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0]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이때 이두병이 스스로 황제라 일컫고 국법을 새로이 하여 각국 열읍에 공문을 보내 벼슬도 올려 주는지라. 여러 신하들이 모여 동궁을 폐하여 외객관으로 내치니, 후궁과 벼슬아치들과 내외궁의 노비 등이 하늘을 부르짖고 땅을 치며 끝없이 슬프고 마음 아파하니 ㉠푸른 하늘이 부르짖는 듯하고 태양도 빛을 잃은 듯하더라. 이때 왕 부인이 이러한 변을 보고 크게 놀라 실색하여,
“마땅히 죽으리로다.”
하며, 주야로 하늘을 향해 빌며 말하기를,
“웅의 나이 팔 세에 불과하니 죄 없는 것을 살려 주소서.”
하며 애걸하니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겠더라. 웅이 모친을 붙들고 만 가지로 위로하여 말하기를,
“모친은 불효자식을 생각하지 마시고, 천금같이 귀하신 몸을 보존하소서. 꿈 같은 세상에 유한한 간장을 상하게 하지 마소서. 인생에서 죽는 일 하나만은 제왕도 마음대로 못하옵거늘 어찌 한 번 죽음을 면하오리까? 짐작하옵건대 ㉡이두병은 우리의 원수요, 우리는 그의 원수가 아니오니 어찌 조웅이 이두병의 칼에 죽겠사오리까? 조금도 염려치 마옵소서.”
하며 분기를 참지 못하더라.
이때 이두병이 큰아들 관으로 동궁을 봉하고 국호를 고쳐 평순황제(平順皇帝)라 하고 연호를 새로 고쳐 건무(建武) 원년(元年)으로 삼았다.
이즈음에 송 태자를 외객관에 두었더니, 여러 신하들이 다시 간하여 태산 계량도에 유배하여 주거를 제한하고 소식을 끊게 하였다. 이날 왕 부인 모자가 태자께서 유배되었다는 말을 듣고 망극하여,
“우리 도망하여 태자를 따라 사생(死生)을 한 가지로 하고 싶으나 종적이 탄로나면 이에 앞서 죽을 것이니 어찌하리오?”
하며 모자가 주야로 통곡하더라. 하루는 웅이 황혼의 명월을 보며 원수 갚을 묘책을 생각하더니, 마음이 아득하고 분기탱천(憤氣撐天)한지라. 울적한 기운을 참지 못하여 부인 모르게 중문에 내달아 장안 큰길 위를 두루 걸어 한 곳에 다다르니 여러 사람들이 모두 모여 시절 노래를 부르거늘, 들으니 그 노래는 이러하더라.
국파군망(國破君亡)*하니 무부지자(無父之子)*나시도다.
문제(文帝)가 순제(順帝)되고 태평(太平)이 난세로다.
천지가 불변하니 산천을 고칠소냐.
삼강이 불퇴하니 오륜을 고칠소냐.
맑고 밝은 하늘에서 소슬히 내리는 비는
충신원루(忠臣寃淚) 아니면 소란스럽게 구는 사람의 하소연이로다.
슬프구나 백성들아, 오호에 한 조각배를 타고
사해에 노니다가 시절을 기다려라.
웅이 듣기를 다함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두루 걸어 경화문에 다다라 대궐을 바라보니, 인적은 고요하고 월색은 뜰에 가득한데 오리와 기러기 몇 쌍이 못에 떠 있고, 십 리나 되는 화원에 전 왕조의 경치와 풍물 아닌 것이 없더라. ㉢전 왕조의 일을 생각하니 일편단심에 굽이굽이 쌓인 근심이 갑자기 생겨나는지라. 조웅이 담장을 넘어 들어가 이두병을 만나서 사생을 결단하고 싶으나 힘이 모자랄뿐더러, 문 안에 군사가 많고 문이 굳게 닫혀 있는지라 할 수 없이 그저 돌아서며 분을 참지 못하여 붓을 넣어 차고 다니던 주머니에서 붓을 내어 경화문에 글자가 잘 보이도록 글자를 크게 써서 이두병을 욕하는 글 몇 구를 지어 쓰고는 자취를 감추어 돌아오더라.
(중략)
이날 밤에 황제가 꿈이 몹시 흉하고 참혹하기에 날이 밝기를 기다려 여러 신하들을 궁궐로 불러 들여 꿈속의 일을 의논할 때, 경화문을 지키던 관원이 급히 고하기를,
“밤이 지나고 나니 문밖에 없던 글이 있기에 옮겨 적어 올립니다.”
