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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바 기도회 때 잠깐 나눴던 예화입니다. 어떤 설문조사 제가 보기에는 보편적인 설문조사는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설문조사에서 교회를 등록한 이유를 이렇게 설문을 했어요. 보통 일반적인 거는 목회자의 설교, 교회 분위기 등등 이렇게 해서 교회를 선택합니다. 근데 이 설문조사는 목사님이 설교 중에 어떤 분이 이렇게 하신 이야기라서 저는 그대로 옮깁니다. 이게 정확한 객관성이 있는지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설교 중에 들은 이야기라 편하게 옮겨보겠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등록하는 이유가 옆 사람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를 왔다가 옆사람이 어떻게 예배하는지를 보고 그 교회를 등록한다는 거예요. 저는 되게 자위했어요. 왜냐하면 대부분은 목사님 목회자 설교 때문에 등록한다 이런 분이 많으니까 이제 좀 자위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대화도 나누고 한 번 웃은 적이 있었는데 어쨌든 오늘 여러분의 예배가 함께 참석한 몇 분이 오늘 방문자가 계셔요. 참석한 분들이 우리 교회 다니고 싶어할 만한 그런 예배의 모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예배 잘 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예수 그리스도의 첫 만남이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오보였어요. 갈릴리 바다라는 정말 큰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그리고 갈릴리 호스의 전문가였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어느 날 빈 베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여러분 제가 낚시를 좋아합니다. 근데 낚시를 간다고 그 길을 다 잡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허탕치는 날이 더 많아요. 어부들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저는 어부들이 나가면 고기를 다 잡은 줄 알았어요. 아무도 섬 선교도 자주 가고 또 낚시터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이렇게 대화를 많이 나누잖아요. 어부들도 허탕치는 일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빈 배로 돌아오는 날이 의외죠. 전문가이고 거기에서 태어나고 그 바다를 잘 앎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요즘은 엄청나게 많은 기기들이 있어서 바다를 샅샅이 다 뒤져요. 그래도 고기를 못 잡고 돌아오는 날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비전문가가 고기를 못 잡아서 허탕을 칠 때도 허탈하겠지만 그러면 전문가들이 고기를 못 잡았을 때 어떨까요? 똑같이 허탈해요. 고기를 잡지 못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다 허탈한 일인 겁니다.
베드로도 그런 상태인 거죠. 아무리 전문가이고 오랫동안 고기를 잡았어도 자기가 거기를 못 잡았기 때문에 이 허탈감과 상실감이 막 밀려오는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다가오셨어요. 베드로는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고기를 잡지 못한 채 빈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그물이 아마라는 아마라는 식물로 이렇게 만들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고기를 잡고 난 후에 빨리 씻어서 말리지 않으면 썩어요. 못 쓰는 그물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 당시는 무조건 고기를 잡고 나면 그물을 씻어서 잘 말려야 다음이라 그다음 출항 때 이 그물을 가지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빈 그물도 빈 그물로 돌아오는 것도 힘든 것이지만 그런 상태에서 빈 그물을 씻는 것이 일상이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은 힘들었을 것입니다. 고기를 많이 잡고 난 후에 그물을 씻는 것과 고기 잡는 일을 실패하고 허탕을 친 후에 그물을 씻는 것은 다른 마음인 거죠.
그러니까 이때 허탕을 치고 공허하고 상실감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은 게네사의 토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주로 갈릴리 바다라고 하기도 하고 디베랴 바다라고 하기도 하고 깃네렛 모시라고도 합니다.
