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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14: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삿 14: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삿 14: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삿 14: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삿 14:5)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삿 14: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삿 14:7)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며 그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더라
(삿 14:8)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삿 14:9)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삿 14:10) 삼손의 아버지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베풀었으니 청년들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삿 14:11) 무리가 삼손을 보고 삼십 명을 데려와서 친구를 삼아 그와 함께 하게 한지라
(삿 14:12)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하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그것을 풀어 내게 말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삿 14:13)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말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 그들이 이르되 네가 수수께끼를
내면 우리가 그것을 들으리라
(삿 14:14)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삿 14:15) 일곱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려 달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를 빼앗고자 하여 우리를 청한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아니하냐 하니
(삿 14:16) 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이르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알려 주지 아니하도다 하는지라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보라 내가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알려 주지
아니하였거든 어찌 그대에게 알게 하리요 하였으나
(삿 14:17) 칠 일 그들이 잔치할 할 때에 그의 아내가 그 앞에서 울며 그에게 강요함으로 일곱째 날에는 그가 그의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알려 주매 그의 아내가 그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더라
(삿 14:18)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삿 14:19)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 집으로 올라갔고
(삿 14:20)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되었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
“삼손의 수수께끼(삿 14:1-20)”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1-4: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오늘 본문부터 삼손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됩니다. 14장은 읽어보면 그 내용을 쉽게 알 수 있으나, 블레셋 여인을 좋아하는 이야기, 사자를 죽인 이야기, 그 사자의 사체에서 꿀이 나오는 이야기, 그 사건 전말이 수수께끼의 문제가 되는 이야기 하며, 수수께끼로 내기를 하여 30명의 블레셋 군사를 죽이는 등의 이야기 전개가 현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잘 적응하기 어려운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단순하게 참과 거짓이라든지, 악과 선이라는 구도만으로 성경을 읽어왔다면 본문의 말씀은 도대체 신자들에게 어떠한 하나님의 뜻과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느냐? 블레셋 여인과 결혼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내용은 조금은 어색하지만 대충 알겠으나, 하나님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더 첨부하자면, 그냥 단순하게 읽을거리로 14장을 생각하여 한 장 전체를 하루에 묵상할 분량으로 정한 매일 성경 역시 판단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본 장은 그리 간단하게 읽어서 가볍게 묵상하고 넘어가는 말씀은 아니라는 생긱이기 때문입니다.
삿 13: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소라와 에스다엘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여 그를 움직이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모태에서부터 나실인의 규범을 지켜왔으며, 성장하면서도 나실인으로 자랐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부모와 함께 살았던 소라와 에스디엘 사이의 마하네단에서 어느 날 여호와의 영이 그를 감동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어제 필자의 해설에서 삼손처럼 사사들 가운데 여호와의 영이 임했고 태아 때부터 나실인으로서 훈련을 받았으며, 여호와의 축복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타고난 선택된 자였으며, 부모에 의해서 완벽하게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훈련된 사사였습니다. 여기에는 부모에게 전해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삿 13:5)”는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영이 그를 감동하여 먼저 시작한 일은 블레셋 성읍인 “딤나로 내려가는 일(1)”이었으며 블레셋의 한 여자를 보고 한 눈에 반해버린 사건이었습니다. 딤나는 마하네단에서 서쪽으로 약 4km떨어진 성읍이었습니다. 삼손은 무찔러야 할 블레셋 영역을 할 일 없이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한 처녀에게 마음을 빼았겻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영이 그를 감동한 후에 여호와의 사역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안목에 비친 장차 물리쳐야 할 블레셋의 한 처녀에 감동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여호와의 영에 사로잡힌 자가 어떻게 이방 처녀에게 감동 먹을 수 있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 전개가 쉽지 않다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여호와의 계획(4)의 일부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더욱 당혹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정의와 불의의 경계가 애매해졌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기는 나무를 보는 촘촘한 시각도 중요하지만 사사기 전체의 내용의 흐름을 관찰하는 숲을 보는 안목이 더욱 더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옷니엘에서부터 시작하여 삼손까지는 열 두 명의 사사가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사가 등장할 때마다 이스라엘은 점점 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면서 가나안 종교와 문화에 빠져들었고 그 결과는 이방 족속과의 불안정한 승리에서 이스라엘 지파 간의 분쟁과 전쟁으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사사들 역시 점점 더 타락한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고역과 핍박으로 몰아붙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이방족속의 악독한 지배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고, 오히려 더 심한 박해를 당할까 봐 그들에게 대항하기는커녕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사는 것이 평안이라고 인식할 정도로 비굴해졌고 암울한 미래 밖에 없는 절망과 낙망이 일상적인 삶으로 변해 버렸던 것입니다.
