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토아이코의 "뭐가 우습나" 27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27 산 위 누옥에서의 사색
예년과 같이 홋카이도의 산 위의 누옥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전화도 하지 않고, 우편함 속의 우편물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가끔 우편함을 들여다 보면 어느새 와 있었는지 여름 안부엽서가 훌쩍 던져저 있을 뿐이다. 실로 한가로운 날들이다.
정원에는 10년 전에 심은 병꽃나무가 2, 3 그루 꽃을 피우고 있을 뿐, 그외에는 다른 꽃도 없다. 여름 시작 무렵 이웃마을 사람이 서툴게 깎아 준 정원의 잡초가 나날이 자라, 분명 어제는 없었다고 생각되는 야생머위의 둥글고 작은 잎이 잡초 사이에서 얼굴을 내며고 있다.
요즘 계속 안개로 가려져 있던 하늘이 오랜만에 맑게 개여, 먹이를 찾는 솔개 5, 6 마리가 오르락 내리락 날고 있다. 해안 쪽에서 괭이갈매기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리는가 하더니, 갑자기, 휘파람새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그러던 하루, 드물게 전화가 울렸다. S주간지의 편집부에서, 이번에, 출판회사 소학관으로부터 쇼와문학전집이 나오는데,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는 것인데 왠지 어두운 목소리이다.
"그 전집에 수록되는 작가의 인선에 흠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요." "그래요...? 그런 전집이 나오는 줄도 몰랐습니다만" 이라고 나는 애매하게 말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고노 다에코(河野多惠子 소설가) 씨로부터 얼핏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 인선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많은 분들이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침울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말을 들은 나는 수긍이 갔다. 이 사람은 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사람 중의 하나인 나에게 의견을 물어 그 답변으로 기사를 흥미롭게 만들려는 의도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어쨌든 평상시부터 나는 줄곧 다혈질로 악명이 높은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이 사람에게 말을 걸면, 꼬리에 불붙은 말처럼 뛰어오르며 화낼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기대하고 그는 고생을 마다않고 내집 전화번호를 조사했을 것이다. 초상집의 조문객 같은 침울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나에게의 조의를 나타내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순간 온수기라고 해도 불씨를 당기면 기다렸다는 듯이 확하고 점화하지는 않는다. 요즘은 나이탓인지 불씨도 습기가 많아, 아무리 성냥을 그어대도 붙지 않을 때도 있는것이다.
원래 나는 그러한 영광괴는 거의 인연이 없는 인간이다. 관심도 없다. 나오키상을수상한 것도, 우연히 운좋게 그런 기회가 돌아왔기 때문이었지, 자신의 작품이 그렇게 걸작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나오키상이라는 것은, 그 작품 자체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가 향후, 직업 작가로서 계속 정진할 수 있을지 어떨지, 그 가능성에 주어지는 상이라고들 말하고 있어서, 그런가, 그렇다면 앞으로도 열심히 쓰자, 라고 생각하면서 분발하였다.
'전쟁과 같은 나날들'이라는 제목의 그 수상 작품은 마츠모토 세이쵸(소설가) 선생님이 크게 추천해 주셨다고 듣고 매우 기뻤다. 그것은 수상 자체보다 더 기쁜 일이었다.한편 타계한 시바타 렌자부로(소설가) 씨가 크게 반대였다고도 들었지만, 그것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자신이 평소 존경하고 있는 작가에게 인정되면 그것으로 만족인 것이다.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울면서 기뻐할 만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상 대상이 되지 않았던 무명의 작가 중에도 뛰어난 재능이 숨겨져 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곤란하게도 '세상사'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쿠타가와상이나 나오키상을 수상하면 울면서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 그게 뭐길래." 라고 상과 인연이 없는 작가가 그렇게 말한다면, 세간은 그것은 수상 못한 사람의 비아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사람의 가치관에대해 우리나라만큼 몰이해하고 둔감한 국민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내가 홋카이도의 이 벽지에 산장을 지을 때, 도중에 예산 부족으로 천장 마감을 하지 않은 집이 되었다. 예산이 부족하면 천장 마감이 없어도 되고 벽판자 없어도 된다고 해서, 벽판자 대신에 비틀즈와 록가수들의 포스터를 발랐다. (그것도 비틀즈가 좋아서가 아니라 딸이 중학생 때 록을 좋아해서 수시로 모아 두었던 것을 사용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예술가에게 어울리지 않는 허술한 생활 모습이라고 험구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삼류 작가'라고 자칭하며 살고 있는 몸이다. 록 가수의 얼굴을 바라보고 즐긴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포스터가 큰 사이즈이기 때문에 붙이는데 별로 수고롭지 않아서 사용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술가라는 것은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같은 벽판자 대신에 붙여도 더 아름다운 것을 선택해야 했지 않았나 하고 예술가파는 말한다. 나는 무뚝뚝해서 예술가 따위가 아니라고 역정내고 싶어진다. 그래서 드디어, 버럭성미쟁이에 더하여 이상한 취미의 기인이 되어버렸다.
'기인 변인'이란 직함이 부여되고 나서부터는 나도 다소 편해졌다. 그 이유는 그 직함에 의해서 비로소 나의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으로 이해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일 뿐, '세상'이라는 것은 역시 견고한 하나의 가치관의 갑옷을 탄탄하게 착용하고 있다. 그들은 쇼와문학전집에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을, 작가라면 누구나 바라고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내가 "쇼와문학전집? 그게 어쨌단 말입니까!" 라고 말한다면, 세간은 본인이 누락된 섭섭한 아쉬움을 빗대어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쇼와문학전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앞으로는 그것을 목표로 더욱 노력하겠다." 라고 말한다면, 잘난 척하고 있어도 역시네, 라고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해 할까.