황제가 그 글을 보니,
‘송나라 황실이 쇠약하고 미미하니 간신이 조정에 가득하도다! 만민이 불행하여 황제의 상이 나셨도다! 동궁이 장성하지 못했으니 소인이 득세하는 때로다! 만고 소인 이두병은 벼슬이 일품이라. 무엇이 부족하여 역적이 되었단 말인가? 천명이 온전하거늘 네 어이 장수하리오. 동궁을 어찌하고 네가 옥새를 전수하느냐? ㉣진시황의 날랜 사슴 임자 없이 다닐 때에 초패왕의 세상 덮는 기운과 범증의 신기한 능력으로도 임의로 못 잡아서 임자를 주었거늘*, 어이할까 저 반적아! 부귀도 좋거니와, 신명을 돌아보아 송업을 끊지 말라. 광대한 천지간에 용납 없는 네 죄목을 조목조목 생각하니 한 줄의 글로도 기록하기 어렵도다.
이 글은 전조 충신 조웅이 삼가 쓰노라.’
하였더라.
황제와 여러 신하들이 보고 나서 놀라며 분기등등하여 우선 경화문 관원을 잡아들여 그때에 잡지 못한 죄로 곤장을 쳐서 내치고는 크게 호령하여 조웅 모자를 결박하여 잡아들이라 하니 장안이 분분한지라. 관원들이 조웅의 집을 에워싸고 들어가니 인적이 고요하고 조웅 모자는 없는지라. 죄인을 다스리는 벼슬아치가 돌아와서 도망한 사연을 황제에게 아뢰니, 황제께서 책상을 치며 크게 노하여 대신을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조웅 모자를 잡지 못하면 여러 신하에게 중죄를 내릴 것이니 바삐 잡아 짐의 분을 풀게 하라.”
하니, ㉤여러 신하들이 매우 급하고 두려워하여 장안을 에워싸고, 또한 황성 삼십 리를 겹겹이 싸고 곳곳을 뒤져 본들 벌써 삼천 리 밖에 있는 조웅을 어찌 잡으리오.
-작자 미상, 「조웅전」-
*국파군망: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돌아가심.
*무부지자: 아버지가 없는 아들.
*진시황의~주었거늘: 진시황이 죽고 초패왕 항우가 그의 용맹함과 비범한 능력을 가진 책사 범증이 있음에도 황제가 되지 못하고 결국 유방이 황제가 된 일을 말함.
38. 윗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왕 부인은 이두병이 황제에 오르자 조웅의 안위를 걱정했다.
② 조웅 모자는 송 태자와 사생을 같이 하겠다는 계획을 실행했다.
③ 이두병은 송 태자를 대신하여 자신의 큰아들을 동궁으로 봉했다.
④ 이두병은 송 태자를 유배 보내자는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⑤ 이두병은 조웅이 쓴 경화문의 글을 보고 조웅을 잡아들이게 했다.
39.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조웅전은 나무판에 글자를 새겨 찍어낸 방각본 소설로 여러 판본의 작품들이 남아 있다. 이 작품에는 선의 회복을 추구하는 작가와 수용자의 욕망이 내재되어 있어 당시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지며, 악을 물리치고 태평한 질서를 회복하려는 선의 욕망을 지닌 인물이다. 반면 반역을 꾀하는 인물들은 악의 욕망을 지녀 선의 욕망을 지닌 인물들과 대립하고 갈등한다.
① 이두병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송 태자를 내쫓는 모습에는 악의 욕망이 드러나 있군.
② 원수 갚을 묘책을 생각하는 조웅의 모습에는 악에 맞서려는 선의 욕망이 나타나 있군.
③ 여러 사람들이 부른 ‘시절 노래’에는 선의 회복을 추구하는 작가와 수용자 층의 욕망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군.
④ 조웅이 경화문에 쓴 글에는 악을 물리치고 태평한 질서를 회복하고 싶은 조웅의 욕망이 내재되어 있군.
⑤ 경화문에 글을 쓴 조웅을 잡지 못하는 관원들의 모습에서 악이 선의 세력에 의해서 축출되었음을 알 수 있군.
40. ㉠~㉤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 새로운 황제의 등극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슬픔을 비유적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다.
② ㉡: 이두병과의 싸움의 결과를 회의적으로 전망하는 조웅의 심리를 대조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③ ㉢: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새로운 황제에 대한 조웅의 원망을 서술자가 직접 제시하고 있다.
④ ㉣: 이두병이 황제가 된 것은 하늘의 뜻이었음을 고사(古事)를 인용하여 드러내고 있다.
⑤ ㉤: 이두병을 속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신하들의 모습을 편집자적 논평으로 드러내고 있다.
첫댓글 소중한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