세상에 휘둘려서 그들의 눈치를 보고 재물 앞에 비굴해질 대로 비굴해진 여남은 한국교회의 사정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독교인이라고 하여 주일이면 어김없이 성경책 챙겨서 바삐 교회를 찾는 자들이 나머지 6일 동안 세상 속에서 비겁하게 기독교인의 신분에 아랑곳없이 마음껏 퍼 마시고 부정과 부패와 결탁하며 거짓으로 상대를 속이고 이익을 탈취하는 짓들을 수도 없이 저지르고 음탕한 눈빛으로 이성을 찾고 즐기면서도 뻔뻔하게 또 다시 주일이면 성경책 끼고 교회로 내닫는 경우와 삼손 시대와 무엇이 다르냐는 것입니다.
타락했다고 판단되는 기독교 신자가 있었는데, 그가 어찌하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였다고 한다면,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한 자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어찌하든 구원에 이르도록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겠지만, 성령이 임한 자로서 이방여자에서 홀려 마음도 몸도 빼앗겨 술과 성적 쾌락으로 육체가 망가져 버린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삼손이 이와 유사한 지경으로 빠져들었다고 이해하면 본문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면 전쟁의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담대함이 있어야 당연한 일이지만, 이를 깨닫지 못한 저질의 기독교 신자가 세상과 타협하여 행하는 뒷골목 문화의 행동처럼 삼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의 이러한 타락한 행적의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구원의 거대한 계획의 일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딤나로 내려갔다가 한 블레셋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고 아내로 삼기 위해 부모의 허락을 받으러 올라와서,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2)”라고 하자, 마노아 부부는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냅니다. 할례 받지 않은 이방 족속의 딸을 아내로 들이겠다는 삼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3)”라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삼손이 그 블레셋 여자가 자기 눈에 옳게 보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옳은 대로 행동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결혼은 상대방의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측면이 있는데, 즉, 가나안 삶의 방식을 수용하겠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최대의 위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가나안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쫓아내라고 명령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가나안의 문화를 차단하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삼손이 자기 눈에 옳을 대로 판단하여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겠다고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삼손의 부모가 이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할례를 받지 않는 블레셋 사람들의 딸을 아내로 맞아드리는 경우는 무할례자와의 결혼인데 이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는 행위와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5절 말씀은 블레셋을 치기 위한 방편으로 삼손이 결혼을 요구했으며 이를 여호와께서 계획하신 일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할례자의 딸과 결혼을 용납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점이 믿는 우리들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삼손을 통해서 블레셋을 치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모태에서부터 나실인으로 불러내셨고 태어나서도 나실인의 훈련을 철저하게 받았지만, 그는 실제의 삶에서는 전혀 나실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 탓이 부모가 잘못 키웠기 때문인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게 하실 만큼 삼손은 매우 이스라엘적인 사람으로 키워졌습니다. 그런데 왜? 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비유가 딱히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좋은 환경, 좋은 선생님, 좋은 책, 좋은 학교를 다녀야만이 반드시 일류대학엘 합격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삼손 역시 그랬다는 점입니다.
