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에서 출발한 메시도 흐름을 바꾸기 어려웠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준의 티키타카] “우리는 꾸준히 좋은 장면을 만들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가 거의 번뜩이지 못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FC바르셀로나와 홈 경기에서 득점 없이 비긴 뒤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유벤투스 감독은 냉정한 평가를 했다. 유벤투스는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을 확정하지 못했다. 바르사는 조용한 무승부로 얻은 승점 1점으로 D조 1위를 확정했다. 스페인 언론은 이런 바르사의 경기를 실용적이라고 평가했다.
스페인 라리가 선두를 달리고 있는 바르사는 오는 주말 나란히 무패 가도를 달리고 있는 2위 발렌시아와 경기한다. 바르사는 유벤투스와 빅매치에 주전 선수들을 쉬게 하며 지지 않는 경기에 집중했다. 어느 팀이든 그럴 수 있지만, 늘 화려한 승리를 추구해온 바르사에건 보기 어려운 타입의 경기였다.
리오넬 메시는 2013년 이후 무려 4년 만에 벤치에서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시작했다. 이미 팀 순위가 판가름 난 조별리그 최종전이 아닌데다, 유벤투스라는 큰 팀을 상대하는 경기를 벤치에서 시작하는 것은 꽤 낯선 일이다.
알레그리 감독은 “메시가 몸을 풀기 시작하자 걱정이 됐다”며 웃었다. 메시는 후반 11분에 제라르드 데울로페우 대신 투입되었는데, 메시가 들어간 이후 공격 템포가 조금 더 빨라졌으나 유의미한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유벤투스도 메시의 중앙 지역 영향력을 막기 위해 피야니치, 콰드라도, 더글라스 코스타 등 공격적인 선수, 측면 공격수를 빼고 벤탄쿠르, 마르키시오, 마투이디를 투입했다.
토리노에서 유벤투스를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FC바르셀로나는 지난 4월 토리노 원정에서 0-3으로 졌고, 세월을 거슬러 2003년 4월 대결에서도 1-1로 비기고 온 것에 만족했다. 유벤투스는 올시즌 2017-18 이탈리아 세리에A 3위로 떨어져 위기를 겪고 있지만, 안방에서는 2015년 9월부터 현재까지 세리에A 44경기에서 단 1패 밖에 당하지 않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2013년 4월 바이에른뮌헨전 이후 22연속 무패를 유지하고 있다.
발베르데 감독은 포스트 MSN 시대의 바르사를 맡아 견고한 팀을 조직하고 있다.
◆ 원정 경기에서 실리 챙기기…메시 휴식-지지 않는 경기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바르사 감독은 현실에 집중했다. 바르사는 한국시간 11월 1일 새벽에 그리스 원정으로 치른 올림피아코스와 4차전 경기에서도 득점 없이 무승부를 거두며 16강 진출을 확정하고 왔다. 이 경기에서 바르사는 4-4-2 포메이션을 썼는데, 좌우 측면 미드필더로 데니스 수아레스와 세르지 로베르토를 배치해 로테이션을 가동하며 안정 위주 전략을 썼다.
23일 새벽 유벤투스와 경기에서 메시 없이 경기한 바르사의 플레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르사의 강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발베르데 감독은 부임 초기 바르사의 기존 전형 4-3-3을 유지하다가 우스만 뎀벨레가 부상 당한 이후 날개 없는 4-2-2-2 포메이션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유벤투스전은 파울리뉴의 활동범위를 넓힌 4-2-3-1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뤼카 디녜-사뮈엘 움티티-제라르드 피케-넬송 세메두가 포벡 라인을 이루고 세르히오 부스케츠와 이반 라키티치가 허리를 맡았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데울로페우와 좌우 측면, 루이스 수아레스가 원톱. 파울리뉴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섰는데, 수아레스 옆까지 올라가 투톱을 이루거나, 부스케츠가 두 센터백 앞 지역으로 내려가 빌드업하면 라키티치 옆으로 다가와 공을 받아 운반했다.
