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8: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임마누엘 (<영> Immanuel; <히>'임마누엘' ; <헬>'엠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
선지자 이사야가 예고한 태어날 아이의 상징적인 이름으로, 주께서 유다를 그 원수로부터 구원하실 것을 아하스 왕에게 보인 징조가 되었다(사7:14;8: 8;참조. 10절).
신약은 이 이름을 예수님의 이름과 동일시한다(마 1 : 23, '임마누엘' ).
임마누엘에 대한 예언은 B.C. 735년경 아하스 통치시 위기에 처해 있던 때에 임했다. 수리아의 르신과 이스라엘의 베가는 유다를 위협하였는데, 그들은 아하스 왕에게 앗수르에 대항하는 동맹을 맺자고 하였다. 그러나 아하스는 앗수르에 대항하지 않았다(참조. 왕하 16 :5-9 ;대하 28: 16-21).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르신과 베가의 무력한 군사력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앗수르와 제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확약했다.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이를 보장받을 징조를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으나 아하스는 그의 불신앙을 감추기 위해 경건한 체하고서 이를 거절했다. 그런 다음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아하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한 징조를 보여 주실 것이라고 알렸다. 그 징조는 한 아이의 출생이었다. 이 아이가 어릴 때(사 7 : 16) 북쪽의 두 동맹국은 멸망하게 될 것이다.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3세는 B.C.732년에 다메섹을(왕하 16 : 9), B.C.722년에 사마리아를 멸망시킴으로써 동맹군의 위협으로부터 유다를 구출해 주었으나 그 대신 유다를 속국으로 삼았다. 아이 임마누엘과 그 어머니의 정체가 누구냐 하는 문제는 성경 학자들 사이에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일부 학자들은 이사야의 문맥에 나타난 해석학적 난점을 들고, 다른 학자들은 역사적 증거를 확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논쟁을 벌여 왔다. 해석학적 난점이란 히브리어 본문을 나타난 여러 가지 애매성과 관련한 것들이다. (1) 대부분의 학자들은 현재 히. '알마'(KJV, NIV는 70인역을 따라 'virgin'으로, RSV, NJV는 MT를 'young woman '으로 JB는 ' maiden '으로 번역한다)가 결혼 적령기의 젊은 여인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처녀(virgin)에 해당하는 일반 단어로서 가끔 인용된 히.'베툴라'가 종종 결혼한 여인을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에(욜 1 : 8) 그 의미가 애매한 것으로 보여졌다. 그러므로 '처녀'(virgin)라는 말이 의도된 의미라면 여기서는 적절치가 않다. 그러므로 처녀성의 가청은 불명확해지나 엄격히 말해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알마'에 사용된 관사는 한정적이거나('어떤 젊은 여인'), 비한정적이거나( '어떤 젊은 여인'), 총칭적일('젊은 여인들')수 있다. 만약 그 징조가 아하스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다면 그것은 특별한 관련이 있음이 분명하다. (2) '잉태하리라'(shall Conceive)고 번역된 동사 '하라'는 ”임신하다"(참소. RSV 난외주, JB. NJV')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보수주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미래 시제를 문맥에 더 적절한 것으로 생각한다. (3) 사본상의 문제로 히브리어가 "그녀가.... 라 칭할 것이다",”네[단수]가 .... 라 칭할 것이다” 또는"그가 .... 라 칭함 받을 것이다"(수동)로 번역될 수 있다. 다수 학자들은 마쏘라 사본을 따라 첫 번째 것을 취한다. (4) '징조'는 약속, 위협 또는 양자 모두로 간주될 수도 있다. 여기서 이 해석은사7:14과 소위 '임마누엘의 책'(book of Immanuel, 7 : 1-12 :6)이라는 더 넓은 문맥 사이의 관계에 의존한다. 그 중요성은 신약이 14절을 사용하는 데서 나타났다. 동맹군을 전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아하스에게 분명히 말한 이사야의 원래 의도는 그 징조가 처음에는 구원의 약속이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후속 구절들에는 약속과 위협이라는 두 요소가 들어 있으며(특히 7: 15-8 : 15), 그 요소는 많은 예언적 선언의 특징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행동과 그의 뜻을 이루는 도구는 불의한자에게 위협이 되고 의로운 자에게 약속이 된다. 신약이 임마누엘을 예수님과 동일시하는 것은 사 11 : 1이하의 메시야 장(章)과 관련되어 있고 징조의 궁극적 본질이 약속이라는 뜻임을 보여준다. 그런 고찰은 임마누엘과 그의 어머니가 누구냐 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이 난제에 대한 해결은 다음의 기본적인 네 가지 해결 중 어느 하나에 귀착된다.