여러분 수금이 수금이 히브리어로 키노르라는 단어예요. 그러니까 이 갈릴리 호스가 수금처럼 생겨서 이 키노르에서 긴데렛이라는 이 단어가 나왔던 거죠. 우리 말로 하면 수금처럼 생긴 호수가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만났다는 것은 베드로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과 베드로가 만났다는 거죠. 특별한 장소가 아니에요. 삶에서 만났다는 거예요.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장소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겨요. 근데 오늘 본문을 가만히 보면 예수님을 만난 자리는 특별한 자리가 아니라 그냥 일상이었어요. 일상에서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베드로가 실패한 자리 그의 그물에 고기 한 마리도 없는 시간에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다가오셔서 그물을 배에 대라고 배를 대라고 하고 그 위에 올라가셔서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이상해요? 공허함과 허탈감은 가득 차 있어요. 이제 빨리 그물을 정리하고 그물을 말려야 할 그 타임에 예수님이 오셔서 배를 한 곳에 대라고 하고 그 배 위에 올라서 말씀을 가르친 거예요.
여러분 이 낯선 장면을 수용하기가 되게 어려워요. 신앙은 어떻게 보면 이 낯선 장면들을 수용해야 영적인 변화와 성숙이 일어나더라고요. 신앙생활의 곳곳에 이런 낯선 접근이 있어요. 근데 그 낯선 접근에 주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하나님의 일하심이 함께하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사람들은 이 낯선 접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근데 베드로는 이 낯선 접근과 이상한 명령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다 수용을 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다 마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또 다른 명령을 내려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놀랍게도 베드로는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고 하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순종한 베드로의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차서 특별히 두 배에 가득 차도록 고기가 잡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상한 명령을 내렸어요. 열심히 그물을 식은 베드로에게 배를 대라고 하고 그곳에 올라가서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또 다 전하신 이후에 이제는 깊은 곳으로 가서 낮에는 물고기가 좀 이렇게 밖으로 이렇게 나오죠. 기본적으로 밤에는 좀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그런데 일반적인 상식이 전혀 통용되지 않는 어떤 명령을 내려요.
그런데 베드로는 그 명령을 다 수용했습니다. 만약에 베드로의 그물에 물고기가 가득 찼다면 베드로의 귀에 예수님의 명령이 들렸을까요? 당연히 안 들렸죠. 베드로의 그물에 고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명령이 들렸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본 베드로는 즉시 예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으로서이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니가 이후로는 사람을 취하는 어부가 되리라라고 말씀하셨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십니다.
근데 베드로는 이 명령에도 순종해서 배를 다 버리고 부모와 자식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요. 이게 베드로와 예수님 간의 첫 만남이에요. 보통 이 정도의 어떤 결과가 나오려면 많은 만남이 거듭돼야 돼요. 이건 있더라고요. 진짜 하나님이 계획하신 만남은 첫 번째로 어떤 역사가 일어나요? 근데 그냥 우리가 준비한 만남들은 첫 번째 어떤 역사가 아니라 두 번 세 번 여러 번 만나야 될까 말까 해요.
근데 하나님이 일하셔서 만나게 하신 이 만남은 첫 만남에도 역사가 바로 일어나더라고요. 그러니까 베드로와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만남이라는 거죠. 첫 만남에 기적이 일어났어요. 첫 만남에 자기의 실존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자기가 죄인인 걸 알게 됐습니다. 첫 만남에서 비전을 받았어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첫 만남에서 베드로가 듣게 된 거예요. 이 모든 일이 베드로의 삶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현재 베드로가 빈 그물이었기 때문인 거예요.
만약에 베드로가 빈 그물이 아니고 고기가 가득 차 있었다면 예수님의 명령이 귀에 들렸을까요? 자기의 실존이 보였을까요?
여러분 우리는 잃고 나야 공모해져야 상실하고 나서야 자기 실존이 보여요. 두 손에 뭔가 지어진 것이 가득하면 내 삶의 창고에 뭔가 가득하면 자기의 본모습이 안 보여요. 목사인 저도 수없이 실패하고 나니까 제가 보여요.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얼마나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지 잠시라도 하나님이 나를 살피지 않으면 나는 살 수 없는 사람인 것을 실패 후에 보게 되는 거예요.
베드로 똑같았어요. 만약에 베드로가 고기 잡는 일에 성공을 했다면, 그래서 배에 고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면 예수님의 그 어떤 명령도 베드로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을 거예요. 빈 그물이었기 때문에 배도 비었고 그물도 비었고, 그의 마음도 비었고, 그의 영혼도 비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소리가 그 귀에 들릴 수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음성이 베드로의 귀에 들렸던 것입니다.
