요. 그 뿌듯함은 말로 표현 못 해요. 수천만 원을 벌었을 때보다 더 행복해요.” 정신의학자 칼 메닝거 박사는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자신보다 더 심한 우울증 환자를 돕도록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타인의 손을 잡아줄 때 나도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박지웅 목사(내수동교회)
빛나는 인생
찰스 콜슨(1931~2012)은 미국 닉슨 대통령 시절,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이었습니다. 콜슨은 탁월한 법조인이자 정치인으로서 닉슨 대통령과 관련한 모든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닉슨이 정치적인 문제로 대통령직에서 사퇴하자 콜슨은 관련된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석방됩니다. 콜슨의 정치 이력과 법조인으로서의 이력은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콜슨은 교도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돼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콜슨은 교도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출소 후 재소자와 전과자, 범죄 희생자, 그리고 그 가족을 돕는 ‘교도소 선교회’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2012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교도소 복음 선교 사역에 전념합니다. 그 결과 그는 1993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 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콜슨의 인생이 가장 빛났던 것은 언제일까요. 그의 인생이 가장 빛났던 시절은 백악관에서의 생활이 아니라 교도소 선교 사역을 할 때였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언제 빛나는 것일까요.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빛이 납니다.
이장균 목사(순복음강남교회)
마음의 힘
파리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의 선전이 화젯거리입니다. 그중에서도 메달이 결정되는 순간은 아슬아슬하기만 합니다. 양궁 종목에서 김우진 선수와 미국의 브레이디 엘리슨 선수의 대결이 한 예입니다. 두 선수의 기량은 누가 금메달을 따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마지막 한 발로 메달을 결정하는 슛오프에서 김우진 선수의 승리로 마무리됐습니다.
슛오프에서 두 선수는 모두 10점을 쐈습니다. 하지만 김우진 선수의 화살이 정중앙에서 55.8㎜, 엘리슨의 화살이 60.7㎜ 간격을 보이면서 고작 4.9㎜ 차이로 김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엘리슨 선수의 처지에서 보면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요.
인생길에서도 이런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너무 마음 상하거나 억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속이 편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달랠 줄 아는 ‘마음의 힘’이 필요합니다. 다음의 승리를 다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격려하는 것도 다음 승리의 자양분이 됩니다. 시편 116편 7절이 생각납니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안 아픈 데 없지만
아내가 읽고 있는 책을 보다가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 집어 들고 읽었습니다. 제목이 ‘여기저기 안 아픈 데 없지만 죽는 건 아냐’입니다. 저자인 소노 아야코는 여든 무렵 셰그렌증후군이라는 병을 진단받습니다. 관절의 결합조직이 변성돼 아교 성분이 늘어나는 병이라고 합니다. 그때 의사가 들려준 말은 “이 병은 약도 없고 낫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이 병으로 죽지는 않습니다”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의사의 말에 속이 후련해졌다고 합니다. 통증과 불편이 따랐지만 죽지 않는 병임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삶의 모든 순간을 지나 이제 종점에 다다랐다고 고백하는 작가는 건강한 몸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프랑스 속담을 소개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아예 생각하지 않는 잘못된 버릇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병은 내 몸이 나와 대화하자고 보내는 신호이니 그 신호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몸은 건강하지 않은 몸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고 합니다. 기계나 몸이나 세월 지나면 고장 나는 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야코가 그렇게 말해도 저는 더운 여름에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도합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아침에 나가보니 마당에 있던 새끼 제비가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일인지 제비집에서 떨어진 녀석이었지요. 절뚝거리면서 날지도 못하는 게 아무래도 많이 다친 듯했습니다. 흥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살펴주려 했지요. 그런데 얼마나 잽싼지 도무지 잡히지 않았습니다. 요즘 들고양이도 많고 뱀도 출몰한다는데 참 걱정입니다. 이 녀석에게 내 손에 잡혀야 안전하다는 걸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요.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힘 있게 붙들어 주십니다.”(시 139:10, 새번역) 시편 시인의 고백입니다. 아마 한때 시인은 주님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도망칠 수 없었지요. 그가 하늘로 올라가도 땅속으로 내려가도 주님은 거기에 계셨습니다. 동녘 너머로 날아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셨지요. 주님을 피해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인은 주님의 손에 자신을 오롯이 내맡기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시 139:24, 새번역)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나는 배웠다
마야 안젤루는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흑인 여성 중 한 명입니다. 시인 작가 배우였던 그녀는 자신의 험난한 삶을 기록한 자서전에서 ‘나는 배웠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배웠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이 오늘 아무리 안 좋아 보여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내일이면 더 나아진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과 삶을 살아가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양쪽 손에 포수 글러브를 끼고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무엇인가를 다시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내가 여전히 배워야 할 게 많다는 것을.”
