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원주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바라본 백운산 연릉
흰 구름이 늘 끼어 있다고 하여 백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주릉을 이루는 치악산과 함께 원주시를 감
싸듯이 안고 있는 백운산은 치악산의 명성에 눌려 아직도 깨끗하고 조용하게 남아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서곡
대사가 지금의 서곡리 후리사(厚里寺) 마을의 버스종점 부근에 후리사라는 사찰을 세웠는데, 대가람이었던 후
리사는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도 모르고, 현재 커다란 주춧돌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백운산 부근에는 천연기
념물 제206호인 백룡동굴(白龍洞窟)이 있다.
―― 김형수, 『韓國400山行記』(2002), ‘백운산’ 개관에서
▶ 산행일시 : 2022년 2월 27일(일), 맑음
▶ 산행인원 : 4명
▶ 산행시간 : 7시간 20분
▶ 산행거리 : 도상 14.6km(백운산중계소에서 용수골2교까지 임도 4.9km 포함)
▶ 갈 때 :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 타고 원주역으로 가서, 택시 타고 백운산자연휴양림 입구(서곡 전원
마을 입구)의 용수골2교로 감
▶ 올 때 : 용수골2교에서 택시 타고 원주시내로 와서 저녁 먹고, 택시 타고 원주역으로 와서 KTX 열차 타
고 청량리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50 - 청량리역, 원주 경유 부전 가는 무궁화호 열차 출발
08 : 00 - 원주역
08 : 27 - 백운산자연휴양림 입구(서곡 瑞谷 전원마을) 용수골2교, 산행시작
09 : 23 - 새로 개설한 임도
09 : 55 - 714.8m봉
10 : 14 - △791.3m봉
11 : 12 - 827.9m봉
11 : 45 ~ 12 : 30 - 오두봉(烏頭峰, △964.6m), 점심
12 : 49 - 942m봉
13 : 03 - 907m봉
13 : 34 - 1,019.6m봉
13 : 47 - 백운산(白雲山, △1,086.1m)
14 : 26 - 안부, 백운산중계소 입구
14 : 36 - 백운산중계소(950.5m봉) 동쪽 안부
14 : 52 - 다시 안부, 백운산중계소 입구
15 : 47 - 백운산자연휴양림 입구(서곡 전원마을 입구) 용수골2교, 산행종료
19 : 09 - 원주역, 청량리 가는 KTX 열차 출발
19 : 55 - 청량리역, 해산
2-1.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원주, 엄정 1/25,000)
2-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원주, 엄정 1/25,000)
▶ 오두봉(烏頭峰, △964.6m)
산행할 때면 그곳 지명의 유래를 알아보는 것도 즐겁다. 오늘 백운산의 들머리는 판부면 서곡리 후리절 마을을
지나 백운산자연휴양림 입구 약간 못 미친 서곡전원마을 동구다. 판부면(板富面)은 판제면(板梯面)과 부흥사면
(富興寺面)을 병합하면서 각각 그 머리글자를 취한 지명이고(판제면은 원래 단구동에 있었다고 하는 ‘너다리’의
뜻을 땄다고 한다), 서곡리(瑞谷里) 후리사(厚里寺, 지도에는 ‘후리절’이라 표시하고 있다)는 신라 진흥왕 때 서
곡대사가 후리사라는 절을 이곳에 세웠다고 한다.
