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군산시 구암3.1로 102-1 (경양동 636-17번지)
무료 주차
관람료 무료
숙소가 경암동이라 아침 일찍 경암 철길마을에 들렀다.
도로명 주소가 구암3.1로여서 봤더니 어제 방문했던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과도 멀지 않은 곳이었다.
주변 골목길에 주차를 했는데... 주차 공간이 없으면 길 건너편 이마트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기차가 오는 소리 들어본다고 철길에 귀를 갖다 대어보고 돌멩이로 두드려서 울리는 소리도 들어보고
다들 어릴쩍에 놀았던 모습들이 똑같았던 모양이다.
군산역으로 꾸며져 있는 곳은 경암 철길마을 관광안내소로 운영하고 있다.
운영시간은 아침은 아침10시부터 오후5시까지다.
2008년 7월 1일 기차 운행이 중단될 때까지 실제로 사용되었던 철길이라 군산시민에게는 그냥 어제같은 추억일 것이다.
그런데 나같은 외지인들에게 경암 철길마을의 낯선 풍경은 꼭 한번 쯤은 가봐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다.
약 400m 정도의 철길을 남겨놓았는데...
시간의 흔적을 걷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었지만 예상했던 것 보다 관람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경암 철길마을도 군산시간여행의 필수코스에 들어가야 하는 셈이다.
기차가 운행되었던 당시에 이 철길에는 기차와 함께 마을 주민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었다.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서 철길 양쪽으로 거주지를 마련했던 마을 주민들은
기차 앞에 매달린 두세 명의 역무원이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와 고함소리에 급하게 벽에 바짝 붙어서 서있거나
철길에 널어 놓았던 고추나 생선 등을 잠깐 집에 들여놓느라고 분주히 움직여야 했고
키우던 강아지도 불러들여 함께 열차가 무사히 지나가길 기다렸다.
경암 철길마을 관광안내소보다는 그런 영상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정말 좋을 텐데 라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경암 철길마을의 탄생 배경의 이야기가 있다.
철길이 생긴 것은 해방 전인 1944년 4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약2.5km 길이로 신문용지 제조업체 (주)페이퍼코리아 공장과 군산역을 연결하여서 철길의 정식명칭은 페이퍼코리아선 이었다.
공장에서 군산역까지 생산된 제품을 옮겼고 거꾸로 군산역에서 공장까지 원료를 이동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마을이 자리했던 경암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때 바다를 매립해 방직공장이 세워졌던 곳이다.
해방후 이 지역은 정부에서 관리하는 주인 없는 땅이 되어버렸다.
자연스레 오갈 데 없는 삶이 힘겨운 서민들이 모여서 살게 되었고 그렇게 마을이 생기게 되었다.
철길 옆에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지만 마치 철길이 마을을 가로질러 약1.1km 정도를 관통하는 형태로 보이게 된 것이다.
대만 스펀의 천등날리기를 하는 기찻길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오히려 집과 집 사이로 기차가 아슬아슬하게 다니던 군산의 경암 철길마을이 색다른 볼거리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부랴부랴 1.1km 중 400m 정도의 철길만 남겨둔 채로 관광지 조성계획을 마련하고 관광안내소도 마련했지만...
철길마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주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상권이 들어서서 원래 경암 철길마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찾아오는 관람객들에게 교복을 입히고 어린 시절 추억팔이를 하는 장터로 바뀌어 있다.
사람 모이는 곳에 돈이 몰리는 법이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도를 넘는 상인들의 호객행위에 고개를 가로젖는 관광객들도 적지 않은 듯 하다.
사실 그게 싫어서 조금 이른 시간에 경암 철길마을을 찾았다.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경암 철길마을 시간의 흔적을 걸어보려고...
조금 썰렁해 보이기는 한데... 그래서 더 좋았다.
원래 시간여행이란 게 고독한 사색의 시간인지라... 시끌버끌하면 오히려 이상해진다.
그래도 24시간 무인점포는 밤새 불빛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인생네컷이 여기선 철길네컷이다.