1. 집합적 직접적 언급- 이 해결은 19.20세기 비평 학자들의 특징으로써 '알마'에 붙은 관사를 총칭으로 해석함으로써 '임마누엘'이란 구원이 태어날 새 세대의 어린 시절에 일어날 가능성에 대한 일반적 지시라고 제시한다. 이 접근은 신약의 증거를 무시하고, 그 예언을 다른 관련 구절들의 메시야적 내용과 분리시키며, 특별한 성취에 대한 필요를 인식하지 못한다.
2. 단수의 직접적 언급- 두 인물은 자주예언의 직접적 성취로 제시되어 왔다. 이사야의 아들 또는 아하스의 아들로 제시되어 왔다. 첫째 가정에서 임마누엘은 이사야의 둘째 아들 마첼살랄하스바스와 동일시되며,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징조에서 약속의 측면과 관련되는 한편 마헬살랄하스바스 (“노략이 급하다. 포획이 빠르다")라는 이름은 위협의 측면을 뜻한다. 이 경우에서 임마누엘의 어머니는 이사야의 첫 번째 아내, 스얄야숩의 어머니였을 가능성은 없지만, 이사야가 예언할 당시 결혼하려고 했던 가정된 두번째 아내(사8: 3에서 '여선지'[한글 개역 성경'아내']로 불리움)였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녀는 처녀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입장에 대한 지지는 신약이 이사o더 자녀에 대한 표상적 사용에서 발견된다(히 2: 13,참조. 8 :18).
다른 학자들은 젊은 여인을 아하스의 아내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아들은 히스기야일 가능성 이 가장 높다. 이 해석은 다윗 왕가의 메시야적 성격을 지닌 광범한 문맥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이 견해도 반대 이론처림 약속과 위협이라는 징조의 이중 성격의 의미를 띠게 된다. 그러나 이 이론은 연대기와 관련하여 심각한 난점에 부딪치게 된다. 왕하 16 : 2;18 : 2에 의하면 예언이 임하던 때 히스기야의 나이는 이미 9세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해결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은 열왕기하의 연대기의 신빙성을 문제 삼게 된다.
3. 단수 미래적 언급- 이 가능성은 신약이 젊은 여인을 동정녀 마리아와 동일시하고 임마누엘을 예수님과 동일시하는 것에 기초한다(마1 : 22-23). 일부학자들은 히. '알마'가 초자연적 출생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징조의 주체가 비도덕적 미혼 여성의 아이였을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해결은 구약 예언에 대한 신약 해석의 권위를 진지하게 취하기는 하지만, 아하스에게 한 히스기야의 말이 왕에게 주는 인식할만한 그 시대적 의미를 지녔을 텐데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4. 이중적(표상적) 언급- 아하스 당시의 상황과 사 7 :14에 대한 마태의 해석, 이 양자를 진지하게 존중하는 견해는 이중 성취를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임마누엘과 그 어머니가 표상적으로 살펴진다. 즉 젊은 여인이 가까이는 아하스나 또는 이사야의 아내가 되며 멀리는 동정녀 마리아가 된다. 임마누엘이 가까이는 히스기야나 또는 마헬살랄하스바스가 되고 멀리는 예수님이 된다. 당시 임마누엘의 정체를 설명해 주는 역사적인 다른 증거가 부족하다 할지라도 그런 동일시에 대한 필요를 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증거의 결핍, 임마누엘의 직접적인 정체에 대한 어떤 해결은 임시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 해결은 임마누엘 예언의 메시야적 다윗적 문맥을 충분히 정당하게 다룬다. 이리하여 예수님의 출생은 임마누엘의 의미에 대한 궁극적 성취-"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 곧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대하시는 언약 역사에 늘 나타난 이 주제의 절정-로 간주되고, 죄와 사망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시는 징조로 간주된다.