기적은 비어 있어야 만들어집니다. 텅 비어 있어야 자신의 실체를 보게 되고요. 비어 있어야 비전도 받게 되더라고요. 자기 계획과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결코 자기의 실존을 볼 수 없어요.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죄인의 삶을 살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쓸모없는 사람인지 깨닫는 순간은 비어야 경험되어지는 순간인 거예요. 아파서 꼼짝 못하도록 들어누워 봐야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요.
좀 오래된 시간이지만 제가 허리 수술을 두 번 정도 했잖아요. 첫 번째 수술하고 기분이 너무 좋아서 마음껏 막 돌아다녔어요. 그랬더니 또다시 수술한 부위가 터졌어요. 두 번째 이제 터지고 나니까 집에 이렇게 누워 있게 되더라고요. 조심하게 되니까 이제 세 번 수술은 심각해지는 거잖아요. 아무리 허리라도 그래서 가만히 누워 있어요.
신기하게 아무것도 못하던 채 이렇게 누워 있으니까 안 들리든 하나님의 음성들이 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깨달아지는 것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심지어 어떨 때는 이상한 전혀 올 사람들이 아닌데 오게 하셔서 저를 눕혀놓고 막 하나님이 하고 싶은 말을 그분 입을 통해서 막 다 쏟아붓는 거예요. 저에게 심지어 어떤 가정은 와서 저에게 축복성을 불러줬어요. 그 축복성이 아직도 제 귀에 맴돌아요. 여러분 저는 수없이 축복성을 받아본 사람이잖아요.
근데 이전의 축복성은 기억나지가 않아요. 내가 누워서 텅 비어 있을 때 나를 향해 두 손을 두고 불러준 그 축복성은 여전히 내 귀에 알은 그대로 이렇게 남아 있어요. 지금도 울림이 있어요. 생각만 하면 내 마음에 울림이 있다고요.
제가 만약에 비지 않았다면 공허하지 않았다면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
나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요?
누워 보니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제가 목회를 좀 더 진솔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열심히 있고 진솔은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보면 열심히 일하는 성도가 있잖아요. 그 열심히 진솔은 아니에요. 다른 거예요 그런데 제가 텅 비어 보니까 진술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이 나를 향해 하시는 말씀들이 깨달아지고 느껴지고 보여지게 됐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첫 만남은 베드로의 그물이 비었을 때 이루어졌어요. 베드로의 배에 고기가 가득 잡혔을 때 예수 그리스와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만약에 베드로의 고기에 배에 고기가 가득 잡혔다면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왔을 때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다가옴을 또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물질이든 무엇이든 간에 가득 차 있으면 사람들은 타인도 보지 못하고 하나님도 보지 못해요. 그러니까 가득 차 있으니까 받아들일 여유가 전혀 없는 거예요.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실 때도 예수님과 우리와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는 우리가 비어 있을 때입니다.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때도 우리가 비어 있을 때예요. 우리가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안에 뭔가가 가득 차 있어서 예수님께 시간과 자리를 내어드리지 못했기 때문인 겁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이 만났어요. 그때 베드로는 배도 비어 있었고, 베드로의 마음도 비어 있었고, 베드로의 삶도 비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말도 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다 순종할 수 있었던 거예요. 나를 따라오라는 명령도 순종했고, 이제 부로 니가 사람을 낳는 어부가 되리라는 명령도 순종했고,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명령도 순종했고, 배를 잠시 대라고 하는 그 명령도 순종할 수 있었어요.
만약에 베드로의 삶이 비어 있지 않았다면 베드로 위에 그물이 빈 그물이 아니었다면 베드로가 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섬이나 외국을 사역을 위해서 방문해 보면 가득 차 있는 집들은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비어 있는 집이 문이 열려요. 나이가 많아서 친구가 없어서 허전함을 느끼는 분들 이런 분들은 두드리기만 해도 문을 열어줘요.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몸이 아파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들, 대화의 상대가 없는 사람들은 문을 열어줍니다.
