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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1-11절.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요약설교
1. 지난 시간에는, 우리 인간들의 세 가지 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1) 먼저는 하나님께 대한 죄로서, 대표적으로 우상숭배의 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인간들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인간 우상숭배와, 소와 같은 짐승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짐승 우상 숭배와, 뱀처럼 기는 것을 우상으로 섬기는 버리지 우상숭배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2) 둘째로는 사람에 대한 죄로서, 음행의 죄를 말씀드렸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인류가 물로 멸망한 죄도 바로 밤낮을 가리지 않은 음행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멸망을 당한 죄도 대표적인 것이 동성애(sodomy)라고 했습니다.
(3) 셋째로 사람에 대한 죄로서 서로 싸우고 다투는 죄라고 했습니다.
2. 2장 1절에서 3장 8절까지는 유대인들의 죄와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2:1-16. 하나님의 심판은 이방인과 유대인에게 동일하심
2:17-29. 구체적인 유대인들의 죄들
3:1-8. 유대인의 우월감에 대한 문답식 정죄
3. 오늘 설교의 제목은 <유대인의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첫째로, 1-3절에서는, 동일한 죄를 지으면서도,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우리들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1절.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1. 2장 1-16절은 심판의 보편성에 대한 말씀인데,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동등하게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1-5절. 남을 판단하는 유대인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심
6-11절.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차별 없이 심판하심
12-16절. 유대인은 율법으로 심판하시고, 이방인은 양심으로 심판하심
2. ‘그러므로’(Διὸ: therefore)는 이방인들이 우상숭배와 음행과 여러 가지 죄들을 행하기 때문에, 이방인들을 판단하는 유대인들에 대해서 죄를 지적하겠다는 말씀입니다.
3.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란 이방인을 죄인 취급하면서 판단하는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판단하는 것’(κρίνων:judging)은 재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정죄하는 것’(κατακρίνεις: condemn)은 재판관이 사형으로 정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4. 지난 시간에 말씀한 이방인들의 죄는 우상숭배와 음행과 주로 외적인 죄악들이었으나, 유대인들의 죄는 종교의 가면을 쓴 유대인들의 내면적인 죄악들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외식적인 모습을 통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은 외식적인 모습을 반성하고, 불신자보다 못한 외식을 회개하고, 양심적이고 진실한 신앙인의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5. 요한복음 8장 1-11절에서 간음한 여인을 죽이려고 정죄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자, 정죄하려던 유대인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다 돌을 내려놓고 모두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국법이나 종교적 율법이나 교회법을 앞세워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보다는 먼저 양심을 가지고 우리들도 겸손히 반성하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절.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1. ‘진리’(ἀλήθεια)란 단순히 진리 뿐만 아니라, 실제, 신실함, 도덕적인 신실함, 사람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킵니다.
또한 진리란 진리, 신실함, 꾸준함(truth, faithfulness. steadfastness)을 가리키고, 거짓과 속임수(contrasted with falsehood and deception)와 대조됩니다.
그리고 진리란 다양한 문맥속에서의 진리와, 하나님의 진리, 복음의 진리,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진리를 가리킵니다.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진리란 중요한 철학적 개념이었고, 존재의 실제와 본성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유대교에서 진리란 하나님의 성품과 언약의 신실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신약에서 진리란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이고,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특성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구현되신 분으로 묘사되어 있고,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계시하신 것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3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1.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 3:8-9, 요 8:33, 갈 2:15).
이처럼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같은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줄로 생각하는(λογίζῃ: 간주하는) 것이 근본적인 잘못이었습니다.
2. 앞에서는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대한 우상숭배 죄와, 육신의 정욕대로 음행하고, 살인하는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이, <그러면 그렇지! 그런 사람은 처벌을 받아 마땅해! 그런 사람은 차라리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3. 성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어떤 이웃과 싸움을 하게 되었을 때, <차라리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까?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누와 올케 사이에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까?
직장 생활이나 사업을 하면서, 극심한 이해타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십니까?
남편을 가로챈 여자에 대해서, 그런 여자는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릇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라고 말씀합니다.
4. 남을 판단하는 죄를 범하는 사람은 ① 이방 헬라 세계의 도덕주의자, ② 유대교의 율법주의자, ③ 기독교의 세속주의자입니다.