그의 인격과 성품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한다(3)”는 고백입니다.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고, 무할례자와는 결코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이스라엘의 불문율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4절에서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러 함이었다(4)”는 말씀은 또 무슨 내용인가? 삼손이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려는 목적이 틈을 타 그들을 치기 위함이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번역은 오역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성경번역에 참가한 능력 있는 구약학자들이 착오를 일으킨 것인가? 아닙니다. 한국의 기독교(교단 등)가 삼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의도 때문에 삼손의 속 마음은 그 여자가 정말 좋아서가 아니고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억지 이해를 하려고 이것에 맞춘 번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언어상 타당성을 부여했을 것이지만, 문맥 상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번역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4절 부분의 말씀은 이렇게 번역이 되어야 옳습니다.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지 못하였으며, 여호와께서 틈을 타서 블레셋을 치려고 하시는
줄도 알지 못하였다(
삼손의 결혼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결정이 여호와의 책임은 아닙니다. 그에게 나실인으로서 훈련을 명령하셨지만, 그의 인격까지 원격 조정하여 기계처럼 다루지 않으십니다. 타락해버린 이스라엘의 환경이 그가 보고 듣고, 행한 모든 삶 자체에서 가나안 문화영향을 깊이 받아드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비록 나실인처럼 살았지만, 그가 직접 영향을 준 것은 이와 같은 가나안 문화였습니다. 부모 역시도 나실인의 규약을 지키게끔 노력했으나, 그들 자신의 삶에는 역시 이스라엘의 고유의 삶 대신 가나인적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즉, 하나님에 관한 체험이 없고 단지 이론적인 하나님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역사 안에서 그의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과업을 이루어가십니다. 때로는 이와는 별도로 이적과 기적으로도 하시지만, 오히려 그의 백성을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적으로 하시면 간단하고 쉽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즉,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일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내하심과 절제하심과 사랑이 필요로 하십니다. 삼손을 사사로 세우셨을 때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할 자로 지명하셨습니다. 그가 어떤 삶을 살든지 상관없이 일단 삼손의 삶을 통해서 즉, 도구로 삼아서 블레셋을 치는 일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삼손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의 삶 자체는 실패할 것이며 곤궁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신 대로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일에 삼손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서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실패가 바로 블레셋 여인과 결혼식입니다. 삼손의 눈에 옳은 대로 결정하고 행동에 옮긴 그의 결혼식은 블레셋 군사 30명을 죽이는 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처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부모의 의견을 무시하고 존경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도 없었으며 자기의 눈에 옳은 대로 행하기를 주장함으로써 나실인의 규약과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서의 사명을 저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부당한 삼손의 결혼을 통해서라도 원래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5-11: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자식 이길 부모 없다는 속담이 고대나 현대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마노아 부부는 아들 삼손의 요청에 하는 수 없이 함께 딤나로 내려가 삼손이 반했다는 그 블레셋 여인을 만나보기로 하였습니다. 부모를 모시고 앞서 가던 삼손은 딤나에 들어가는 포도원이 있는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젊은 사자를 만나게 됩니다. 갑작스런 일이라 도망할 틈도 없이 사자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였(6)”습니다. 그는 맨손으로 덤벼드는 사자를 휘어잡고 염소 새끼를 찢듯이 사자를 찢었습니다. 삼손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강하게 역사하시는 여호와의 영의 강권적인 힘에 의지하여 잽싸게 사자를 움켜잡고 맨손으로 사자의 숨통을 끊어버린 것 같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의 규약에 따라 포도나무의 소산을 입에 대어서는 안됩니다(삿 13:14). 그렇다고 포도원을 지나쳐서도 안 된다는 규범은 없을지라도 포도에 관한 어떤 것도 멀리해야 하는 마음의 다짐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리낌 없이 포도원 가운데로 지나가다가 사자를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삼손은 포도원에서 사자를 죽인 일에 대해서 뒤따라 오는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포도나무에 달려 있는 포도송이를 보는 것도 나실인의 규약을 어겼다고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딤나로 내려가서 멀리서 마음 조였던 그 여자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을 때, 다시 한번 “그 여자가 삼손 눈에 들었더라(7)”고 기록하였습니다. 안목의 정욕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자기의 눈에 옳을 대로 판단하고 결정했다는 점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양측 부모의 상견례가 있은 후 부모의 허락을 받았고 이제 결혼식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삼손은 얼마 후에 다시 그 여자를 맞이하기 위해서 딤나로 내려가던 중에 그 사자의 주검을 보게 되었고, 꿀벌들이 그 사체 안에 벌집을 지어 꿀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었으며 그 꿀을 부모에게도 드렸지만, 사자의 사체에서 나온 꿀이라고 알리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도 짐승의 사체를 만지면 부정하다고 하여 정결의식을 거쳐야 깨끗함을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인데 나실인의 경우는 더더욱 짐승의 사체를 만져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사체에서 나온 꿀을 먹은 부모는 결국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삼손은 꿀을 출처를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약혼녀를 허니(Honey: 벌꿀)라고 호칭합니다. 꿀은 달콤하다는 의미로 삼손이 마음을 빼앗긴 약혼녀 블레셋 여자를 비유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자의 사체에서 어떻게 꿀이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꿀이 나올 수 있을 상황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자의 사체의 냄새를 맡고 꿀벌이 둥지를 틀었다고 볼 수는 없고, 사체를 다른 야수들이 뜯어 먹고 난 후 바짝 말라버려서 뼈만 남은 상태에서 꿀벌이 집을 지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고 추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얼마 후(8)”라는 시간은 몇 개월이 지난 후가 아닐까 하는 필자의 판단입니다.