근데 좋은 집에 사는 사람들, 좋은 차를 타는 사람들, 집에서 파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문을 열어주지도 않아요. 그 어떤 좋은 선물을 줘도 감사하지도 않고 귀찮아하게 하고 오히려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봐요. 아직까지 만약에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신 거예요. 여러분이 왜 거절했느냐 뭔가가 여러분 안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셨고 문을 두드렸는데 여러분이 비어 있지 않아서 만나지 못한 거예요. 예수님은 베드로가 비어 있을 때 찾아오셨어요. 비어 있는 베드로는 문을 활짝 열었고 예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이 텅 비어 있습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이 외롭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지금 힘들고 괴롭고 어렵다면 힘든 시간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 여러분에게 시작된 것입니다. 이 시간은 괴로움의 시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제대로 체험할 시간인 거예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그 어떤 제안도 거절하지 않았어요. 성도들도 자기 생각이 많으면 목회자의 제안을 다 거절해요. 그래서 12월 1월 이 한 두 달은 날씨도 좀 기분 나쁜 날씨지만 마음도 별로 좋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성도들 속엔 뭔가 너무 많이 차 있어요. 그 교회가 어떤 제안을 해도 잘 받아들이지를 않아요.
여러분 교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베드로는 육지에서 조금 배를 떼라는 명령도 거절하지 않았고, 그 배에 올라타서 무리들을 가르치는 것도 거절하지 않았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명령도 거절하지 않았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베드로의 삶이 비어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의 그물이 빈 그물이었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었던 거예요.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물질로 채워져 있으면 즐길거리가 많고 재미있는 것이 많으면 하나님의 명령도 들리지 않아요. 여러분 하나님의 명령이 들리지 않는 성도들이 사람의 이야기가 명령이 들리겠습니까? 사람의 말이 들리겠냐는 거예요.
이제 조금 다른 각도를 한번 보려고 해요. 그렇다면 가난하다고 텅 비어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물질이 없으면 빈 그물과 같은 상태일까요? 아니라는 겁니다. 가난해도 텅 비어 있어도 게임과 도박과 같은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는 거예요. 정말 비어 있어야 돼요.
정말 빈 그물이어야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제안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거예요. 비어 있는 것 같은데 치미로 가득 차 있고 비어 있는 것 같은데, 게임으로 가득 차 있고 비어 있는 것 같은데, 상처로 가득 차 있고 비어 있는 것 같은데 도박으로 가득 차 있어요. 이건 비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자기가 괴로운 거지 비어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반면에 물질이 많아도 성공하고 있어도 비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빈 그물과 같은 마음의 상태를 가진 사람을 의미해요. 그런 사람들은 많은 걸 가지고 있어도 예수를 만날 수 있고 예수님의 명령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제 정말 똑같은 사건 같은 그러니까 바둑을 두고 나 복귀를 하잖아요. 마치 베드로의 삶에 복귀할 수 있는 비슷한 사건이 또 한 번 등장하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디베라 호수에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갔을 때 그때도 베드로는 빈 그물이었어요.
여러분 갈릴리 호스는 여러 임으로 불려요. 그러니까 디베리 지역의 앞에 있는 호스는 디베랴 호스라고 하고요. 이런 식으로 불리더라고요. 그래서 통칭으로는 갈릴리 호수이지만 그 어느 지역 앞에 있느냐에 따라서 호수의 이름이 막 달라져서 여러 이름으로 불러져요. 그러니까 디베라 호수라는 것은 갈릴리 호수를 의미하는데 디베라 지역 앞에 있는 호수를 의미합니다. 이때도 베드로는 빈금였다는 거예요. 요한복음 21장 3절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노라 하고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물에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을 둘 수 없게 되었을 때 예수님을 알아봤던 거예요. 그러니까 베드로가 여전히 실패할 때 첫 만남처럼 고기 잡는 걸 실패할 때 빈 그물일 때 예수님이 찾아오셨고 베드로가 예수님의 명령에 다 순종하고 배에 고기가 가득 찬 걸 보고 그때서야 예수님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 베드로 예수님의 명령을 망각하고 갈릴리 호수로 돌아온 베드로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셨고 고기를 잡는 업으로 돌아오라는 교회 개혁을 포기하고 처음 만났을 만남 때 주신 사명이 사람을 낚는 어부의 길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어요.
