億兆蒼生(억조창생)과 푸른색의 의미
만물이 나오는 것을 億兆蒼生(억조창생)이라고 표현하는데,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건들이 있지만 처음 나올 때에는 모두 푸르게(蒼) 나온다는 뜻이다. 봄철에 땅에서 초목이 움틀 때의 색이 창색(蒼色)이다. 연한 초록색인 것이다. 실제로 하늘의 색이라고 표현된 검은(玄) 색 물감과 땅의 색으로 표현된 누런 (黃) 색 물감을 섞으면 창색이 나온다. 생명을 잉태할 때 하늘 기운, 곧 씨에 해당하는 양(陽)기운은 많이 필요하지 않기에 검은 색은 아주 조금만 섞으면 된다. 물감으로 섞어야 하는 이유는 땅 (土)에서 생물이 살아가는데 물(水)이 가장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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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의 첫 구절인 天地玄黃이 바로 이러한 뜻을 담고 있다 . 天地玄黃은 『주역』의 두 번째 괘인 坤(곤)괘의 ‘夫玄黃者는 天地之雜이니 天玄而地黃하나니(무릇 검고 누르다는 것은 하늘과 땅의 섞임이니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니)’에서 인용하였다. 그리고 이어 세 번째 괘가 둔 (屯)괘이다. 여기에 천조초매 (天造草昧)란 말이 나오는데 하늘이 만물을 창조하는(天造) 때에는 어린 생명 (草)의 기운이 어둡다 (昧)는 뜻으로서 ‘難生(난생) 처음’과 같은 의미이다.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하는 때를 초창기(草創期)라 하고 푸른색을 띠는 草(풀 초)를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였던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을 바라보고 ‘지구가 푸르다’며 탄성을 내기도 하였다. 생명체의 대표 색깔이 푸른색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말에는 하루해가 동터 오르는 하늘을 나타내는 色이나, 움터 나와 우거지는 초목의 색이나 모두 ‘푸르다, 파랗다’로 표현한다. 즉 청색 (靑)과 녹색 (綠)의 개념이 혼재되어 있다.
또 다른 분명한 사례는 신호등 색깔에 대한 표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건널목을 건너면서 무심코 내뱉는 말이 ‘파란불’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그러나 실제 신호등 색깔은 대부분 녹색이다. 청색과 녹색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같은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오행(五行)에서는 나뭇가지에서 푸른 생명이 움터 나오는 봄을, 나무 기운이 왕성한 계절이라 하여 목 (木)에 배속시키고 그 대표 색을 청색(靑色)으로 삼고 있다. 또한 봄을 계절의 처음으로 보듯이 하루의 처음인 아침도 木에 배속시킨 데서 잘 알 수 있다. 음양오행의 관점에서 동터오는 아침의 하늘빛이나 움터 나오는 봄의 푸르름이나 ‘새롭게 시작하는 기운의 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같은 현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참고> 오행과 방위와 色
동양문화권에서는 예로부터 후천팔괘를 구성하고 있는 태극도에 근거하여 오행과 방위와 색깔과 계절을 정하였다. 오행을 최초로 언급하고 있는 문헌은 『서경』 홍범편으로 “一曰水, 二曰火, 三曰木., 四曰金, 五曰土”라 하였다. 色에 대해서는 『주례 (周禮)』 古工記에 “東方之謂靑, 南方之謂赤, 西方之謂白, 北方之謂黑”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