우리는 용수골2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의 생사면에 붙는다. 첫발자국부터 덤불숲이 잔뜩 우거진 가파르고 긴 오
르막이다. 수적 쫓아 갈 지(之)자를 연속해서 그리며, 그래도 코 박고 오른다. 아침에 택시 기사님이 원주는 새
벽에 비가 약간 내렸다고 한다. 그 비가 산에서는 진눈깨비로 내렸고 고도를 좀 더 높이면 눈으로 내렸다. 언 눈
에 덮인 낙엽이 발밑에서 걸음마다 와작와작 부서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울창한 낙엽송 숲을 지난다. 능선에 인적은 가늠하기 어렵다. 물론 뭇 산행표지기 한 장 보이지 않는다. 설원의
눈길 또한 우리가 새로이 낸다. 낙엽송 숲 사이로 멀리 백운산이 아득하게 보인다. 저기를 올라야 한다니 그 넉
넉한 거리감에 마음이 뿌듯하다. 마치 담뱃갑에 담배가 두둑하면 뿌듯하듯이. 긴 오르막이 잠시 주춤한 714.8m
봉이다. 백운산자연휴양림의 위수지역이다. 방향표시판에 우리가 온 길은 ‘미개척 등산로’로 이탈시 조난의 위
험이 있다고 한다. 왼쪽 지능선은 백운산자연휴양림으로 간다.
설원의 눈길을 간다. 춘설이라 매운맛이 없이 오히려 포근하다. 춘설의 발자국은 금방 스러져 덧없기도 하다.
경술국치 때 “글 아는 사람 구실 어렵기만 하구나(難作人間識字人)”라는 절명시(絶命詩) 4수를 남기고 순절한
올곧은 선비의 표상인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이 춘설을 두고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의
「춘설(春雪)」이란 시다.
風定山暄正雪時 바람 자고 산 다습고 눈이 한창 오는 때라
紙窓虛白照人眉 문창이 희고 훤하여 사람 얼굴을 비추네
怪來滿壑寒光淺 괴이해라 골짝 가득 찬 기운은 약하거니와
任是翻空大片遲 공중의 큰 눈송이는 더디 내리거나 말거나
日斜簷角鳴相續 석양의 처마 모퉁이엔 새소리가 이어지고
春入花根濕不知 봄이 깃든 화초 뿌리는 젖은 줄을 모르겠네
何處冥鴻留爪去 어느 곳의 명홍이 발자국을 남기고 떠났나
江湖幽想謾添奇 강호의 한적한 생각만 기발함을 더하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10
명홍(冥鴻)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하늘 높이 나는 기러기를 말한 것으로, 흔히 은사(隱士)를 비유한
다. 설니홍조(雪泥鴻爪)는 고래로 유명한 글귀다. 기러기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긴다는 것은 곧 일이 지난 뒤에
남은 흔적을 비유하는데, 또 눈이 녹으면 바로 사라지듯이, 모든 사물이 그와 같이 덧없음을 비유하기도 한다.
소식(蘇軾)의 「민지에서 옛일을 생각하며 자유(아우)에게 답하다(和子由澠池懷舊)」란 시에서 온 말이다.
人生到處知何似 인생이 가는 곳마다 그 무엇과 같을꼬
應似飛鴻蹈雪泥 응당 눈 위에 발자국 남긴 기러기 같으리
泥上偶然留指爪 눈 진창에 우연히 발자국을 남겼지만
鴻飛那復計東西 기러기 날아가면 어찌 다시 동서를 알리오
3. 서원주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바라본 백운산 연릉
4. 서원주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바라본 백운산 연릉
백운산은 가만히 있는데 앞 경치는 파로나마로 변한다
5. 산행 초반에 낙엽송 숲을 지나면서 바라본 백운산
6. 새벽에 원주에는 비가 조금 내렸다는데 산에는 진눈깨비와 눈으로 내렸다
7. 수렴에 가린 산은 백운산
8. 설원이 이어진다
9-1. 오두봉 오르는 길에 뒤돌아보았다. 오두봉 마지막 피치. 설벽이다.
봉봉 길게 오르고 짧게 내리기를 반복하며 점차 고도를 높인다. 왼쪽 골 건너 너른 품의 백운산은 가도 가도 수
렴에 가렸다. 등로 벗어나 사면을 내리고 혹은 바위에 올라도 수렴은 조금도 틈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 산행 내
내 시원스런 조망이 트이지 않았다. 전후좌우로 설산의 장대한 모습이 감질나게 보일뿐이다. 저 앞은 또 어떨
까? 하고 애써 서둘러 가보면 그뿐, 몇 번 그러다보니 가쁜 숨만 할딱거리고 제풀에 지치고 만다.
