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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노후 대책
말씀 : 계 14:13. 2023년 7월 2일 일요일 오전 11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침부터 죽음에 관한 말을 하면 기분 나쁘고 재수 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받은 자들이므로 육신의 죽음에 관해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크게 다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멸망으로 가거나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주께서 예비하신 우리들을 위한 집, 즉 파라다이스로 가는 영원히 행복한 여행이기 때문에 거부하기 보다는 사모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거처할 집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만 저는 이 말씀이 그렇게도 좋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한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받아들여 내가 있는 곳, 거기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하셨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히9:27)이므로 죽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어디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주 안에서 죽어 낙원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저승사자인 마귀에게 끌려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못 속에 던져져서 고통스러운 영원을 보낼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으십니까?
제가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을 때 공부하면서 들으니, 사람이 나이가 들어 늙으면 근심 걱정이 많아진다고 했습니다. 제 머릿속엔 주께서 하신 말씀이 살아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혹은,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혹은,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나니)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느니라.](마 6:31-32) 하셨는데 나이가 들면서 삶의 현실에서는 주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같이 걱정이 많아집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주께서 저에게 건강을 주셔서 지금은 생업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더 나이가 들어 병들고 약해져서 일하지 못하고 당장 쓸 돈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염려와 걱정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주님의 말씀을 비추어 볼 때 내가 얼마나 믿음이 적은 사람인가?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아는 것과 믿음은 별개입니다.
주님은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이 자기 것들을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악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오늘의 주제는 노후 대책입니다.
젊은 세대나 어린이들이 들으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저희가 살아온 세대, 즉 일본으로부터의 해방(1945년)과 6.25세대(1950년) 때에는 나라도 가난하여 국민들의 노후를 위한 연금 같은 제도도 없었고 백성들의 삶도 그날그날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없었으므로 노후 대책이란 꿈도 못 꾸고 계획도 없었으며 설사 계획이 있었다 해도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하며 살다보니 이제 나이 들고 먹고 사는 문제가 현실이 되니 앞으로 육신의 사는 날 동안 어떻게 살까? 하는 염려와 근심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주님 앞에, 또한 여러분들 앞에 믿는 다는 사람으로서, 목사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주님은 계속 말씀하시기를, 『그런즉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든, 오 너희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물며 너희는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눅 12:28)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제발 저와 같은 믿음이 적은 사람이 되지 말고 큰 믿음위에 굳게 서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울러 지금 젊은 여러분들은 비록 오늘의 삶이 여유롭지 않을지라도 100세 인생을 대비하는 지혜로운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믿음에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주시리라.](약 1:5) 하셨습니다. 주께 지혜를 구하시고 주께서 주시는 지혜와 믿음을 따라 늘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또한 『내일 있을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그것은 곧 잠시 나타났다가 그 뒤에 사라져 버리는 수증기니라.』(약 4:14) 하셨으므로 청춘이 길다고, 시간이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젊은이들은 열심히 일하여 자신의 삶에도 이웃에게도 유익을 주는 풍성한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제가 영적인 삶을 살지 못하여 그러는지, 영적으로 성숙되지 못함인지, 어릴 적의 가난 스트레스인지 모르지만 밤에 잠을 잘 때, 영적인 꿈을 꾸지 못하고 인생 밑바닥의 잡다한 꿈들로 시달립니다. 성경에는 주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다가 꿈으로 계시를 주시는 장면들이 아주 많은데 저의 육신의 꿈들은 항상 가난에 쪼들리는 일들과 일자리를 구하는 꿈들로 잠을 설칠 때가 많습니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좋은 일자리로 날마다 즐겁게 일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꿈속에서는 늘 가난하며 고달픈 꿈만 꾸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꿈들로 잠을 설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단잠은 주께서 주시는 선물인데 나이를 먹을수록 단잠 자는 날들이 적어집니다. 매일 즐겁게 일하다가도 잠을 설치는 밤이면 과연 내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몇 년이나 일하면 쉴만한 조건이나 결론이 날 것인가? 생각의 꼬리를 물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얻은 결론은 주께서 건강주시는 때까지 즐겁게, 열심히 일 하다가 병들지 않고 즉시 주님 품에 안기는 것이 가장 좋은 노후 대책이라고 생각하며 또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며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잠언 30장에 나오는 아굴의 기도를 매우 좋아합니다. 아마도 나이가 든 그리스도인들은 저와 같이 아굴의 기도를 좋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주님께 요청하기를,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요청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그것들을 내게 주시기를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옮기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시며 내게 알맞은 양식으로 나를 먹이소서. 9) 내가 배불러서 주를 부인하고 말하기를, {주}가 누구냐? 할까 염려하오며 또는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할까 염려하나이다.](잠 30:7-9)했습니다. 아마도 나이든 많은 사람들이 이 기도에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쇄약해지면 이 기도에 동감하며 더욱 간절해지리라 여겨집니다.