2월 23일에 다녀간 지훈씨와 정혜씨는 빨리 가서 지우시길... 누가봐도 옛풍경을 재현해 놓은 곳인데... 거기에 낚서라니...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전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굳이 남기지 않더라도...그리고 제발 외국에는 정말 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유럽의 많은 유명한 관광지에서 정말 예상지 못한 절묘한 곳에서 한글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그래도 다행이다. 지난 10개월동안 저 두분을 뒤따라 글을 쓴 무뇌인이 없어서... 그런거 보면 그래도 희망은 있어 보인다.
군산 캐릭터 먹방이가 보인다. 그리고 사실 먹방이 뿐만 아니라 네마리의 친구들도 있다.
먹방이는 1900년대 초 군산세관사로 부임한 개주인 "라포트"를 따라 머나먼 프랑스에서 조선으로 온 프랜치불독이다.
당시 조선사람들이 프렌치불독을 보며 코가 마치 돼지코를 닮았다면서 먹성좋게 생긴 먹방이라고 부르게 되어 생겨난 이름이다.
군산세관 옆 군산문화협동조합로컬아이가 운영하는 "먹방이 HOUSE"에 가면
먹빵이 닮은 먹빵도 먹고 다양한 먹방이 굿즈도 구입할 수 있다. (먹빵 1개 2,000원 3개 5,000원)
아빠 어디가, 수요미식회 등 TV프로그램은 다 갖다 붙이고...
왜 경암 철길마을에서 교복과 불량식품만 남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반가운 은하철도 999의 삼인방의 모습도 오랜만에 반갑다. 철도, 철길 관련있는 것은 그냥 다 갖다 붙이는구나!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에 햇빛이 쏟아지네
행복 찾는 나그네의 눈동자는 불타오르고
엄마 잃은 소년의 가슴엔 그리움이 솟아오르네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은하철도 999"
그래도 호객행위가 없는 경암 철길마을의 이른 아침은
철길 옆으로 아슬아슬 가슴을 졸이며 봤던 양옆 집들의 실루엣이 겹쳐 보이는 듯 하여 일찍 이곳을 찾은 보람이 있는 것 같다.
사람 많은 곳 돈이 되는 곳에 돈벌러 오는 사람들을 뭐라고 할 수는 없고...
각자 나름 경쟁력을 갖춘 제품과 서비스를 무기로 무한경쟁을 하고 있는데...
그래도 군산시가 어느정도 큰 틀의 교통정리는 해 줘야 하지 않을까?
그냥 정말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이 소중한 역사적인 현장이...
제주도 선녀와 나무꾼이나 전주의 난장과 다를 바 없는 추억팔이의 시장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니 이미 어쩌면 경암 철도마을 역사적 현장을 보러 오기보다는
교복입고 어린시절 군것질을 하러 이곳에 오는 관람객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책임있는 군산관광담당 공무원이 경암 철길마을을 지나는 철도의 영상을 단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었다면
절대 이런 식의 컨셉을 잡고 일을 추진하진 않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
주민들이야 경암 철길마을 조성으로 얼떨결에 비싸진 땅값에 땅을 팔았을 쁜이고
관광객이 많아 지면서 비싸게 돈 주고 들어온 상인들은 몰려드는 관광객을 상대로 돈벌이를 고민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 뿐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조율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군산시간여행을 마치 본인들의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쯤으로 여기는 여행객들이 혹시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 본인들의 고향에 가서 해야할 시간여행을 굳이 왜 군산에 와서 하는거지?
개인적으로 군산의 시간여행은 역사성과 현장동시성이라는 두가지 특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역사성에 대한 인식과 과거와 현재의 조우라는 두 가지의 과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경암 철길마을에는 역사성도 없고 현장동시성도 없다. 그냥 상업성만 남아있을 뿐이다.
왜 경암 철길마을을 철도가 아슬아슬하게 곡예운전을 해야 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그 당시 서민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괴뇌와 성찰에 대한 물음 대신에
"나 어렸을 적엔 교복입고 이런 것도 했고 요런 것도 먹었어" 아니면 "철길 배경으로 이렇게 사진찍으면 이쁘게 나와요"
본인들의 추억만 찾다가 가거나 인생 사진 한장 건지러 오는 꼴이다.