827.9m봉 올랐다가 잠깐 내리면 오두봉 마지막 피치가 이어진다. 긴 설벽이다. 납작 엎드려 긴다. 더러 군데군
데 묵은 눈에 신설이 쌓여 푹푹 빠지기도 한다. 오두봉. 헬기장일 듯 한데 잡목과 덤불숲이 우거졌다. 최근에 여
기를 온 때가 8년 전이다. 그 세월(?)에 주변의 나무들은 조망이 무망일 만큼 부쩍 자랐다. 휴식할 겸 점심밥 먹
는다.
▶ 백운산(白雲山, △1,086.1m)
이제 백운산까지는 고도 900m 이상을 유지하는 고원이다. 설원을 간다. 묵은 눈에 춘설을 더하여 깊다. 아무도
오가지 않은 눈길이다. 나는 조망을 찾으려고 백운산까지 도상 2.9km(이정표 거리 3.6km)를 들입다 줄달음한
다. 오두봉을 길게 내리다가 주춤한 942m봉은 왼쪽 사면으로 돌아 넘고, 이후 봉봉은 직등한다. 그래도 촘촘한
수렴이라 막막하다. 백운산 남릉의 장쾌한 설경을 가까스로 육안에만 담는다.
1,019.6m봉을 내린 안부는 백운산 산행교통의 요충지다. 백운산 등산안내도와 이정표는 백운산자연휴양림에
서 이 안부로 오를 거나 내릴 것을 안내한다. 아울러 등산로를 잘 다듬었다. 가파른 오르막은 목제계단 놓고 핸
드레일을 달았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자연 님과 하운 님은 이 안부에서 휴양림 쪽으로 탈출한다. 백운산까
지 0.2km를 그 두 배로 간다. 사면을 대자 갈지자 그리며 오르기 때문이다. 이때는 이는 바람이 땀 식히는 큰
부조한다.
백운산. 사방에 키 큰 나무숲 두른 공터다. 삼각점은 ‘엄정 308, 1989 재설’이다. 여기도 조망은 무망이다. 원주
시와 제천시의 경계라 서로의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듯 각각의 정상 표지석이 놓여 있다. 백운산중계소를 향한
다. 백운산 동쪽 사면은 눈이 무릎까지 차도록 깊다. 몇몇 사람들이 오갔다. 한 피치 내리면 지정등산로는 왼쪽
사면을 안내하나 우리는 금줄을 얼른 넘어 곧장 간다. 흑림인 잣나무 숲 지나고 철조망 비켜 오른쪽 비탈길로
돌아내리면 임도가 지나는 너른 공터다.
중계소는 주변에 높은 가시철조망을 둘러 엄중히 경계한다. 프로기사 이세돌 9단이 그랬다. “수가 보이는데 두
지 않을 수 있느냐?”고. 이세돌이 다 이긴 바둑인데 괜히 위험한 수로 집적거리다가 자칫 판세를 그르칠까봐 조
마조마해 하는 관전자들에게 한 말이다. 중계소를 지나려는 우리가 그러하다. 길이 보이는데 가지 않을 수 없
다. 더욱이 저기를 오르면 모처럼 조망이 트일 것도 같다.
9-2. 8년 전에도 오두봉에 올랐다(2014년 8월 20일). 그리운 얼굴들이다.
9-3. 8년 전인 2014.9.14. 오두봉을 또 올랐을 때의 조망
10. 십자봉
11. 오두봉
12. 앞 왼쪽은 삼봉산
13. 백운산 동쪽 능선 내리막, 눈이 깊다.