황혼기의 아니에스타가 윙플레이를 하기 어려운 상황. 왼쪽 공격은 디녜, 오른쪽 공격은 데울로페우가 맡았다. 이니에스타는 프리롤을 맡아 바르사의 경기 중 구조 변화를 이끈 파울리뉴의 곁에서 큰 영향력을 보이지 못했다. 이니에스타는 섬세한 공 관리 기술을 갖고 있지만, 완력과 폭발력이 떨어지고 있다. 파울리뉴는 메시 없는 경기에서 광저우헝다 시절처럼 경기장의 사령관처럼 뛰었는데, 수아레스가 유벤투스 수비에 고전하면서 직접 시도한 중거리 슈팅으로 골문을 위협한 것 외에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이니에스타가 어정쩡해진 가운데 바르사의 왼쪽 공격은 네이마르가 있던 시절과 비교하면 전멸했다. 레프트백 디녜는 조르디 알바만큼 날카롭지 못했다. 스리백과 포백을 자유롭게 변환하며, 코스타-디발라-콰드라도로 측면 공격에 집중한 유벤투스를 상대한 바르사의 풀백은 오버래핑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유벤투스의 측면 화력에 대비해 바르사 풀백은 전진이 쉽지 않았다.
◆ 조용했던 유벤투스전, 문제는 측면
오른쪽 공격 상황도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데울로페우는 전형적인 윙어다. 라마시아 시절 새로운 메시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를 받았으나 이삭 쿠엔카, 크리스티안 테요 등 과거 윙어 유망주와 아주 큰 차별화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데울로페우는 라이트백 세메두와 협업이 매끄럽지 않았다. 사이드라인 부근에서 따로노는 모습도 많았다.
에버턴으로 이적했다가 바이백 조항으로 돌아온 데울로페우는 뎀벨레가 부상에서 돌아오기 전 입지를 굳혀야 하는데, 이날 보여준 경기력으로는 쉽지 않은 모습이다. 스페인 스포츠 신문 스포르트도 데울로페우가 자신에게 주어진 선발 기회를 허비했다고 논평했다.
바르사는 유벤투스와 측면 대결에서 졌다. 발베르데 감독은 측면에서 밀리면, 중앙 지역을 더 촘촘해 지켜 실점을 막을 수 있다는 축구 전술의 기본 원칙에 입각해 경기하고 있다. 4-2-3-1 포메이션으로 보이지만, 큰 틀에서 4-2-2-2의 기조가 바뀌지는 않았다. 데울로페우가 나가고 메시가 들어오면서 이 전형으로 돌아갔는데, 팀의 경기 리듬이 이미 떨어진 상태였다. 메시도 리듬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풀백이 활기를 갖지 못하면 윙어 없는 4-4-2는 공격 전개가 어려워진다. 메시가 가짜 윙어로 시작해 가짜 9번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최고의 조력자는 공격적인 라이트백 다니 아우베스였다. 올 시즌 영입된 세메두는 공수 양면에 걸쳐 준수한 기량을 펼치며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바르사 주전으로 녹아들었으나, 유벤투스 원정에서 라인을 높여 측면을 지배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쩌면 발베르데 감독이 유벤투스의 출중한 측면 공격을 제어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주문했을 수 있다.
바르사는 밋밋한 경기를 했지만 실리를 챙겼다. 메시 투입에도 경기 막판 좋은 기회는 유벤투스에 있었다. 마르크안드레 테어슈테겐 골키퍼인 선방이 이날 바르사가 보인 최고의 플레이였다.
아틀레틱클럽 감독 시절에도 끈끈한 축구로 승점을 벌어온 발베르데 감독은, 당시에도 홈 경기에서 승부를 걸었다. 발베르데호는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레알마드리드전 패배 이후 올시즌 홈에서 치른 여섯 번의 라리가 경기,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모두 승리했다. 홈 8연승 과정에 실점은 단 3골. 5경기가 무실점 승리였다. 득점도 충분히 많이 했다. 8경기에서 26골을 넣었다. 안방에서 경기당 득점이 3골을 넘는다. 다만 이중 13골 1도움을 메시가 책임졌다. 메시의존증이 이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수아레스까지 전성기에서 내려오자 네이마르의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진다. 네이마르가 합류한 PSG는 MCN 트리오로 빛나고 있다.
◆ 수아레스까지 하향세…막대한 네이마르 공백
수아레스가 무릎 부상 이후 전성기의 날렵한 플레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마무리는 좋지만, 공간을 찌르며 수비진을 휘젓던 맹렬함이 사라졌다. MSN 트리오의 해체는 바르사가 자랑하던 압도적 화력에 큰 손실이 됐다. 바르사가 보여주지 못하는 무자비한 득점력을 파리생제르맹이 보여주고 있다. 파리생제르맹은 같은 시간 열린 셀틱과 홈 경기에서 7-1로 이겼고, 네이마르가 2골 1도움을 기록했다.