드디어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딤나로 내려가게 됨으로써 결혼식은 시작되었습니다. 삼손과 그의 식구들이 딤나로 “내려간다”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오는 점도 유의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혼예식은 블레셋 관습에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삼손이 주관하여 7일 동안 잔치를 여는데 술을 마시고 놀이를 즐기며 무슨 게임과 경연도 펼쳤을 것입니다. 삼손은 또 한 번 나실인의 규정을 어깁니다. 술 잔치에 그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블레셋 청년 30명과 어울렸다고 하였습니다. “무리가 삼손을 보고 삼십 명을 데려와서 친구를 삼아 그와 함께 하게 한지라(11)” 이들은 결혼식 들러리 꾼들로 보이는데, 당시 결혼식에서 신부측은 여자를 빼앗긴다는 관념이 있었으므로 일단 신랑인 삼손을 경계하는 신부측의 세력이었습니다.
12-20: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삼손과 30명의 청년들은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도 서로에게 전투적인 행동을 보였습니다. 서로가 견주어 누가 더 힘이 센가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던 중, 삼손이 수수께끼를 제안하게 되었고 결혼 잔치 기간 내에 풀지 못할 경우에 베옷과 겉옷 각각 삼십 벌씩을 내게 주는 대신 풀었을 때에는 내가 똑같이 주겠다는 내기를 걸게 됩니다. 수수께끼 문제는 이렇습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14)”
블레셋 청년들은 사흘 동안 고심하여 수수께끼를 풀어보았지만, 정답을 알아내지 못합니다. 이 문제는 사자의 사체에서 꿀이 나왔다는 삼손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수수께끼였습니다. 그래서 오직 삼손만이 그 해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일곱째 되던 날, 그들은 삼손의 아내에게 네 남편으로부터 수수께끼의 정답을 알아내라고 협박하기에 이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를 빼앗고자 하여 우리를 청한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아니하냐(15)”
협박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들은 남편 될 삼손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꾀어서 수수께끼의 정답을 알아오도록 명령합니다. 만약에 알아내오지 않는다면 너와 아버지의 집을 불태워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설마 우리를 곤경에 처넣기 위해서 결혼잔치에 청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와 아버지의 집을 태우는 것은 마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 삼손과 결혼하려다가 자신과 친정 집이 몰살 당하게 되었으니, 그 여자는 절박한 심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편 될 삼손에게 사실대로 말하자니, 그는 혼자이고, 이쪽은 30명이나 되는 장정들이니 싸움을 하더라도 상대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던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으로부터 어떻게 하든지 수수께끼의 정답을 알아내는 길만이 자기와 가족들의 생명을 건지는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일단 마음이 정해지자, 즉각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녀는 삼손 앞에서 울면서 자기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 해답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소연 하였습니다. 그 전에 이미 꿀(Honey)에 약학 삼손을 유혹하여 잠자리를 했을 것입니다. 여자에 약한 삼손은 슬피 울면서 사정하는 아내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부모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정답을 그녀에게 알릴 수 없다고 다짐했지만, 잔치 기간 동안 내내 울면서 보채는 여자에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다짐을 수없이 하고 수수께끼의 정답을 알려주었습니다. 드디어 잔치 마지막 날 수수께끼의 해답을 말할 마지막 기회에 블레셋 청년들은 삼손 앞에 나와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18)”고 해답을 말했습니다.
