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명철
어떤 스님이 법문을 설하다 청중에게 물었다. “여러분, 지옥이 좋습니까? 극락이 좋습니까?” 지옥이 좋다는 분 손들어보세요.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 극락이 좋다는 분 손들어보세요.“ 모두 손을 들었다.
”아하. 극락이 지옥보다 좋은 곳이네요. 그럼 지금 극락에 가실 분 손들어보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예에. 지금이 극락보다 더 좋은가 봐요.“
오늘 속에 지금 이 순간이 있다. 스님이 말하고 있는 바로 이때가 지금이다. 오늘하루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 가버린 지금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를 살펴본다.
아내는 처제들과 일본에 온천여행을 떠났다. 가기 전에 미역국과 청국장을 끓여놓았다. 둘째 딸이 전주에서 감자탕과 닭강정을 사왔다. 내가 밥을 못해먹을까 염려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오늘 예술인총연합회(예총) 예술인상과 공로상 수상 행사가 있어 참석하였다. 나가면서 알바 나간 손자에게 미역국과 청국장, 감자탕과 닭강정이 어디에 있는지 문자를 보냈다. 나는 행사장에서 뷔페식을 먹었다.
집에 와보니 손자는 감자탕을 먹고 뼈다귀를 빈 그릇에 수북이 쌓아놓았다. 1인분은 족히 남아있었다. 손자가 좋아하는 내일 먹을 음식이다. 혹 모자랄까봐 손도 안댔다.
해놓은 미역국과 청국장도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충분한 양이었다. 잠시지만 아내가 할 일을 내가 하면서 평소 아내가 얼마나 가족을 위해 일을 많이 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돌아왔다. 돌아온 지금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인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건 어제도내일도 아니고 아내가 돌아온 바로 오늘 지금이라는 게 한 번 더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과거의 내일이었으며, 오늘은 내일의 과거다. 우리의 역사는 바로 오늘 지금의 기록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영위되는 오늘, 지금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며 그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수필이라 생각한다.
지금, 오늘의 작은 일에 생각과 감정을 더하여 기록하고 그 기록을 글로 남기면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지난 오늘의 삶과 기록은 언제나 미흡했고 실천은 생각을 따라오지 못했었다.
나는 지금 수많은 오늘을 거쳐 인생 황혼기에 들어섰다. 오늘 지금 생각하는 것들이 조각조각 이어져 추억이 되고 추억을 간추려 사념이 되고 깊은 사유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것들이 나의 행동이고, 버릇이며 어쩌면 습관으로 이어져오지 않았는가를 유추해본다. 그것은 나도 모르게 고정관념이 되고 편협하게 된 점도 많을 것이며 이런 것들이 모아져 의도된 행동이 된 것이리라 여겨지기도 한다.
누구의 말이나 글을 읽고서가 아니라 지금 오늘이 가장 중요하며 모든 시간의 전부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기에 나는 오늘의 지금을 어떻게 넘기고 있는가를 반추해본다.
오늘 속의 지금, 늘 생각해야 할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을 후회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챙겨주고 사랑해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리하여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하루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기를 소원하며, 오늘의 나의 삶을 잘 가꾸는 것이 과거에도 잘 가꾸어 온 것이 될 것이고, 미래도 잘 가꾸어 갈 것이란 예견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랑하자.
미워하지 말자.
미움도 그 저변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깔려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아예 처음부터 지금, 사랑하는 새싹을 길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