우리는 늘 배워야 합니다. 겸손함과 성실함을 가지고 배워야 합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잘 배우는 사람입니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지식사회, 초격차 시대 속에서 수많은 정보와 새로운 소식이 쏟아집니다. 최고의 지혜를 최고의 스승을 통해 배우십시오. 예수님은 최고의 스승이십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세 번의 질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낙향한 베드로를 두 번째나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세 번의 질문과 세 번의 명령을 하셨습니다.
같은 말씀이지만 오늘 저에게는 세 가지의 다른 명령으로 주셨습니다.
15.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 육체적 배고픔, 아픔 등 현실의 문제 해결을 도우라.
16.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 하나님을 향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라.
17.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 영적으로 먹이고 양육하라. 영.혼.육을 위한 전인적인 목양을 하라.
요한복음 21:15~17
감정의 새활용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 사용했던 일회용품들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고, 자원의 선순환을 위한 노력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람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감정을 주고 받습니다. 주고받는 감정 중에 남겨두고 싶은 감정이 있는 반면 버리고 싶은 감정들도 있고, 꼭 버려야하는 감정들도 있는데요.
제가 살고있는 아파트 관리소에서도 재활용 수거장을 새롭게 정비하고 깨끗한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엊그제는 퇴근하면서 현수막의 문구가 마음에 와 닿아서 ‘우리의 감정에 한번 적용을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비운다.
➜ 마음 속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것을 거꾸로 기울여서 흘려 보내야 겠지요. 신앙적으로는 성령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내 자아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기울여서 쏟아내야 합니다.
2. 헹군다.
➜ 용도에 따라 담겨졌던 내용물들을 깨끗한 물로 씻어내야 합니다. 재활용장에 수도가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단계를 하기엔 무척 귀찮습니다. 대부분 그냥 생략을 합니다. 물이나 음료의 경우는 생략이 가능하지만 음식물을 담았던 용기는 꼭 물로 씻어서 버려야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신앙적으로는 내 마음과 생각에 붙어 있는 부정적 감정을 기도와 성경 말씀으로 씻어내는 단계 입니다.
3. 분리한다.
➜ 재활용 용기에 붙어있는 라벨이나 종이, 스티커 등 다른 재질을 분리해야 합니다. 부정적 감정은 우리의 명예, 지위, 배움,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주지 않습니다. 감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을 때는 사회적, 학문적, 종교적으로 획득한 일종의 사회적 명함을 제거해야 한다고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4. 섞지 않는다.
➜ 재활용품은 플라스틱, 캔, 유리병, 스티로폼 등 종류별로 구분해야 효율적인 분류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섞어서 버리면 나중에 그것을 또 분리해 내는 시간과 수고를 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버릴때 다른 감정과 섞이지 않고 더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화가났다면 화가난 상황에만 집중해야지 원망, 불편, 시기, 질투 등 더 확산시킬 수 있는 감정들과 섞이지 않도록 분리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재활용 현수막을 통한 버려야할 감정들을 위한 제언을 해보았습니다.^^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잠언 12:25)
겸손의 뒤꿈치
오늘은 군대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군인들이 신는 신발을 ‘전투화’라고 하죠. 요즘은 전투화도 국내 유명한 아웃도어 회사와 협약해서 착용감이 참 좋습니다.
