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어느새 시나브로 깊어가고 있다. 산야에는 서서히 단풍빛이 번지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설악산을 시작으로 단풍이 남하하면서 수도권에도 머지않아 울긋불긋한 가을빛이 찾아올 것이다.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을 맞아 이번에는 경기도 양평군과 남양주시를 무대로 남한강 자전거길을 달려보기로 했다. 양평과 남양주는 옛 중앙선 철길과 간이역을 자전거길로 새롭게 단장하면서 전국의 자전거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되었다. 폐철로 위를 달리며 강과 산, 마을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운치있는 라이딩 코스도 드물다.
특히 남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강하면과 강상면 일대의 길은 빼어난 풍경 때문에 이른바 '아트로드'라 불릴만큼 아름답다. 오늘 여정의 출발점은 오전 9시 40분 경의중앙선 양평역이다. 양평역은 2016년 4월 초에 찾은 이후 무려 9년 6개월 만이다. 당시에는 바이크 손대장, 베어킴 김간진, 블랙캣 김경흠, 그리고 스머프차까지 단 네 명이 함께했던 기억이 새롭다. 세월은 참 빠르다. 그때의 젊은 열정이 지금까지 이어져 다시 같은 길 위에 서 있으니 감회가 남다르다. 그러나 바이크 손대장과 베어킴이 이 세상을 떠나 가슴이 몹시 아프다.
하늘의 운명이 그러한데 어찌하겠는가. 이번 라이딩은 성동고16 바이콜팀과 대열잔차팀의 합동 라이딩이다. 대열잔차의 홍토마가 흔쾌히 함께해준 덕분이다. 홍토마는 평소에도 바이콜 전사들과 친숙하게 지내는 친구라 더욱 반갑다. 오늘은 네 명의 대원이 함께 했지만 아쉽게도 바이콜의 핵심 멤버인 쉐도우수는 다리 통증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2주 정도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니 하루빨리 회복해 다시 페달을 힘차게 밟기를 바란다. 마라톤킴은 중간 지점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양평역 1번 출구로 나와 회전교차로를 지나 양근천으로 접어든다.
양근천과 나란히 달리다가 하천을 건너 양평도서관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드디어 남한강자전거길과 만난다. 맑고 청명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가 라이딩하기에는 더없이 좋다. 파란 하늘 아래 강바람을 맞으며 달리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양평역에서 오빈역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물안개공원과 가수 김종환의 노래비가 자리하고 있다.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오빈역에서 약 1km 떨어진 남한강변에는 양평들꽃수목원이 자리하고 있다. 아름다운 강변 풍경 속에서 사계절 피어나는 다양한 꽃을 감상할 수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도 사랑받는 곳이다.
자전거길을 따라 페달을 밟다 보니 어느새 아신 갤러리 열차 쉼터에 도착했다.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한박자 쉬어간다. 쉼은 언제나 달콤하다. 다시 페달을 밟고 기곡터널과 원복터널을 지나 국수역으로 향한다. 옛 중앙선 철길을 따라 만들어진 자전거길은 터널을 지날 때마다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다시 햇살과 강변 풍경이 펼쳐진다. 도곡터널 쉼터에 이르자 기다리던 마라톤 킴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10분 정도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신원역을 향해 페달을 밟는다.
신원역에 가까워지자 몽양기념관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신원역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몽양기념관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던 몽양 여운형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공간이다. 여운형 선생은 광복 후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좌우 합작과 민족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으나 1947년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자전거길을 달리며 역사적 인물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이 길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다. 신원역을 지나자 강변 쉼터에 초가지붕을 얹은 정자가 나타난다. '월계주막'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예전 관동대로와 남한강 물길을 통해 오가던 관원과 길손들이 잠시 쉬어가던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자전거 여행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쉼터가 되었지만, 옛길을 오가던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해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제 양수역으로 향한다. 양수리는 개인적으로도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이 자주 왕래했던 곳이다. 올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하나가 되는 두물머리는 양평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다. 새벽이면 강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노거수 느티나무와 연꽃군락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두물머리 곁에는 연꽃으로 유명한 세미원이 자리하고 있어 사계절 내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오늘 점심식사는 세미원 인근 연밭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식당 안에는 손님들로 제법 붐벼 잠시 기다려야 했다. 점심 메뉴는 연잎수육쌈밥과 명태찜이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진다. 역시 라이딩의 즐거움은 좋은 풍경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좋은 친구가 함께할 때 배가된다. 기력을 보충한 뒤 다시 페달을 밟고 북한강철교로 향하는 길이다. 철교 입구에 세워진 자전거 조형물 앞에서 기념 사진 한 장 남긴다.
북한강철교에서 능내역까지는 약 5,4km이다. 옛 중앙선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능내역은 폐역이 되었지만 자전거 여행객들에게는 여전히 인기있는 쉼터다. 잠시 쉬고 나서 마지막 목적지인 팔당역으로 향한다. 봉안터널을 지나 한강과 나란히 달리다 보면 어느새 팔당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후 3시 30분경 드디어 오늘의 라이딩을 마무리한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강변을 달리고, 역사와 문화가 깃든 옛 철길을 지나며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만끽했다. 무엇보다 장중보옥 같은 친구들과 함께 우정을 나누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하루가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