(1) 이방 헬라의 도덕주의자는 엄격한 스토아 철학과 자기 수련을 가지고, 미개한 야만인을 판단하고, 깔보았습니다.
(2) 유대교의 율법주의자들은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이 세리를 판단하고 깔보듯이, 자신의 율법적 행위로써, 남을 판단했습니다.
(3) 세속주의 기독교인들도, 예수님께 죄 용서받은 성도들을, 과거에 죄 짓고 천한 사람이었다고 비판하고, 차별하였습니다.
5. 그러나, 예수 믿고 새사람 된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도 세속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예수님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별이 없고, 자유인이나 노예의 차별이 없고, 남자나 여자의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6.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서, 인간끼리 비교하는 것은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서로 판단해야 할 존재가 아니요, 서로 용서하며, 협력해야 할 존재입니다.
에베소서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서로 부족한 사람들임을 명심하시고,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4-5절에서는, 하나님이 회개하도록 길이 참고 계심을 알지 못하여, 진노를 쌓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4절.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1. ‘인자하심’(χρηστότητος)은 긍휼히 여기면서 은혜 베푸시는 것을 가리키고, ‘용납하심’(ἀνοχῆς)은 심판을 억제하시는 것을 가리키고, ‘길이 참으심’(μακροθυμίας)은 인내하고 계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5-6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때까지 길이 참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2. ‘회개’(μετάνοιάν:to turn back)란 마음을 고치는 것을 가리키고, 하나님을 버리고 돌아선 인간(아담: 탕자)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회개’란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change of mind)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회개란 지적으로 변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정신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가리켰습니다.
5절.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1. 고집을 버리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는데, 고집하고 회개하지 않음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고집하면서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하나님의 진노가 쌓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진노의 날’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이 심판의 날은 ‘끝날’이라고 했고(요 6:39), ‘그날’이라고 했고(딤후 1:12), ‘심판의 날’이라고 했고(마 11:22), ‘그리스도의 날’(빌 2:16), ‘하나님의 날’(벧 후 3:12), ‘주의 날’(고후 1:14)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우신 심판’이라고 했습니다.
세상 재판은 예수님의 재판이나 바울의 재판에서 보듯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그릇된 재판이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우신 심판입니다.
1. 1-5절에서는, <네가--네가--네가-->하는 말이 9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은 마치, 우상숭배 죄를 행하고, 음행하고, 사기하고, 살인하는 사람이 <바로 너다> <바로 너다> <바로 너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마치, 벽보의 포스터 그림처럼,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 보면서, 손가락질을 무섭게 하면서, ‘바로 너다!’>고 하는 장면과 같습니다.
2. 4절은 <네가 하나님이 회개케 하시려고, 인자함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느냐?>고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교만한 자세, 네 고집을 버리고, 어서 회개하라!>고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3. 5절은 <만일 회개치 않고, 고집을 부리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고집>이란 단어(σκληρότητά: stubbornness)는 마음의 동맥경화, 심령의 간경화(hardness of heart)를 가리킵니다.
즉, 회개 않고, 고집부리면, 마음의 동맥경화, 심령의 간경화로 죽어간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4. 그리고, 회개치 않고, 고집을 부리면, <진노의 화약고>를 산더미처럼 쌓는 것이 되어서, 마침내 폭발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성령님의 감동으로 죄악이 생각나거든, 고집을 부리지 마시고, 즉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6-11절에서는, 악한 사람에 대해 분노로 심판하시고,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영광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6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1. 6절에서는 심판의 원칙이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는 원칙을 말씀합니다.
7절은 선한 사람에 대한 심판, 8절은 악인에 대한 심판을 말씀합니다.
9절은 악인에 대한 심판의 결과는 진노와 분노이고, 10절은 선인의 심판의 결과는 영광과 존귀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1절은 심판은 외모를 따라 심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씀합니다.
2. 신약성경에서 ‘행함’(ἔργα: works)이란 믿음이 행동으로 표현된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안다’(마 7:16)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행동으로 나타난 열매가 선하다는 것입니다(Ellicott's Commentary).