출처: 『아가페 성경사전』(1991년), pp.1451-1453.
첫댓글 좋은 내용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독생자 예수를 의지하게 하는 좋은 성구와 설명입니다.
아멘!
임마누엘(Immanuel)
뜻 :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
이사야가 수리아 에브라임 연합군에 놀란 아하스에게 임마누엘이 나실 것을 예언. 하나 님이 그 백성과 같이 계실 것을 선언했으나 아하스는 믿지 않았다 (사 7:1-25). 그리고 그 아 들 이름은 임마누엘이라고 붙였다(사 7:14, 9:8).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예수를 임마누엘의 실현이라고 신약은 증거했다 (마 1:23).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KCM사전>
설명이 간단명료해서 좋습니다^^
사8:8
<호크마 주석>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목에까지 미치리라 - 앗수르에 의한 유다의 약탈은 목에까지 물이 차는 정도의 극심한 홍수 상태로 비유되었다. 선지자의 예언처럼, 디글랏 빌레셀의 대군은 몇 년 안 되어 유다의 넓은 지역을 파괴하고 예물뿐 아니라 공물까지 바칠 것을 요구하였다(대하 28:20,21). 그러나 더 큰 피해는 그 후대의 왕, 특히 산헤립(B.C. 705-681) 때에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이여 -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말이 문장 맨 뒤에 놓여 있다. 선지자의 눈은 다시 임마누엘이라 불리는 한 아이에게 향한다. 이는 범람하는 물결이 거의 목에 차고 새의 편 날개가 온 땅을 덮는 것처럼, 유다 전역이 물에 잠긴 듯한 위급한 상황 속에서 유일한 구원의 희망이란 오직 그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이 소망스러운 이름을 기점으로 하여 선지자의 어조와 전망은 일변한다. 비록 가까운 장래에 적들로부터 주어질 재난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승리와 구원은 이 땅 위에 임할 것이다.
아멘!
아멘22
마1:23
<호크마 주석>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이사야 예언의(사 7:14)의 70인역(LXX)에 따른 인용이다. 이 예언은 북이스라엘과 아랍의 동맹군이 침략해 올 때를 배경으로 한다. 이때 여호와를 떠나 이방 앗수르에게 도움을 구하는 유다 왕 아하스에게 선지자 이사야가 책망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에게 ‘징조’를 주실 것이라 예언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여기 23절과 사 7:14을 어떻게 관련지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이에 대한 수많은 견해들 중 타당성있게 생각되어지는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1) 젊은 여인이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에 대한 찬양으로서 자기 아들을 임마누엘이라고 이름지었다(Unnik, Hill, Taylor). (2) 이사야의 예언 당시 처녀였던 한 젊은 여인이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아이가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아이가 되기 전에 아하스가 그의 원수들로부터 해방될 것을 말한다(Broadus, La Sor). (3)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다(Alexander, Hengstenberg, Young). (4) 임마누엘은 유다에 남아 있던 의(義)로운 자들로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들을 암시하는 것이고,
임마누엘을 낳은 젊은 여인은 시온이다(Rice). 이상 네 가지 견해보다 가장 합당한 것은 (5) 사 7:1-9:7은 한 단위이며, 7:14은 그 가운데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임마누엘의 탄생은 ‘미래에의 확증’이라는 해석이다(Motyer). 즉 예언된 임마누엘(7:14)은 결국 유다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이며(8:8), 그의 모든 원수들의 계획을 좌절시키며(8:10),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빛이 되시기 위해(9:2) 이방의 갈릴리(9:1)에 나타나실 것이다. 이 임마누엘은 한 아기요 한 아들이며, 그 이름은”기묘자(奇妙者)요, 모사(謀事)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9:6)으로서 다윗의 위(位)에 앉아 나라를 굳게 세우고 영원토륵 공평(impartiality)과 정의(justice)로 왕국을 보존하실 것이다(9:7).