왜 굳이 군산에 와서 시간여행을 해야하는 지에 대한 해답은 없다.
그들의 개인적인 추억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군산시가 방향키를 잘못 잡고 있다는 말을 하는 거다.
어쩌면 군산시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도 있다.
관람객들이 자꾸 군산의 시간여행을 본인들의 어린시절 추억과 연결시키니까... 연대까지 콕 집어서
1930년대 군산의 시간여행이라고
제발 군산의 근대화시설을 함께 봐 달라고 애원을 한다.
그런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방문후기들을 보면 철도길은 그들에겐 단지 예쁘게 나오는 사진의 배경일 뿐이다.
교복입고 쫀드기 먹고 달고나 먹은 얘기로 끝나버린다.
사실 관람객들은 이렇게 상업화된 철도길을 걷고 나서 느껴야 할 것을 그냥 느낀 것 뿐이다. 그들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군산시가 경암 철길마을을 달렸던 철도의 목적지였던 군산역을 모형으로한 관광안내소를 지어놓고
본인들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할 지 모르는데...
수탈을 위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하여 경암에 철길이 놓여지고, 해방이후 고달픈 서민들이 왜 경암 철길로 모여 들었는지
그래서 집과 집 사이를 열차가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영상자료화면을 제작해서 보여주면
적어도 교복입고 달고나만 먹고가는 관람객들은 사라지지 않을까?
군산에서 찍은 황정민, 한혜진 주연의 영화 "남자가 사랑할때"에서 두 주인공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 경암 철길마을 걷는다.
"걷고... 이야기하고... 그정도"
죽음을 앞둔 황정민(태일)이 버스운전사인 아버지에게 한혜진(호정)을 부탁한다.
"얼굴도 이쁘고 완전 효녀야
지 아버지 몸져 누워 있을 때도 오랫동안 병수발했었어.
그런애한테 어떻게 내 병수발까지 하라그래
그냥 돈이나 왕창 갔다주고 사라지려 그랬는데....
나 없어도 걔 만나면 잘해줘야되 아버지!
걔가 아버지가 없어!
그러니까 아버지가 아버지좀 해줘 아버지!
아들이 진짜 사랑하는 여자야."
지자체에서 지은 듯한 "경암정"도 편의시설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상업시설로 사용되는 듯 보였다.
"여자말을 잘 듣자!" 훌륭한 교훈이긴 한데... 교복을 입혀 놓으니 어울리는 사진배경이 이렇게 뻔할 수 밖에 없다.
이런 포토존보다는 트릭아트나 CG(Computer Graphic)를 이용해서
경암 철길마을을 달리는 기차 옆으로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까치발을 서서 벽에 바짝 기대어 찍는 사진은 어떨지...
IT기술의 나라 코리아가 아닌가?
경암 철길마을을 출발하는 열차가 갑자기 미지의 곳으로 신비한 여행을 떠나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듯한 쓰릴넘치는 4D 가상어트랙션을 만들어도 많은 관람객들이 줄서서 탑승을 기다릴 것 같은데...
물론 또 우려되는 점은 있다. 돈이 된다 싶으면 또 이런저런 놀이기구들이 경암 철도마을을 마치 유원지처럼 뒤덮을 수도...
왜 이런 어트랙션은 되는데 저런 어트랙션은 안되냐고 따질것이 분명하다. 그러다보면 바이킹도 들어서고....
예전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한 유명한 조각가를 묻는 시험문제에 답을 모르는 친구가 옆 공부 잘하는 짝꿍의 답 "로댕"을 봤다.
외국인 이름이고하니 컨닝한 것을 숨기려 "오뎅"이라고 썼다.
그런데 이걸 컨닝한 옆 자리의 친구가 "덴뿌라"라고 썼다.
그리고 출제자인 미술선생님에게 가서 따졌다. "오뎅도 맞추게 해 주시려면 덴뿌라도 맞게 해 주세요."
경암 철길마을의 많은 벽화들 중에서 유일하게 딱 이 벽화의 모습이 경암 철길마을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기차앞에 두세명의 역무원이 매달려 호루라기를 불고 고함을 치며 앞을 정리해 나간다.