저는 그리하지 못했지만 사도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로 한 평생을 보냈습니다. 그에게 그 일이 아니라면 이 땅에 살 필요가 없다고 여긴 사람입니다. 그에게 복음 전하는 사명과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면 당장이라도 죽어 주님 품에 안기는 것을 원했습니다. [내가 말하노니 우리는 확신에 차있으며 오히려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고후 5:8) 이것이 곧 구원의 확실한 증표일 것입니다. 저는 주께서 계신 셋째 하늘, 낙원을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경험하고 기록해 놓은 것을 온전히 믿기 때문에 저도 그곳을 사모합니다.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안디옥과 이고니움에서 그들을 따라 올라온(행14:19)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대하는 어떤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붙잡혀 돌에 맞아 죽게 되어 그를 도시 밖으로 던져져서 잠시 동안 그의 혼이 셋째 하늘 즉 낙원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그가 그 아름답고 평화로운 낙원을 보았으나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웠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낙원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14년 후에 바울이 경험한 셋째 하늘 곧 낙원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제 3자로 비유하여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았는데 그 사람은 십사여 년 전에 셋째 하늘로 채여 올라갔느니라. (몸 안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고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러한 사람을 알았는데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채여 올라가 말할 수 없는 말들을 들었는데 사람이 그것들을 말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느니라.](고후 12:2-4).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낙원을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까? 경험도 좋지만 저는 당장이라도 그곳에 가고 싶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또 직접 경험한 사람의 간증을 듣고도 우리들이 장차 가게 될 낙원을 믿지 못한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육신 안에 사는 것이 고달프기 때문에 어서 속히 그곳에 가기를 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살아야 할 이유는 오직 복음 선포입니다. 사람들의 혼을 이겨오는 것입니다. 『이는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라.』(빌 1:21) ........ [이는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둘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라. 떠나는 것이 훨씬 더 좋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 안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해 더 필요하니라.](빌 1:23-24)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땅에 사는 것은 호의호식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혼이라도 더 주님께로 이겨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서 속히 그가 경험한 셋째 하늘, 즉 낙원에 가기를 소망했습니다.
저는 주님을 만나기 전에도 웬일인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었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듯이 저는 주님을 믿지 않을 때는 천국이나 지옥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고 구원 받은 지금은 이 세상이 아무리 좋고 또 좋은 일들이 나를 기다린다고 해도 저는 빨리 하나님 아버지 집에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며 아버지 집에 나를 위한 저택이 마련되어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렇게 믿기 때문에 어서 속히 그곳에 가는 것이 진실한 소망입니다. 물론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이겠지만, 이것이 저의 진심이며 거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실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은 주 안에 있기 때문에 이미 복을 받은 것입니다. ♥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내게 이르되, 기록하라.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매 성령께서 이르시되, 그러하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게 하려 함이니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뒤따르리라, 하시더라.](계 14:13) 이 땅에서의 육신의 삶은 수고로움일 뿐입니다. 욥기에 기록하기를, [........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느니라.](욥5:7)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죄인에게서 태어난 죄인들로써 죄를 지으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긍휼로 죄 씻음 받고 주 안에 있는 자들은 복 받은 자들이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더 이상 죄 값으로 수고로움을 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도 [{주}의 성도들의 죽음은 그분의 눈앞에서 귀중하도다.](시 116:15)했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모든 사람들은 이미 복을 보장 받았습니다.
