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문제없어 / 솔향
계절 탓인가?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더욱 몸이 굼뜨고 기분도 가라앉는다. 사실 갱년기인지 올해 의욕이 밑바닥에 있다. 쉬 올라오지 않는다. 막내딸은 문 닫아걸고 휴대폰 삼매경이다. 남편은 급하게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어 이번 주 내내 새벽까지 안방에서 컴퓨터와 씨름하는 중이다. 덕분에 월요일부터 비어 있는 아이 방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홀로 자신에게 집중하고 생산적으로 보내면 고독을 즐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유튜브나 보면서 흘려 버리고 있는 나는 도대체 뭐 하는 걸까. 그것도 자신을 쉬게 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나? 의미 없는 시간이 잘도 흘러간다. 아깝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시간도 많으니 글쓰기 숙제를 해야 한다. 이번 주 글감은 ‘고독’이다. 고독이라. 2주일이나 주어졌지만 요리조리 생각해 봐도 도대체 소재가 떠오르지 않는다. 몇 번 쓰지도 않았는데 벌써 바닥난 건가? 이번엔 건너뛸까? 내 한계를 마주하니 좀 고독한 것 같기도 하다. 쓸쓸하다.
저녁 8시 30분. 갑자기 쓸거리가 떠오른다.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웬일이냐며 깜짝 놀라서 전화를 받는다. 아, 평소에 전화 좀 자주 할걸. “어머니도 혼자서 외로우실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그녀가 크게 웃는다. 기분이 환해지는 웃음소리. “니들이 있어서 나는 괜찮다만 가끔 외로울 때도 있지. 호호.” 뜬금없는 소리에 우스운지 그녀의 목소리가 리듬을 탄다. “자주 연락 드려야 하는데 죄송해요.” 의례적으로 또 반복한다. “괜찮다.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 더 반갑고 기분 좋다.”
시집온 지 22년. 그녀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마음이 고운 분이다. 처음 인사하러 와서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의 표정에 실망하는 빛이 스치고 지나간 걸 보고 말아서 딱 한 번 서운하긴 했다. 키도 작은 데다 생김새도 기대에 못 미쳤나 보다. 내 자식이 더 아까워 보이는 건 본성이니 이해한다. 아들에게 먹이고 싶은 반찬이 있어도 꼭 며느리 수저에 먼저 얹어 주고 나서 아들 밥 위에 올리는 사려 깊은 분이다. 그걸로 다 풀어졌다.
그녀는 다리를 못 쓰고 들어앉은 지 10년이 훌쩍 넘은 안사돈을 요양원에 보내게 된 이야기를 하며 안타까워한다. 옆 동네 사는 내 손위 동서의 친정 이야기다. 마나님을 돌보느라 사돈어른의 허리 병이 심해져서 어쩔 수 없었단다. 오랫동안 못 움직이니 살이 심하게 찌는 바람에 병원에서도 고역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형님도 참 마음이 가시방석이겠다. 나도 이제 막내딸 뒤치다꺼리에서만 벗어나면 좀 편해지려나 했더니 그쯤이면 노년에 이른 양가 어머니가 걱정이겠구나. 불안이 올라온다. 나 여행 다니며 살 수 있으려나? 내일 주말이니 찾아뵌다고 하고 끊는다.
한 달에 한 번쯤 고흥 나로도 시댁에 간다. 이번엔 노란색과 보라색 작은 국화 화분을 사 갔다. 어머니가 그것을 들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대문 앞에서 손녀랑 아들을 양쪽에 끼고 포즈를 잡는다. 예쁘게 나왔는지 바로 확인한다. 못생긴 건 그 자리에서 지운다. 나이가 몇이든 여자는 여자다. 꼿꼿한 자세나 옷 입는 감각이 시골 할머니처럼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가자마자 일꾼으로 변한다. 이제 바쁜 일이 지나가서 좀 한가할까 했는데 예초기를 돌리고, 생선 한 짝을 다듬고, 각종 고장난 것을 고치기 바쁘다. 그녀는 “우리 광수가 해결사다. 너 없으면 내가 어찌 사냐?” 하며 ‘우리 광수'를 입에 달고 산다. 다들 수도권에 터를 잡았고 4형제 중 둘째가 유일하게 전라도에서 사니 우리 가족을, 아니 남편을 의지한다. 남편은 칭찬 폭풍이 일 시켜 먹는 고도의 기술이라고 툴툴댄다.
요즘은 시간이 되는 대로 모시고 나간다. 가까운 데라도 구경하고 밥도 먹고 들어온다. 함께 나들이하는 걸 기다리는 눈치다. 늘 우리가 원하는 걸로 정하라고 해서 실랑이하게 만들더니 이번엔 닭백숙이 먹고 싶다고 먼저 말한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달콤한 바닐라라떼도 한 잔씩 마셨다. 고흥읍에 들러 깨끗이 씻어 말린 들깨를 기름으로 짜서 다시 나로도로 돌아왔다. 그동안 밀린 이야기가 많다. 막내의 엉뚱한 말에 웃음꽃이 핀다. “느그는 나 죽으면 아무것도 하지 마라. 니들이 오면 부자가 된 것 같다. 행복하고 즐겁다. 죽어서 잘하는 것 아무 소용 없은께 아무것도 하지 말어라.” 한다. 고맙다는 표현이다. 그나저나 제사는 어머니 대에서 끝낸다는 말이겠지?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0년 넘게 혼자 살아왔지만 그녀가 외로워 보이지 않는 것은 자녀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서일 것이다. 아직은 동네에 어르신도 꽤 있다. 이웃과 오가며 지내니 심심하지 않은 듯하고, 전화할 때마다 바쁘다는 걸 보면 나름의 방식으로 1인 가구의 삶을 풍부하게 살아 내고 있다. 잔디가 심긴 꽤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은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깨끗하게 삶아서 화장실 정리함에 조르르 개켜져 있는 수건을 보면 우리집 것은 걸레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른 아침에는 운동 삼아 먼 동네까지 한 바퀴 쭉 돌고, 집 뒤 언덕에 있는 텃밭에 가서 배추랑 무에 인사도 한다. 작물과 대화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 4형제 뿐 아니라 아홉 손주의 생일까지 싹 다 기억하고 때마다 전화나 문자는 기본으로 한다. ’행복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는 사람도 처음이다.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잘 꾸리고 있어 고맙다. 그녀가 외롭지 않게 연결이 굳건하다고 느끼도록 잘해야겠다.
시댁에 다녀오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의미 있는 일을 해서인가? 막내는 또 휴대폰과 한몸이 되어 있다. 간섭 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우리 딸이랑 시간 좀 보내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고개를 돌려 버린다. 홀로 지내지만 어머니는 문제없다. 게으른, 변명하는, 내가 문제다.