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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민이 이중과세 철폐 소장(訴狀)과 세금탕감 청원서(請願書)를 올리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편에는 거제도 목장 지역 주민들이 땅 하나에 세금을 두 번 내는 일토양세(一土兩稅)의 이중과세에 항의하여 경리원(經理院)에 올린 「1907년 부당한 이중과세 철폐 소장(訴狀, 請願書)」과 거제군 칠목장(七牧場) 주민들이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농지의 도전(賭錢)을 탕감해 달라고 경리원경(經理院 수장)에게 올린 「1906년 피해를 입은 땅의 도전(賭錢) 감면 청원서(請願書)」 2건을 소개하겠다.
이러한 문건은 대한제국기 당시 중앙 정부의 가혹한 조세 수취와 지방 관리의 부정부패에 맞서 섬 주민들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전개한 일종의 적극적인 조세 저항 운동의 산물이다. 그리고 대한제국기에는 광무개혁 등을 거치며 국가 재원이 황제 직속 기구인 내장원(경리원)으로 대거 이관되었다. 이 과정에서 황실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지세, 호세 외에도 각종 잡세가 신설되거나 징수가 강화되면서 농민들의 부담이 급격히 늘어났다. 때론 지방 수령이나 아전들이 규정된 세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징수하거나, 부역(노동력 동원)을 불공정하게 배분하는 등의 부정이 만연했다. 고로 이러한 문서들은 거제도민들이 단순한 피지배층에 머물지 않고, 법적 절차를 통해 부당한 조세 행정에 저항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다. 덧붙여 이 문건들의 출전은 『각사등록(各司謄錄)』과 『경상남북도 각군 소장(慶尙南北道各郡訴狀)』이다.
1) 「1907년 부당한 이중과세 철폐 소장(訴狀)」
이 소장(訴狀)은 1907년(광무 11년) 6월, 경남 거제도 목장 지역 주민들이 부당한 이중과세에 항의하며 대한제국 황실 재산 관리 기관인 경리원(經理院)에 올린 소장과 그에 대한 판결(지령) 내용을 담고 있다. 내용인즉 "우리는 땅도 척박한데 왜 남들 안 내는 추가 세금(도세)까지 내야 합니까? 이중 과세를 멈춰주세요!"하니 정부에서 답변하길 "이미 안 된다고 했지? 나라 땅에서 살면서 세금 안 내려는 꼼수 부리지 말고 그냥 내라." 당시 거제도 주민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국가(황실) 소유의 목장지를 경작한다는 이유로 일반 세금 외에 임대료 성격의 '도세'를 추가로 부담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상황을 보여준다.
일토양세(一土兩稅) 즉, 땅 하나에 세금을 두 번 내고 있다. 거제 목장 주민들은 척박한 해안가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데, 1894년(갑오경장) 이후 전국의 세금이 균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곳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식적인 결세(元結) 외에, '도세(賭稅)'라는 명목으로 논 한 부(負)당 엽전 1냥, 밭 한 부당 5전을 추가로 징수당하고 있다. 어찌 "하늘 아래 임금님의 땅이 아닌 곳이 없는데, 왜 우리만 세금을 두 번 내야 합니까?"라며, 중간 관리들의 농간이 의심되니 조사하여 일토일세(一土一稅) 원칙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1907년(융희 원년) 8월 8일, 경리원의 판결(指令)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가의 중요한 땅(公土)에서 세금을 면제받으려고만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니, 번거롭게 굴지 말고 세금을 납부하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결국 이 문서는 대한제국기 왕실 재산을 관리하던 경리원이 역둔토나 목장지 같은 공공 토지의 수입을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과도한 세금에 고통받던 민초들과 갈등을 빚었던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료다.
이 「1907년 부당한 이중과세 철폐 소장(訴狀, 請願書)」은 발신자가 거제의 민인(民人)이고 수신자는 경리원경(經理院卿)이며, 출전은 『각사등록(各司謄錄)』과 『경상남북도 각군 소장(慶尙南北道各郡訴狀)』이다.
