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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91.10.13) - 20부
1991.10.13, 한국 전 본부교회
어, 참. 남이 모르는 그런 수난과 고통이 될 것 같지만 그 모든 지난 날에 서러움에 거쳐간 그 재료들이 인격소양을 완성시키는 데 위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대단하게 순차적인 과정을 처음 맞게 되는 그 자리에서 저렇게 늠름하게 저렇게 자연스럽고 참 미모를 갖춘 이상의 우아한 자세를 가지고 나타났다는 사실은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러운 환경에 그런 모든 배후가 수만 명의 어려운 그 자리를 능가할 수 있는 역사의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에요. 패놓고 일생을, 나날을, 해를 거둬가면서 10년세월, 20년세월 자기 생애 절반을 혹 자는, 40년 50년을 통일교회를 지내왔습니다. 그런 여러분의 삶을 엮으려면 끝이 없는 거야, 끝이 없는 거야. 좁쌀을 헤아려 가지고 성을 만들 수 있는 사연을 가지고 있어. 거기에는 아무 내용이 없는 것이 없어. 한알 한알 내용을 남기고 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배고픈 것도 있겠고, 억울한 것도 있겠고, 분함도 있겠고 외로움도 있겠고, 복수하게 만들겠다는 분통함도 있겠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부모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다 잊어보려 몸부림쳐 보는 그 역사는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인격소양을 위한 그 배후에서 위대한 승리적 터전으로서 여러분의 역사를 지킬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는 것을 어머님을 통해서 여실히 배워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젠 남자로 태어났고, 통일교인의 이름을 가진 하나의 지역장, 시군 책임자로 활동하던 여러분. 사연도 많아! 동을 향한 눈물도 흘렸고 서를 향하여 동서남북, 전후좌우를 바라보면서도 자연의 친구를 그리워하면서 하다가 채널을 기술하게 되었습니다. 고향을 잃어버리고 슬픔으로 떠나버린 고향을 이제 찾아야 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가슴을 활짝 넓게, 높게 가져가지고 고향을 품고 사랑의 눈물로써 환영의 눈물로써 반기는 맞음의 눈물로써 여러분의 살아온 여러분의 조상들을 대해서 사랑의, 나라를 사랑하고 향토를 사랑하는 눈물을 뿌리고 땀을 뿌리고 거기에 자기 형제들과 더불어 동참자가 돼 가지고 호미를 들 수 있고, 곡괭이로 땅을 팔 수 있고, 혹은 공장에 가 가지고 해머를 가지고 일하면서 `형님! 누나! 우리 고향 땅을 일궈 봅시다!'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권고할 수 있는 그 자리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거기에 남북이 분열된 민족의 정기를 이룰 수 있는 기원이 스며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되겠어요.
이제 여러분의 가정의 모든 과거지사를 다 풀어 놓고 사연과 더불어 종족 무대에 서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수확기를 맞이한 때가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1991년은 역사적 수확기, 세계사적인 수확기입니다. 이 종교문화세계의 종착점에 있어서 승패를 우주적으로 가릴 수 있는 시대의 패권자로 등장할 수 있는 통일교회 권위를 손상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 시간을 통해 다시 한 번 결의해 주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환영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박수로 답변해 줘요. (박수) 고마워요.
선생님도 우리 어머니가 참 불쌍한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요. 이런 얘기를 일일이 할 시간이 없지만, 사랑하는 자식 8남매 가운데서…. 형님이 계시고, 누님이 계시고, 누이동생들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문중을 대표한 아들로서 나를 자랑하면서 키워 왔어요. 내가 그렇게 잘생기지는 못했지만, 아이 때는 참 보기 좋았던 모양이지요? 정주에서 선천 가는 기차를 타고 가게 되면, 지나가는 남자들이 전부 지나 갈 때마다 옆에 서 가지고 한번 안아 보자고 하고, 우리같이 복받지 못한 사람들이 복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이 생겨서 그러니 제발 안아 보게 해 달라고 해 가지고, 그냥 안아 주면 괜찮은데, 안고 키스까지 하려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때 어머니가 하는 말이, '키스하는 건 원치 않을 텐데 왜 저럴까' 생각하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거를 되돌아볼 때 너는 앞으로 세계 사람들 앞에 추대받을 수 있고, 정을 다 기울여 가지고 깊이 환영할 수 있는 역사적인 내적 인연이 깃들어 있다!' 하고 혼잣말로 나한테 교육하던 것이 잊히지 않아요. 있는 정성을 다해서 나를 키웠습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나를 먼저 생각하고…. 아들을 위한 그런 일에 있어서 희생하던 어머니는 생활적 과부같이 생각했다구요.
그런 부모를 대해서 지금까지 생각하기에 안된 것이, 손수건 하나도 내가 예물로 사다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양말 한 켤레, 버선 한 켤레 사 주지 못했습니다. 왜 그러냐? 뜻의 길을 알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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