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남편들은 아내가 사골국을 끓이면 긴장한다. '나 혼자 집에 남겨두고 또 어딜 가려나' 겁부터 난다. 어느 보험회사 광고에서 아내가 여행을 떠나며 남편에게 한마디 던진다. "곰국 끓여놨다. 다녀올게." 여자는 숫제 반말이다. 남편은 부스스한 머리에 졸린 눈으로 뻘쭘하게 선 채 대꾸도 못한다. 사골국이 끓고 있는 양은 들통만 바라본다. 며칠이고 밥때 되면 파 썰어 넣고 찬밥 말아 먹을 일을 생각하니 한심하다.
▶동네 어귀에 설렁탕집이 있다. 해외 출장 다녀올 일이 생기면 일부러 들른다. 한동안 못 먹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 집 입구에 떡하니 써 붙였다. '다른 집 엑기스 국물과 비교하는 것을 정중히 사양합니다.' 봉지에 담긴 기성 국물 제품을 쓰는 집과 달리 주방에서 직접 곤다는 뜻이다. 이름난 설렁탕집은 보란 듯 입구에 가마솥을 두어 개 걸어놓는다. 장작불이 늘 기세 좋게 탄다. 주인에게 끓이는 법을 물으면 "그걸 왜 물어요?" 하고 퉁을 놓았다.
▶소의 네 다리뼈를 끓여 낸다고 해서 사골(四骨)국이다. 먼저 흐르는 물에 씻고 찬물에 하룻밤 담가 핏물을 뺀다. 다음에 찬물 붓고 센불에 끓인다. 첫 국물은 기름도 많고 냄새도 께름해서 버린다. 다시 찬물을 넉넉히 붓고 센불에 올린다. 화르르 끓어 오르면 불을 줄이고 뭉근하게 서너 시간 견딘다. 곁에서 간간이 기름과 거품을 걷어낸다. "게으른 며느리는 사골 못 우린다"고 했다.
▶사골에선 피부에 좋은 콜라겐, 뼈에 좋은 콘드로이친황산과 칼슘, 무기질이 우러 나온다. 이 성분들이 국물 속에 잘 어우러지는 현상을 '유화(乳化)'라고 한다. 그래서 사골국이 뽀얗다. 그렇다고 여러 번 우리면 좋지 않다. 사골국 많이 먹는 설을 앞두고 농촌진흥청이 "사골을 네 번 넘게 우려내면 몸에 해로울 수 있다"고 했다. 너무 많이 끓이면 사골 깊숙이 든 인(燐)까지 국물에 녹아난다. 인은 인체의 칼슘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군대 간 아들이 장교식당 조리병이다. 부대장에게 소머리 국밥을 내놓을 때면 맛이 제대로 나는지 걱정이라고 한다. 부대 이웃 동네 국밥집 사장님에게 머리 조아리고 한 수 배웠다고는 하던데. 요즘은 비닐봉지에 든 사골 곰탕을 사다 끓여 먹는 집도 많다. 사골국은 기내식으로도 나온다. 그래도 사골국 하면 어머니, 고향집, 어둑한 부엌과 가마솥, 담 낮은 굴뚝에 낮게 퍼지는 연기가 떠오른다. 어쩌다 고소한 사골 진국을 마실 때면 어머니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