**「1907년 부당한 이중과세 철폐 소장(訴狀, 請願書)」** 원문
거제군 목장 주민들의 소장. 광무 11년(1907년) 정미 6월 일. 소장: 경상남도 거제군 목장 주민 등.
삼가 말씀드립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온 세상에 임금님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임금님의 백성이 아닌 자가 없거늘, 어찌하여 저희 같은 백성들만 이런 처지에 놓였단 말입니까? 저희가 사는 곳은 멀리 떨어진 바닷가로, 산은 많고 들판은 적어 입에 풀칠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 땅에 세금을 두 번 내는(一土兩稅) 억울함이 지극히 심하므로, 발을 싸매고 올라와 우러러 호소하오니 세세히 살펴주시옵소서.
본래 이 군에는 목장이 있어 예전에는 창선 목관(昌善 牧官)의 관할이었습니다. 황제 폐하의 성스러운 덕이 밝으시어 갑오년(1894년) 세금 제도를 합친(陞摠) 뒤로는 온 세상 백성들이 균등하게 세금을 내며 덕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저희가 사는 목장 땅에만은 공식적인 결세(元結) 외에, 이른바 '도세(賭稅)'라는 명목으로 해마다 세금을 강제로 거두고 있습니다. 논(畓)은 1부(負)당 엽전 1냥을, 밭(田)은 1부당 5전을 내야 하니, 의지할 곳 없는 먼 곳의 백성들이 원망을 품으면서도 억지로 내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세금을 걷는 관리들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는 것일 겁니다.
설령 도세라는 것이 있다하더라도, (제도가 바뀐) 이후로는 온 세상이 '한 땅에 한 번의 세금'을 내는 것이 원칙입니다. 관할도 없고 목장도 아닌 곳의 세금을 백성에게 억지로 걷는 것이 너무나 원통하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명민하신 관청 아래 호소합니다. 부디 살피신 후에, 이 땅의 백성들이 일토일세(一土一稅)의 원칙대로 살 수 있도록 해당 도의 관찰사와 소속 관청에 특별히 훈령을 내려주시어, 여러 사람의 목숨을 보존해 주시길 간절히 빌고 또 빕니다. 정미(1907년) 6월 일. 이성하, 김용서, 박경화, 신치겸, 박성함, 박정수. 경리원경 각하 처분 귀하.
[판결 지령(指令)] 거제 목장 주민들이 갑오년 이후 자신들의 거주지에만 공식 세금 외에 도세를 걷어 이중 과세가 되니, 이를 면제해 달라는 일.
[판결 내용] 이 일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에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가의 중요한 땅(公土)에서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만 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니, 다시 번거롭게 굴지 말고 세금을 납부하라. 융희 원년(1907년) 8월 8일.
[光武十一年丁未六月 日. 訴狀 慶尙南道巨濟郡牧場居民等.
右謹言 伏以普天之下에 莫非王土요 莫非王民이온바 何哉오? 民等所居之地 卽極漠海濱也요 山多野小야 民食嚴難中에 一土兩稅가 尤極冤枉故로 裹足仰訴오니 伏乞細細垂察焉소셔. 本郡이 素有牧場 而原來昌善牧官之所管이옵던이 聖德이 至明사 自甲午陞摠之後로 萬民均稅고 四海가 頌德中에 惟獨民等所居牧場之地 元結外에 一土兩稅을 年年懲貢者가 稱云賭稅고 畓結은 每負에 葉錢이 一兩이요 田結은 每負에 葉錢이 五戔이온즉 無告遐氓이 含怨懲納이오나 想必捧稅派員輩之中間作奸也라. 設使賭稅로 言之라도 有內外牧之分異이오나 蕩還陞摠之後로 一土一稅가 四海均平이거 伏未知無管無牧之稅을 懲捧於蒼生이 尤極冤痛故로 敢冒死齊訴于明府之下오니 參燭신 後에 率土之氓이 以一土一稅之意로 特下訓令于該道觀察及所管了시와 俾保衆命之地 千萬伏祝홈. 丁未六月 日. 後 李聖夏 金龍瑞 朴敬化 辛致謙 朴聖咸 朴貞守. 經理院卿閣下處分. 巨濟牧場民人等 自甲午陞摠後 惟獨本人等住居地 元結外稱賭稅 逐年懲貢 一土兩稅 果難支保 特訓所管 俾免兩稅事. 指令, 以此事로 旣經題飭之申複이어니와 攸重公土를 專事圖頉이 於理不當이니 勿煩准納 事. 隆熙元年八月八日]