하루 두번 군산항쪽으로 오전 8시30분에서 9시30분, 군산항으로부터 오전 10시30분에서 12시 사이에 마을을 지나갔으며,
마을 중간 차단기가 있는 곳과 없는 곳 모두 합쳐 건널목이 열한 개나 되었고,
사람 사는 동네를 지나야 했기 때문에 안전문제로 실제 속도는 매우 느렸다고 한다.
사실 경암 철길마을을 조성할 때 기차부터 확보를 했어야 했다.
아니면 복원을 해서라도 양옆에 집들과 저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해 놓았어야 했다.
그리고 기차내부는 개조해서 영상관람실도 갖추고 당시의 사진과 자료들의 전시실도 갖추어 놓았어야 했다. 너무 아쉽다.
진짜 쌩뚱맞은 근거와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정체불명의 벽화들이 정말 많다.
경암 철길마을에서 유일하게 자나친 40대의 젊은 여성의 전화통화내용이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다.
"친구야 군산 시간여행중이야 정말 옛날 생각나고 좋다~"
(친구가 수화기너머로 고향이 군산인지를 묻는것 같았다.)
"아니! 내 고향은 청주인데?"
그래도 친구는 군산의 시간여행이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인 1930년대라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집과 집 사이를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기차가 오갔던 삶과 죽음의 경계가 맞닿아 있던 고달픈 서민의 아픔을 뒤로 한채
60년대 70년대 낭만의 말뚝박기 놀이가 조형물로 들어서 있다.
관람객들 옛날 생각나라고 순수한 의도에서 제작을 했겠지만 이게 왜 경암철길마을에 있냐고...
사람들이 모이고 장사가 되니까 하는 것이겠지만...
진짜 웃길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는 타로, 토정비결, 운세, 사주보는 곳도 있다.
오고가는 철도길에 어디가 시작점인지 어디가 끝나는 점인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경암 철길마을 관광안내소가 있는 곳에서 관람을 시작했으니 우리에겐 이곳이 끝나는 지점이고...
이곳에서 관람을 시작하는 누군가에게는 경암 철길마을 관광안내소가 있는 곳이 끝나는 지점이겠지.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부터 문을 열고 장사준비를 하는 집이 하나 있었다.
지나가는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주신다.
"이른 아침에 방문하셨네요?"
"네~ 가게 문을 정말 일찍 여시네요."
"늙으니까 아침에 잠이 없어져요."
막내민수가 한마디 거든다.
"아빠, 나이가 드신 분들은 돈벌려고 장사하는 게 아니야. 사람이 고픈거지..."
민수 얘기를 들어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경암 철길마을은 1944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64년동안 기차가 운행되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그 역사적 현장을 지키고 보전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고
그리고 다음 세대에 그 의미와 성찰을 전달해야 할 책임도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예전에 기차가 다닐 때는 상점이 단 한개도 없었는데... 무슨 원조논란까지 얘기하는 거 보면 장사가 되긴 잘 되는 모양이다.
경암 철길마을을 제대로 복원도 하고 어쨋든 들어서버린 이 많은 상인들도 먹고살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묘안을
군산시가 어떻게 마련할 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군산만이 갖고있는 그 매력만으로도 충분하고 족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어떤 도시도 가지고 있지 못한 군산만이 가진 유일한 것은 바로 역사가 함께 숨쉬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도시들 처럼 역사를 모아다가 박물관에 두고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옆에서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다른 어떤 도시도 가질 수 없는 장점이다.
어쩌면 그래서 군산은 다른 도시에 있는 통제되고 관리되어 있는 깨끗하고 잘 보전된 철도공원보다는
사람들로 살아숨쉬는 삶의 터전속에 경암 철길마을을 담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역사의 흔적을 지키고 있어야 다른 어떤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역사의 흔적을 놓치면 뭘 해도 되지 않는다.
경암역 커피숍에서 내가 그렇게 찾던 기차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크기도 작고 경암 철길에 놓여 있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카페 주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나중에 기회되면 바로 저기가서 커피 한잔 해야겠다.
그래도 이른 시간에 경암동 철길마을을 방문한 것은 썩 괜찮은 효과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