저의 육신의 아버지께서는 어려운 시기에 고생도 많이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장수하셨습니다. 제가 19살 되던 해 여름 당시 75세로 돌아가셨으니 모두 호상이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환갑인 60세만 살아도 장수했다는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왠지 이유는 몰라도 아버지의 나이인 75세까지만 살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는데 지금 저는 그 나이를 넘었습니다. 저는 오늘 날의 기대수명이나 평균수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지금도 충분히 살았다고 여겨집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5장에 “복이 있나니”~~란 말씀으로 산에서 팔복을 선포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특별히 지지리 가난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 받으란 말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러므로 해가 바뀔 때마다 제일 먼저 하는 인사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입니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한동안 교회에서 제일 많이 한 설교의 주제도 “복 받으라.”였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들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50~60년 전만해도 일상생활 곳곳에 복이 차고도 넘쳤습니다. 당시 대문이 있는 집에는 그 대문에 한자로 복(福)자를 크게 써 붙여놓고, 방 안에 깔아 놓은 돗자리에도 복자를 새겼으며, 밥상에도 수저에도 복자가 있고, 한복의 동정이나 옷고름에도 복자가 있으며, 심지어 고무신에도 복자를 새겼습니다.
우리나라의 믿음의 선배님들이 가장 좋아하던 성경구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같이 찾아봅시다. [네가 도시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열매와 네 땅의 열매와 네 가축의 열매와 네 암소의 번식과 네 양 떼가 복을 받고 5) 네 바구니와 네 쌓아 둔 것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3-6)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런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 명령들은 전혀 지키지 않으면서 그저 복을 달라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께서 귀찮으실 정도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 그와 같은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 28:1-2)말씀입니다.
[네가 {주} 네 [하나님]의 음성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여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그분의 모든 명령들을 지키고 행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민족들 위로 너를 높이 세우시리라. 2) 네가 {주} 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오며 너를 따라잡으리니](신 28:1-2) 하셨습니다.
복을 그냥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이유 없이 복 주시지 않습니다.
1, 하나님의 음성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2,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키고 행해야합니다.
복을 받으려고 애쓰지 말고 복이 따라오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주님의 명령을 행함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내가 보건대 아브라함은 분명히 크고 강력한 민족이 되며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 안에서 복을 받으리니 19) 이는 내가 그를 알기 때문이라. 그가 자기 아이들과 자기 뒤에 있을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명령함으로써 그들이 {주}의 길을 지켜 정의와 판단의 공의를 행하게 하리니 이로써 {주}가 친히 아브라함에 관하여 말한 것을 그에게 이루리라, 하시고』(창 18:18-19)
믿음이야말로 모든 복의 보증수표입니다. 믿음이 충만 할 때 말씀에 순종하며 담대한 행함이 동반됩니다. 그러한 믿음보다 더 좋은 노후 대책은 없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단련을 받을 때에 이삭을 바쳤으니 약속들을 받은 그가 자기 독생자를 바쳤느니라. 18) 이 아들에 관하여는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19)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심지어 죽은 자들로부터 그를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죽은 자들로부터 또한 그를 모형으로 받았느니라.](히 11:17-19)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엔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모든 명령들을 지키고 행해야 하는데 듣는 데는 귀를 막고 그분의 명령들은 행하지 않으면서 복만 달라고 울부짖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그분의 명령들을 몸으로 행해야 하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복만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행하라는 말을 듣지 않는 성도들에게 어찌해야합니까? 주께서 다시 오실 때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근거로 보상을 줍니까? 주님은 그가 행한 대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행한 것이 있어야 복이든지, 보상이든지 받을 것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가리니 내가 줄 보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할 행위대로 주리라.](계22:12)하셨습니다.
신28장의 말씀은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들을 말씀하시며 육신의 복을 약속하시는 것으로 신약시대의 우리에게 직접주신 말씀은 아닙니다. 그런데 복을 좋아하는 성도들에게는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하신 말씀은 너무나 듣기 좋고 달콤한 말씀입니다.
이제 말씀되시는 주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복은 어떤 것들입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보통 사람의 모양을 하고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흠모할만한 아름다움도 없기에”(사53:2) 사람들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도 메시아로도 인정하기 싫어서 그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구원 받지 못함을 보시고 주께서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나로 인해 걸려 넘어지지 아니할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마 11:6) 하셨습니다.