2) 「1906년 피해를 입은 땅의 도전(賭錢) 감면 청원서(請願書)」
이 청원서는 광무 9년(1905년) 5월, 경상남도 거제군 칠목장(七牧場) 주민들이 극심한 자연재해로 인해 농사를 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세금이 면제되지 않자, 이를 탕감해 달라고 경리원경(經理院 수장)에게 올린 문서다. 이 문서는 당시 거제도 주민들이 겪었던 자연재해의 참상과 농사지을 수 없게 된 땅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야 했던 가혹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1) 청원서 내용을 보면, 거제군 주민 옥철환, 서내서, 김재규 등이 청원하였다. 지난해(1904년) 6월의 폭우와 7월의 강한 풍랑으로 인해 섬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다. 섬의 지형 특성상 바람을 막아줄 곳이 없어 풍랑 피해가 컸고, 산이 험하고 물길이 급해 비가 오면 논밭이 씻겨 내려가 바다가 되거나 돌밭이 되었다. 반대로 가뭄이 들면 물을 끌어올 곳이 없어 농작물이 금방 말라 죽는 열악한 환경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호소하길, 마을 터가 갈매기가 노니는 모래톱으로 변하거나 집들이 무너져 백성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이미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땅에 대해 도전(賭錢, 임대료 성격의 세금)을 계속 징수하려 하니 살길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목장 도전 중 피해를 입은 2,729냥 7전을 감면해 주어 백성들이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2) 광무 9년 5월 30일, 관청의 처분(지령)은, 해당 목장의 바닷물 범람과 무너진 실태를 상세히 조사하여 보고(詳査報來)한 후 조치를 취하겠다는 지시를 내렸다.
(3) 이 청원서는 대한제국기 거제도 지역의 열악한 농업 환경과 당시 국가 직할 목장지였던 목둔토(牧屯土)에 대한 세금의 징수 갈등을 잘 보여주는 사료다. 자연재해로 인해 영구히 버려진 땅(永棄川浦)에 대해서도 세금을 물리는 '일토양세(一土兩稅)'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 「1906년 피해를 입은 땅의 도전(賭錢) 감면 청원서(請願書)」는 발신자가 거제의 옥철환(玉哲煥), 서내서(徐乃瑞), 김재규(金載圭) 등(等)이고 수신자는 경리원경(經理院卿)이며, 출전은 『각사등록(各司謄錄)』과 『경상남북도 각군 소장(慶尙南北道各郡訴狀)』이다.
**「1906년 피해 입은 땅의 도전(賭錢) 감면 청원서(請願書)」** 원문
광무 9년(1905년) 5월 일. 청원서자는 경남 거제군 칠목장(七牧場) 주민 옥철환, 서내서, 김재규 등이다.
우리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정은 이미 본 군수(거제군수)에게 올린 보고 중에 상세히 밝힌 바 있습니다. 대체로 지난해 본 군의 농사 형편이 하천과 갯벌(川浦) 지역에서 더욱 심각했던 것은 바로 6월의 빗물과 7월의 풍랑 때문입니다.
본 군의 지형과 토질은 다른 강가나 평야 지역과는 판이합니다. 마치 알과 같은 작은 섬이 아득한 바다 한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형국이라, 거센 바람이 불어오면 막아줄 장애물이 없어 그 매서운 타격을 고스란히 받습니다. 또한 온 땅이 모두 산이라 넓은 들판이 없고 바다와 바로 맞닿아 있어서, 비가 조금만 많이 내려도 골짜기의 물살이 급해져 바위를 굴리며 곧장 내달립니다. 이로 인해 논밭의 두렁이 깎여 나가 바닷물과 통하게 됩니다.
