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에서 십자가로 사는 방법을 간구하라
(롬 13 : 1~7)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시는 말씀은, 권위를 지키며, 권위를 따르며, 살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순종하며 살아야 하고, 내 유익을 위해 내 만족을 위해, 내가 추구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 질서와 권위에 순복하는 것을 거절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절의 말씀을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종들은 상전에게 복종하고, 젊은이들은 노인들에게 순종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바댜는 악한 정권이었던, 아합에게 순종했습니다.
다니엘도 느브갓네살과 다리오 왕에게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땅에서 무정부주의나 정복주의자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려준 권위에 대해서 거스르지 말아야 합니다.
창세기 16장에 사래가 하갈을 핍박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래가 자신의 욕심으로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의 여종을 아브람에게 줍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가 아들을 낳음으로 인하여 자신의 주인인 사래를 무시하였습니다.
아브람에게 사래가 이 사실을 말할 때, 아브람은 ‘네 종이니, 당신 뜻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쳤습니다.
만일 하갈의 입장을 내가 대변한다면, “주인에게 억울한 누명을 썼으니 그 길로 네 고향에 가서 새로운 삶을 살아라”라고, 그렇게 말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갈을 만나시고, 하갈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6장 9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악하지 않고 선한 정부 밑에서 평안하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은 다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직장에서는 숨 막힐 정도로 사람을 괴롭힙니다.
가정에서도 숨을 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극도로 예민해져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그렇고, 내가 머무는 그 어디에도 숨 쉴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어떤 조건에 만족하여 내가 평안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적의 조건을 가진 장소나 사람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으며, 찾을 수 없습니다.
가정 생활하면서 100% 만족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부부관계에 100% 만족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100% 만족할 만한 교회가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교회라는 말이 때로는 내 교회가 아니었으면, 할 때도 많습니다.
대한민국에 살지만, 전 세계에 100% 만족할 만한 국가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박차고 나가서 새로운 것, 새로운 삶을 추구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탕자와 같은 영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가봐야 또 죄를 짓고, 내가 머문 곳에서 또 한계를 발견하고, 좌로 가도 거기에 만족이 없고, 우로 가도 거기에 만족함이 없습니다.
머무는 곳곳마다, 다 힘들고, 어려움만 가득합니다.
수가성 여인이 자신이 원하는 남편 상을 여러 명이나 바꾸었어도, 그는 아무도 물 길으러 오지 않는 시간에 홀로 나와서, 물을 긷는 불쌍한 여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에 완전한 만족이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이든지, 자기 만족함을 찾는 다는 것이 “죄 성” 입니다.
결코 인간은 이 땅의 그 어느 것으로 채운다 하여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빈항아리 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네가 인정하지 않는 부모, 네 형제, 네 나라, 네 정권, 네 교사, 네 주위사람들의 권위 밑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그곳에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모든 삶에서 기적으로 살기보다, 십자가로 사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기적이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의 방법으로는 오늘 주말이니까, 로또 복권을 하나 사야 하겠다. 라며 복권이 당첨되는 것을 기적으로 삽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판으로 뒤집는 인생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로또 복권이 쉽게 당첨이 되던가요?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자꾸 목마름만 요구할 뿐, 그 어느 것 하나 손에 쥐어진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삶이 아니라,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한 판에 뒤집는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실제로 로또 복권이 당첨된 사람들이 정말, 인생역전의 삶을 사는 것을 보셨습니까?
그 또한 불가능합니다.
각 분야에서 가장 지저분한 것을 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그래도 부모님 세대는 단순하게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지금으로 볼 때, 그것이 정말 쉬운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예수님만 믿으면, 되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머리 깎이고, 집에서 내쫓김 당했으나, 그 핍박이 “핍박받는 나를 살린 것”입니다.
그것이 목숨 걸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목숨 걸고, 예수님을 믿으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이 예수님 중심으로 다 바뀌게 됩니다.
이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신용도가 아주 높았습니다. 그래서 목숨 걸고, 신앙생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어떻습니까?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게릴라전을 벌입니다.
하나의 승리로, 나머지가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한 싸움을 승리해도, 또 다른 싸움이 존재하고, 또 하나를 해결하면, 또 문제가 발생됩니다.
이제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를 통괄하는 시스템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하나씩 하나씩 그것을 담아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싸우자고 했다면, 지금은 각 분야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더 힘들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이 기독교를 종교의 하나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란 종교가 가정에서 영향력이 없었으면 하고, 사회에서도 기독교란 종교가 미치는 영향력이 없도록 하여, 각자의 위치에서 아무런 영향이 없도록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3장 34~35절을 보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목숨을 걸고 믿습니다”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내용을 통해 사람들에게 들려줄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전에는 말로 될 것을 이제 삶 전체를 통해서 사람에게 드러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순복하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사회법을 거스르고, 웃어른에게 반발 하고, 거부감을 가질 때, 오히려 사랑으로 섬기고, 그들의 수고를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갈과 같이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욕심을 품어, 주인의 눈 밖에 났으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심으로 상전의 밑에 들어가 그 주인을 섬겼듯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복종하여 온전히 섬기는 주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 할지라도 복음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명확해졌습니다.
복음이냐? 아니냐? 중간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새 계명을 통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대로 실천하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잠시 불편한 것이 오히려 나를 세우는 큰 배경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상황에서 예배하며, 십자가의 은혜로 사는 주의 거룩한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PS.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매 순간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빠뜨렸다.
우리는 쓸모없는 것은 너무도 많이 알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우리 자신은 알지 못한다.
우리 안에 사는 영혼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 레프 톨스토이의《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중에서 -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조차 모르고 삽니다.
있어도 보이지 않고, 보여도 알지 못합니다.
영혼 없이 일을 하고, 영혼 없이 다른 사람을 보니, 가장 중요한 때, 가장 중요한 것을 속절없이 빠뜨리고 마는 것입니다.
혼을 담아야 비로소 제대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