저도 대위로 전역한 이후, 명예 진급의 기회가 있어서 예비역 소령이 되었습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명예진급을 신청한 큰 이유중 하나가 바로 '신형 전투화'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개인적인 이유로 등산에 무척 몰두한 기간이어서 튼튼한 등산화가 필요했었기에 신형 전투화를 준다는 소식은 명예 진급을 신청할 매우 좋은 이유가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전투화를 신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투화를 ‘발에 길들이기’까지는 아픔의 과정이 있습니다. 발뒤꿈치가 까지는 신고식을 치루는 과정이죠. 여성 분들이 예쁜 힐을 처음 신으면서 겪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개량된 전투화라서 '뒤꿈치 신고식'의 과정을 생략해도 되는 줄 알고 첫날부터 등산 코스를 아무도 다니지 않는 저만 알고있는 험하고 깊은 골짜기로 향했습니다.
결과는? 예상하신대로 호된 뒤꿈치 신고식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내려올 때는 뒤꿈치가 까져서 절뚝거리면서 내려왔고, 좀 천천히 길들일껄 하는 후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에게 들킬까 며칠을 조용히 지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인생과 신앙의 과정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새로운 직장, 만남, 새로운 교회 공동체, 신앙의 목표를 향한 새로운 시작에서...
새로운 신발을 신어서 기분이 좋고... 푹신한 느낌도 좋고... 보여지는 모습도 폼나고 좋지만...
막상 그 신발을 신고 내가 그 신발에 길들여지고, 신발이 나에게 길들여 지는 과정 동안은
뒤꿈치가 까지는 신고식이 반드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 신발을 신어서 기분이 좋다고 저처럼 너무 성급하지 마세요^^
까불다가 저처럼 호된 뒤꿈치 신고식 치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나서 ‘좀 더 겸손할 걸’ 생각을 하지요^^
천천히 자신의 역량 만큼,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적응하는 기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야고보서4:6
* 골목길 묵상은 카카오톡 ‘골목길 묵상’ 채널에서 매일 업데이트 됩니다.
* 2023년까지의 묵상은 『골목길에서의 동행. 나침반』 책자로 출간 되었습니다.
피조물의 탄식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린 적은 있지만 동물의 고통 때문에 눈물까지 흘려보긴 처음이었습니다. 코끼리 이야기입니다. 코끼리는 지능이 대단히 높은 동물입니다. 기억력은 돌고래와 침팬지를 뛰어넘고 감정도 풍부해 가족을 향한 애정이 인간 이상이라고 합니다. 책 ‘휴머니멀’에는 코끼리가 재주를 넘는 이유가 등장합니다. 한 마을 사람들은 어린 코끼리를 우리에 가둔 뒤 24시간 내내 돌아가며 송곳으로 찌르며 물 한 모금 주지 않습니다. 코끼리들은 실신해서 죽기도 하는데 살아남은 코끼리들은 피투성이가 돼 인간을 무서워하며 야생성을 잃어버립니다. 이 과정을 ‘파잔’이라고 합니다.
어떤 밀렵꾼들은 코끼리의 상아를 갖기 위해 코끼리의 얼굴을 잘라가기도 합니다. 얼굴이 잘린 채 쓰러진 아빠 코끼리 옆에서 새끼 코끼리는 아빠를 깨우려고 힘을 다해 코를 비빕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습니다.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며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다’(롬 8:22)는 말씀도 떠올랐습니다. 코끼리의 고통 소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나팔소리가 교차하는 듯합니다.
박지웅 목사(내수동교회)
하늘 문을 여시는 하나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베를린을 지배하고 있던 구(舊)소련은 1948년 6월 24일부터 1949년 5월 12일까지 자유진영에 속한 서베를린에 대해 물자공급 봉쇄조치를 취합니다. 220만 주민이 거주하고 있던 서베를린의 전기와 수도, 그리고 모든 물자의 공급이 차단됩니다.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도로, 철도, 수로마저 차단되자 도시 전체가 기능을 잃어버립니다. 자유진영은 구소련의 이 같은 조치에 당황합니다. 서베를린에 물자를 공급하려면 군사적인 충돌을 감수해야 합니다.