흙에는 돌이 많고 물의 근원이 깊지 않아, 비록 열흘만 비가 오지 않아도 보(洑)와 도랑이 모두 말라붙어 곡식과 풀이 타 죽습니다. 이는 섬나라 땅의 이치와 형세가 강과 들판이 있는 다른 군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은 바람이 그리 모질지 않고, 홍수가 나도 이쪽이 피해를 보면 저쪽은 살아나며, 가뭄이 들어도 제방의 물을 끌어다 댈 수 있지만,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해 재해 중에서 바다로 둘러싸인 목장의 하천과 갯벌이 깎여 나간 것은 언덕과 골짜기의 위치가 바뀔 정도여서 인력으로는 도저히 복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풍랑에 휩쓸린 곳 중 어떤 마을은 집터가 변해 갈매기가 노니는 모래톱이 되었고, 어떤 곳은 무너진 주춧돌만 남아 마치 전쟁을 치른 폐허와 같습니다.
현재 땅을 잃고 배고픔을 호소하며 거처 없이 떠도는 백성들은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목숨들입니다. 그런데 이미 영구히 버려진 하천과 갯벌, 목장 밭에 대하여 '한 땅에 두 번 세금을 매기는 격'으로 결세(結稅)와 도전(賭錢, 소작료)을 또다시 거두려 하신다면, 이 멀리 떨어진 외딴섬의 불쌍한 백성들이 어떻게 황제 폐하의 보살핌 아래 함께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에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와 호소하오니, 특별히 백성을 가엽게 여기는 은혜를 베푸시어 해당 목장의 도전(소작료) 중 피해를 입은 2,729냥 7전을 기한 내에 감면해 주시고, 저희가 안심하고 살 수 있게 선처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광무 9년 5월 일. 경리원경(經理院卿) 합하 귀하. 옥철환 등 올림.
[관청의 지령] 거제군 목장 토지가 바닷물에 잠기고 하천이 깎여 나간 곳의 도전(세금)을 상세히 조사하여 감면해 달라는 건에 대하여.
[지시] 해당 목장의 둔전 중 바닷물에 잠긴 곳, 무너진 곳, 깎여 나간 실태를 상세히 조사하여 보고하라. 그 후에 조치를 취할 것이다. 광무 9년 5월 30일, 봉세관(稅金을 거두는 관리)
[光武九年五月 日. 請願書. 慶南巨濟郡七牧場居民 玉哲煥 徐乃瑞 金載圭等.
右情冤事段은 矣等冤抑之情勢은 已悉於本郡守前報中 枚擧陳告하잇견과 大抵昨年本郡農形之川浦尤甚은 卽六月雨水也와 七月風浪也라 本郡地形土理가 逈異〈於〉他江郡野邑하니 如丸小島가 孤浮滄溟之中故로 値風大吹 則無所障禦에 偏受酷撲하고 一境皆山에 無平闊之野 而迫接海濱故로 値雨少漲이도 峽流急湍이 轉石直駛하야 激囓阡陌즉 阡陌에 仍通海濤하고 土旣多石 而水無深源故로 雖値十日不雨라도 洑渠皆涸에 穀草欲枯하니 此皆壤土海島之理勢가 與江野諸郡에 元無偏惡之風하고 水漲而此落彼生하며 日旱而堤堰引灌之地로 大不相似이온바 昨年災形中環海之牧場川浦落은 岸谷이 移處에 萬無人力可完之道이고 風浪被劫處난 或村里基垈가 變爲鷗鷺之洲하며 或頹壓傾礎가 如同兵燹之墟하니 方此無土呼庚과 失棲流離之民이 不翅曰濱死之命이온듸 其一土兩稅之永棄川浦牧田畓結稅賭錢을 又擬刷捧하시면 哀此遐外島蒼 何以竝生于普天化育之下乎잇가? 玆敢冒死奔籲하온니 特施如傷之澤하시여 同牧賭錢中 川浦條二千七百二十九兩七戔을 期獲準減하시와 俾爲奠保케 積善處分홈. 光武九年五月 日 經理院卿閤下. 玉哲煥等 巨濟郡牧場土海溢浦落地賭錢 詳査頉減事. 指令 該牧屯海溢所頹와 浦落實地 詳査報來야 以爲措處케 事. 光武九年五月三十日 捧稅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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