이 말에는 삼손을 풍자하여 조롱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꿀은 여자의 성욕을 은근히 드러내면서 애정을 풍유하고 있고 강한 힘은 곧 삼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힘이 강한 삼손을 꿀맛 같은 여자의 손에 녹아버렸다는 조롱 섞인 해답이 된 것입니다. 또한 사사기 저자의 입장에서는 삼손은 강한 힘과 나실인의 서원을 가진 자였지만, 이방 여자의 사랑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삼손은 이 해답을 아내 될 여자로부터 들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18)” 암송아지는 천한 여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삼손은 자기 아내 될 여자로부터 배신을 당한 것을 알았고 그녀를 협박하여 얻어낸 블레셋 사람들을 동시에 비난했지만, 이미 수수께끼 내기에서 져버렸습니다. 그는 겉옷과 속옷 각각 30벌을 당장에 준비해야 하는 곤경에 처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삼손은 마지막 결혼식 잔칫날을 넘기지 못하고 그가 사랑한 여자와 결혼에 실패하고 맙니다. 믿고 사랑했던 여자는 자기의 편이 아니라, 블레셋 편이었음을 뒤늦게야 알게 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삼손의 비극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고 그분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기의 안목이 옳은 대로 행했을 때의 결과입니다. 한 번 실수는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그렇다고 치더라도, 반복되는 삼손의 실패와 비극적인 삶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 각자가 자신의 삶을 짚어보면서 자문해보기 바랍니다.
이러한 삼손의 실패의 순간에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갑자기 임하였(19)”습니다. 벌써 세 번째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오역된 채로 번역된 4절 말씀대로 여호와께서 삼손의 일에 틈을 만들어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가시는데 있습니다. 삼손의 행위 배후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강력한 섭리가 있으셨습니다. 여호와의 영은 강권적으로 그를 블레셋의 다른 성읍인 아스글론으로 내려가게 하십니다. 아스글론은 딤나에서 남서쪽으로 약 35km 떨어진 블레셋의 다섯 개 성읍 중 하나였습니다. 딤나에 비해서 큰 성이었습니다.
삼손은 이곳에서 “블레셋 군사 30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아버지 집으로 올라갔다(19)”고 기록합니다. 삼손을 통한 여호와의 계획의 절정은 바로 블레셋 군사 30명을 쳐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내기에 지게 만드신 분도 여호와이시며 블레셋 여자와의 결혼이 실패로 돌아가도록 만드신 분께서도 여호와이셨습니다. 그리고 수수께기 내기의 상을 얻어내기 위해 블레셋 군사 30명을 쳐 죽인 일도 계획하신 대로였습니다.
삼손은 이러한 여호와의 계획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채로 여호와의 일을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그는 이후 매우 화가 나서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다고 하였습니다. 내기에 진 것도 화가 날 일이지만, 아내 될 여자의 배신으로 사랑을 잃었다는 것 때문에도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는 당연한 일이었고 오히려 여호와의 섭리하심을 깨달아 돌이켜야 했습니다. 그는 나실인의 규범을 지켜야 할 자였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그를 통하여 블레셋을 칠 빌미를 구하셨기 때문에 그의 결혼계획은 사필귀정으로 실패를 전재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삼손에게 있어서 삶이 비극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화가 치밀어 견디지 못할 수 밖에, 더 이상 믿음으로 보는 눈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삼손의 비극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20)” 잔치 자리에 참석한 블레셋의 삼십 명의 청년 중에 한 명에게 삼손의 아내 될 여자가 넘겨져 버렸습니다. 삼손이 심히 화를 내고 떠나 버린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입니다. 왜 결혼한 딸을 다른 남자에게 넘겼는지는 다음 구절에서 밝혀집니다.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 가서 이르되 내가 방에 들어가 내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하니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르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노라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니(삿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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