14. 가운데가 벼락바위봉
가시철조망 허술한 틈을 비집고 골짜기로 약간 내렸다가 잡목 숲 헤쳐 철조망 울타리 가까이 다가간다. 풀숲의
흐릿한 인적은 백운지맥 벼락바위봉을 오가는 그것이다. 중계소 950.5m봉을 벗어나기 전에 사계 청소한 구역
에서 구학산과 천등산을 반갑게 얻는다. 우리의 당초 목표는 중계소 950.5m봉의 북릉을 가는 것이었다. 오전에
오른 오두봉 북릉 못지않은 장릉이다. 그 끄트머리에는 작은 백운산(△535.5m)도 있다.
그런데 당장 중계소 950.5m봉을 빙 돌아 그 북릉에 이르는 게 난관이다. 게을러졌다. 가지 않을 여러 이유를 만
든다. 철조망 아래 설사면이 숫제 설벽이고 잡목이 우거졌다. 선답의 인적은 아무리 살펴도 보이지 않는다. 어
찌어찌하여 북릉에 들어섰다 하여도 오전처럼 하늘 가린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숲속길만 이어질 것 같다. 거기에
는 조망이 무척 좋더라는, 혹은 덕순이가 잘 살더라는 꾼들의 보고도 찾지 못했다.
메아리 님과 만장일치로 합의하여 뒤돌아선다. 은근히 짓눌렸던 마음고생 던다. 시원섭섭하다. 백운대중계소에
서 용수골2교까지 이정표 거리 5.8km(도상으로는 4.9km이다)를 대로인 임도로 내린다. 임도가 그리 따분하지
만은 않다. 북쪽 응달진 곳이라 눈길이거나 빙판이다. 먼 산(용문산과 백운봉) 바라보다 넉장거리하기 알맞다.
또한 대로 바로 옆의 빙폭과 빙하를 구경하는 것도 파적하기에 좋다.
중계소 입구에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용수골2교다. 백운산 직전 안부에서 휴양림 쪽으로 탈출한 자연 님과
하운 님은 우리보다 1시간 가까이 늦게 도착한다. 거기는 이정표 6km가 조금 넘는다. 우리가 중계소 950.5m봉
북릉을 타고 내릴 것을 예상하여 일부러 느린 걸음을 했다고 한다. 택시 부른다. 후리절 근처에 버스종점이 있
는데 버스가 언제 올지 모른다. 원주역 주변에는 음식점이 없으니 원주시내 신도시로 간다.
작년 가을에 개척했던 맛집을 찾아갔는데 일요일이라 휴업이다. 동네 사람에게 다른 맛집을 물어 근처의 오겹
살 집을 간다. 젊은이들이 애용하는 퓨전 음식점이다. 된장찌개와 공기밥이 별도다. 계란후라이 공기밥이 1,500
원이다. 처음에는 계란후라이와 공기밥이 각각 1,500원인 줄 알고 하운 님이 비싸다고 항의하려는 것을 극구
말렸다. 거의 20년 전인 오케이사다리 시절에 웅석봉을 갔다가 산청에서 저녁하면서 추가의 공기밥이 2,000원
이라 하기에 우리의 썩어도준치 회장님이 대노하여 항의한 적이 있음을 예로 들면서.
그런데 계란후라이 얹은 공기밥으로 1,500원이다. 비싸다고 하기 어렵다. 도리어 깻잎, 마늘 등 이것저것 더 갖
다 달라 자꾸 주문하니 되게 귀찮았으리라. 저녁 마치고 해찰 부려 원주역에 도착하니 예약한 무궁화호 열차는
1시간 후에 온다. 그전에 KTX 열차가 있다. 이걸 타면 청량리역에 도착할 즈음에 무궁화호 열차가 원주에서 출
발할 시각이다. 열차 변경한다. 그리고 KTX 열차 차고 얼근한 반주 술기운에 잠깐 졸았는가 싶었는데 청량리역
이다.
15. 멀리 왼쪽은 천등산
16. 구학산과 주론산(오른쪽 뒤)
17. 왼쪽 멀리는 지등산(?), 오른쪽은 천등산
18. 왼쪽이 벼락바위봉
19. 멀리 가운데 백운봉이 환영처럼 보인다
20. 멀리 백운봉과 용문산, 문례봉이 흐릿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