좀 정리하면 이제 사람 남는 고기를 잡는 자리로 다시 돌아가서 사람 낳는 어부를 포기하고 그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때 베드로가 비어 있지 않았으면 내 양을 치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을까요?
만약에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열심히 그물을 쳤는데 고개가 가득 찼다면 내 양을 치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을까요?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들이 광야에 있을 때 찾아와서 만나주셨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가 광야로부터 온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광야는 메시아를 만나는 장소이거든요.
왜 광야에서 메시아를 만났느냐?
광야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는 곳이에요. 광야는 집을 지을 수도 없어요. 그 어떤 화려한 곳도 장치할 수 없는 것이 광야인 거예요. 거기서 텅 빈 상태로 예수님을 만나고 그 만남으로 영성이 만들어지고 그래서 메시아들이 선지자들이 광야에서 나온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질병에 걸렸을 때 우리의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인맥과 물질,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어졌을 때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다 떠나 내가 외로울 때 취업에 실패해 힘들어하고 있을 때 우리가 승진에 실패해서 답답해 있을 때, 내가 세상에서 좌천당해서 고통스러워 했을 때 우리의 희망이 모두 사라진 그 시점에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신 분인 거예요.
왜 그때 오시느냐 그래야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주거든요. 만약에 지금이 여러분이 그런 때라면 지금 여러분의 삶 주변에 어딘가에 예수님이 계실 거예요. 지금 말씀하고 계실 수도 있어요. 오늘 저의 입술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실 수도 있어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베드로처럼 좀 엉뚱한 명령 같은 것도 내가 순종하고 왜 이게 예수님의 명령일 가능성이 너무 높으니까 내가 분별력이 없어서 어떤 것이 예수님의 음성인지 잘 분별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 정황상 내가 텅 비어 있어서 예수님이 너에게 말씀하신 최적의 시간이니까 내게 말씀한 그것이 좀 이성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납득이 좀 잘 되지 않는 영역이 있어도 우리가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가 텅 비어 있을 때 찾아오죠. 그래야 우리가 마음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텅 빈 여러분의 마음 곁에서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똑똑똑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의 마음을 여십시오. 그분의 위로와 힘 주심이 여러분의 삶에 임하게 될 거예요.
우리는 예수님의 위로 한마디면 사람이 평생을 살더라고요. 목사가 무엇으로 목회한다고 하는지 아세요? 사람들은 목회자가 우리 교회는 그런 말 없겠지만 돈 이런 거 아니에요?
그런 걸로 목회하려고 했다면 시작도 안 했겠죠. 여러분들은 저희가 어떻게 처음 예수님께 불림을 받고 왔는지 잘 모르잖아요. 우리가 그걸 생각하고 예수님의 부름에 순종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지 목회가 어려워도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시고 한 번 이렇게 만나주면 그게 정말 전부이더라고요. 그 만나면 오늘처럼 이렇게 말씀을 전할 때도 임하기도 하고 주로 그 만남은 제가 비어 있을 때 임하더라고요. 텅 비어있을 때 목회가 잘 안 될 때 성도들이 내 마음을 잘 몰라줄 때 나는 정말 사력을 다하는데 교회는 잘 안 될 때 나는 정말 설교를 죽으라고 준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 성도님이 은혜 없다고 할 때 신기하게 그때 나를 향한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더라고요.
그리고 그 위로로 다시 목가의 현장에 서는 거예요. 아무쪼록 오늘 예배 가운데 우리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하신 음성을 꼭 들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