서베를린 시민들을 구해내야 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때 미국이 대규모 항공 물자 수송 작전인 ‘베를린 공수작전’을 전격 감행합니다. 소련은 이를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결국 구소련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연합군의 대규모 공수작전을 견디지 못하고 봉쇄를 해제합니다. 당시 서베를린은 하늘길이 열림으로 구소련의 봉쇄조치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닥치면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의 처분만 기다린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위로부터 임합니다.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장균 목사(순복음강남교회)
우리 손의 무기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신납니다. 본래 골리앗 얘기에서 다윗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 전쟁은 사울의 군대와 골리앗의 대결이었습니다. 다윗은 전쟁에 위문품을 들고 나타난 한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구도가 다윗과 골리앗으로 변했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요. 자신감의 문제였을까요. 아닙니다. 자신감은 골리앗이 더 대단했습니다. 전쟁 기술의 문제였을까요. 이것도 아닙니다. 다윗의 기술은 골리앗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보잘것없었습니다. 그러면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요.
성경을 자세히 보면 사울과 골리앗의 대결, 그리고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서 전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사울과 골리앗에게 중요한 것은 무기와 전쟁 기술, 군사력 등이었습니다. 전쟁에 승패를 가르는 아주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그러나 다윗과 골리앗의 구도는 전혀 달랐습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윗이 뜻밖의 무기를 꺼내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호와의 이름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도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무기로 여기고 사는가’라고 말이죠.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사랑의 찬가’ 올림픽
2024 파리올림픽이 개막됐습니다. 올림픽의 모토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입니다. 강한 것을 추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가려내는 경기입니다. 사도 바울이 열정적으로 전도하던 고린도는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였습니다. 올림픽의 가치가 지배하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은 ‘육체의 가시’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던 일을 알려줍니다.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가시를 빼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올렸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가시(육체의 약함)가 당신의 능력이 머물고 그 능력이 온전해지는 통로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약함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길이였습니다.
이번 올림픽의 백미는 세계적인 가수 셀린 디옹이 에펠탑 2층 무대에서 프랑스 유명 대중가요 ‘사랑의 찬가’를 열창한 장면이었습니다. 디옹은 2022년 몸이 굳어가는 강직인간증후군(SPS)이란 불치병 진단을 받고 재활 중임을 밝혔습니다. ‘저 푸른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고 해도 당신만 날 사랑한다면 나는 아무 문제 없어요’라는 디옹의 절규는 사랑이 제일임을 알려줍니다. 올림픽 모토에 한 가지 더 추가하기를 기대합니다. ‘더 사랑하도록.’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스스로 자라는 씨
“백성들이 날마다 선해지면서도 그것을 알지는 못한다.” 맹자가 한 말입니다. 정도를 따르는 왕이 다스리면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날로 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지도자가 진짜 지도자라는 얘기입니다. 지도자는 자신의 업적을 부풀려서 선전하기보다 먼저 사람들의 마음이 삭막해지고 삶이 팍팍해지지 않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놓고,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막 4:26~27, 새번역)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여기 또는 저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느 날 어느 시에 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심지어 자기가 하나님 나라를 가져온다는 오만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사람이 알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다만 놀랍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은총의 섭리를 이루어 주십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영적 신호등
교통 신호등은 1868년 12월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오늘날 같은 전자식 신호등은 1914년 미국에서 시작됐고 4년 후 개량이 돼서 오늘과 같은 세 가지 색상이 주로 사용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붉은색은 정지, 청색은 통과, 황색은 신호 변경 예고이고, 비보호 좌·우회전이나 자전거 통행을 위한 신호등도 있습니다. 신호등을 잘 지켜야 사고가 나지 않고 차량 흐름이 원만합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 속에 영적 신호등으로 사인을 주십니다. 때로는 막으시며 멈춰 서라 하시고 때로는 길을 열어주시며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영적 신호등을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순종입니다.
저마다의 형편과 상황을 주장한다면 신호등의 존재 의미는 없고 대혼란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영적 신호등의 색깔을 잘 구분하십시오. 길을 막으실 때 멈추시고 열어주실 때는 즉각 순종하십시오. 어떤 색깔이든 하나님의 사인은 무조건 나를 향한 사랑입니다. 그 뜻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형통이고 축복입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