그러나 불신자는 그 마음속에 성령님이 없기 때문에, 악한 열매를 맺고,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3. 우리나라에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불교에서 행한 대로 받는다는 업보(業報: karma) 사상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불교의 자연적인 원리를 말한 것이 아니고,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악행에 대해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즉 죄인이라도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용서받을 길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143장.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 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7절.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1. 심판에서 ‘참고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 선인들은 내세의 영광과 내세의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보라보고, 어려움을 참으면서 선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세에서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어떤 권모술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유익과 부귀만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가련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거나 용서하지 않고, 짓밟으면서 자기 부귀를 추구하고, 내세에 대한 준비나 심판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8절.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1.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돈을 받고 당파의 운동원이 되어서, 옳고 그름이라는 진리를 따르지 않고, 무조건 자기 당파만을 옹호하는 매수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사람들은 진리를 따르거나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유대교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이나 그 추종자들은 예수님 앞에서 옳은 길을 따르지 않고, 무조건 정치적으로 자기들의 세력을 장악하려고 진리되시고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였습니다.
오늘날 한국에도 정당정치에서 옳은 것을 따르지 않고, 무조건 당리당략만 따르는 정치인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2. ‘진노’(ὀργὴ: wrath)는 내적인 분노를 가리키고, ‘분노’(θυμός: ‘진노’(ὀργὴ: wrath)가 밖으로 나타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9절.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 7-8절은 행한대로 심판하신다는 심판의 기본 원리를 가리키고, 9-10절은 심판의 보편성 즉 유대인이건 이방인건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2. ‘첫째는 유대인이요, 그리고 헬라인이다’는 뜻은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자 예수님을 먼저 받았던 유대인들이 회개하지 않고, 악을 행할 때, 그 결과는 이방인보다 먼저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3. ‘환난’(θλῖψις: tribulation)은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고통과 형벌을 가리키고, ‘곤고’(στενοχωρία:distress)는 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과 형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그 영에 환난과 곤고의 심판이 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지옥 형벌에서도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마 8:12, 13:42, 22:13, 25:30).
10절.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심판 때, 영광과 존귀와 평강으로 보상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2. 먼저는 율법을 받은 유대인에게, 그리고 율법 대신에 양심을 받은 이방인에게 그 행한 대로 보상을 주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물론 이 행실은 그 마음의 결과가 외부 행동으로 나타난 것을 가리킵니다.
즉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마 7:16).
그러므로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 따라 살아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도들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는 이를 갈면서 그 영이 환난과 곤고를 당할 것입니다.
11절.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 오늘 6-11절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6절-심판의 원리-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2) 9절-심판의 보편성- 악을 행한 각 사람, 즉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 심판하심.
(3) 11절-심판의 공정성- 하나님은 외모로 심판하지 아니하심.
2. <심판의 원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는 것은 성경에 일관된 원리입니다.
고린도후서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심판의 원리는 자연계시를 통해서도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②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시적으로 불의가 득세하므로 시험이 될 만한 지경에 빠지더라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악간에 심판해주실 것을 믿고, 낙심 말고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3. <심판의 보편성>입니다.
(1) 하나님의 심판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9-10절.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2) 또한, 본문에 <각 사람에게>라는 말씀이 세 번(6절, 9절, 10절) 나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에는 <다 반드시 각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처럼 <다 반드시, 각각>이란 말씀은 <심판의 보편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 <심판의 공정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11절.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외모와 낯을 보아주지 않으시므로, 우리들도 바리새인들처럼 세리와 창녀는 멸시하지 말고, 예수님을 이미 믿은 우리들도 이미 자신을 구원받았다고 자만하는 바리새인들처럼 하지 말고, 가슴을 치는 세리처럼,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닦는 죄인 여자처럼,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어렵고 낮은 이웃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용서하고 도와주는 겸손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5. 그러나, 심판의 결과는 두 종류입니다.
(1) 진노와 영광의 결과입니다.
7-8절.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2) 알곡과 쭉정이, 양과 염소, 천국과 지옥의 두 가지 결과로 나누어집니다.
마태복음 25:31-33.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 사망의 왕국과 생명의 왕국으로 나누어집니다.
로마서 5:21.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6. 끝으로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는데, 성도들의 밤낮 부르짖는 기도에 속히 응답하셔서,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7-8.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므로, 최후의 심판 때도 주님이 심판해주시지만, 오늘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시고, 심판해주실 것을 믿으시고,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가 시험하고,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살아가실 때, 살아계신 하나님이 공정하게 심판해주실 줄 믿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과 돌보심을 받고, 마지막 심판 날에도 공정한 심판이 있을 것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굳센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