나는 S잡지의 기자를 향해 무엇이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이것은 실로 어렵다. 솔직한 마음을 말한다면 "쇼와문학전집에 들어가도 좋고,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 어느 쪽이라도 좋다." 라는 말이 된다.
아니면, "이웃마을 축제에, 꽃가마를 못탄다고 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도 이상한 것 같네요." 라는 말도 된다. 이것이 올림픽에서 패한 것이라고 한다면, 느낌이 달라질 것 같다.
선거에서 낙선했다면 낙선의 변을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문학 전집에 입후보한 것이 아니다. "순수문학" 이라는 이웃마을의 축제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말했다. "그런 것을 나에게 물어봐도, 뭐라 해야 좋을지..." 상대는, "그도 그렇습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라고 수긍은 하면서도, "그러나 '쇼와의 문학'이기 때문에, 쇼와의..." 라고 끈질기다. 그렇게 힘주어 말해도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며칠 후 신문을 펼쳤더니 문득 눈에 띄는 잡지광고가 있다. "쇼와 문학 전집에서 빠진 유명 작가들. 무라키미 하루키(村上春樹), 쇼지 가오루(庄司薫), 와타나베 쥰이치(渡辺淳一), 사도 아이코(佐藤愛子), 야마모토 유조 (山本有三), 다미야 도라히코(田宮虎彦) 등."
예의 침울한 목소리 기자의 주간지다.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 교분(?)으로 나도 "유명 작가"에 끼게 되었구나 하고 내 얼굴엔 옅은 미소가 지나갔다. 그날 오후, 빠르게도 옛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코 씨, 정말 섭섭했겠어, 이번 일은···" "뭐가?" 나는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랐다. "쇼와 문학 전집의 건···" 나는 생각치도 못한 말에 "아니, 별로..."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유감이야, 강건한 너니까 별 걱정은 하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라고 뭔가 화재로 집이 몽땅 타버린 사람에게 하는 위로의 말 같다. "뭐 별로 대단한 일로 생각치 않고 있어. 나는 원래가 순수문학 작가가 아니어서 상응한 결과라고 생각해."
"순수문학! 아, 순수문학! 순수문학이란 도대체 뭐야!" 친구는 흥분한다. 여기에서 순수문학에 대해 논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나는, "뭐, 괜찮아. 이 일로 원고의 주문이 오지 않게 되어, 밥줄이 끊기는 것도 아닌데." 라고 말해 준다.
그래, 그렇긴 한데, 하지만 아이코 씨, 나는 너의 친구로서 굉장히 아쉬워---" 귀찮구나!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내심으론 그렇게 말해 줘서 기뻐하고 있지 않나 하는, 괜한 생각을 하고 싶어진다.
같은 날에 속달이 도쿄의 빈집에서부터 회송되어 왔다. 알지도 못하는 독자로부터 온 것으로 “아무쪼록 신경쓰지 마시고, 좋은 작품을 써서 촐판사 소학관을 앙갚음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적혀 있다.
나는 점점 불쾌해져 왔다. 청빈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웃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해 주먹밥이나 찐고구마 같은 것을 가져왔을 때 이런 기분이들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분이다.
예술원 회원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하고, 사전공작에 분주에 시간을 보내다 영광스럽게 예술원 회원이 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곤도코(今東光) 씨와 같이, "그런 것, 필요 없어." 라고 거절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되고 싶어하는 부류와 되고 싶지 않다는 부류와 어느 쪽이 위인지 아래인지 하는 구분은 본래, 없는 것이다.
거기에 있는 것은 각각의 가치관 뿐이다. 남보다 위에 서고 싶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추앙받고 싶어하는 사람의 그 열정에 의해 뛰어난 작품을 낳을 수도 있고 그런 것을 무시하지만 같은 업적을 내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30살이 넘었는데도 결혼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아니, 가련하고 불쌍해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30을 지나면 여자도 천덕꾸러기인데 일부러 않그런 척한다." 면서, 험구를 하는 것이다. 험구를 하면서도 애타게 이곳저곳 혼처를 수소문하는 것도 그녀에게 "남과 같은 행복"을 가져다 주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본인은 "어떻게든 도움을 받고 싶다." 라고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나친 참견이라는 얼굴을 한다. 그러나 “30 지나 결혼하지 않는 것은 불행하다” 라는 관념에 묶여 있는 사람은 그 지나친 참견이라는 얼굴을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사람에게, "남과 같은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그런 것을 바라고 있지 않아요." 라는 말이라도 하게 되면, 그 때부터 그녀를 적으로 돌려 세우게 되기 때문에, 그런 대꾸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불쌍하고 가엽다고 위로받고 있는 가운데 점점 그녀는 비참한 기분이 되어 가는 것이다. "나는 세속에 타협하지 않고 나의 길을 가는 거야!" 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자신을 잃게 되어, "역시 나의 생각이 틀린 것일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결혼은 하고 싶을 때 하면 되지만, 정말로 자신이 결혼하고 싶어져서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고 싶지 않지만 하지 않으면 않되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인지, 자신도 모른 채 결혼하지 않는 자신을 비참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까.
요즘 갈은 정보화 시대에 각자의 가치관을 서로 확인할수 있는 일인데, 균일한 틀 속에 갖히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 여기까지 썼을 때, 친한 어부가 물고기를 가져와 주면서 말했다.
"선생님, 뭔가 하는 문학의 책에 낙선했다 면서요." 세상사 소문이란 무서운 것으로 이런 시골에서까지 나를 난처하게 만든 출판사 소학관에 처음으로 원망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서 역시 전집에 들어가고 싶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