파리생제르맹은 네이마르를 중심으로 한 MCN 트리오(음바페-카바니-네이마르)와 골 잔치를 벌이고 있다. 네이마르와 잡음이 있던 카바니는, 이 경기에서 네이마르의 패스를 받아 득점했다. 음바페는 네이마르가 자신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네이마르는 바르사에서 메시에게 배우며 성장했다. 음바페의 멘토는 네이마르다. 스포르트는 이날 네이마르가 챔피언스리그 참가 역사상 최고의 경기를 했다고 평했다. 바르사는 네이마르를 그리워하고 있다.
MSN 트리오의 화려함은, 수아레스와 메시도 대단했지만 결국 네이마르라는 화려한 드리블러의 존재가 있어 가능했을 수 있다. 카바니와 음바페는 네이마르와 발을 맞추며 더 쉽게 골을 넣고 있다. 여기에 유벤투스로 적을 옮긴 뒤에도 측면 공격에 활력을 불어 넣었던 다니 아우베스가 파리생제르맹에서 네이마르와 함께 뛰고 있다. 네이마르와 아우베스는 바르사의 두 번째 트레블 과정에 보였던 강점을 파리생제르맹으로 옮겨놨다.
메시에 그늘에 가려 1인자가 되지 못하던 네이마르는 조별리그 다섯 경기 만에 챔피언스리그 6호골을 넣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올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5경기에서 모두 득점했는데, 네이마르도 마찬가지다. 5경기 연속골이다. 호날두의 8득점에 이은 득점 2위. 현재 전력은 레알마드리드보다 파리생제르맹이 위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파리생제르맹은 B조를 1위로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 바르사도 1위로 16강에 올라 두 팀이 만나려면 8강 이상 올라가야 한다.
바르사는 네이마르의 대체 선수로 영입한 뎀벨레의 부상 복귀가 임박한 상황이다. 뎀벨레가 돌아오면 바르사의 전술과 스타일도 바뀔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네이마르가 이끄는 파리생제르맹을 제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2016-17시즌 바르사는 PSG와 대결에서 16강 1차전 0-4 패배를 2차전 6-1 승리로 뒤집어 8강에 오른 바 있다. 발베르데 감독의 바르사는 4골씩 내주며 허무하게 무너지는 성향의 팀이 아니지만, 0-4로 진 경기를 6-1로 뒤집을 만한 파괴력도 상실했다. 바르사와 파리생제르맹이 다시 만나면, 바르사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경기를 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유럽 최고의 팀으로 불리는 맨체스터시티를 만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네이마르가 떠난 자리에 파울리뉴가 헌신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다.날개 없는 4-4-2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파울리뉴가 빠지면 바르사의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
◆ 메시 몰아주기…파울리뉴 없어도 가능할까
바르사는 발베르데 감독 체제에서 단단해졌지만, 조금 둔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현 바르사에서 전술적으로 가장 빼어난 플레이를 하는 선수는 파울리뉴인데, 파울리뉴가 발베르데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어느 영역에서든 부족하지 않다. 꾸준하고 헌신적이다. 파울리뉴의 존재 덕분에 발베르데 감독의 실용주의 노선이 결과를 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 체제에서 MSN 트리오를 지원하던 라키티치의 역할이 중요했다면, 발베르데 감독 체제에선 메시의 자유를 위해 헌신하고 조력하며, 조율하는 파울리뉴의 비중은 그보다 크다.
수아레스와 이니에스타가 정점에서 내려왔고, 부스케츠의 곁을 라키티치가 커버하지 못하면 중원 지역과 공격 지역의 구멍이 생각 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 모든 구멍을 파울리뉴가 메우고 있다. 바르사가 겪고 있는 메시 의존증 문제는, 파울리뉴가 부상이나 징계 등으로 결정적인 경기에서 뛰지 못하는 상황에 큰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필리피 쿠티뉴 이적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바르사가 라마시아산 선수들의 성장세가 기대만 못하다. 바르사는 당분간 선수를 사오는 팀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