처녀. 사 7:14에서 이미 예언된 본 구절은 ‘처녀 논쟁’(알마 논쟁)로 유명하다. 그 까닭은 히브리어 원문에는 ‘처녀’를 ‘알마’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는 성(性) 경험이 전혀 없는 ‘처녀’(virgin)라는 고유한 어휘 ‘베툴라’과는 의미상 차이가 나는 결혼의 유무(有無)와 관계없이
‘젊은 여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70인역(LXX)이 히브리어 ‘알마’를 단순히 ‘젊은 여자’를 뜻하는 ‘네아스’으로 번역하지 않고 처녀를 뜻하는 ‘파르데노스’으로 번역하였는데 그 문제점이 있다. 물론 처녀성(處女性)을 잃고난 디나를 창 34:4에서 단 한번 ‘파르테노스’로 번역하기는 했으나 ‘파르테노스’는 확정적으로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는 처녀(virgin)를 뜻하는 용어이다. 그렇다면 히브리어로 ‘알마’로 표기된 사 7:14의 내용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여기에는 ‘처녀’로 단정지을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1) ‘알마’는 일반적으로 ‘젊은 여자’를 뜻하지만, 구약 성경에 기술된 용례를 자세히 살펴보면 (창 24:43, 출 2:8, 시 68:25, 잠 30:19, 아 1:3, 6:8) 관용적으로 ‘처녀’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2)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메시아의 예언과 결부하여 사용된 용어는 ‘처녀’를 지칭하는 것이지 처녀성의 지속적 유지에 대해 논의한 단어가 아니다. (3) ‘알마’와 동일 어근인 남성 명사 ‘에렘’은 결혼전의 풋나기 소년을 일컫는 말이다(삼상 17:56, 20:22).
(4) 고대 비문에 새겨진 ‘알마’와 동근어(同根語) 고대 우가릿(Ugarit)어 ‘glmnt’가 오직 결혼 전 여자에게만 사용되었다. 결국 ‘감추다’, ‘숨기다’는 뜻의 ‘알람’에서 유래한 ‘알마’는 처녀성의 계속적 유지에 관심을 둔 용어인 ‘베툴라’ 와는 달리 남자와는 격리되어 순결히 자라온 처녀, 곧 동정녀임을 확증지을 수 있다. 또한 마태복음의 문맥의 전후 관계를 살펴 볼 때에 ‘처녀’는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눅 1:34)라고 한 것처럼 ‘동정녀’를 의미한다.
임마누엘. 이 단어는 ‘예수’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기보다 성부 하나님에 대한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그분의 위격(位格)과 그분의 사역의 한 단면을 암시한 용어이다(사 7:14). 한편 ‘임마누엘’은 ‘함께’(with)라는 뜻의 히브리어 ‘임’과, ‘우리와’(us)라는 뜻의 ‘마누’, ‘하나님’(God)이란 뜻의 ‘엘’이 결합된 형태로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메시아와 예수가 되실 뿐 아니라 그분이 곧 죄악으로 인해 절망가운데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이땅에 내림(來臨)하신 하나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God with us) 분이심을 강조한 호칭이다.
실로 죄로 인해 원수되었던 하나님과 인간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어 주실(요일 4:10) 중보자(中保者)이신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다가(요 1:14)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는(마 28:20) 영원한 하나님 그자체이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죄사함을 받고 그분의 실존(existence)을 날마다 인정하는 백성들은(21절) 모두가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풍성하고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임마누엘에 대한 예언이 이사야서와 마태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이중 성취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네요. 궁극적인 것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고요.
아가페 성경사전도 꽤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서 좋네요. 번역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긴 했지만요.
위 댓글의 호크마나 컴퓨터선교회의 내용도 간결해서 좋습니다.
네, 매우 공감합니다.
신앙의 기본 용어를 상세하고 체계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포스팅을 올려 주셔서 유익하고 감사합니다^^
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