주님 때문에 걸려 넘어진 자들이 누구입니까?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신 주님을 믿기는커녕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분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매 닮으로써 그들이 믿지 못함으로 넘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자신 때문에 걸려 넘어지지 아니할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믿고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들은 걸려 넘어지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야말로 복 받은 자들입니다.
또한 그 당시 배움도 없고 사람들이 천박하게 여기는 어부를 직업으로 살아가던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 복이 있다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보므로, 너희 귀는 들으므로 복이 있도다.』(마 13:16) 하셨습니다.
주께 부름 받은 제자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았던 베드로는 그분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함으로 예수님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살과 피가 그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하셨느니라.』(마 16:16-17)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시요, 즉 구원자이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임을 믿는 자들은 복 있는 자들입니다. 그분으로 하여금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구원 받고 기쁨이 충만 할 때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이 권하는 술 담배를 하지 않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인해 그들이 저를 미친 사람취급하며 미워하고 따돌릴 때 저는 이 말씀으로 인해 기쁨이 더욱 넘쳤었습니다.『사람의 [아들]로 인해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자기들 모임에서 너희를 따돌리며 너희를 모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한 것으로 여겨 내버릴 때에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눅 6:22) 하셨으므로 분명 저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제가 사랑하던 한 고향친구는 제가 그에게 복음을 전했다가 그가 화를 내며 나를 더 이상 자기의 친구로 여기지도 않았던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으로 아픕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걸려 넘어진 자로 복이 없는 자였고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 받았으므로 걸려 넘어지지 않은 자로서 복 받은 자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로 인해 걸려 넘어지지 아니할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눅 7:23)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혼 하고 두 아이를 낳은 뒤에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신학을 했는데 낮에는 보험 설계사로 거리를 헤매고 밤이면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엔 돈을 번다기보다 복음을 전하는 일로 동대문 평화시장을 일터로 삼고,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보장이 확실한 보험을 들라고 외치며 다녔습니다. 화재보험은 불행하게도 불이 났을 때를 대비하여 예비하지만 확실하거나 충분한 보장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 아버지집의 맨션은 100% 당첨되며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게 됨을 매일 외치며 살았습니다. 더러는 무슨 이야긴지 들어보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미친 사람이 할 일 없이 떠들고 다닌다고 불쌍하다며 혀를 차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천국과 지옥을 전하다보면 당신이 천국을 보았느냐? 지옥이 어디에 있느냐? 보여주면 믿겠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보여 주며 믿으라는 것같이 웃기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고후 5:7) 하였습니다.
동료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는 도마에게 주님께서 친히 찾아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도마야, 너는 나를 보았으므로 믿었으나 보지 않고도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요 20:29)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을 보지 못했지요? 저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요? 저도 믿습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들도 부활할 것을 믿지요? 저도 확실히 믿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멘?
혼의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보지 못했지만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믿습니다.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지금도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하지만 그분을 믿고 있으며, 말할 수 없고 영광이 가득한 기쁨으로 기뻐하나니 9) 이는 너희가 너희 믿음의 결말 곧 너희 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벧전 1:8-9)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우리가 전하는 것을 보여 주면 믿는다고 말하지만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고 그가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려보고 최고의 권세와 권력을 누리며 그의 지혜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살았던 솔로몬은 보는 눈의 만족과 듣는 귀의 만족은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수고로 가득하여 사람이 그것을 말할 수 없나니 눈은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귀는 듣는 것으로 채워지지 아니하느니라.』(전 1:8) 함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를 지으며 살아가지만 그 모든 죄들을 용서받은 사람들은 가장 복 받은 자들입니다. 주께서 보혈의 피를 흘려 우리 믿는 자들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더 이상 죄인으로 보지 않으시고 죄가 없다고 여김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가장 복 받은 자들입니다. 『[주]께서 죄가 없다고 여기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8)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각자의 죽음은 주님께 맡기시고 주께서 이리로 올라오라. 하시는 날까지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대언의 말씀들을 지킴으로서 주께서 주신 복을 잃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가리니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계 22:7) 오늘 말씀의 결론은 우리 모든 구원 받은 사람들의 노후 대책인 맨션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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